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 1300명 화물차 사고로 사망, 왜?
    호주 운수노조 "표준운임제 해결책"
        2014년 03월 28일 0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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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옆 차선에서 화물차가 달리면 덜컥 겁이날 때가 있다. 차체도 큰데 엄청난 속도로 곡예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화물차가 사고를 낼 경우 그 피해는 주변 차량에까지 미쳐 대형 사고로 발전하기도 한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07~2012년 사이 화물차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연평균 1300여명.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38%가 과적과 적재불량의 화물차 사고다.

    호주의 경우 화물차 사고로 사망하는 이는 연평균 330여명. 전체 인구수가 한국의 절반 정도이긴 하지만, 인구수와 비례해서도 화물차 사고 사망자 수는 한국의 절반 정도의 수치이다.

    그럼에도 호주는 화물차 사고의 심각성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화물차 사고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도로안전운임법>이 제정됐다. 비정상적인 운송 시스템이 화물노동자들을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내몰고 있고, 이때문에 도로 위 안전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루 12시간 일해도 최저임금도 못 받는 화물노동자
    다단계 하청구조로 중간업체가 수수료 갈취, 실질 임금 하락

    화물운송노동자들은 ‘대기 시간(3.81시간)’을 포함해 하루 12시간 넘는 운송 노동을 하고 있다. 이를 일반 제조업 임금체계(초과근로수당, 유급휴일 등)로 계산하면 시간당 임금이 법정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화물연대가 조사한 결과 2013년 1분기 화물노동자들의 일 평균 노동시간 12.4시간이지만 월 순수입은 197만원이다. 시간당 임금으로 계산하면 3,702원으로 최저임금 4,860원보다 많이 적다.

    장시간 일해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다단계’ 하청 구조로 되어있는 비정상적인 운송시스템 때문이다.

    가령 A라는 기업(화주)이 자사 제품을 운송하기 위해 대형운송사에게 전달하면, 다시 이 대형운송사가 알선업체를 통해 화물노동자들에게 일꺼리를 주는 형식이다. 당연히 대형운송사와 알선업체들은 A기업에서 받은 금액을 알선수수료 명목으로 뗀다.

    그러나 화물노동자는 자신이 지급받는 운임비에 대한 그 어떤 의사결정권이 없다. 게다가 운송에 필요한 유류비, 주차비, 통행료 등은 화물노동자가 자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한달에 350만원의 운임료를 받아도 그중 150만원 가량은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화주가 운송, 주선업체에 ‘최저가입찰’을 요구하면서 운송, 주선업체가 최저입찰로 발생한 수익률 하락을 화물노동자들의 몫에서 챙겨가고 있다. 이 때문에 유가 상승으로 운임비도 상승하는데도 화물노동자들이 실제로 받는 운임비는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운송산업에서 실제로 운송의 일을 담당하는 화물노동자 차주들의 단위보다 주선업체가 더 많기 때문이다. 개인 화주건 기업 화주이건 기분적으로 최소 2군데(운송업체→주선업체)를 거쳐 화물노동자에게 물량이 전달되는데, 경우에 따라 여러 군데의 주선업체를 거치기도 한다.

    간담회를 하고 있는 마이클 케인 호수운송노조 사무부총장(사진=장여진)

    간담회를 하고 있는 마이클 케인 호수운송노조 사무부총장(사진=장여진)

    호주의 <도로안전운임법>, 한국의 계류중인 <표준운임제>와 유사
    마이클 케인 “호주가 특수한 상황? 한국이 더 심각해!”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주는 이미 1979년부터 표준운임을 도입했다. 비정상적인 운임구조로 화물차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주 차원에서 실시한 것이다. 35년간 이 제도를 운영하며 축적된 연구 결과, 화물노동자가 받는 운임비가 낮을수록 화물차 사고율이 높아지고 운임비가 높을수록 사고율은 낮아진다는 간단한 원리이다.

    28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초청해 한국을 찾은 호주운수노조의 마이클 케인 사무부총장은 “근본적으로 화주들이 끊임없이 비용 압박을 하기 때문에, 화물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낮은 운임비를 받고 장시간 노동이나 위험한 운행하게 된다”고 지적하며 운임비 산정방식에 대해서도 “컨테이너당 운임비를 지급하면 화물노동자들은 과적 압박을 받고, km당 운임비를 지급하면 장거리-장시간 운행을 압박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민주노총 13층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클 부총장은 이같이 지적하며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2012년 <도로안전운임법>에 제정됐다”며 “핵심 내용은 화물노동자들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표준운임제를 시행할 것과 운송시스템 구조에 가장 꼭대기에 있는 화주들에게는 화물노동자들이 충분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마지막으로 표준운임제를 위반한 당사자나 책임자에게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법은 현재 한국의 국회에 계류중인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과 유사하다며 한국에서도 이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발의 당시 민주당)에서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현재의 다단계 구조와 지입제 등으로 화물노동자들이 지나치게 낮은 운임을 받고 있다며, 현행 지입제를 폐지하고 불평등한 계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표준운임제도를 시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유사한 법안으로 이윤석 의원의 안이 있으며 현재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마이클 부총장은 한국의 표준운임제의 필요성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호주는 특수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도로안전운임법>에 제정된 것이고, 한국은 상황이 다른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운송산업의 착취 수준과 낮은 임금 문제는 호주와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호주는 연평균 330여명이 화물차라고 사망하지만 한국은 연간 1300여명에 달하고 있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며 “호주는 이미 한국의 표준운임제도를 35년동안 실행한 곳이 있고, 전국 차원으로 시행하는 것으로 성공한 제도로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표준운임제 시행하면 화주-화물노동자-시민 모두에게 성공적인 제도

    화물연대는 그동안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슬로건 아래 표준운임제 도입을 위한 파업을 수 차례 벌여왔다. 2008년도 파업에서는 정부 역시 운송산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표준운임제 시범 운영과 2009년 법제화를 약속한 바 있다.

    그동안 화주가 제시한 금액에 대형운송사와 주선업체가 수수료를 뗀 금액을 화물노동자가 일방적으로 운임비 명목으로 받았다면, 표준운임을 토대로 화물노동자들로부터 상향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표준운임제의 핵심이다.

    만약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다단계 구조 및 중간착취를 근절함하고 적정 운임비를 지급함으로써 화물노동자는 어떤 경로로 물량을 수주하더라도 적정 생활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른바 ‘따당'(서울과 부산을 하루만에 왕복 주행하는 것)이라는 위험한 장시간 운행도 줄어들면서 화출차 사망 사고 문제도 근절할 수 있다.

    화주 입장에서도 운임비를 더 늘리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물량 운송을 맡길 수 있게 되면서 전반적으로 운송산업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이른바 ‘따당'(서울과 부산을 하루만에 왕복 주행하는 것)이라는 위험한 장시간 운행도 줄어들면서 화출차 사망 사고 문제도 근절할 수 있고, 과적과 과속으로 인한 도로 파손 문제도 줄어들어 전반적으로 도로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다.

    화물연대의 ‘표준운임제’ 요구에, 정부 “지나친 규제” 난색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직접운송의무제’를 만들어 2013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화주로부터 화물노동자가 받는 물량의 중간단계를 ‘2단계’만 허용하겠다는 안이다. 물량 증감 등의 이유로 운송위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윤후덕 의원안은 이 직집운송의무제에 대한 법률 자체를 삭제해 운송산업내 다단계 하청 구조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표준운임제의 실효성을 인정하면서도 법 위반 화주와 운송업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지나친 규제라며 난색을 표하며 정부 지원 인센티브 삭감 등의 간접 제재를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표준운임 산정방식과 절차 모두 화물연대가 제시한 안보다 크게 후퇴된 것으로 사실상 운임비 산정방식에서 운송업체의 재량권만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표준운임제 자체도 가이드라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실제 반영될 가능성도 없다.

    이 때문에 화물연대는 29일 여의도 문화공원에서 전 조합원 비상총회를 개최하고 총파업을 결의하기로 했으며, 4월 하루 경고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마이클 사무부총장과 이봉주 화물연대 본부장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현재 박근혜 정권은 표준운임제는 다른 어떤 나라에도 없는 비현실적인 제도라며 도입을 회피하고 있다”며 “하지만 호주운수노동조합은 20년이 넘게 투쟁한 결과 특수고용 화물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 받게 됐고, 2012년에 전국 차원의 <도로안전운임법>취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호주와 한국 양국의 보수정권이 안전(표준)운임 개념의 타당성을 부정하며 개선된 제도를 후퇴시켜 화물노동자의 권리와 국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화물연대와 호주운수노조는 정기적인 교류를 통해 국제조직 대응 및 연대행동으로 한국의 표준운임제 도입과 호주 안전운임제 안착화를 쟁취하기 위해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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