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대신 사람 빌려보는 도서관 (상)
    [나의 현장] 민중의 집, 동네서 꿈을 일구다
        2012년 06월 21일 11: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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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먼라이브러리(Human Library), ‘숨쉬는 도서관’ 이야기

    사람책을 빌려준다구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듯이, 사람책을 대출해서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있다. 이 곳에서는 살아있는 책을 읽으므로 눈빛과 몸짓까지 읽으며 깊은 공감과 이해를 하는 상호작용의 독서가 가능하다. 새로운 형태의 독서이자, 색다른 만남, 특별한 여행과 같다.

    사람책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시선들은 사라지고 기꺼이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멋진 이웃이 있을 뿐임을 깨닫는다. 또한 그 이야기 속에서 나와 닮은 점을 발견하고 위안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을 빌려 읽는 도서관은 ‘휴먼라이브러리’란 이름으로 덴마크의 비폭력주의 NGO단체에서 기획된 소통의 한 방법이다.

    색다른 소통의 매력 때문인지 휴먼라이브러리는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진 출처 : http://humanlibrary.org)

    숨쉬는 도서관, 11권의 사람책으로 문을 열다

    휴먼라이브러리의 책들은 하루하루 자신의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살아숨쉬는 책이다. 그래서 우리는 ‘숨쉬는 도서관’이라고 이름짓고, 우리 동네 마포에서도 시작해보기로 했다.

    숨쉬는 도서관의 살아있는 책들과의 첫 번째 만남은 지난해 5월 28일에 있었다. 지역 청소년들을 독자로 정하고 다양한 직업과 진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11권의 사람책을 대출해 열람하는 이벤트로 이루어졌다. 사전에 사람책 목록에서 읽고 싶은 책을 대출신청하고 40분씩 2권의 사람책을 읽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햇볕 좋은 5월 성미산 학교 앞마당에서 삼삼오오 마주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30분의 짧은 시간이 아쉬워 잠깐의 휴식시간까지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첫 대면으로 어색했던 분위기는 금새 싹~ 사라지고 책장이 넘어갈수록 빠져드는 독서처럼 대화는 열기를 띠며 깊어지는 듯 했다.

    처음 열렸던 '숨쉬는 도서관' 풍경. 11명의 사람책과 30여명의 독자가 참여했다.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것은 뭐죠?” “얼마나 버나요?” “정치하면서 사람들의 감성적인 부분과 법적인 부분 간에 간극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하나요?” “일과 직업 모두 여행이라면 힘들진 않으세요?” 등등 질문들이 쏟아지고, 사람책들은 당황할 때도 있고 유쾌한 웃음으로 답변을 하기도 하고, 독자에게 다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에게는 진로에 대한 막연한 고민들을 속시원히 풀어내보기도 하고, 기존에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30분의 독서시간이 끝나고 사람책 노트에 기념촬영한 사진도 붙이고, 사람책에게 고마움을 담은 짧은 소감글도 적어 사람책에게 선물했다. 준비해온 자신의 책이나 작품을 선물하기도 하고 이후의 만남까지 약속하는 사람책도 있었다. 이렇게 훈훈한 독후활동까지 마치면 알찬 독서활동은 마무리!

    사람책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표현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친절한 이웃어른이 되어주는 과정을, 독자인 청소년들은 자신의 진로와 닿아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용기있게 자신의 나침반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가졌을 것이다. 숨쉬는 도서관의 사람책 읽기는 사람책도 독자도 소통을 통한 공감으로 서로가 변화하는 감동적인 독서과정이다.

    청년들을 위해 마련된 사람책 서가, “청춘에게 딴 짓을 권한다

    두 번째 숨쉬는 도서관은 ‘88만원 세대’로 일컬어지는 청년들을 독자로 삼았다. 청년은 본래 젊음과 청춘, 도전과 열정, 희망과 가능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현재는 경쟁과 취업, 빈곤의 굴레에 허덕이는 무표정의 주체로 그려지기 다반사다.

    청년들을 기죽이고 불안으로 내모는 사회적 여건에 대한 질타와 개선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취업과 사회진출을 앞두고 있는 청년들 개개인의 ‘길 찾기’, ‘꿈 찾기’를 돕는 일 역시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책과의 만남을 통해 청년들을 위로하고, 자기계발과 경쟁이라는 강요된 답안지에서 벗어나 ‘딴 짓’을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청년들을 위한 사람책 서가의 이름은 “청춘에게 딴 짓을 권한다”로 정했다.

    지난해 9월 24일, 카페 ‘살롱 드 마랑’에서 다시 한번 숨쉬는 도서관이 열렸다. 총 15권의 사람책이 독자를 만나기 위해 일찍부터 발걸음했고, 독자로 보이는 청년들이 시간에 맞춰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2시, 50여명에 이르는 청년독자들이 모두 모이자 카페는 작은 축제의 현장처럼 부산하고 활기차다.

    이 날 참여한 사람책들은 각자 자신만의 책 제목이 있었다. 사람책 시원님은 “직업전전 전문가의 비전문적 기록지”라는 제목으로 독자 앞에 섰고, 이은영님은 “삶을 놀이처럼,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소복이님은 “소복이의 이백오 상담소”, 이광익님은 “멈추고 나면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라는 제목으로 독자와 만났다. 제목뿐만 아니라, 독자가 듣고싶은 이야기를 선택해 들을 수 있도록 목차도 준비해 배려했다. 첫 번째 숨쉬는 도서관에 참여했던 사람책과 독자들이 행사 후 소감과 개선점을 꼼꼼하게 적어준 덕에 이번에는 원활한 대화를 위한 섬세한 준비를 미리부터 할 수 있었다.

    두번째 숨쉬는 도서관이 열린 살롱 드 마랑. 독서에 앞서 사람책이 독자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

    3시간에 걸친 독서시간이 끝나고, 독자들이 돌아가 텅 비어있는 까페 한 켠에서 사람책들은 회고와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사람책들의 독자를 만난 소감은 한결같았다. 웃음이 끊이지 않은 즐거운 대화였고 신선한 경험이었지만, 공감과 위로에 굶주린 청년들을 마주하면서 가슴 한구석이 시렸다고… 그리고 며칠 후 숨쉬는 도서관 독후감 게시판에는 한 독자가 이런 소감을 남겼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20살의 고민, 그건 25살에는 웃음거리 일뿐이라고. 그럼, 25살의 고민은 지금 나에겐?… 3년이 흐른 후, 그 고민이 웃을 수 있는 웃음거리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헤매고 힘들어 하는 저 자신을 위해 이렇게 사람책을 신청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해답을 찾기 위함이 아닐까요? 어떤 선견지명을 바라면서… 글이 아닌 인간 대 인간이라면 그 해답이 더 명쾌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살롱 드 마랑’에 들어서면서부터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만큼 힘들고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일종의 동질감을 주었다고나 할까. (중략)  아~~~~~~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쩜 해답을 찾기보다는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누군가, 나보다 인생을 더 산 선배님의 충고가 필요해서 갖는지 모릅니다.
    사람책! 눈을 마주보고 서로 소통하고, 너의 고민이 나한테 들리고 난 공감한다고, 그 한마디만으로도 참으로 좋았습니다.”

    마당발 사서가 사람책을 찾아 추천하고, 동네 곳곳이 열람실 되는..

    민중의 집에서 운영하는 ‘숨쉬는 도서관’은 골목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생활의 경험과 정보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과 영감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품을 나눌 이웃을 만나기도 하고 인생의 멘토, 친구를 사귈 수도 있는 마을 커뮤니티이길 바란다.

    현재는 이벤트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사람책 목록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동네 사람들에게 생소하지만 재미나고 감동적인 사람책 독서를 알리고 있다. 오는 9월부터는 마포아트센터에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숨쉬는 도서관이 열리게 되는데, 그렇게되면 지역주민들은 보다 자주 사람책을 만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휴먼라이브러리’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명사나 전문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도록, 자신에 대한 성찰과 표현을 돕는 ‘사람책 되기 워크샵’을 기획해 진행한 바 있고, 평범한 이웃들의 재미나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발굴해 사람책으로 출간해내는 마당발 사서모임도 운영할 예정이다.

    그리고 누구나 사람책이 되고 독자가 될 수 있듯이, 동네 곳곳이 열람실이 되어 다양한 공간에서 사람책과 독자가 만나는 마을문화도 꼭 만들어보고 싶다.

    민중의 집 홈페이지 : www.peoplehouse.net
    숨쉬는 도서관 홈페이지 : www.humanbooks.net

     ‘책 대신 사람 빌려보는 도서관’ (하)가 이어집니다.

    필자소개
    마포 민중의 집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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