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을려고 뛰쳐 나온 거여
    [이기순의 생애 이야기] 입산과 기도생활의 시작
        2014년 04월 08일 03: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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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순의 생애 이야기- 6

    친정 식구들은 그르케 심하게 맞고 사는 줄은 몰랐제. 말해봤자 더 속상하기만 허테고, 내가 챙피해서라도 말을 못혔어. 난중에 집 나갔단 소리 듣고, 더 난중에 이혼하고 어쩌고 한다고 할 때야 좀 알았겄지. 여동상도 처음에는, 나가 머를 잘못 헝게 맞고 시끄럽고 하다고 생각을 혔다드라고.

    한번은 서방이랑 막내시동생네를 갔는디, 시엄니랑 둘이 나를 두들겨 패고 욕하고 또 난리를 친 거여. 밥통을 다 뒤집어엎고, 밥상을 내던지고. 아~, 시동상네 집이서랑게~.

    안집 여자가 그걸 다 들은 거여. 내가 화장실 가서 울고 있응게, 쥔 여자가 쫓아와서는, 나보러 살지를 말라는 거여. 시어미가 평소 안집 여자한테 ‘큰아들이 싸우디 가서 돈을 많이 벌어와서는 큰아들네는 과일가게를 크게 헌다, 큰며느리는 을매나 호강을 하는지, 손에 물 하나 안 뭍히고 산다’고 허드래는 거여. 싹수가 아예 읎는 사람들이니, 아그들 생각해서라도 이혼을 하라는 거여.

    가정폭력-1

    가정폭력의 영화 한 장면

    내가 그 때 ’막내가 혼차 밥만 먹을 정도가 되면, 죽든지 끝내든지 한다‘ 하고 속으로 다짐을 혔어. 그러구 집을 왔는디, 나는 몰러~. 그 날 암사아파트 뒤 공원 있는 데로 서방이랑 둘이 간 거까지만 기억이 나. 그라구는 생각이 안나. 딱 기억이 거기까지야.

    난중에 남편이 그라는디, 내가 공원서 막 길길이 뛰면서 별 소릴 다 하더랴. 원망이니 한탄이니로 시작을 혀서, 니가 으뜨케 될 거라느니, 내가 멀 할거라느니, 그런 말을 길길이 뛰면서 하더라는 거여. 화가 나서 하는 모냥이 아니고, 신들린 것 모냥으로 훨훨 나르더래. 나는 하나도 기억이 안나, 그 때도 시방도.

    그 때 남편 생각이 ‘이 여자가 신이 들렸구나’ 했대는 거여.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때리고 말리고 혀도, 도저히 못해보겄더래. 그려서 내 허리를 붙잡고 ‘다시는 술도 안먹고, 때리지도 않겠다’고 싹싹 빌었댜. 신기 있는 사람은 저러다가 도망간단 소리를 어디서 들었디야. 그르니 싹싹 빌며, 다짐~ 다짐을 했던 거제. 그라다가 내가 술을 사오라 그러드랴.

    얼른 뛰어가서 사오니께, 술을 부어주드랴. 그려서 받아서 마실라고 한 게, 내가 그 술잔을 뺏어가꼬는 술병이랑 술잔이랑을 확 던져 깨뜨리드랴. ‘아직도 정신을 못챙겼냐?’고, ‘금방 안먹겄다 하고 또 입을 대느냐?’고 함서 또 길길이 뛰드랴.

    그려서 ‘아니라고 아니라고, 마지막이라며 주는 거라 마셔야 되는 줄 알았다고, 정말 안 마신다고’ 그럼서 엉엉 울면서 빌었댜. 그르니 다시 다짐을 받고서는 집으로 가자드랴. 나는 그 공원 간 거랑, 난중에 집으로 걸어 온 거만 기억이 있고, 그 중간은 암 것두 읎어.

    그라구서는 진짜루 한 달을 술을 안먹드라구. 술 안먹으면 안때리거든. 술만 먹으면 별 망나니 짓을 다 혀도, 술이 깨면 하나도 기억을 못혀. 그르니 그 사람은 술이 또 귀신인 거제. 그 일 있구는 한 달을 술을 안먹으니 좀 살만하다가, 결국은 또 술을 쳐먹구 망나니짓을 허더라구. 그라구서 깨고 나면 저도 겁이 나는가, 또 절대로 안마신다고 함서 빌어쌌고. 그르니 저도 지 맘대로 안되는 거제.

    그르다가 서방이 또 싸우디를 갔어. 이젠 정신을 차린다구 간 거제. 근디 그 때면 이미 나는 신기가 많이 있었던 거여. 아그들 핵교 보내놓고, 아파트 문이란 문을 다 잠그고 전축을 크게 틀어놓구는, 팬티만 입은 채로 미친 사람 같이 뛰고 그렸어. 속에서 으뜨케 헐 수 읎게 치밀어 오르면, 그르케라도 풀어야지 안그러믄 후떡증이 불처럼 나서 젼딜 수가 읎어.

    그르케 한바탕 뛰구 해서 가라앉으면 장사를 나가고 그렸어. 츰에는 홧병인 줄 알았는데, 아파트 공원서 그 일 있구부터는 달리 생각이 되더라고. 선몽도 자주 꾸고 혔으니 먼가 넘들과 다르구나….혀는 생각을 허게 되지. 어무이가 신 일을 했응게 그런 거를 좀 알았제.

    한번은 집에서 방 걸레질을 하다말고, 나도 모르게 마악 울음이 나면서는, ‘큰아가 관제구설이 들어서 큰일났다’고 중얼거리는 거여. 관청에 끌려들어가서 고초를 당헐 일이 있대는 거지. 큰아 고등학교 때여. 그르니 내가 왜 이러는 건지, 이걸 어뜨케야 하는 건지 불안하잖여~. 그려서 어디 가서 머를 물어봤제.(점보는 보살 집에 가서 물어본 것을 말함.) 그니께 내가 신기가 있어서 그렇대는 거여. 큰아들을 놓구 굿을 허면, 큰아는 피한대는 거구. 그려서 굿당에 가서 굿을 혔어.

    그러구 딱 삼일 만에 큰아들 핵교 학생들이 큰일을 저질렀어. 우리 아이가 규율부장허면서, 반장이니 하는 애들이랑 친구였거든. 근데 반장이 주동이 돼서 패거리가 반장 이모를 건드린 거여. 이모가 바람을 피웠대나 으쨌대나 해서, 지네들끼리 술 먹구 몰려가서는, 친조카까 지 이모를 거시기를 혔댜, 글씨~.

    그러니 이모부가 난리가 났을 거 아녀? 그래가꼬 이모부랑 애들이랑 싸움이 붙었는디, 그 놈 새끼들이 이모부를 칼로 찔러 죽인 거여. 그러구는 지네끼리 차를 몰구 도망을 가다가, 휴게소서 또 사람 하나를 칼로 찌르구. 근데 우리 아는 빠진 거여. 규율부장 하면서 반장이니 부반장이니 하는 애들이랑 늘 어울려 다녔거든.

    근데 딱 그 일 저지를 때는, 야만 패거리에서 어뜨케 빠진 거여. 원래루면 늘 같이 다니든 애들이니까 휩쓸렸을 거 아녀? 애들두 평소에 나쁘고 그런 애들도 아니었대는 거여. 그러니 나는 그 때부텀은 신기가 많이 있었던 거지. 그 보살도 내가 신내림을 받아야 한 대는 거였어. 근데 그 때는 그냥 지나쳤어.

    막내 시동상을 일곱 살부터 내가 키웠잔여. 그르니 자식 같기도 허지. 게다가 막내아들네가 시어미랑 살고 항게, 나도 미안혀서 더 잘 혔지. 근디 시어미가 나헌티 하던 걸 그 막내동서헌티 그대로 하는 거여. 나나 그렇지, 젊은 여자가 그걸 당하구 살어?

    그르니 노상 시어미랑 며느리가 다투구, 시동상은 맨날 나헌티 전화혀서, 죽겄대는 거여. 자기가 으뜨케 해야느냐고, 둘 사이에서 으뜨케 해 볼 수가 읎는 거제. 마누라 말이 옳은데 그렇다고 에미를 버릴 수도 읎고.

    그려서 내가 ‘서방님~, 그려도 서방님은 세 식구만 살지. 나는 손위 시누에 개고기 삼촌(큰 시동상의 못된 행실을 빗대 부르던 호칭.)에, 서방님도 어렸다. 남편이라고 내 야그는 듣지도 않고 뚝하면 패기나 하고. 그런 속에서 그 기막힌 시엄니 시집살이를 살었다. 그르니 나는 어쩠겄냐? 나야 멍청혀서 그렸다 치고, 동서헌티 잘 해줘라.‘ 그렸어.

    시동상이 ’노인네가 죽을 때 논두랑을 이고 죽을라(가족 친지들의 미움을 사서, 행려병자로 살다 죽는다는 의미.)고 그런다‘구 하드라구. 결국은 같이 못살구 그 방을 시엄니 줘버리고, 저그들은 친정살이를 들어 가 버렸어. 오죽허면 그러겠어? 근디 그 시어미가 그 친정까지, 그니께 사돈네지, 거그까지 쫓아가서 난리를 쳤다드라구. 지 아들이 버는 돈 저헌티 안준다고.

    그 동서는 똑똑하고 현명한 거여. 막내동서가 아이가 서서 배가 많이 불러오니, 포데기랑 배내옷이랑도 사다주고 잉어도 사다 고아 주러, 그 사돈댁을 나두 몇 번 갔어. 그러구 시동상은 아그 낳기 얼마 전에 해외를 갔어. 차 정비기술이 있어서 그걸루 싸우디를 간 거여. 통장을 마누라 앞으로 해놓고는, 지 에미헌티는 자기가 관리한다고 한 거제. 그르니 시어미가 막내며느리 잡을 일이 읎잖여. 막내 시동상도 혼인 전엔 나에 대해 오해를 했었을 거여.

    그르다가 저도 결혼해서 에미랑 살아 본 게, 내 심정을 알았을테지. 시방이야 형이랑 에미랑 다 죽었지만, 지금껏도 가끔 전화를 혀, 그냥 안부 전화지 머, 자기한테 형수는 나뿐이라구.

    살겄다구 나온 게 아니구, 죽을라구 나온 거여 / 입산과 기도생활

    정월 초하루에 동서가 아그를 낳았어. 그려서 초이틀에 동서네를 갔었제, 서방이랑 같이. 근디 거기서 시에미가 또 나를 죽일 년을 만들고 한판 난리를 치는 거여. 첫 애기 낳은 사돈네집, 지 아들두 없는 디서 정초부텀~. 사람도 아니여 그것들은~.

    그라구 집엘 왔는데 나가서 술을 쳐먹고 들어와서는, 다시 한바탕 잡는 거여. 이번에는 아예 죽일 작정을 하고 잡드라고. 살림을 다 부수고 발로 짓밟고 벽에다가 머리를 내던지고 멱살을 잡아서 머리를 벽에 찧어대구. ‘이르다가는 죽겄다’ 싶어, 입은 채로 도망나왔어. 그게 정월 초사흗날 새벽인 거지.(1986년경/만 40세)

    막내가 초등핵교 삼학년 때여. ‘막내가 밥만 지 손으로 먹으면, 끝내든지 죽든지 하자’, 허든게 그대로 된 거지. 옷 보따리 싸고 돈 챙기고 헐 새도 읎었어. 아그들 자고 있는디, 입은 옷 봉창에 삼만 맻천원 있든 채로 뛰쳐나온 거여. 미친 년이제~. 그때는 증말 살기도 싫고 세상도 다 싫드라구. 살겄다구가 아니구, 죽을라구 나온 거여, 지 손에 안죽구 내 손으로 죽을라구~. 글을 알아야 편지를 쓰든가 유서를 쓰든가를 하제~.

    미친 여편네 하나가 집을 뛰쳐나오고 있다. 새끼 넷을 떨구고, 정월 초 사흗날 새벽에….

    (이기순) 갈 디가 읎드라고. 어디 가서 죽어야 헐 지를 모르겄어. 울며 울며 길을 걷는디, 그냥 죽기가 너무 억울햐~. 그냥은 못죽겄어~. 어데 가서 목청껏 통곡이나 하고 죽어야겄다 싶어지더라구.(흐느낌)

    팔봉산이 생각 났어. 그 산이 엄니가 신 받고 일할 때 자주 갔던 산이여. 한 겨울 깊은 산이면, 소리지르며 울다 죽기에 딱 좋겄다 싶었어. 대구 어딘 가에 있다는 소리만 들었는디, 기차 타구 버스 타고 하매 물어물어 갔어. 단숨에 올라가기가 엄청 힘든 산인디, 버스서 나려서 그 길로 올라간 거여.

    자슥이고 세상이고 끝이라는 생각이니께, 죽는 거가 급허게는 안 여겨지더라구. 그러니 맴도 가라앉고, 무섭고 걱정되는 것도 읎구. 자슥이고 부모고 다 넘의 세상이고. 그랴도 막상 바위 우에 앉자마자, 자슥 타령부텀 나오더만.

    시방은 팔봉산을 잘 가꿔놨드만, 그 때는 그런 게 거의 읎었제. 갑바위에 한 이십명이나 섰게 되야 있고 암 것도 읎었제. 근데다 정월이라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많응게 오래 못있게 허드라고. 그려서 삼일을 울며 통곡허며 되는대로 있었어.

    ‘나는 새끼들 넷을 떼놓고 나온 나쁜 에밉니다. 나헌티야 먼 벌을 내리셔도 좋은 데, 우리 새끼들만은 잘 보살펴 주십시요’, 그 게 다여~, 더 있을 게 없제. 한편으룬 맘이 한없이 편혔어. 내 생전에 그르케 맴이 편혔던 적이 없어.

    그러다가 또 제 정신이 들면 자식새끼들이 눈에 밟혀 미치겄는 거구. 새끼 넷을 띠어놓고 나온 년이 오죽허겄어?….(울음) 어떻게 안미쳤나 몰러.~ 그 전에는 누가 어린애 띠어놓구 집 나갔다구 허면, ‘나같이 모질게 참구 사는 년도 있는디….’ 허며 속으루 독한 년이라구 욕을 혔었는디, 내가 해 보니께 그게 아닌거여. 그럼서두 마음 한짝은 내게다가 나쁜 년 독한 년 욕을 허는 거지.

    그려도 에비에 할머니 고모 삼촌들이 있으니, 설마 거지야 안만들겄지 싶기도 혔지. 기도 온 사람들 야그들을 들으니, ‘어디 산이 기도가 좋다. 누가 어디서 신을 받았다. 누가 먼 사연으로 누구 기도를 받고 거시기혔다’ 그런 말들이 많더라구. ‘나도 산에서 기도만 하구 살면 좋겄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라믄서 ‘세군데 산을 다니며 기도하구 죽자’, 그런 맴이 생기구. 전에 어무이가 ‘삼산을 돌며 기도를 헌다’는 말이 생각 난 거지.<계속>

    필자소개
    1957년생 / 학생운동은 없이 결혼/출산 후 신앙적 고민 속에 1987년 천주교사회운동을 시작으로 “운동권”이 됨. 2000년부터 진보정치 활동을 하며 여성위원장, 성정치위원장 등을 거쳐, 공공노조에서 중고령여성노동자 조직활동. 현재 서울 마포에서의 지역 활동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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