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 되고
    비즈니스가 돼버린 '대학'
    [책소개] 『기업가의 방문』(노영수/ 후마니타스)
        2014년 03월 22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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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성균관대는 삼성에 인수된 이후 매년 수백억 원대의 전입금을 투자받으면서 급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입금 가운데 반 이상은 의대에 투자되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대형 강의동, 6백주년 기념관 등 삼성이 수주한 건물 공사 착수금으로 들어갔다.

    물론 투자상의 변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의 인수 조건대로 총장 직선제가 폐지되었고, 행정부서는 기업형으로 재편되었으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과가 통폐합되면서 역사교육과가 없어졌다.

    이는 비단 성균관대만의 일은 아니다. 1980년대 대학 민주화 운동의 산물로 생겨난 총장 직선제는 성균관대 이후 대부분의 사립대에서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해 현재는 국립대에서조차 총장 직선제를 실시하는 대학이 한 곳도 없다.

    이후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기업가였다. 1992년 연대 송자 총장을 시작으로 CEO 총장의 전성시대가 열렸고, 대학에 얼마큼의 발전 기금을 끌어올 수 있느냐가 총장의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그리고 2011년, 서울대가 법인화되었다. 대학은 이제 기업의 ‘돈’을 구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를 ‘기업’이라 선언한 것이다.

    그 사이 대학이라는 공동체의 모습 역시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교수는 기업의 사원이 되었고, 학생은 취업을 위해 학문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되었으며, 친구와 선후배는 그저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일 뿐인 정글 사회가 된 것이다.

    대표적인 CEO 총장으로 불리던 서남표 총장의 카이스트에서는 징벌적 수업료 제도와 상대평가, 전 수업 영어 강의 등 극단적인 경쟁 체제가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5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업대학

    기업 대학은 어떻게 우리 시대 청춘의 삶을 파괴하는가

    이 책은 이런 기업 대학들 가운데서도 가장 노골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중앙대’의 이야기를 한 평범한 대학생의 시선에서 써내려간 ‘기업 대학 탐사 보고서’이다.

    2008년 5월, 두산이 인수한 중앙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사장이 된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은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선언하고, 총작직 임명제, 계열별 부총장제, 등급별 교수 평가와 차등 연봉제, D학점 5% 의무 부과제 등 극단적인 기업식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취업률을 기준으로 18개 단과대학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학 40개 학과로 통폐합하는 사상 초유의 구조 조정안을 발표한다.

    이후 교육 여건에서부터 학생 자치 활동에 이르기까지 대학 공동체는 곳곳에서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재단 전입금을 두산 건설의 시멘트로 들이부은 결과 교사 면적은 두 배 가까이 넓어졌지만, 대형 강의가 늘어나면서 강의실은 콩나물시루가 되었고, 교양과목이 축소,통폐합되고 회계학이 필수과목이 되었다. 교수들에 대해서는 S, A, B, C등급으로 등급화해 연봉을 차등 지급하고, 3년 연속 C등급을 받으면 개인 연구실을 회수하고 대학원 강의를 제한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물론 학생들과 교수들은 반발했다. 진중권 해임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에서부터 구조조정안 발표 이후 천막 농성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저항의 목소리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반발은 학내 민주주의가 파괴되어 가면서 서서히 그 힘을 잃어 갔다.

    사문화된 학칙이 부활하면서 민주화 이후 쟁취했던 것들도 모두 과거로 회귀했다. 학생이 캠퍼스 내 게시물을 붙이기 위해서는 학교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재단이나 총장을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갖가지 방법으로 재갈을 물렸으며, 재단과 총장을 비판하는 만평을 실었다는 이유로 교지가 회수되고, 교지 예산이 전액 삭감당하는 등 언론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 이루어졌다.

    또 학생 자치 활동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새터가 폐지되고, 농활 등 학생 자치활동이 봉사 활동으로 대체되었으며, 심지어 학생회장 선거권도 침해당했다. 두산 재단에 맞선 죄에 대해서는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 사이버상의 시민권 박탈, 퇴학, 심지어 학교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엄벌이 내려졌고, 법원의 판결마저 무력화시키는 초법적 징계는 대학이 기업이 통치하는 하나의 식민지로 전락했음을 증명해 주었다.

    우리 시대 저항하는 젊은 초상들의 기록

    이 책의 지은이는 당시 중앙대 재학생으로 두산 재단의 학과 구조 조정안에 반대하는 크레인 시위를 벌이다 퇴학당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런 삶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지은이가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쌍끌이 어선을 탄 2008년 1월, 겨울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아르바이트의 악순환을 탈출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뱃일을 시작한 지은이는 약탈적 급여 체계로 인해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인상된 등록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들고 복학한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돌아간 대학은 기업이 접수한 상황. 고시반 기숙사에 자리를 배정받고 평범한 취업 준비생 대열에 서려던 대학생 영수는 총장과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해 온 진중권 교수가 해임되는 사건을 계기로 재단과 대학 본부에 맞선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지은이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본인이 몸담은 대학이 자본에 의해 잠식되어 가는 과정과 무너져 가는 캠퍼스 민주주의,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분투기를 유머와 위트 넘치는 필치로 촘촘히 그려 냈다.

    학생답게 살고 싶어 싸우다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거대 기업과 맞서 싸워야만 했던 어느 평범한 대학생의 ‘미련한’ 분투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이야기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기업화가 학생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한 당사자의 강력하고 생생한 증언이자, 크레인 시위, 삼보일배, 징계철회를 위한 끈질긴 소송 등 투박하지만 꿋꿋하게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저항의 연대기이다.

    사설이나 평론이 주를 이뤘던 기존의 대학생 당사자 글쓰기의 전형에서 벗어나 자신의 체험에 입각한 새로운 양식의 글쓰기를 보여 주는 이 책은, 저항하는 젊은 초상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음을 생생히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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