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당권파가 싫어도 이건 좀 심했다"
통합진보,'혁신vs패권'에서 '운동권vs비운동권'으로 바뀌나
    2012년 06월 20일 06: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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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진보신당 전국위 얘길 하면서 우리 집 불구경이라 매우 걱정이 된다는 글을 썼다. 이제는 진짜 남의 집 불구경을 좀 해볼까 한다. 왜? 그 불이 우리 집까지 번져올 수 있으니까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는 살펴봐야 하지 않겠나.

너무도 솔직한 당원비대위

오늘(20일) 통합진보당 당원비대위가 해산했다. 그동안 사사건건이 강기갑 혁신비대위에 딴지를 걸던 당원비대위가 진상조사위를 믿겠다며 자진 해산을 택했다. 한 당원이 자기 몸에 불을 댕길 정도로 절실했던 그들, 당원비대위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해산을 택한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솔직했다. 당권 선거에 집중하기위해서라고. 오병윤 당원비대위원장은 기자들 앞에서 그렇게 자신들의 속내를 가감 없이 밝혔다. 언제는 당원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라더니, 언제는 진상조사위 보고서가 날조되고 조작된 것이라더니, 이제는 그들을 믿는단다. 당연히도 당권만 잡으면 자신들로선 모든 게 해결될 일이라는, 그 솔직함에 탄복할 뿐이다.

이쯤에서 당권 도전자인 강병기 전 경남부지사의 “구당권파 분류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은 중립이다”라는 말조차 선거 이후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누구나 뻔히 아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라고 하다가 말을 바꾸는 그들의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기갑-강병기 대결, 너무도 조용한 진보신당 탈당파

통합진보당 대표 경선이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과 강병기 전 경남부지사의 양-강 대결로 치뤄지게 됐다. 그동안 대표 경선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노회찬과 심상정은 어디로 간 걸까. 의정활동에 모든 걸 걸겠다는 건지, 모종의 협상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통합진보당 새로나기특위 1차 토론회

그러나 통합진보당 내에서 진보신당 탈당파는 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지 궁금하다.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기다리겠다는 건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제이(制夷)가 가능하다고 해도, 이후 그 당의 행보에서 진보신당 탈당파의 발언력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진보신당을 깨고 나갈 정도의 결기라면 통합진보당을 자신의 당으로 만들겠다는 권력의지를 보여야 하지 않나.

노회찬, 심상정이 국회의원이 된 것 빼고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새진보통합연대, 밖에서 보는 내겐 당내 모든 사안에 대해 관망하고 있는 듯 하다. 이왕 자신의 노선을 구현하겠다고 나간 이들, 좀 더 담대하게 자신의 정치를 펼칠 수는 없는 건가. 이런 마음은 그저 옛정이 남아 있는 진보신당 당원의 푸념일 뿐인 건가.

통진당 새로나기 특위의 보랏빛 색소, “우린 빨갱이가 아니랍니다”

그러나 더욱 황당한 것은 통진당 새로나기 특위의 혁신안이다. 주한미군 철수 강령, 재벌해체 강령 재검토, 국민의례 존중 등 그 내용은 “우린 진보정당이 아니다”를 선언함과 같았다. 아니 차라리 새로나기 특위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린 빨갱이가 아니에요”였을 것 같다.

스스로 운동권임을, 빨갱이임을, 진보정당을 지향함을 거부한다면 남의 집 사람인 내가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이것이 통합진보당 공통의 의견이며 혁신의 과제라면 진보신당 당원인 나는 꽤나 소중한 동지들을 잃은 느낌이다.

우경화, 좌파들이 누군가를 비판할 때마다 자꾸 꺼내어 쓰는 낙인의 단어다. 그래서 필자는 우경화란 말에 중층적인 감정이 덧칠되어 함부로 표현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헌데 이번에는 써야겠다. 이번 사건의 결과물로 통합진보당이 급속히 우회전하고 있다고.

심상정 의원의 참으로 새누리당스러운 발언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관련한 발언으로 논쟁이 또 불거졌다. 조중동 기자들 중심으로 자리한 곳에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라는데, 그건 당연히도 통합진보당내 운동권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을 결집하기 위함일 것이다.

필자는 그가 말한 애국가가 전체주의를 상징하며 독재 정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평가에 동의한다. 헌데 이에 대한 심상정 전 대표의 반응이 참으로 신기하다. 그녀는 이석기가 “딴 세상에 사는 사람 같다”며 “헌법을 뒷받침하는 국회의원이 국가를 부정하면 공인 자격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마치 새누리당 의원스러운 발언을 했다.

아무리 구당권파가 싫어도 이건 좀 심했다. 심상정 의원은 진보신당에 있을 동안 애국가가 그토록 그리웠던 건가. 아니면 이석기와 선긋기를 하다가 오버를 하신 걸까. 의도치 않은 오버인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통진당은 애국가를 국가로 받아들이는 대다수 국민 정서를 존중하고 동의한다”라며 확실히 못 박았으니 말이다.

희한한 구도, 새로나기 특위가 구당권파를 살려주고 있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와 그 외 세력의 대립이 참으로 희한한 대결구도로 만들어지고 있음을 본다. 운동권 대 비운동권, 좌익 대 중도, 진보 대 중립. 마치 통진당 내에서 빨간 물을 빼고자 하는 자들과 아닌 자들의 대결로 비춰지고 있다.

처음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부정 사건이 밝혀지고 사퇴를 거부하는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둘러싼 갈등, 혁신비대위와 당원비대위, 구당권파와 이 외 세력의 갈등일 땐 민주주의를 둘러싼 선악의 대립이 이젠 사상과 노선의 대립이 되어 버렸다.

새누리당이 이를 빌미로 종북주의를 내세우고 이석기는 자신을 마치 보수우익의 희생양인듯 포장하고, 새로나기 특위는 전면적 우경화 노선을 내세우며, 아주 희한한 대결구도를 만들어버렸다. 새로나기 특위의 ‘통합진보당의 혁신=우경화’라는 너무도 신기한 제안이 구당권파를 살려주고 있는 모양새다.

‘통합진보당의 우경화는 이미 예상된 일 아니었나’라고 질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 우경화가 국민참여당 계열 대 민노당.새진보통합연대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놈의 정치라는 생명체는 예상하지 못했던 선을 그어놓고 있다.

내가 통진당 당원이면, 차라리(!) 구당권파를 찍겠다

통합진보당은 당의 우경화와 당내 민주주의 매장이라는 딜레마 앞에 서 있다. 내가 만약 통진당 당원이라면 이후 당권선거에서 새로나기 특위의 혁신안을 지지하는 이들과 소위 구당권파가 붙을 때, 오랜 고민 끝에 차라리(!) 구당권파를 택하리라.

경기동부의 악행을 어찌 또 봐줄 수 있느냐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못된 습성은 패서라도 고칠 가능성이 1%라도 있으나, 우경화된 당의 노선은 한 번 진행되면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 강령 삭제가 한국진보정당 운동사에 큰 결절점이었다면 이번 통합진보당의 선거결과 또한 그리될 것이다.

필자는 통합진보당의 우경화가 진보신당의 진보정당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랏빛 색소는 그 만큼의 대중성으로 노동운동 대중운동 전반에 급속히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구 당권파가 대표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그간 당내 부정과 패권주의 문제는 그대로 묻어진다. 일말의 반성도 없이 그들은 승리의 환호를 외칠 것이며, 이석기, 김재연은 좀비처럼 부활할 것이다.

시끄러운 통합진보당, 너무나 조용한 진보신당

남의 집 불구경에 이토록 속이 탈 줄이야. 이쪽을 택하기도, 저쪽을 택하는 것도 썩 석연치 않을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이 순간 통합진보당의 우경화를 지적하며 좌파단체들에게 홍세화.안효상 공동대표의 명의로 토론회를 제안한 진보신당의 행보는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 궁금하다.

그나마 시끄럽기라도 한 저쪽 집보다 조용한 우리 집(진보신당)이 더 걱정이라는 당원들도 많다. 무언가 진행되는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처지의 진보신당 당원이 통합진보당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깨끗이 싹 지워버리려다 말았다.

필자소개
진보신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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