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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그의 슬픔과 기쁨』(정혜윤/ 후마니타스)
        2014년 04월 20일 11: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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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쌍용자동차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저자는 이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해고자, 노동조합, 빨간 조끼, 머리띠, 투쟁 구호 등의 상징으로만 인식되던 집단에 대한 선입견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과정에서 벗겨졌다는 것이다.

    ‘근데 왜 그랬나?’, ‘옛날에 꿈이 뭐였나?’, ‘어떻게 해서 대기업 노동자가 됐나?’, ‘대기업 노동자로 사는 건 어땠나?’, ‘해고될 줄 알았나?’, ‘해고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등의 물음을 던졌을 때 예상하고 짐작한 답을 들은 적이 거의 없다는 데서 놀라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산 자’(해고되지 않은 자)와 ‘죽은 자’, 희망퇴직자, (‘산 자’였으나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 된 자,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그날 이후’ 그리고 ‘그날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책은, 한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사건 앞에 놓인 평범한 인간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는지,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는 방식은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

    이는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였다고 가정된 이해 불가의 심연을 어느 순간 넘어서는 경험을 선사한다. 사건 자체에 대한 객관적 서술, 사회적 파장의 분석,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글 못지않게, 그 소용돌이 안에 있었던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과 감정에 집중해 이를 정직하게 기술하는 방식은 큰 사회적 사건을 기록하는 양식의 새로운 전범이며, ‘인간의 깊이’를 만나게 하는 문학이다.

    그의 슬픔과 기쁨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귀중한 서사
    거대한 사회적 사건은 그에 걸맞은 좋은 기록을 필요로 한다

    2009년 정규직 2,646명, 비정규직까지 포함해 3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정리해고안 발표. 이에 맞선 77일간의 옥쇄 파업. 그해 사용된 최루액의 95퍼센트 가량이 쏟아진 파업 현장. 파업에 참여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배상 판결에 따른, 46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및 가압류 금액. 스물네 명의 죽음. 쌍용자동차와 관련해 익히 알려진 수치들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일은 ‘사회적 재난’이라고 일컬을 만한 쌍용자동차 사태와 관련해 우리 사회가 알고 있는 바가 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충분히 알려졌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2011년 5월 10일 쌍용차 희망퇴직자 중 한 명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을 때,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질병으로 15명이 죽어 갔다면 원인도 찾고 처방도 찾아내라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누군가가 15명을 연쇄살인 했다면 온 국민이 나서서 범인을 잡아 법정에 세웠을 것이다.”라고 한 바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인 노동이 그에 걸맞은 대표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배제된 사회에서, 그들의 비극은 그들만의 것이 된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이내 잊힌다. 거대한 사회적 사건을 다룬 좋은 기록은,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충분히 잘 알고 있지 못함을 깨닫기 위해 필요하다.

    그동안 자신만의 독서 경험을 중심으로 한 감각적인 글쓰기를 통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는 이 책에서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다. ‘책’을 매개로 하지 않은 최초의 본격적 시도이자, ‘르포르타주 에세이’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그전부터 있었다. 라디오 피디로서 사회적 사건을 통해 한 인간의 불행, 비극, 혹은 구조에서 발생하는 무력감을 목도하면서, 방송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깊은 회의가 있었다. 동시에 이 같은 인간사의 슬픔을 어떤 시선으로 주목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외면하지 않았다.

    저자는 라디오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전통, 즉 ‘목소리가 없는 자들에게 목소리를 준다.’는 데서 자신만의 저널리즘을 길어 낸다.

    “이미 큰 소리로 떠드는 목소리 말고 아주 희미한, 들리지도 않는, 어쩌면 이내 사라질 목소리조차 한 번도 내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 속에서, 사회적 문제를 사실적으로 탐사하면서도 인간, 그리고 낱낱의 이름이 소외되지 않는 글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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