우리 시대의 슬픈 기록
[책소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최인기/ 동녁)
    2014년 04월 20일 11: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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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포이동, 상도동, 서울역, 동자동……. 한 때 신문의 1면을 차지하며 한국 사회의 비극적인 모습을 드러내준 공간들이다.

재개발과 철거 문제에서 비롯된 투쟁과 저항,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을 끊을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처한 극단적 빈곤, 정부의 공권력 남용과 주민들의 사망까지. 이 시대가 처한 가난함을 마주한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에 눈물 흘리며 다함께 분노하고 함께 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지는 6년이 흘렀고, 포이동 철거 투쟁은 10년이 다 돼가지만 합의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울역의 노숙인들은 날로 늘어나고, 동자동 쪽방촌에서는 연일 무연사가 생기는데도 대책은커녕 무시와 방관만 보일 뿐이다.

좀처럼 나아진 부분이 없는데도 이 공간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심해도 괜찮은 걸까? 게다가 그곳에는 여전히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억울해서 혹은 갈 곳이 없어서 떠나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20년 넘게 빈민운동의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해왔던 빈민운동가 최인기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악화되는 공간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야 늘 이리저리 치이기 마련이지만, 계속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새로운 문제가 벌어진 곳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를 안고 있는 곳에 대한 해결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다녔던 공간들과 그곳에서 떠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정리해보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알리고 싶었다. 그의 전작 《가난의 시대》가 도시빈민들이 살아온 긴 역사를 사료 중심으로 정리한 책이라면, 이 책에서는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는 데 더 집중했다.

각 공간의 역사를 되짚으며, 그곳의 역사를 삶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실은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찍어온 사진들을 함께 담아 각 공간들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저자가 현장에서 발로 뛰며 보고 느낀 이야기와 각 공간의 주민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게 된 것이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누가 이 사람들을 기억해줄 것인가?

이 책에는 복원 전의 청계천,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같이 지금은 사라진 곳부터 상도4동, 포이동, 용산과 같이 개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곳, 동자동, 서울역, 청량리 같이 극빈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까지 서울의 열두 공간이 담겨 있다.

화려한 서울 아래 가려진 가난한 공간과 그곳의 사람들의 모습과 거기서 벌어진 긴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현장에서 늘 함께 했던 저자는 이 공간이 지닌 사회적인 문제들도 놓치지 않고 서술한다.

싸우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고, 정부에 맞서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삶에 주목하며 왜 이 공간들에 대한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난은 꼭 물질적인 열악함을 넘어선 사회의 소외를 의미한다. 가령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노점상을 무조건 없애버린 일이나 성노동자들에게 대안을 마련해주지도 않은 채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해 성노동을 금한 일 등은 결국 해당 종사자들에게 자신을 부정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늘 법을 어기고 있다고 인식하며 죄인처럼 살라는 형벌을 주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최인기가 이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이유는 이들 역시 잠재적 극빈층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소외가 곧 가난으로 이어지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이 책은 저자의 소소한 추억과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백사마을의 현대이발소 주인과의 맺어온 오랜 시간이나 1960년대 청계천의 모습을 찍었던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 할아버지와 닿은 인연에 대한 사연도 볼 수 있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사회문제로 이슈화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각 공간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대개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문제가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쪽방촌의 한 달 월세는 17~30만 원 사이다. 서울의 원룸 월세와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병이 생겨서 직장을 잃거나 부모님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라면 순식간에 삶의 방식이 변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요즘같이 청년 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젊은이들의 미래가 얼마나 암흑일지 짐작조차 불가능하다.

이 책이 단순히 가난의 비극성만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사회가 움직이는 전체적인 논리를 읽어내길 바란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된 가난은 순식간에 누군가의 삶을 잠식시킬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떠나지 못한 채 유령처럼 부유하는 이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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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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