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카소의 쥐약
    [산하의 가전사] 누구에게나 천적은 있다
        2014년 04월 08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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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피카소의 사주팔자가 궁금하다. 세상에 저렇게 좋은 팔자도 있을까 싶기 때문이지.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미술 소질을 보여 주목을 받아. 화가인 아버지가 그 소질을 이해하고 자신의 팔레트와 물감을 넘겨 준 뒤 그림에 손을 끊어 버렸다는 일화로 그 천재성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니.

    물론 나중에 아버지는 입체파인지 뭔지 알아먹기 힘든 그림을 그리는 피카소를 이해하지 못했고 피카소 역시 반항했지만 말이야.

    “스페인은 피카소를 만들었고 피카소는 20세기 회화를 만들었다.”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처럼 피카소는 20세기 최대의 거장으로 있는 대접 없는 대접 다 받았고, 가난에 시달린 선배 화가들과는 달리 억만장자 수준의 재산에 뒤덮여 살았다.

    거기에 남자들이 부러워할 포인트. 공식적으로, 그리고 유의미하게 헤아려도 일곱 명이나 되는 여인들을 차례로 거느리고 살았을 뿐 아니라 그를 거쳐간 여자가 1개 연대는 되지 않을까 하는 점.

    여기서 새삼스레 그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한다. 문맹이 사서삼경 강의할 수는 없지 않겠니. 그저 위대한 예술가이자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공산주의자이며 전쟁을 미워하고 평화를 사랑했던 화가의 사랑 이야기만 조금 훑어 보려고.

    피카소의 여성 편력을 잠깐 언급했지만 이 피카소한테는 뭔가 여자를 홀딱 반하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해. 나이가 들수록 젊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야.

    뭐였을까? “게르니카 (나찌에 의해 폭격당한 스페인의 도시 이름이자 그를 묘사한 피카소의 그림)를 당신이 그렸소?” 하는 나찌 장교의 질문에 “아니 당신들이 그렸지.” 라고 대꾸하는 그 시니컬한 당당함도 한몫 했을 테고, 그가 좋아했던 새 올빼미처럼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 깊은 눈동자에 매료되기도 했을 테고 마르셸 뒤샹이 “우리가 채 이름 붙일 수 없는 다양한 이즘을 총체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이것은 그저 ‘피카소 작품’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고백한 것처럼 한사람이 보여 주는 열정적인 천재성에 여자들이 열광했을 수도 있지.

    이런 천재들이 즐겨 여자에게 버림 받거나 조금 더 다가서지 못해 발버둥치거나 비련의 사랑 때문에 그 영감이 더욱 깊어진 예는 세계사에 비일비재하건만 피카소를 사랑한 여인들은 그 엄청난 나이 차이나 자신에게 준 상처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를 못 잊어 했고 마치 눈이라도 잃은 듯 허둥대다가 정신 이상을 일으키기도 하고 자살하기도 했다는 건 실로 하나의 미스테리야. 사실 나쁜 남자였는데 말이야!

    젊었을 적 애인이 결핵을 얻자 행여 전염될까봐 십리 밖으로 달아난 사람이었고, 첫아들을 낳은 여자를 매정하게 버렸고 평생 양다리를 걸치지 않은 적이 드물었다고. 하지만 여자들은 그에게 매달렸고 내동댕이쳐진 뒤에도 그리워한다. 참 피카소 팔자 상팔자.

    미성년자 때 마흔 여섯의 피카소를 만나 미성년이 끝나는 날을 기다려 동거에 들어갔던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가 죽은 뒤 피카소를 만난 지 꼭 50년째 되는 날, 저승에서 자신이 피카소를 보살펴야 한다며 자살한다.

    그 뿐 아니라 피카소의 마지막을 지켰던 여자 재클린도 권총으로 머리를 쏘지. 명화 <게르니카>를 그리는데 도움을 준 지성적인 여인 도라 마르와 또 한 여인은 연적과의 싸움과 피카소의 무관심에 지쳐 결국은 미쳐 버리고 만다고.

    그러나 이 피카소에게는 한 명의 쥐약이 있었다. 프랑소와 질로. 그녀는 스물 두 살에 예순 두 살의 피카소를 만난다. 그녀는 이렇게 얘기했단다. “내 남자친구들하고도 얘기가 안 통하는데 어떻게 당신과는 얘기가 통하죠?” 이로써 피카소는 전생에는 넬슨이었고 그 전에는 이순신이었고 그 전에는 외계인으로서 은하계를 구했음을 인증한다. 이 여자에 열중하면서도 피카소는 자신의 공산당 입당을 취재하러 온 어린 여기자 즈느비에브를 후리고 있었어.

    그런데 이프랑소와 질로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어. 다른 여자들이 피카소의 사랑의 채찍을 기쁘게 맞는 메조키스트였다면 프랑소와 질로는 “이런 싸가지!”를 부르짖으며 채찍을 빼앗아 후려치는 여자였지.

    로버트 카파라는 사진작가가 있어. 저 유명한 스페인 내전의 ‘어느 병사의 죽음’부터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현장까지 역사적인 사진들을 많이 찍은 이 사진 작가는 그 특유의 감각으로 이 프랑소와와 피카소 커플의 사진을 하나 남기는데 이 사진에서 프랑소와는 한껏 잘난 체 하며 여왕 흉내를 내고 있는 반면 피카소는 양산을 치켜드는 내시 흉내를 내고 있어.

    질로_피카소_re_me

    질로와 피카소의 사진

    천하의 긍지 높은 바람둥이 피카소 인생 최대의 굴욕을 상징하는 이 사진을 찍은 얼마 후 프랑소와는 피카소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해. 아직 사랑이 식지 않았던 피카소는 프랑소와에게 소리지르지. “나 죽어버릴 거야.” 아 그러자 우리의 프랑소와 시원한 한 방을 파블로에게 날린다. “그게 당신에게는 더 행복할지도 몰라요.” 아 이때 피카소의 표정을 보면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것 같은데.

    프랑스와 질로는 이후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고 피카소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은 따박따박 피카소 호적에 올려 후일 피카소의 막대한 재산 가운데 일부의 권리를 갖게 되지.

    개와 여자

    피카소의 ‘개와 여자'(1953)

    그녀와 헤어질 즈음 그린 그림이 피카소의 <개와 여자>라는군. 검색해 봐. 여기서 녹색의 암울한 옷을 입은 여자는 개와 노는 게 아니라 개를 잡아먹을 듯 다리를 꽉 잡아챈 느낌이야. 그리고 개는 무기력하게 발라당 드러누워 있고. 여자는 말할 것도 없이 프랑소와고 개는 피카소였다지. 붉은 색으로 묘사된 건 아직 사랑이 남아 있음을 뜻한다고 하고. 그림 속의 단추만한 개 눈을 보렴. 완전히 깨갱한 채 여자의 손길에 몸을 내맡긴 불쌍한 남자. 피카소도 쥐약이 있었던 거지.

    1973년 4월 8일 아흔 한 살로 피카소가 죽었을 때 피카소는 머리를 스쳐가는 여자들 수를 세다가 미처 못 세고 눈을 감았을 거야. 하지만 한 명을 셈할 때는 덜컥거리면서 아 그때 참 참담했었지 하면서 입맛을 다시기도 했을 거다. 프랑소와즈 질로.

    누구에게나 천적은 있다. 겸손할지라.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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