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계와 전세대란
    [조선생의 역사 이야기] 위화도 회군의 숨은 내막
        2012년 06월 22일 12:3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조남규 선생의 역사이야기를 오늘부터 연재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 형식으로 글을 실을 예정이다. 오늘 글은 한국사회가 전세대란으로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던 2010년의 글이다. 하지만 전세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서민들에게 고통이고 고민이다.(편집자)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이성계는 요동정벌을 반대했고, 최영은 찬성했습니다. 당시 정세를 보면, 원은 망해가고 명은 새로 시작하여 요동이 주인이 없었지요. 이 때를 틈 타 요동을 정벌하면 고구려 때 영토를 회복하는 좋은 기회라고 지금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기도 합니다.

    이 때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는데, 이건 지금으로 말하면 쿠데타입니다. 4불가론을 주장했다고 하지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면 안 된다는 구절을 제외하면, 이성계와 최영의 주장은 둘 다 나름 타당성이 있습니다.

    이성계는 여름철이라 질병이 돌고, 아교가 녹아 화살 쏘기 어렵고 등의 이유이고, 최영은 지금이 요동에 주인이 없으니 차지하기 좋은 때이고, 지금 점령하면 가을에 수확을 많이 거둘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최영은 총사령관이고, 이성계는 부사령관인데, 어떻게 쉽게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요동정벌의 타당성이나 현실성을 넘는 중요한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과전법입니다.

    이성계는 농민 출신의 병사들을 이렇게 설득하였습니다.

    “병사 여러분! 이제 이 압록강을 건너면 우리가 차지하려는 요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요동에 주인이 없어 우리가 가면 차지하는 건 거의 분명합니다. 그리고 최영 장군은 우리에게 요동에서 얻은 농토를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좋은 땅은 누가 차지하겠습니까? 분명 최영 장군과 고려의 정통 귀족들이 가지고, 우리는 안 좋은 땅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1-2년 간 철조망 치고, 개간하며 고생해서 고려의 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처자식들 데리고 다시 이 요동으로 와야 합니다. 5-10년 안에 우리는 정착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 5-10년이면 명나라도 기틀을 잡고 요동이 자기 땅이라고 내놓으라고 할 겁니다. 그러면 제대로 된 전쟁이 시작될 겁니다. 기나긴 전쟁이 될 겁니다. 여기서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럴 자신과 용기가 있습니까? 고려의 지도층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며 땀 흘리고 피 흘리는 데 함께 할까요?

    고려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습니까? 문벌 귀족은 대대손손 자기 집안에서만 높은 자리와 부귀영화를 해 처먹었습니다. 그걸 뒤집고 무신정변이 성공했을 때, 솔직히 우리 조상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무신들은 문신보다 더 해 처먹었습니다. 법도 없었고, 질서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힘이 쎄서 아무도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정말 어이없는 건, 무신들이 권력을 잡았으면 무식하게 백성들을 착취하고 정권을 농락할지라도, 최소한 외세의 침략은 막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놈의 무신정권 때, 몽고가 쳐들어오자, 지배층은 홀랑 강화도로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군사훈련을 했으면 말을 안해요… 거기서 부처님 힘으로 몽고를 물리친다고 팔만대장경 만들었습니다. 왕실에 무신들에 불교세력에 장인들까지, 모두 강화도로 들어갔습니다. 그놈들 먹여 살리느라 강화도 백성들 정말 60년간 작살났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고려 본토는 몽고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경주에 황룡사 9층 목탑이 불탄 것도 이 때 일입니다.

    그러고는 결국 몽고와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하고 항복하고 기어나왔습니다. 조건은 지배층을 인정해준다는 거였지요. 고려의 자랑이 무엇인지 아시죠? 몽고에 짓밟힌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망하지 않고 나라를 유지했다는 겁니다. 끝까지 버틴 삼별초는 다름 아닌 몽고와 고려의 연합군에 의해 밟혔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친원파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고려의 정통 문벌귀족과 무신들 중에서 몽고와 싸우다 망한 집안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다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간사하게 속삭였지요. 우리나라 유지하려면 몽고에 협조해야 한다. 몽고가 원하는 쌀과 여자와 인삼과 금은보화를 더 세금으로 바쳐라. 안그러면 다 죽는다. 이게 다 너희 백성들 생각해서 그러는 거다… 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양심이 있으면, 몽고가 더 바치라고 하면 그건 우리 주머니가 아니라 바로 지배층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몽고를 등에 업고, 이전보다 더, 몽고가 원하는 것보다 더 내놓으라고 했고, 말 안 들으면 몽고에 넘긴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래서 문벌귀족 때부터 무신정권기를 거쳐 친원파가 득실거리는 시절까지 우리 농민들은 계속 착취에 착취를 더 받아왔고, 그들은 지들끼리 한두 명 싸우다 죽을지언정 대대손손 해처먹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몽고가 약해지고 친원파가 약해지니까, 우리더러 옛날 고려 때로 돌아가자, 나도 처음부터 친원파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잘해보자 라고 말하는 겁니다. 뭘 이제 잘한단 말입니까?

    최영장군 훌륭하고 정몽주 훌륭하다지만, 그거 다 고려 정통 귀족가문들 아닙니까? 그리고 지들이 그동안 해처먹은 땅 내놓기 싫으니까, 이제 와서 요동정벌하자고, 요동 땅 주겠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저 광대한 땅, 산과 강을 경계로 가지고 있는 저 많은 땅이 본디 누구의 것이었습니까?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의 땅 아니었습니까? 할머니 아프셔서 약값 빌려달라고 할 때, 고리로 빌려주고는 못갚게 되자 담보로 가져간 땅들 아닙니까?

    그 땅에서 지금도 농사짓는 건 결국 우리 아닙니까? 옛날에는 같은 땅에서 100가마 수확하여 10가마 세금으로 바쳤는데, 지금은 똑같은 땅에서 우리가 농사짓고 50가마를 소작료로 내고 있는 거 아닙니까?

    최영 장군은 솔직해져야 합니다. 우리 땅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요동 정벌은 그 이후입니다.

    돌아갑시다! 고려의 신물나는 지배층에게 또다시 이용당하지 맙시다. 돌아가서 권력을 잡고, 자기 땅을 돌려받읍시다. 나 이성계가 책임지겠습니다. 여러분의 땅을 다시 여러분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공민왕 때 말로만 하다 만 그 일을 제가 하겠습니다. 과전법을 실시하고, 그 이전 작업으로 친원파의 땅을 모두 빼앗아 본래 주인인 여러분에게 돌려주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돌아가 저와 함께 새 나라를 만들어보겠습니까? 아니면 요동에 가서 얼치기 땅 쬐금 받아 살아갈 겁니까?”

    고려 부흥운동이 없었던 이유

    당근 농민 출신 군사들은 이성계에게 열광했지요. 고려에 충성한 사람들이 많고 충신이라고 하지만, 농민들이 보기에는 다 또라이였습니다. 조선에 끝까지 협력하지 않은 인사들이 많았지만, 그것이 고려 부흥 운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백성들의 열광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내가 농사짓고 있는 이 땅을 내 땅이라고 인정해준 이성계에 대한 충성과 지지 때문이었습니다.

    전세값 3천5백만원 올려달라는 집주인

    얼마전 저녁에 우리 집 앞 부동산 가게에 저와 애기엄마가 갔습니다. 집주인이 전세값을 올려달라고 해서 계약서를 새로 써야 했습니다.

    전세가 뭔지 아시나요? 우리 집은 2년마다 이사를 가는데, 그 때마다 엄마랑 아빠랑 싸우고 집이 점점 작아지고, 점점 서울 외곽으로 이사가는 집 있어요? (학생들에게 묻고 학생 몇 명은 손을 든다) 그게 전세 사는 집입니다. 저도 전세로 살고 있습니다. 2년 계약기간이 지나 다시 계약을 해야 하는데, 집 주인이 3천5백만원을 올려달라는 거예요…

    헉,,, 3천5백만원이 얼마 만한 돈인지 아시겠어요? 제 1년 연봉이 3천5백입니다. 서류로는 4천2백인데, 세금 떼고 빚 갚고 이것저것 떼고 나면 통장으로 받는 실수령액이 1년에 3천5-6백만원 됩니다. 한달 평균 3백만원으로 저와 처와 중3 아들과 중1 딸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1년 월급을 전세값으로 올려달라니, 우린 어쩌라고… 이 3천5백만원을 대려면, 2년 전부터 우리 집이 3백만원 월급 중에서 150만원만 쓰고 150만원씩 저축을 해야 했습니다. 이거 완전 고려 말 소작농 신세 아닌가요? 3천5백 못올려주면 나가라는 겁니다. 이런 못된 집주인이 있나요? 씨발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게 뭔지 아세요? 우리 집주인이 그래도 착하다는 거예요, 글쎄… 다른 집주인들은 4천, 5천씩 올려달고 그런다는 거예요. 전세대란이라는 겁니다. 내가 이제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해요? 누가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이 때 최영장군님이 저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한 겁니다. “남규야, 집 갖고 싶지? 억울하지? 그런데 어쩔 수 없지? 답답해 죽겠지? 나랑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자. 거기서 주인 없는 땅 개간하고 새 아파트 짓고 유전을 개발하자. 50평짜리 아파트 줄께… 그 대신 3년간 미친듯이 일해야 하고, 이슬람 놈들하고 싸워야 해… 어때? 갈래?”

    저는 너무나 집이 갖고 싶어서 최영 장군을 따라 나서기로 했어요. 애 엄마한테, 애들한테 작별인사하고 좋은 집 지어서 3년 뒤에 부를테니, 그 때 오라고 약속하고, 인천 국제공항으로 갔어요.

    그런데 비행기 타기 직전에 이성계 장군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말한 거예요. 돌아가자, 돌아가서 니가 지금 살고 있는 그 집을 니 집으로 만들어주마. 대신 나를 대통령으로 찍어다오… 한 겁니다.

    내가 어떻게 했겠어요? 나는 이성계가 아니라, 일본사람이 와서 그렇게 한다고 해도 밀어줬을 겁니다. 아니 외계인이 대통령이 되도 좋아요. 내 집이 생긴다면… 그래서 인천공항에서 발길을 돌려 청와대로 갔어요. 그리고 지금은 내 집이 생겼답니다. 이성계 장군 너무 조아, 잉!!!

    (이성계가 정말 저런 말을 한 건 당근 아니다. 내가 지어낸 연설이다. 그럼 이성계가 정말 저런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가? 에 대해서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내 추측이다. 보통은 이성계의 요동정벌 4불가론과 최영의 찬성 이유가 있는데, 이것은 토지문제를 중심으로 한 게 전혀 아니다. 토지 문제를 중심으로 이런 이해관계가 있었을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수업을 하다보면 대학에서 배운 객관적 사실과 다르게 자꾸 내가 뭔가 인과관계를 만들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역사연구자들은 미세한 국면과 시기를 세부적으로 파고들지만, 학교 선생은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하니 그럴 듯하게 인과관계를 연결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매우 그럴듯하여 거의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게 된다. 세부적인 사실이 한 두 개 틀릴지라도 전체 줄거리는 내 이야기가 맞다고 연구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을 정도이다.
    우리집 전세 이야기는 사실이다. 인천공항은 지어낸 이야기이고… 아이들은 나중에 “그래서 선생님 전세 어떻게 해결했어요?”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풀이 죽어, “응, 빚 냈어…”라고 대답하였다.)

    필자소개
    한때 전교조 중앙에서 교선실장을 했었고 또 오랫동안 전교조 서울남부지회 지회장을 맡았다. 지긍은 영림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