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망한 울산 정치현실
    "시장과 국회의원, 서로 바꿔묵자"
        2014년 03월 25일 0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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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정치가 장난이구나. 울산 시민들의 주권은 이렇게 개무시 되는구나” 싶기도 하고, “야권과 진보진영이 얼마나 찌그러 들었으면 새누리당이 저런 짓거리까지 할까?”라는 한숨마저 나온다.

    지금까지 지역언론이나 정치권 소식들을 종합해보면 6.4 지방선거의 울산시장 선거판이 가관이다. 참으로 민망할 지경이다.

    새누리당의 울산시장 후보로 현역 국회의원인 울산 남구을 김기현, 울주군 강길부, 전 남구청장 김두겸, 전 국회의원 윤두환 등 4명이 출마를 했다. 그래서 새누리당의 당 내 경선이 진행 중이고, 4월 12일 최종 후보를 확정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3선의 현역 울산시장인 박맹우씨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7월 30일 울산에 치러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울산시장직을 3월 21부로 사퇴한다”고 발표하면서 저질 코메디같은 정치판의 맨 낯을 드러냈다.

    박 시장은 이미 3선 자치단체장으로 이번 6.4 지방선거에는 출마할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굳이 임기를 마치지 않고 사임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박 시장이 지방선거가 아니라 7월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염두에 두고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3.21 박 시장의 사퇴 기자회견(사진=박유기 블로그)

    3.21 박 시장의 사퇴 기자회견(사진=박유기 블로그)

    박맹우 시장은 그동안 울산 시민들 앞에 “임기 중 중도사퇴는 없다”고 그렇게 떠들어 왔는데, 갑자기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7월 30일 울산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을 내던지고 중도사퇴한 것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나?

    ​박맹우 시장의 7.30 보궐선거 출마를 위한 사퇴라는 건, 지금 새누리당 울산시장 후보 경쟁을 벌이는 4명 중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 두 명은 예선에서 탈락한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새누리당의 울산시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부정한 개입’ 행위이다.

    나아가, 박맹우 시장이 사퇴를 선언한 3월 21일 현재, 울산지역에서 7.30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있을 것을 가정하여 현직 시장이 임기를 3개월이나 남겨놓고 사퇴를 선언하고 떠나는 게 3번이나 시장으로 뽑아 준 110만 울산시민에게 할 짓인가? 시장 자리를 내던지고, 국회의원 뺏지를 달겠다는 개인의 권력욕에 취해서 이렇게 울산 시민들을 기만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시나리오 중 하나가 현재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인 김기현 의원을 중앙당에서 전략적으로 공천할 것이고, 그래서 “김기현과 박맹우가 국회의원과 시장 자리를 서로 바꿔 먹는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드디어 현실로 등장하는 순간이다.

    박맹우 시장이 이번 사퇴 배경을 철저히 “개인적인 판단”이라고 우기지만, 지역의 언론에 따르면 3월 12일 박맹우 시장이 수행비서도 없이 청와대 행사에 참석했다가 김기춘 실장을 독대했다고 한다. 또한 18일 오전 10시 50분 KTX 편으로 서울로 올라가 새누리당 중앙당을 찾아 고위관계자와 만났다는 보도까지 나온 상태다.

    결국 박맹우 시장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고위층의 뒷배를 바탕으로 현역 국회의원에게 울산 시장 자리를 물려주고, 대신 그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뺏지를 차지하겠다는 정치적 거래와 권력에 대한 탐욕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사퇴 선언은 그를 3번이나 울산시장으로 뽑아준 울산시민들을 개무시하는 수작에 다름 아니다.

    박맹우와 김기현이라는 두 사람이 울산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어느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들은 새누리당의 울산시장 후보만 되면, 그리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만 되면 “(울산시민) 너희들이 누구를 지지하겠어? 결국 새누리당 후보인 나를 찍을 수밖에 더 있겠어” 이런 속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들이 이렇게 기고만장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나? 울산 시민들이 어리석고, 정치의식이 낮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한때 울산지역이 “대한민국 진보정치 1번지”라는 명성까지 있었으니까. 그러면 저들은 왜 저런 괴이하고 철면피한 행보를 노골적으로 벌이고 있는가?

    울산의 야권 현실을 보면 이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민주당과 안철수가 추진하는 통합신당이 울산에 지역 사무실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울산시장 후보를 낼 것인지도, 누구를 낼 것인지도 모르는 게 현실이다. 또한 오로지 자기들만 “유일한 진보정당”이라고 우기는 통합진보당 사람들도 그렇고, 정의당도 노동당도 그저 그렇다.

    현재 새누리당에 맞서서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이 신뢰하고 지지할 후보도 정당도 없어 보이는 게 울산의 현실이니, 새누리당의 저런 ‘기고만장’이 울산에서 가능한게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이 과연 나만의 착각일까?

    필자소개
    전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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