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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데루오카 이츠코 / 궁리)
        2014년 03월 29일 11: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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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인=직장인’이란 공식은 틀렸다!

    <부자 나라, 가난한 시민>, <격차사회를 넘어서> 등의 전작에서 허울뿐인 경제성장과 진정한 풍요로움을 논했던 일본의 생활경제학자 데루오카 이츠코가 이 책에서 ‘사회인’에게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읽는다.

    ‘사회인’은 누구인가? ‘사회인 야구단’, ‘새내기 사회인’ 등에서처럼, 사회인이란 말은 학교를 졸업하고 자립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 두루 쓰인다.

    하지만 데루오카 이츠코는 ‘사회인=직장인’이라는 통념에 반대하며 ‘사회인’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운다. 그것은 이웃, 동료와 함께하는 개인, 정치적 감수성을 지닌 개인이 사회를 바꾼다는 메시지로 나아간다.

    ‘사회인’이라는 흔하디 흔한 말에서 시작된 저자의 논의는 민주주의, 교육, 복지, 노동, 연대, 시민, 국가 등의 주제어로 자유로이 넘나든다.

    사회 속 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에게 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근로기준법은 왜 보장되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어떤 힘으로 작동하는가? 사회안전망은 왜 필요한가? 시민의 조건과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교육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책을 읽다 보면,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이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1928년생으로 일본의 원로 생활경제학자인 저자는 마치 할머니가 손주에게 들려주듯 쉬운 필치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시민교육의 요점을 책 한 권에 완숙하게 담아냈다.

    “사회인이란 무엇일까? 사회인이란 말은 아마도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자립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각별히 의식되지 않을까? 반대로, 정년퇴직해서 일터를 떠나 사회 속의 개인으로 돌아와 생활할 때 또 다른 의미에서 새삼 의식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사회인이 되는 첫걸음인 취직 자체가 어려운 시대다. 그렇다면 취직을 못 한 사람은 사회인이 아닌가? 실업자나 정년퇴직한 사람, 주부, 고령자, 장애인은 사회인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는 동료로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모두 사회인이다.

    민주주의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유 속에 발 딛고 선 개인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이며, 같은 인간으로서 유대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인으로서의 연대의식이다. 사회에 도움을 받는 동시에 사회를 더 좋게 바꿔가는 사회인의 생활방식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고 싶다.” _본문에서

    ‘자기책임론’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회인이란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는 개인”이지만, 무한경쟁, 청년들의 취업난, 공동체 붕괴가 심화되면서 개인이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타인의 아픔에 무심하고 자기 이익과 생존에 매달리는 ‘고독한 경제인이 되라’고 주문하는 것은 단지 일본 사회만의 얘기는 아니다. 불황에 빠진 사회를 “규제완화, 신자유주의 시장경쟁, 자기책임을 통해 활성화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의 경쟁원리’와 ‘자기책임’의 원리가 교육, 정치, 노동, 생태, 일상 곳곳에 사회를 움직이는 유일한 기준으로 침투했다고 꼬집는다.

    사회인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 없이 입시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등 떠밀리는 아이들, 취업을 못 하는 게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대학생, 처우가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면서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정규직 노동자, 사회안전망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빈곤 속에서 절망하는 사람들, 담세능력이 충분한 사람이나 기업에게는 세금을 줄여주고 소비세는 인상하는 국가, 방사능 피해를 알면서도 “싸고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에너지원은 원전밖에 없다”며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려는 정치계와 산업계…….

    이러한 사회는 극소수의 부자를 더 큰 부자로 만들 뿐, 빈부격차와 불평등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한마디로 ‘격차사회’다. 저자가 이 책의 한 장을 할애해서 소개하는 격차사회는 사회인으로서의 연대의식을 가로막는 높은 벽이다.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파견 노동자, 시간제 노동자 등으로 분열되면서 서로 적대하는 관계가 되듯이, 소득면에서도 교육면에서도 사람들의 의식면에서도 사람들은 “상호관계, 상호이동 없는 별개의 사회로 분열되어 생활하고 있다.”

    이렇게 어느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타인을 배려할 수 없거나 사회를 인식하지 못할 때, 그 사회는 희망 없는 사회로 치닫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쟁보다 연대를, 분열보다 공존을, 절망보다 희망을 꿈꾸며

    절망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생활경제학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체험과 주변 사례를 들어, 절망을 딛고 일어설 강력한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그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삶의 공간을 인간답게 바꿔가는 시민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그것을 ‘사회인의 생활방식’이라고 이름 붙인다. 내가 사는 지역에 흐르는 강의 생태계를 지키는 사람들, 혼자 사는 노인들의 식사를 배달하는 주부들, 난민의 자립을 돕기 위해 직업훈련을 돕는 청년들, 불법파견을 한 회사를 재판에 회부한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줄임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 3백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안에 합의한 노사…….

    이러한 일본 사례 외에도 책은 시민사회가 활성화된 독일, 영국 등의 서구 사회에서 목격한 다양한 사례를 들어 복지사회와 풀뿌리민주주의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풀어내고 있다.

    특히 저자는 ‘교육’에서 중요한 해법을 찾는데, 실제 교과과정에 적용해볼 수 있는 시민교육의 구체적인 사례를 여럿 소개하고 있다. 책 곳곳에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쟁 위주의 ‘교육’이 어떻게 민주주의 약화로 연결되는지 설명해나가는 저자의 혜안이 돋보인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산은 바로 함께하는 동료를 만드는 것

    불완전하게 태어난 인간은 가족, 마을, 학교, 일터, 국가, 자연까지, 크고 작은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연약한’ 사람들은 연대하여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살아야 한다.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한 유대 속에 있어야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할 수 있으며 삶이 즐거워진다.

    저자가 살아오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개 이와 같은 인생의 통찰을 담고 있었다. 저자가 “인간에게 고독은 사회적인 죽음이다.”, “인간관계의 유대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힘을 가졌다.”라고 말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같은 인간으로서의 유대를 소중히 여기는” “연대하는” 개인들로부터 나온다. “관계에 눈을 뜨고” 가까운 주변에서 유쾌한 생활혁명을 벌이고 있는 소박한 우리의 이웃과 동료들을 응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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