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성결혼 시대의 새로운 페미니즘
    [책소개] 『가가 페미니즘』(J. 잭 핼버스탬 / 이매진)
        2014년 04월 05일 03: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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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든 여성들은 자식이 다 크자마자 이혼을 선언한다. 정부는 저출산을 해결하려 온갖 방법으로 협박하고 회유하지만 젊은이들은 여전히 아이를 갖지 않는다. 점점 심해지는 젊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에 여성들은 한숨을 내쉬면서 독신을 다짐한다.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는 동안, 한국에서는 새로운 가족 구성권을 질문하는 유명 게이 커플의 ‘당연한 결혼식’이 떠들썩한 잔치판을 벌였다.

    당혹하게, 때로 불안하게 하는 이런 풍경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가가 페미니즘 ? 섹스, 젠더, 그리고 정상성의 종말》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가족과 결혼의 붕괴를,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변화를 유쾌하게 맞이하자고 제안한다.

    ‘주디스 핼버스탬’ 또는 ‘잭 핼버스탬’이라는 이름을 쓰며 젠더 이분법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온 저자는 페미니즘, 퀴어 문화, 대중문화를 넘나드는 도발적인 글을 쓰며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퀴어 이론가 중 한 명으로 주목받고 있다.

    ‘페미니즘의 왕’ 핼버스탬의 책 중 한국에 처음 출간되는 《가가 페미니즘》은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나 레이디 가가 등 방대한 대중문화 현상, 일상에서 일어나는 퀴어한 변화들, 월가 점령 운동으로 촉발된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선 저항의 물결을 한데 엮어 새로운 세대의 섹스, 젠더, 관계성에 관해 쉬운 말로 들려준다.

    핼버스탬은 팝 스타 레이디 가가를 새로운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삼아 결혼이 무너지고, 남성이 임신하며, 이성애자 여성들은 부치를 만나는 21세기 섹스와 젠더의 지형도를 그려 보인다.

    섹스와 젠더의 세계를 여행하는 가가 페미니스트를 위한 안내서

    데뷔 뒤 줄곧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경계를 넘나든 레이디 가가가 시상식에 드랙을 하고 나타난 일화로 책을 열며, 핼버스탬은 ‘가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페미니즘을 제안한다.

    가가 페미니즘은 레이디 가가라는 개인에 한정된 페미니즘이 아니며, 젠더 이분법과 여성이라는 범주를 뒤흔들고, 치솟는 이혼율의 시대에 핵가족의 잔해에서 출현하는 중인 친밀성의 새로운 형태를 살피는 페미니즘이다.

    핼버스탬은 자기 파트너의 아이들을 처음 만난 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3살, 5살이던 아이들은 핼버스탬에게 “여자예요? 남자예요?”라고 물었고, 똑 부러진 답을 듣지 못하자 ‘보이’와 ‘걸’을 짜깁기한 ‘보이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언제나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던 젠더의 모호함을 한 방에 해결한 ‘보이걸’이라는 이름은 해방이었다면서 핼버스탬은 이런 훈련되지 않은 아이들의 통찰로 동시대 젠더와 성정치를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가가 페미니즘

    1장에서 우리는 가가 페미니즘의 전반적인 배경을 보게 된다. 핼버스탬은 백인 여성의 모녀 유대에 매달리는 낡은 페미니즘 모델이 인종과 계급의 문제를 질문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똑똑한 여자와 게으름뱅이 남자 커플을 다루는 멈블코어 영화를 통해 지속되는 젠더 위계와 이성애 로맨스의 위기를 지적한다.

    또한 서로 다른 인종과 계급에서 성정치는 아주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을 밝힌 뒤, 모든 사람에게 페미니즘, 가족, 섹스와 젠더는 크게 업데이트돼야 한다고 말한다.

    변화하는 젠더를 다루는 2장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 등장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임신한 남자’로 시작한다.

    핼버스탬은 자궁을 절제하지 않고 호르몬 처방을 잠시 중단한 뒤 임신을 한 트랜스 남성의 사례를 살펴보고, 재생산 기술의 진보가 성역할을 해체하고 양성 평등을 가져오리라고 예견한 급진적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을 인용한다.

    급격한 사회 변화가 바꿔놓은 섹스와 젠더의 의미를 세밀하게 살피며, 부성의 위기, 인공 재생산, 퀴어 가족을 다룬 영화를 통해 친밀성과 젠더에 관한 서사가 담아내지 못하는 현실의 변화를 지적한다. 또한 여전히 불평등한 성별 분업을 고수하는 이성애 가족에게 새로운 선택할 제시해줄 부치 아빠와 퀴어 부모들의 존재를 언급한다.

    3장은 이성애자이던 여성이 부치나 트랜스 남성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현상에서 출발해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룬다. 더 늙기 전에 적당한 남자를 잡아채 결혼하라는 자기계발서의 충고 바깥에서 여성들이 찾는 다른 선택지는 ‘이성애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핼버스탬은 유럽식과 미국식 정체성의 확산을 비판하며, 일본에서는 스스로 ‘레즈비언’으로 말하지 않고도 여자를 만날 기회가 많이 있고, 중앙아시아에는 ‘트랜스젠더’가 아니지만 남자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4장에서는 최근 미국 LGBT 운동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동성 결혼을 비판하면서 결혼이 아닌 다른 형태의 친밀성을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핼버스탬은 결혼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로맨틱 코미디와 〈더 행오버〉 등의 브로맨스 영화를 분석하면서 우리가 이미 흔들리고 있는 ‘신성한 결혼’이 가져다주는 불행과 아수라장에 진입할 권리를 쟁취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안정된 일부일처제에 특권을 부여해온 결혼 제도에 포함되기 위해 우리의 친밀성을 재단하는 대신, 옆집 할머니나 동네 아저씨를 내 의료보험에 추가하는 식의 더 넓은 대안적 관계를 상상할, ‘권리를 거부할 권리’를 주장한다.

    5장에서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 월가 점령 운동의 저항과 프랑스의 익명 아나키스트 그룹 ‘보이지 않는 위원회’를 빌려와, 제도에 관한 비판을 가족, 사적인 것, 친밀성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퀴어 아나키즘을 선언한다.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고 99퍼센트가 결코 1퍼센트를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게 맞다면, 우리가 제도와 규범이라는 게임 자체를 뒤흔들자고 말한다.

    건망증 걸린 이상한 물고기처럼 다른 물결을 따라 헤엄치자

    핼버스탬은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을 던져주는 아이들 영화의 한 예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소개한다. 건망증에 걸린 이상한 물고기 ‘도리’는 5분밖에 기억하지 못해 5분마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

    유괴된 니모를 찾는 니모의 아빠 말린을 도와주면서 도리는 모든 규범적 핵가족 서사를 배반한다. 도리는 어머니가 되지도 않고, 말린과 사랑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도리는 니모를 찾을 수 있고, 태평양을 건너 항해할 수 있고, 어부들에 맞서 물고기 반란을 이끌 수 있다.

    핼버스탬은 우리도 도리처럼 가족을 잊고, 결혼을 잊고, 규범과 정상성을 잊어버린 채 다른 물결을 따라 헤엄치자고 제안한다.

    《가가 페미니즘》은 망해가는 가족 구조, 로맨스의 거짓말, 강제된 사랑과 결혼, 평등과 통합이라는 허구에서 눈을 돌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전환을 바라보자고 말한다.

    출산율이 추락하고, 경제적 양극화가 불러온 절망은 여성 혐오로 폭발하고, 불륜과 성매매가 일부일처제의 허구를 드러내는 이때,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가 페미니즘》은 다른 가족을 상상하는 퀴어들, 짝 찾기에 지친 이성애자 여성들, 제도와 규범이 몸에 맞지 않는 모든 부적응자와 패배자를 위한 페미니즘 가이드북이다.

    다양한 사회 현상과 대중문화를 유쾌하게 넘나드는 핼버스탬의 안내를 따라가며, 동시대 퀴어 담론의 역동성을 만나고 지금 여기의 현실을 반영할 페미니즘 이론과 퀴어 운동의 상상력을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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