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동부, 일그러진 또 다른 우리
[책소개] 『경기동부』(임미리/ 이매진)
    2014년 03월 29일 11: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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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지, 너!” ― 종북의 굴레에 갇힌 우리들의 ‘눈높이 민주주의’

34년 만에 만들어진 ‘내란 음모’에 사법부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 음모’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2013년 8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아르오(RO) 모임 녹취록이 전부였다.

총기 제작, 전기 통신 시설과 유류 시설 파괴 같은 발언은 큰 충격을 줬지만,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다. 정부는 통합진보당 강령 중 ‘진보적 민주주의’와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가 북한의 인민주권론하고 같다며 위헌정당해산심판도 청구했다.

분단 이후 모든 반체제 세력을 ‘빨갱이’, ‘간첩’, ‘종북’으로 매도한 보수 진영의 눈높이에 경기동부연합은 당연히 ‘자유민주적 질서’를 해치는 ‘종북’이다. ‘사상의 자유 시장’을 옹호하며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던 진보진영까지 종북 몰이에 떠밀려 경기동부연합을 공격했다.

진보언론은 경기동부연합을 비판하는 진보 논객의 글을 싣고, 진보 정당들은 공식 논평을 쏟아내야 했다. ‘가짜 진보’ 경기동부연합과 구별 짓기를 하며, ‘종북 딱지’를 피해 민주주의의 눈높이를 위 아래로 바쁘게 움직였다.

진짜 진보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대신 ‘가짜 진보’를 부정해야만 살아남는 종북 프레임에 말려든 것이다. ‘당원의 눈높이’에 맞춘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21세기판 매카시즘의 광풍을 불러온 경기동부연합은 지금 ‘우리들의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날카롭게 되묻는 리트머스가 됐다.

《경기동부 ― 종북과 진보 사이, 잃어버린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4·11 비례대표 경선 사태와 ‘내란 음모’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경기동부연합의 뿌리를 1971년 8월 10일 일어난 박정희 정권 시기 최초이자 최대의 도시 빈민 봉기에서 찾는다.

성남 광주대단지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대표 저항 세력이 도시의 특성과 변화에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었는지 살핀다.

《경기동부》를 쓴 임미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술 자료, 언론 보도, 개인 기록 등을 검토하고, 비례대표 경선 사태 때 구성된 장례위원회와 씨앤피전략그룹, 사회동향연구소, 《민중의 소리》 등을 조사해 이때까지 주목받지 못한 광주대단지라는 새로운 해석 지점을 찾았다.

철거민 강제 이주, 8·10 사건, 5월 광주항쟁, 부당한 공권력에 항거한 분신, 금욕적 공동체 생활, 엄격한 군대식 규율 등 특유의 집단기억을 공유한 경기동부연합은 80년대를 거치고 90년대를 지나며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강력한 유대 관계를 맺은 저항 세력으로 성장한다.

《경기동부》는 경기동부연합이 폭력과 비정상적 방법만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하위 주체가 된 사회적 맥락과 인적 토대를 살피고, 종북과 진보 사이에서 길을 잃은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고민한다.

경기동부

두 개의 광주 사이에서 ‘뻐꾸기’ 날다

서론 ‘잃어버린 기억’과 1장 ‘뿌리 ― 광주대단지와 1971년 8·10 사건’은 경기동부연합이 스스로 말할 수 없는 하위주체가 된 실마리를 성남 광주대단지에서 찾은 과정을 밝힌다.

1971년 8월 10일 주민 3만~6만 명이 광주대단지에서 6시간 동안 벌인 도시 봉기 ‘8·10 사건’을 주목한다. 서울 도심에서 살던 철거민이 강제 이주한 광주대단지의 실상은 ‘산모가 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처참했다.

8·10 사건이 끝난 뒤 성남은 난동과 폭동의 도시로 낙인찍혀 더 심한 차별과 배제를 겪지만, 대학생과 종교 단체가 찾아들어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을 활발히 펼치면서 진보 운동의 본거지로 성장한다.

2장 ‘기억 ― 경기동부연합은 누가 주도하고 어떻게 형성됐나’는 광주대단지 사건에 ‘혁명의 전통’이라는 훈장을 붙인 ‘광주대단지 키드’가 지역 정치세력인 경기동부연합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좇는다.

광주대단지 키드는 성남을 집단기억의 뿌리이자 집단기억이 실체가 되는 공간으로 본다. 그곳에서 8·10 사건 기념 자료집, 성남청년대학, 푸른학교 등으로 광주대단지 기억을 공유하고, 1996년 북한 동포 돕기 운동, 1997년 북녘 동포 돕기 범국민운동, 1998년 IMF 실업자대책위원회 활동, 재개발에 맞선 주거 생존권 운동 등으로 새로운 전설을 만들었다.

3장 ‘성장 ― 뻐꾸기는 어떻게 지빠귀 둥지를 차지했나’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부터 2012년 비례대표 경선 사태까지, 정파 갈등 속에서 경기동부연합이 당권파가 된 과정을 살핀다.

2002년 지방 선거에서 거둔 44년 만의 진보 정당 원내 진출이라는 성과는 주소 이전, 선거 명부 조작, 당비 대납 등 내부의 부정을 덮었다. 광주전남연합하고 연대해 세력을 키우고 ‘세팅 선거’로 독식 체제를 구축해 당을 장악한 경기동부연합은 민주주의를 비롯한 진보적 가치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역에 견제 세력이 미약한 상황에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거나 잘못을 스스로 고칠 능력을 훈련하지 못했고, 당원 정보를 북한에 넘긴 일심회 사건이 터지자 사건 관련자들을 비호했다.

4장 ‘고립 ― 비례대표 사태와 하위주체 의식’은 역사학자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가 말한 하위주체 개념으로 경기동부연합을 설명한다.

행정상의 오류, 투표 프로그램과 데이터 무단 수정, 동일 아이피의 집단 투표, 대리 투표, 마감 시간 이후 현장 투표 등 비례대표 경선 때 일어난 부정과 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이 보여준 13시간의 필리버스터, 단상 점거, 분신 등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은 하위주체의 특징인 부정성, 연대성, 영토성, 폭력적 양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한 ‘당원의 눈높이’를 주장하며 우리가 아닌 ‘나머지 전부’를 적으로 여기는 극단적 진영 논리와 자기 보존 의식도 살펴본다.

5장 ‘연대 ― 범경기동부연합과 지지 세력’에서는 경기동부연합이 당권파로 등장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경기동부연합을 포함해 당권파 전체의 인맥을 살펴보고 형성 과정을 파악한다.

또한 경기동부연합이 대학 총학생회와 노동운동 진영의 일반노조에서 새로운 구성원을 끌어들이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범경기동부연합의 계급적 특성과 지역적 특성을 알아본다.

결론 ‘경기동부연합은 어떻게 하위주체가 됐나’는 1980년대 급진적 변혁 운동이 나타난 배경과 특징, 지배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이 저항 이데올로기로 유입되고 확산된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남한 민중과 북한 정부를 통일의 양쪽 주체로 상정한 뒤 통일 국가를 수립하려던 주사파가 남한 정부는 정상화되고 북한 체제는 위기에 빠지면서 눈앞의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과거의 기억과 상상된 억압 속에 갇혀버린 존재, 곧 국가와 근대 밖에 존재하는 하위주체가 되는 과정을 정리한다.

광주대단지 키드의 생애 ― 진짜 진보와 민주주의의 미래

《경기동부》는 경기동부연합의 기원을 1980년대 군사 정권에 맞서 싸운 주사파 학생 운동에서 1970년대 철거민과 도시 빈민의 생존권 투쟁으로 확대한다. 또한 특정 대학 출신만이 공유하는 ‘마이너 의식’이 아니라 광주대단지 키드의 차별과 배제의 기억에 초점을 맞춘다.

경기동부연합은 유신과 도시 개발, 군사 정권과 5월 광주항쟁, 주체사상과 통일운동, 민주화와 신자유주의까지 한국 사회가 40여 년 동안 거쳐온 역사의 산물이다.

1970년대 광주대단지라는 기억에 갇힌 경기동부연합은 당권파가 되고 국회의원을 배출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자기를 광주대단지 철거민, 국가보안법 피해자, 차별받고 배제된 민중으로 여긴다.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까지 포함해 뜻이 다른 ‘나머지 전부’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무기를 휘두르는 군사 정권하고 다를 게 없는 적이다.

화형당한 마녀나 나치의 핍박을 받은 유대인에 자기를 비유하며 부정 선거, 폭력 사태, ‘내란 음모’를 저지른 경기동부연합은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는 하위주체다. 그런 의식의 바탕에는 광주대단지라는 지역의 집단기억과 1971년 8·10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맞서 민족해방과 자주통일을 일구려는 ‘진짜 진보주의자’ 경기동부연합은 도리어 종북몰이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진짜 진보와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묻는 또 다른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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