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을 지탱하는 또 다른 힘
    [책소개]『또 하나의 일본』(데이비드 스즈키, 쓰지 신이치/양철북)
        2014년 04월 05일 03: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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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이다. 일본을 군국주의, 전체주의로 보는 것은 언론에서 보여주는 이미지 혹은 식민지를 경험했던 역사에 의한 일부 모습일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국가라는 일본 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중심을 두고 우리에게 다양한 일본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였던 일본에도 많은 피해자가 있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고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자국의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는 양심적 지식인들도 있다. 그들은 일본이라는 국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미군과 일본과의 중간에서 고통 받으며 도처에 전쟁의 상흔을 가진 채 살아가는 오키나와 사람들 역시 주목 받지 못했다.

    저자들은 이렇게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일본 열도 남쪽 끄트머리인 오키나와에서 열도 북쪽 꼭대기인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만났다. 지역에서 묵묵히 평화와 인권, 환경을 위한 풀뿌리 운동가로 활동하는 그들과 과거에서부터 현재, 미래를 함께 나눴다.

    그렇게 저자들이 만난 일본은 다양한 역사와 문화,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과오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 그리고 세계화 경제라는 소비편향적인 불모의 가치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였다.

    또 하나의 일본

    차별과 맞서 싸워온 사람들,
    오키나와인, 부라쿠민, 자이니치, 아이누. 윌타 등 원주민

    일본이 다민족국가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일본 열도에는 그 곳에 원래부터 터를 잡고 살던 오키나와인, 아이누족, 윌타족 등 여러 원주민들이 있다.

    일본에 속하지만 일본인이기보다는 오키나와인으로 남고 싶어 하는 오키나와 사람들, 수세기에 걸친 압제와 핍박과 동화 정책으로 인해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아이누 등의 소수 민족을 통해서 일본이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같은 일본인이면서도 21세기를 사는 지금도 천민이라는 딱지를 달고 살아가고 있는 300만 부라쿠민들과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적의와 편견의 대상이 되는 니케이(日系,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거나 살고 있는 일본인)들을 통해 일본이 얼마나 폐쇄적인지, 현재에도 엄연히 계급적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닛케이’들은 일본어 실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언어장벽 때문에 일본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길이 막혀버린다. 이는 일본인이 되기 위한 자격에는 혈통뿐만이 아니라 문화적 순수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부라쿠민은 마을 안팎으로 자유로이 드나들 수도 없었으며, 옷과 머리 모양과 신발조차도 제한되어 있었다. 심지어 길을 갈 때는 길가로만 다녀야 했다. 저녁 8시가 되면 시내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통행금지도 있었다. 1871년에는 정부의 법령에 따라 부라쿠민에 대한 법적 차별이 폐지되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정부와 시민과 관청은 계속 차별을 하면서 부라쿠민을 하층민으로 대했다.

    다수가 아직도 무국적자로 떠도는 100만이 넘는 자이니치(재일 한인) 역시 자이니치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했다,

    일례로 일본에서 목사로 활동하는 이인하 씨의 아들이 열네 살이 되었을 때 아이의 등록 갱신을 깜빡 잊어버렸더니, 열네 살 된 아이에게 죄를 물어 벌금을 부과하고 전과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시인인 김시종 씨 역시 자이니치의 존재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라며 자이니치 작가는 실명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에 따라 이미 정치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다양성이 가장 중요한 순간

    20세기 생물학의 가장 놀라운 교훈은, (유전적, 종적, 문화적) ‘다양성’이 장기적인 복원력과 생존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발견이었다. 환경적, 사회적 변화가 급격한 시대에, 새로운 조건에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것은 바로 이 다양성이다.

    갈수록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행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일본에서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오랜 세월 끝에 일본의 단일성 신화는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조짐은 아직 작고 연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히 곳곳에서 눈에 띈다. 다양성은 분명코 더 나은 일본의 미래를 위한 열쇠다. 저자들이 만난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질이 있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일본 지식인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생각과 이념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어떻게든 과거의 자기 뿌리를 잃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이다. 그들은 자연적, 문화적, 지역적 환경과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일본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분쟁과 환경오염과 자연 파괴는 어느 한 나라, 한 민족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한다. 그 때문에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같고 다름을 규정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풍요로운 삶인가, 그리고 과연 당신은 어떤 삶을,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책에서 만난 사람들의 지혜를 살린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과거 및 미래와의 끈을 아직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불통(不通)의 시대에 필요한 지혜

    이 책은 10년 전에 나왔던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가 이대로 잊히기는 안타까워서 다시 펴냈다. 정형화된 한국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불통의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 우리에게는 우코차랑케 정신이 필요하다. ‘우코’는 ‘상호 간에’, 그리고 ‘차랑케’는 ‘말이 흘러나오도록 내버려두다’라는 뜻이다. 즉 ‘우코차랑케’라는 복합어는 남김없이 대화를 나눔으로써 차이를 해결하는 아이누 전통을 말한다.

    이 방식은 폭력으로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논쟁을 하는 자질과 며칠 동안 앉아서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체력을 필요로 한다. 또 ‘집단적인 소유’라는 뜻을 지닌, ‘소유’라는 전통 사고방식은 지역공동체가 자연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소유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한 때는 일본 전역에 존재하던 이 개념은 정부소유, 개인소유, 공동소유라는 근대적 사고방식에 밀려나버렸다. 지역주민과 자연과의 관계를 풀어 가는 데 있어서 특정 몇몇이 소유하는 방식이 아닌 함께 소유한다는 이 개념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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