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담론 오용에 대한 불편함
[프로파일러의 범죄 이야기] 우리 사회 폭력성의 원인은?
    2014년 04월 14일 09: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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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아동학대 2건에 대한 재판 결과는, 전 국민을 분노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사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에 대한 의식과 우리 사법시스템의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접근이고 실상 우리 사회에 아동학대가 만연한다는 점은,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고 늘 그렇듯이 본질적인 접근보다는 누구 하나가 끔찍하게 죽어가야 관심 정도를 갖는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그리고 가족을 전공한 프로파일러로서 더욱 나를 고민스럽게 하는 것은, 이른바 아동문제 혹은 범죄심리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언론에 나와 떠들어대는 비논리적인 허접한 언설들과 그런 사람들에 의해 지금의 후진적인 시스템 중 중요한 부분이 연명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기막힌 사실이다.

어떤 사회문제 특히 범죄문제에 접근할 때, 다른 대안 없이 지극히 당연한 말을 반복하는 것은 주장 자체의 과학성과 객관성은 차치하고 그 자체로 대중의 분노에 의지하는 부당한 정치적인 거래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이 문제 즉 아동학대 그 자체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는 범죄이다. 그러나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대안을 형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아동학대 그 자체를 ‘전가의 보도’처럼 오용해서 부당하게 특정한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이는 사회적 낙인을 이용한 부당한 정치적인 이득추구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종편의 해악과 같이, 이런 종류의 주장들이 언론을 통해 매우 자연스럽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염려스럽다. 특히 아동학대에 대한 일부 근거 없는 주장들이 확인되지 않고 증명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무차별한 유포로 이어져 정작 본질적이고 반드시 필요한 사항에 대한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 중에서도 대중적인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주장은 그 분야의 전문성을 언론이 만들어준 것에 비추어 심각한 고민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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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에서 지난 주 경향신문에 실린 표창원씨의 주장은 한번쯤 재고해 보아야 할 고민거리를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이를 또 그대로 받아쓴 언론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은 그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 중 일부이다.

“…………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지존파.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연쇄살인범들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아동학대’ 피해자들이다. ………… 다 이유가 있다. 눈에 띄는 신체적 학대뿐 아니라 마음을 멍들게 하는 정신적, 정서적 학대와 언어적 학대가 지속되면 피해 아동의 대뇌 전두엽 발달에 지장을 준다. ………… 학대 피해 아동들의 대뇌는 전두엽과 해마 영역 간 연결이 손상되어 있었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불안’과 ‘공포’ 감정을 조절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성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대부분이 아동학대 피해 경험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다. ………… 1991년 마르고 리베라의 ‘다중인격장애’ 연구에서는 총 185명의 다중인격장애 환자 중 98%가 어린 시절 아동학대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FBI 보고서는 부모를 살해한 존속살해범 300명 중 90%가 아동학대 피해자였고, 피학대 후유증이 살인의 원인이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정도면 아동학대야말로 ‘사회악의 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밑줄 및 강조는 필자)

위 주장을 정리하자면 아동학대가 대뇌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주어 연쇄살인범이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주장 어디에도 모든 아동학대 피해자가 연쇄살인범이 된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가 얼마만큼의 영향을 준다는 것인지에 대한 주장도 없다. 해석에 따라 모든 아동학대 피해자가 연쇄살인범과 같은 사회악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이와 같은 주장은 매우 위험한 접근 방식이다. 아동의 대뇌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불안과 공포 감정 조절을 어렵게 하고 그 결과 성인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야기할 것이라는 논리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또 다중인격장애 환자의 대부분이 아동학대 피해자라는 점도 사례연구에 의한 것이므로 동의될 수 있다. 또 그 다음 주장 즉 존속살해범의 대부분이 아동학대 피해자라는 주장도 동의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과 앞서 말한 연쇄살인범들과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매우 위험한 침소봉대의 논리이다. 게다가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이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는 주장도 실상 사실 관계와는 부합되지 않는다.

가까운 예로 앞서 언급한 4가지 사례의 경우에도 유영철, 정남규, 지존파 등은 몰라도 강호순의 경우 아동학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실제 그것이 사실인지를 보증해줄 정확한 정신감정과 면담은 진행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다만 부정확한 정신감정 정도만 이루어졌고 이를 근거로 그의 주장에 비추어 몇몇 전문가들이 추정할 뿐이며, 이러한 추정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된 것 뿐이다.

그리고 이런 단편적인 사례를 떠나서라도 본질적으로 아동학대와 연쇄살인범의 관련성을 주장하려면 전체 아동학대 피해자에 대한 전수조사는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례연구 결과라도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몇몇 연쇄살인범이 아동학대 피해자라고 해서 아동학대는 연쇄살인과 같은 극악한 폭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혹시 대중의 분노에 영합해서 인기는 얻을지는 몰라도 임박하고 심각한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은커녕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즉 다수의 아동학대 피해자들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찍을 수 있으며, 아직 많은 부분 밝혀지지 않은 연쇄살인 범죄의 원인에 대해 부당한 면죄부를 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동학대 피해자들은 학대로 인한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학대 받은 공포와 낮은 자존감을 특징으로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평균적인 행복보다 훨씬 낮은 상태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들 중에 부정적인 피해의식과 불특정한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는 극히 낮다. 대부분 흔히 말하듯이 힘든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극히 매우 극히 낮은 가능성, 즉 그들 중 몇 명의 연쇄살인범과 ‘묻지마 살인범’으로 인해, 피해자 대부분이 그러한 매도를 당하는 것은 매우 심각하게 부당한 처사이다.

더욱이 내가 아는 한 연쇄살인범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실제 연쇄살인범이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그 범주와는 거리가 먼데 대중적인 인지에 영합해서 만들어진 것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정확히 학문적으로 연쇄살인범을 정의한다면 실제의 연쇄살인범은 언급되는 숫자의 1/5도 안될 것이다.

또한 이들이 그런 범죄를 일으킨 이유 중 상당부분(40% 정도)은 아직 규명 중이거나 가설 수준의 것이 많다. 그런데도 마치 엄격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대중에게 언급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만약 위와 같이 연쇄살인범이 그렇게 연쇄살인을 하게 된 이유를 아동학대에서 찾는다면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시키는 부당한 결론으로 유도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다른 많은 요인들 즉 환경적인 요인, 심리적인 요인, 경제적인 요인, 교육문제 등은 부적절하게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서국의 정치사에서 배우듯이 본질을 호도하고 부당한 낙인으로 귀결될 수 있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한 범죄심리학에서의 접근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혹은 오해하는 것이고 이런 오해가 반복되면 범죄심리학 자체의 학문적 깊이가 낮게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적어도 미국에 있어서 범죄심리학이 CRIMINOLOGY 혹은 CRIMINAL JUSTICE의 하위 범주인 이유도 우리나라 학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또 하나 아동학대에 대해 접근할 때, 많은 전문가들이 그 문제의 시급성, 심각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만 정작 중요한 근본원인에 대한 분석은 그리 정확하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이왕 언급한 대로 표창원씨가 주장한 바를 다시 인용하면,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전근대적(어떤 이는 유교적 전통이라고도 함) 인식, 사회에 만연한 폭력 등”을 아동학대의 근본원인으로 언급하지만 사실 그 말은 하나마나한 언급이다. 즉 그러한 전근대적인 인식이 왜 생기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의 폭력성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 등에 대한 원인 분석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원인 분석이 없을 경우 당연히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정작 핵심은 한국 사회의 가족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족제도는 이미 그 한계가 오래 전부터 노정되어 왔다. 1인 가구의 급성장과 비혼 가구의 급증, 인구의 급격한 하락세 등이 그 단적인 지표인데 대증적인 처방에 급급한 모양새는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또한 양육방식의 전환이라고 하는 아동학대의 대책이라고 하는 것도 저차원적이기는 마찬가지인데, 방임이 아니라 양육에 있어서 자녀를 동등한 한 인간으로 대우하려고 하면 그러한 대우를 유지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를 부모가 아닌 국가가 양육하다고 하는 사회적 양육과 공교육의 개념이 보편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기초적인 생존과 재생산 교육 그 자체를 부모 세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하라고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억지일 것이다.

물론 가족에 의한 양육과 사교육 비율이 지극히 높은 사회를 당장 국가에 의한 양육과 공교육 중심으로 전환하라고 하는 것도 무리이기에, 적어도 적절한 분담을 통해 전환해 가야하며 그 과정에서 부모자녀 관계의 전환을 모색해봐야 할 것이다.

다들 주지하듯이 우리나라에는 학교 밖의 아이들이 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이 왜 생겼겠는가? 우리 스스로 가족에 대해 근본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폭력성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부재,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민주적 소통구조의 부재 때문이다. 이는 1차적으로 엘리트 중심의 계급사회에 원인이 있으므로 집중된 권력과 권한의 분산을 위한 광범위한 사회권 확대가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우리사회에 폭력성이 높으므로 대면적인 폭력지수를 낮출 화해프로그램과 상담치료 등을 도입한다는 방향의 해결책은 그 자체가 넌센스이고 고도의 정치적인 접근인 것이다. 사회적 타협과 권한의 분산 그 자체가 대안인 것이다.

필자소개
배상훈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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