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러를 하는 자, 파는 자, 사는 자
    [책소개]『자본의 핏빛 그림자, 테러』(로레타 나폴레오니/ 시대의창)
        2014년 04월 05일 03: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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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이었다.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화염에 휩싸였고 곧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9월 11일,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여객기가 충돌한 사건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지켜본 세계인들은 그 참혹한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는 소위 말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했고, 9‧11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라덴을 잡기 위해 미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잔혹한 테러의 주범에게는 오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자신이 지원한 세력에게 끔찍한 테러를 당한 것이었다.

    십수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테러는 끝나지 않았고,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 역시 ‘수상한 지원’을 끝내지 않았다. 너무 당연하게도 ‘테러에는 자금이 필요하다.’ 지은이 로레타 나폴레오니는 바로 이 문장에서 비롯한 의구심을 바탕으로 이 책의 모든 것을 시작한다.

    냉전부터 데탕트를 거쳐 동구권의 붕괴와 더불어 냉전이 종식되고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정치/ 종교적 존엄성을 위한 테러이든 생존을 위한 테러이든 강대국이 사주한 테러이든 상관없이 모든 테러에는 마땅히 ‘돈’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돈’을 움직이려면 자연스레 자금 조달 시스템과 각종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테러와 경제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나폴레오니는 이를 일컬어 ‘테러의 신新경제’라고 칭했다. 그리고 경제와 철저히 유착된 현대적 의미의 테러, 즉 모던 지하드Modern Jihad의 진상을 파헤친다.

    이처럼 우리들이 풍문으로 들었던 테러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폴레오니는 방대한 조사와 인터뷰 그리고 자료를 증거로 우리에게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들려준다. 신자유주의가 고도화되고 있는 현대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테러’에까지 달라붙은 ‘자본’의 핏빛 그림자를 낱낱이 보여준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독자들은 테러와 자본의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며, 무장 단체와 서방의 권력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오니는 오랜 기간 동안 수천 건의 문서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관련 인사들과의 폭넓은 인터뷰를 통해 테러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더러운 돈과 정당하지 못한 권력이 배태한 불행한 산물이 테러 조직이라고 진단한 그는 정의와 자유를 추악한 금맥과 거래하는 부도덕한 정치적 흥정을 인류 사회에 고발하고 있다.”―이희수(한양대학교 교수), <추천하는 글> 중에서

    핏빛 테러

    테러하는 자, 테러를 파는 자, 테러를 사는 자

    ‘테러’라고 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랍, 아랍인들, 이슬람, 성전, 반미주의 등을 떠올린다. 이렇게 연상되는 것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치/사회/종교적 개념들이라는 것이다.

    2003년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 결국 이 전쟁(어찌 보면 학살)은 원유에 대한 미국의 욕심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 미국은 9.11테러를 당했고, 바로 이듬해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바로 1년 뒤 이라크를 침략한 것이다. 즉, 자신들이 지원했던 세력에게 테러를 당한 미국은 그 테러를 이용하여 가짜 명분을 내세우고 ‘원유 확보’를 비롯한 자신들의 진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탄을 퍼부었다.

    우리는 ‘테러’를 중심으로 벌어진 이 일련의 과정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따라서 ‘테러’가 가진 경제적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이 ‘테러의 신新경제’다. 여기서 말하는 신경제는 기존의 정보통신기술 혁명이 만들어낸 경제 개념이 아니라, 21세기에 들어서 생겨난 지정학적 대변동에 따른 경제적 의미로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다.

    나폴레오니는 근 50년에 걸쳐 발전한 테러와 이것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경제적 개념들을 아울러서 테러의 신경제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테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테러의 주도권이 어떻게 해서 제3세계에 주어졌는지, 테러를 둘러싼 엄청난 자금의 흐름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유지되는지 등을 설명하면서 테러의 신경제를 파헤친다.

    현재 세계는 미국과 영국 등의 서방과 중동, 남미 등의 제3세계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부분은 사실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테러가 생성하고 발전하던 시기는 물론 부시가 ‘테러 근절’을 외치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에조차 테러에 관한 한 서방과 이슬람은 한통속이었다.

    미소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그들의 대리전을 자신들의 국경 바깥 제3세계 사람들에게 테러라는 형태로 사주했고 필요한 경우 기술과 자금을 아낌없이 대주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 사회/ 종교적인 대립이 교묘하게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자 많은 테러 조직은 생존을 위하여 무기를 들어야 했다. 이것이 ‘테러 민영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조직은 PLO처럼 거대한 의사국가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러지 못한 조직은 사라져갔다.

    이제 PLO와 하마스 같은 테러 단체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조직을 ‘경영’하기 위하여 수많은 합법/ 불법적 경제 수단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이렇게 발전한 테러 경제의 규모는 1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영국 GDP의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테러리스트들과 서방은 서로를 죽이기도 하고 거래를 하기도 한다. 이 일관성 없는 작태가 결국은 경제적 이득 때문이라고 나폴레오니는 지적한다.

    우리가 아는 혹은 모르는, 테러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테러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이는 나폴레오니가 합의의 여지가 매우 적은 정치적/ 종교적 틀을 벗어나 경제적 틀로 테러를 분석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물론 서구인의 한계와 편견을 드러내기도 한다. 테러를 경제적 틀로만 분석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테러의 동기, 서방에 대한 아랍인의 반감의 원인 등이 가진 중요한 의미를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폴레오니는 이 책에서 테러에 대해 부정확한 추론과 근거 없는 억측으로 독자들을 혼란과 오해로 빠트리지는 않는다. 저자는 수천 건의 문서와 폭넓은 인터뷰를 통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나폴레오니의 노력이 맺은 결실을 통해 우리는 서방과 이슬람의 과두 체제들이 돈과 권력과 지역에서의 패권 유지를 위해 얼마나 잔인하게 폭력을 사용하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교묘하게 은폐하는지를 알 수 있다.

    테러에 무조건 동의하거나 또는 테러를 완전히 타인의 일로 치부하는 태도를 버리고, 보다 균형적인 관점과 폭넓은 배경 지식을 가지고 테러와 현재의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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