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불안과 과잉의료의 시대,
의료화 사회의 정체를 묻다
[책소개] 『건강의 배신』(이노우에 요시아스 외/ 돌베개)
    2014년 04월 13일 11: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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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된 ‘건강불안’과 상품화된 ‘의료’가 세상에 횡행한 결과 사람들의 건강은 도리어 더 나빠지고 있다. 이런 역설적인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이상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문제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은’ 바보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건강과 의료에 대해 진지하게 제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이 책은 권위에 굴하지 않는 자유로운 관점에서 의료라는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함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의료화 시대를 잘 살아가기 위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건강이 도리어 우리를 배신하고 있다?

“요즘 배가 나와 큰일이야, 헬스장이라도 다녀야지.”
“TV에서 봤는데 ○○란 게 몸에 좋다더라.”
“건강검진 안 한 지 몇 년째라고요? 빨리 받으세요..”
“혈압이 이렇게 높은데 약 안 먹어도 되나요?”
“진료만으로는 불안한데 CT 촬영은 안 하나요?”
“건강해지려 최선을 다하는 게 뭐가 나빠?”

건강은 우리 사회 남녀노소가 공유하는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건강 정보가 날마다 매체와 지인을 통해 화젯거리가 되고, 건강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위해선 많은 이들이 큰 수고나 지출도 마다않는다. 자발적으로 병원에 가서 부지런히 검진을 받고, 다양한 ‘건강습관’을 따르며 ‘건강식품’을 섭취한다.

이렇게 수많은 건강·의학 정보의 홍수 속에서 국민 대부분이 강박에 가까운 건강염려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풍경이다.

<건강의 배신>은 그런 우리에게,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숨겨져 온 쟁점과 진실들을 비추어준다.

의료 각 분야의 종사자인 저자들은 자신이 깊이 체험해 온 전문 주제를 중심으로, 지금보다 긴장을 낮추고 걱정을 줄이되 의료 관행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어째서 건강하고 나은 삶을 불러올 수 있는지 실제 사례와 데이터 등을 이용해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

건강식품의 효능을 때로는 의심하고 일률적 의료 관행과 시스템에 한번쯤 갸우뚱해보기도 하지만, 건강과 의료에 대한 기존의 믿음을 쉽게 저버릴 수는 없게 된 우리에게 이 책은 먼저 모든 개인이 지금까지의 건강 담론과 의료 시스템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로 보는 것이 진정한 ‘건강’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임을 알려준다.

건강의 배신

‘건강’과 ‘의료’에 관한 진실들

이 책의 저자로 나선 의료·사회학 전문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깊이 체험하고 연구한 주제를 통해 이제까지 의료계 안쪽에서 일어나고 있으면서도 문제화하기 어려웠던 사정들을 책임감 있게 밝히고 있다.

‘웰빙’·‘건강 습관’에 대한 강조나 ‘대사 증후군’의 유행 이면에 숨어 있는 이해관계, 의료 방사선 피폭의 심각성, 의료 산업의 집단 중심주의에 이르기까지 건강과 의료에 관해 결코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서는 안 될 핵심적 주제들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ex1) 병원에서 흔히 행하는 CT 검사 한 번의 방사선 피폭량은 최저 10mSv이며, 전신·조영 CT까지 더하면 60mSv를 초과하기 십상이다. 참고로 이번 원자력발전 사고로 인한 피난구역 지정 기준이 연간 피폭량 20mSv이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가벼운 복통이나 당뇨만으로도 아무렇지 않게 CT 촬영을 지시하는 것이 일상이다. 일본의 경우 의료기관에서의 방사선 피폭으로 발생하는 암이 연간 암 발병의 3.2%(세계 최고)라는 발표가 나왔지만 의사 대다수는 이를 모르거나 무시한다. 무시해야 병원 경영에 유리하고, 알리지 않아야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의료 행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ex2) ‘콜레스테롤 정상치’는 1969년에 260이었는데 점점 250, 240으로 내려가더니 오늘날은 마침내 230이 되었다. ‘정상 범위’를 줄여 제약회사가 약을 더 많이 팔 수 있도록 한 결과다. 기준치를 10 내릴 때마다 콜레스테롤 약을 먹는 사람이 1,000만 명씩 늘어난다. 국민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목적 때문이 아니다. 혈압 기준치의 변화를 둘러싼 상황도 마찬가지다.

1장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의료 방사선 피폭 문제다. 암 검진과 치료의 모순을 폭로한 것으로 유명한 이 장의 저자는 그 못지않게 중요한 방사선 의료 행위(CT 검사 등)의 위험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인의 인식 부족과 이해관계들로 인해 불필요한 검사가 수없이 행해지고 있는 행태 또한 강하게 고발한다.

2장에서는 불소 과잉 섭취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한다. 불소의 충치예방 효과에 대한 상반된 의견과 데이터를 꼼꼼이 검토하고 분석하는 가운데 그중 한쪽의 사실 조작 가능성과 그 배경을 설득력 있게 지적한다.

3장에서는 ‘생활습관병’ 개념을 해부한다. 정부가 제시한 이래 건강보험 재정 관리 등 행정적 편의를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된 용어 ‘생활습관병’을 중심으로, 건강에 관한 기준이 극히 임의적으로 채용되어 전 국민적으로 널리 신뢰받게 돼 온 과정을 추적한다.

4장에서는 건강검진으로 인한 ‘검진병’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건강검진 때문에 발생하는 암이나, 혈압 약 때문에 생기는 뇌경색 등 흔히 통용돼 온 의학상식과는 다른 ‘진실’들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오랫동안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을 진료해 온 체험을 바탕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80%는 안 와도 되는 사람”이라고 단언하는 저자의 진단이 인상적이다.

5장은 의학계 내부의 집단주의라는 근본적 문제를 파헤친다. 이 책에서 다룬 다양한 건강·의료 문제들이 ‘무라 사회’라 일컬어지는 구조적 모순의 해체 없이는 해결되기 어려움을 보여주는 한편, 의료 프로젝트 팀 등 경청할 만한 개선안도 제시한다.

6장은 정신의료의 문제점과 대안을 이야기한다. ‘전문가’의 다정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정신의료의 권력적 관계성을 단서로 삼아 현행 의료 일반의 권력성 문제를 폭로한다. 이탈리아 정신의료의 탈제도화 개혁 등 대안을 모색한 참신한 사례들도 함께 살펴보았다.

7장은 상품화한 의료의 소비 실태를 준의료 종사자(영양관리사)의 시각으로 고찰했다. 병원 안 사정의 현실적 스케치 속에서 의료의 역설적 실태가 드러난다. 대체로 ‘환자’나 ‘의사’ 입장에서만 대해 온 의료 현장을 색다른 눈으로 조망해 볼 수 있다.

8장은 대규모 스프츠클럽의 효용을 탐구한 글이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불철주야하는 생활인들의 인터뷰들을 통해, ‘세상이 권유하는 건강습관’이 반드시 현명한 행위가 아닐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의료화 사회’의 정체를 묻다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리라 기대해 온 의료화 사회가, 사람들의 건강불안을 부채질하고 필요 이상의 의료 행위를 발생시키면서 도리어 대다수의 건강을 해치는 현실을 <건강의 배신>은 일목요연하게 짚어준다.

언뜻 보기에는 객관적이고 자연과학적인 외양을 띠고 있는 의료가, 실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손쉽게 좌우당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윤색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일깨운다. 이 책은 일본의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소비사회 안으로 편입되어 상업화된 ‘의료화 사회’의 문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생각한다면, 당연하게 여겨졌던 상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명확하게 이해하려는 태도가 우리 자신의 건강과 진정 좋은 의료를 위한 길일 것이다. 의료화에 휩쓸리며 느껴온 독자의 미심쩍음과 갈증을, 이 책은 효과적으로 풀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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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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