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인의 '계급적 한계' 직시해야
        2014년 03월 27일 10:07 오전

    Print Friendly

    저는 오늘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근대 조선인들의 타자관>이라는 저서를 쓰면서 일제시대 경찰의 고문에 대한 자료가 돌연히 필요해졌습니다.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일부 조선인 피체자들이 <삼천리>지 등에서 쏘련 비밀경찰에게 받은 대접에 대해 이야기하고 했는데, 조선 경찰제도 현실과의 비교가 필요해서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데이터베이스를 다 뒤져도 일제시대 고문에 대한 논문은 딱 한 편, 2006년 <역사비평>에서 나온 글뿐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운동가는 물론 그저 “혐의”만 막연히 받은 조선인까지도 경찰서에 끌려가 신체적 고통을 맛봤다는 진술들이야 수없이 많아도, 식민지 시대의 그런 체험을 논문화하는 연구자는 의외로 적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민족주의적 사학자들은 일제를 성토하는 차원에서 “고문”을 이야기하는 것도 자연스러웠을 것이고, 조금 포스트모던하신 분들은 푸코의 biopower, 즉 생체권력의 차원에서 분명히 다루어볼 만한 이야기인데, 의외로 없습니다.

    OLYMPUS DIGITAL CAMERA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를 역사전시관으로 바꾼 모습(사진=위키)

    한데, 이효석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소설 하나에는 이미 논문과 학위 논문은 수십 개씩 양산돼 있습니다. 신여성들의헤어스타일부터 학생들의 독서경향까지, 다 인기 테마들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될까요?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를 직시해야 합니다. 논문을 쓰는 주체, 즉 연구자는 아무리 막스베버적인 “객관성”과 “중립성” 이야기를 주기도문 대신에 매일 외워도 절대로 중립적일 수도 객관적일 수도 없습니다.

    그런 객관성이 있다고 본인이 착각하면 더욱 큰일이니 차라리 착각하지 말고 자신의 주관성을 직시하면 합니다. 그 주관성의 기원은 무엇보다 연구자 각자가 속하는 계급, 그리고 각자가 경험해온 계급의 현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고문 등 신체폭력을 당하는 경험은, 한국에서는 소속 계급에 따라 아주 다릅니다. 매우 폭력적인 사회이기에 운이 나쁘면 무용학과에 진출한 중상층 출신의 여대생도 집단 기합 등 아주 불쾌한 체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관련 글 링크) 박정희의 유령이 공주님에게 강림하여 지금도 통치하는 사회인 이상 불가피한 현실이겠죠?

    그런데 대체로 보면 “밑”으로 갈수록 폭력을 훨씬 더 많이 체험합니다. 공고의 폭력, 원양어선의 폭력, 빽이 없어서 가는 전방부대에서의 폭력, 아니면 곱게 큰 중산층 아이들은 잘 안가는 체대의 폭력…

    “여유 있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그런 꼴 안보고 연구자가 될 때까지 살아올 수도 있는데, 일단 “밑”의 폭력적 일상을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신여성의 취미나 신파극적 영화나 이효석의 이국 취향과 에로티시즘은 훨씬 더 매력적인 연구 테마입니다. 본인이 굳이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저 자연스레 그렇게 됩니다.

    물론 한국 현대사에서는 중산층 출신의 학생들도 격렬한 데모하다가 붙잡혀서 모진 대접을 받았던 시대는, 한 때에 있었습니다. 그 때도 물론 경찰관들은 대개 “언제 국회의원이 될지도 모를 서울대 녀석”과 일반 시민을 차별 대우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제도적 “민주화”와 함께 중산계층의 신체들은 권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나서는, 계속 맞아 터지는 “밑”의 문제에 귀하신 분들은 관심을 잃은 듯합니다. “잡범”들은 지금도 관례적으로 잡히는 대로 얻어맞고, 어선의 외국노동자, 즉 사실상의 시한적 노예들은 거의 대다수가 얻어맞고, 얻어맞았다가 죽기도 하고 그렇지만 (관련 링크) 한국의 (중산층 중심의) “시민사회”에 그런 문제에 약간이라도 관심을 가지나요?

    중산층 출신의 연구자들을 무조건 신뢰하지 말라는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 그들 중에서는 “밑”의 문제들을 양심적으로 파헤치시는 분들은 분명 계시고, 또 다른 문제에 매달리더라도 자신의 소속 계층만이 이 세상에서 존재한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는 분들도 당연 많습니다.

    단, 저를 포함해서 중산계층 출신의 연구자들은 “자아비판”의 정신을 가졌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저만 해도 개화기와 일제시대를 벌써 14년 동안 공부한다지만, 여태까지 민란이나 동학농민전쟁, 아니면 파업이나 소작쟁의에 대해 글 한 편 쓴 적은 없습니다.

    이념적으로 그런 일들과 멀어서 그런 것도 절대 아닙니다. 반대로, 이념, 즉 관념의 차원에서야 당연히 써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저와 비슷한 사람들, 즉 뭔가를 배웠다는 도심 먹물들이 내뱉었던 말들, 그 글 나부랭이들을 보다 보면, 다른 계층들의 역사에 눈 돌리기가 정말 힘듭니다. 저도 아주 그렇습니다.

    극소수만을 다루는 사상사를 떠나서 서벌턴들의 사회사를 쓰고 싶어도, 아직도 못하는 거죠. 저와 뭔가가 아주 다른 사람들을 다루기가 이렇게도 힘들어요. 저만 그런가요? 일제시대 궁민의 생활이나 유랑민, 화전민 등에 대한 논문이 드물고, 노동/농민 운동 관련 논문들은 90년대 초반 이후에 거의 극소수에 의해서만 생산되어지는 걸 보면, 꼭 저만 그런 것도 아닌 듯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우리의 어떤 내재적 계급적 한계를 직시해야 하겠습니다.

    계급은 결국 경제적 도태와 문화적 상부구조를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어릴 때부터 공고화되는 특정 계급의 문화적 인식틀들은, 그다음에 쉽게 바뀌지도 못합니다.

    예컨대 저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원조인 고리키를 어릴 때부터 존경해도, 유랑민 관련한 그의 소설을 아무리 선생이 강요해도 못 읽었습니다. 그 언어나 그 폭력성의 묘사는, 그냥…눈에 거술린 거죠.

    반대로 지식인 사회를 다루는 그의 장편 <클림 삼긴의 생애>야 제 애독서이었죠. <닥터 지바고>도 나중에 애독서가 됐고요. 그러니까 저와 비슷한 환경에서 저와 비슷하게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만 골라 읽다가 결국 그런 삶 이외의 그 어떤 삶에 대해서도 감각이 둔해진 것입니다.

    일단 저의 그런 주관성, 편파성을 뚜렷하게 인식하면, 언젠가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조금 더 보편적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뭘 해도 “자기를 바로 보기”는 먼저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