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독 경상도 사투리가 뜰까?
[말글 칼럼] ‘이상한’ 공무원 국어 시험
    2012년 06월 21일 11: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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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6월 16일자(일)에 아주 재미난 기사가 실렸더군요. ‘경상도 사투리 전성시대’란 제목으로요. 이 신문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죠. 제 고향이 부산이기도 해서 옛날 생각도 하고, 아, 맞아, 그랬지, 하면서 아주 신이 났습니다.

혼자서 낄낄대고 신문에 나온 사투리를 읊조려도 보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한마디 툭 던집디다. “그게 그렇게 재밌어?”

제 단점이 남 얘기에 엄청 신경 쓴다는 겁니다. 하여 퍼뜩 이런 의문이 들더군요. 그러게, 왜 이리 경상도 사투리가 인기지? 사람들이 좋아해서 많이 나올까, 많이 나와서 익숙해진 걸까?

경상도 사투리가 좋다, 공통 유전자의 작용?

모든 사투리가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경상도 사투리만의 매력이 몇 있습니다.

높낮이와 장단이 또렷합니다. 말에 맛이 느껴지죠. 사람들이 빵 터진다는 ‘2와 e’의 분명한 구분이 그겁니다. 시범 삼아 수업 시간에 부산 출신과 서울 출신 학생들에게 해 보랬어요. 놀라울 정도로 다르더군요. 정말로 빵 터졌죠.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또 다릅니다. 장단은 비슷한데, 높낮이가 다르죠. 같은 ‘경/상/도’라는 말도 경남 쪽이 ‘도/미/미’라면 경북 쪽은 ‘미/미/도’ 식입니다.

또, 워낙 유명한 사실이지만 정말로 축약이 엄청납니다. “가가 가가가?”나 “야가 가가?”, “가가 야가?” 같은 말은 많이 들어보셨죠?

축약이 심하다 보니, 전라도의 ‘거시기’도 그렇습니다만, 말 한마디에 많은 뜻이 들어갑니다.

롯데자이언츠 응원단의 "마"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상대 팀 투수의 1루 견제 때 일제히 외치는 “마!”가 대표적이죠.

‘견제하지 마!’라고만 하기엔 좀 애매한 게 사실이에요. ‘임마’라는 욕이기도 하고, ‘고마 됐다’의 뜻이기도 하죠. 그것 말고도 ‘마 함 하까?’ 할 때는 ‘그냥’, ‘그저’, ‘따지지 말고’의 뜻이 되기도 합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거죠.

다른 팀 팬들이 들을 때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마’는 친한 사이끼리 그냥 ‘야’ 하는 정도의 뜻이랍니다. 물론 손윗사람한테는 절대 쓸 수 없죠.

제가 주목하는 것은, 경상도 사투리에 진하게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입니다.

‘~노?’와 ‘~나?’의 구분은, 다른 지역 사람들 생각과 달리, 아주 엄격합니다. 가령 “니, 어디 가노?”라 물으면, “집에.” 같은 대답을 기대한 겁니다. 영어의 Where와 같은 구실을 꼬릿말 ‘노’ 하나가 감당하는 거죠. 의문형이 아니니 말꼬리도 내려요. 반면, “니, 어디 가나?”라 물으면, “응”, “아니”로 대답합니다. 당연히 말꼬리를 올립니다. 이 차이만 알아도 드라마나 영화 보면서 진짜 경상도 출신인지 아닌지 쉽게 알 수 있지요.

또 하나는 고어 ‘ᄫ’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표준어에서 ‘춥다’와 ‘~어라’를 합치면 ‘추워라’가 되지요. ‘ㅂ’음이 ‘우’음으로 바뀐 거죠. 그런데 경상도 사투리에서는 ‘추버라’라고 합니다. ‘짜바라’(짜라), ‘매바라’(매워라), ‘씨버라’(써라), ‘싱거버라’(싱거워라), 무서버라(무서워라)… ‘추ᄫㅓ라’라는 옛 발음의 자취죠.

이런 어법과 발음은 <석보상절> 같은 옛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합니다. 그래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무의식적으로 정겹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과거의 유전자가 남아 있어서 말이죠. 하하.

‘이상한’ 국어 문제

옛날에 국어 시험 칠 때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몰라서가 아니고, 왜 이런 문제를 낼까, 하는요. 뭔고 하니, 장음과 단음을 가리라는 문제였어요. 그러고선 (하늘 나는) 제비[제:비]나 (먹는) 굴[굴:], 숫자 2[이:], 뭐 이 비슷한 걸 선택지로 내놓는단 말이죠.

앞서 말했듯, 경상도 말로는 이게 정말로 자연스럽게 구분이 되거든요? 따로 배워서가 아니라 그냥 어릴 적부터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러니 이건 애들 점수 거저 주려고 낸 문제 아닐까 생각할 밖에요.

나중에 서울 와서 보니 아, 이게 장난 아니게 어려운 거였더군요. 지금도 공무원 시험이나 국어인증시험 같은 데서 이런 문제를 내나 보던데, 검색해 보니까 이것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는 수험생들이 많더라고요.

우리말을 정확히 쓰자는 취지는 알겠지만, 그렇더라도 특정 지역 출신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걸 출제하는 게 옳은지는 의문입니다. 더구나 공무원 뽑는 시험 문제라면, 글쎄요, 뭔가 좀 수상쩍습니다. 장단음 구별 못한다고 소통 못 할 건 아닌데 말이죠.

여태 그래 왔는데 뭘 따지냐고요? 김대중 때도 그렇게 출제했을 것 아니냐고요? 설령 그랬더라도 이건 좀 따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아나운서 시험이라면 모를까, 공무원 시험이니까요. 정권과 무관하게 공무원 선발에서 경상도가 유리하게 돼 있다는 건 분명하니까요.

이래 따지고 보니, 옛날 국어 시험에서 이 문제가 빠진 것도 이런 문제점이 드러나서가 아닐까 싶군요. 마치 상체 긴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윗몸 굽히기’가 체력장에서 빠진 것처럼 말이죠. 이 문제가 있고 없고에 따라 지역별 평균이 확 달라질 것 아니겠어요?

경상도 사투리만의 ‘이상한’ 독주

시험 문제가 이상하듯이 지금 경상도 사투리의 독주도 이상해 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투리들은 희미해지는데, 유독 경상도 사투리만이 텔레비전을 장악한 꼴이니까요.

어릴 적 듣던 박정희나 젊어 듣던 전두환, 노태우의 사투리는 전혀 친근하지 않았습니다. 뉴스 시간마다 나오는 그 사투리는 공포와 경멸을 불렀습니다. 동시에 하도 오랫동안 최고 권력자의 똑같은 사투리만 듣다 보니, 대통령은 으레 경상도이겠거니 여기게도 됩니다.

그래선지 한동안 TV에서 경상도 사투리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권위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너무 직설적이어서 시비 거는 것 같기도 하고, 따따부따 떠들어대면 솔직히 경망스럽기도 하죠.

그러던 것이 ‘친구’ 같은 영화나 강호동 같은 방송인들의 영향 때문인지, 노무현의 탈권위적인 말투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튼 넘쳐나기 시작하죠. ‘황산벌’에서 대히트 친 전라도 사투리 ‘거시기’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건 금세 잊혔죠.

사투리가 되살아나는 건 분명 좋은 일입니다. 사투리는 그저 말의 차이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결을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그 다채로운 말길들이 잘 어울린다면 우리말이 얼마나 풍성해질까요. 홍명희의 ≪임꺽정≫이나 박경리의 ≪토지≫나 최명희의 ≪혼불≫ 같은 위대한 작품도 술술 읽어낼 수 있을 테죠.

그래서 지금 현실이 불편합니다. 다른 지방 출신들은 다들 서울말 흉내 내느라 바쁜데, 경상도 사람들만 지하철 같은 데서 사투리로 크게 떠드는 것이요. 이제 대선이 본격화되면 듣기 싫어도 경상도 억양의 이야길 실컷 듣겠군요.

IBK 광고에 나오는 여자아이의 충청도 사투리가 참 구수하더군요. 전라도 사투리로는 랩이 안 된답디까? 높낮이가 참말 독특한 강원도 사투리는 또 어떻고요. 외국말 같은 제주도 사투리 익히기 놀이는 어떤가요? 이왕이면 북한말도 함 연구해보는 건 어떨는지요? 이것도 종북이려나?

필자소개
우한기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였고 지금은 진보 무당파이다. 거의 20년째 논술 전문강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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