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과 시어머니 폭력에 시달려
    [이기순의 생애 이야기] 서글프고 모질었던 부산생활
        2014년 03월 21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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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순의 생애 이야기- 4 링크

    손 닿는 대로 두들겨 패고 발로 밟고

    오월 스무닷세날 딸을 낳았어, 시째지. 어무이가 산간을 한다고 거글 왔제. 친정엄니 생신이 유월 초여드레여. 그려서 내가 닭이라도 한 마리 사서 미역국을 끓여드려야겄다고 남편헌티 얘기를 혔어. 그르니께 ‘시어무이는 어디 가서 먼 고생을 혀는지 알지도 못함서, 친정어무이 생신을 해주잖다’고, 아그 낳고 누웠는 여편네를 뚜들겨 패는 거여. 그게 남편헌티 처음 맞은 거여.

    내가 친정엄니 산간 들이는 거를 별로 안 좋아혔어. 나 못사는 꼴을 보이기가 싫여서. 근디 산간할 사람 읎으니 장모님 오시게 하라고 지가 그랬었거든. 그래놓고는 생신날 닭미역국 끓이잖다고, 그르케 패는 거여.

    그걸 마당서 보고서는 어무이가 기절을 한 거여. 그르니 사람들이 물을 멕이고 방으로 떼미고, 한 바탕들 놀랬제. 깨나서는 가신다는 거여. 을매나 속이 상허셨겄어? 그러구는 어무이는 가버렸어.

    모르지~, 지네끼리는 서로 연락을 하고 에미랑 동상들이 어디가 있는지 아는 가도. 아마 알았을 거여~. 그르케 한번 손을 대더니, 그 뒤론 툭허면 뚜들겨 패는 거여. 아부지 있는 데서는 안 혀지만, 아부지가 그걸 모르겄어? 얼굴만 봐도 알구, 같이 사는 사람들헌티 야그도 들으실테고. 때리면 손 닿는 대로 뚜들겨 패고 발로 밟고 그랴.

    아구~, 대드는 게 어딨어? 나는 대들고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이여. 아부지고 남편이고 헌티 대드는 사람이 못되야. 처음에는 지 어무이 핑계로 때리는 게 많았어. 내 아부지가 가차이 계시고 집주인도 처가 쪽이고 허니, 더 꼬였던 게벼. 그거 아니면 어디 비빌 데도 읎음서.

    난중에는 의처증까지 생겨서는, 벼라 별 소리를 다하는 거여. 큰아들이 내 고향집 동산 넘어 남자 자식이라는 소리까정 하더라니께. 남들 앞에서는 얌전한 척 함서도, 나랑만 있으면 그르케 쥐잡듯이 허고, 악을 쓰구 패구 하는 거제. 밖에다가는 법읎이 사는 사람 소리를 듣는 거고.

    안쓰고 안먹고 나도 저도 벌고 혀니, 계 탈거랑 해서 백만원 넘게 돈이 모타졌어. 그때 이종오빠네가 그 집을 백만원에 내놨었어. 내가 속으로 그 집을 살려고 마음을 먹었제~. 근디 어느 날 갑자기 시엄니가 온 거여. 지네끼리 통하다가 왔겄제. 와서는 돈이 을매나 있냐고 묻더라고.

    그 때만 혀도 서방이랑 나는 돈가지고 서로 거짓말을 안하고 같이 모트고 혔어. 그니께 서방이 ‘통장에 얼마가 있고 곧 계를 얼마를 탈거다.’고 얘기를 혔어. 그르자 시엄니가 “나하고 한데 합치자.” 그려는겨. 그려서 “엄니. 일 년만 더 고생을 좀 해주셔유. 제가 큰며느링게 엄니를 당연히 모실틴디, 시방은 살림 키울 궁리로 어렵고, 저도 생각혀는 게 있으니 일 년만 더 고생을 하시고 합치는 게 좋겄어유.” 그렸어.

    그러자 시어미랑 서방이 밥상을 뒤집어엎고 발길질을 혀고, 난리가 난 거여. 그라구는 애들 붙여서 나를 친정으로 보내버리드라고, 곗돈은 다음 달에 탈 달인데. 친정 가서 지가 올 때까정 기다리래는 거여. 친정 가 있는 동안, 곗돈 다 타고 방 빼고 혀서, 부산에다가 전세집을 얻은 거여. 남은 돈은 빚진 거를 또 갚었대는 거구. 서울서 집 사려던 돈을 부산서 전세를 얻었으니, 그 차이가 을매나 큰 거여. 나머지 돈은 얼루갔나 나는 모르는 거제.

    부산생활 / 시어머니의 폭력

    그래놓고는 서방이 친정으로 온 거여, 부산 가자고. 돈이랑 집이랑 으뜨케 했냐고 물으니께 머이라고 분명치가 안혀. 안 간다고 혔어. 세상에~, 그 돈이 을매나 기가 막히게 벌어서 모은 건데, 나헌티는 말 한마디 읎이 쪼개 풍지박산을 만들었냐고, 안 간다고 혔어.

    그렸더니 엄니 아부지 있는데서 나를 뚜들겨 패고 밟고 허드라구. 그르니 어무이는 또 쓰러지고, 아부지는 ‘남부끄러우니께 조용히 따라 가라’고만 혀고. 아부지가 그르니 어떡햐? 그냥 아부지 하란대로 따라 나섰어. 그런 거가 아부지헌티 원이 많여.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체면 생각해서 딸을 사지로 내모는 거잖여 그게.

    그르케 부산으로 가서, 방 두개짜리 독채 전세에서 시어미니랑 시누이 시동상들하고 같이 산 거여. 그르다가 또 일수를 얻어서 머를 한다더니만, 일수를 못끄고 밀리니께, 난중에 또 빚잔치를 하고. 서방은 부산 조선공사를 다녔응게 벌이가 괜찮은디도, 나는 그 월급 한~번을 못만져봤어. 살림 사는 돈도 시어미헌티 일일이 타서 쓰는 거제.

    부산조공 노동자

    1960년대 부산조선공사 노동자들(사진은 책 ‘배 만들기 나라만들기’에서)

    그라고 동네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꼴을 못봐. 얘기라도 하다 들켰다 하면 그 날은 죽도록 맞는 거여. 남자 아니라 여자여도 마찬가지여. 시엄니도 싫어하고. 긍게 나가지를 못하고 집에서 아그들하고만 있는 거제.

    술 살 돈도 안줬으면서 술 안사왔다고, 시엄니가 다짜고짜 길거리서 장 보따리를 뺏어던지고 뚜들겨 패고. 동네 여자들이 보고는, ‘세상에 저런 시집살이를 으뜨케 사느냐?’고 하드라고.

    시엄니는 서방하고 나 사이를 이간질을 혀며 늘 거짓말을 혀. 지 말도 안듣고, 동네 누구랑 말질을 혀고 한다고. 뚝하면 나헌티 ‘하는 구녕만 알지, 난 구녕은 모른다’고 쌍욕을 하매 악을 쓰는 거여. 지 아들 있는 데서는 안혀제. 그러니 머라고 이간질을 하든, 나는 아예 입을 다물고 사는 거여. 나랑 동갑인 시누는 그걸 알아. 그르니 시어미가 나를 쥐집듯 허면, 시누는 내 편을 들어. 언니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르케 못살게 그러느냐고.

    한 번은 큰아부지 환갑잔치로 친정을 갔다 부산 집을 들어서는데, 글씨 ‘친정서 돈 안갖고 왔다.’며 시엄니가 다짜고짜 달겨드는 거여. 멱살을 잡아 벽에다 박아놓고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는디, (웃도리 단추를 열어 목 아래 가슴을 보이며) 시방도 여기가 이렇게 가라앉지를 않고 튀어나와 있어. 뼈가 부은 건가 부서진 건가, 가라앉지를 않더라고. 한동안은 여그가 아파서 숨쉬기도 힘들었제.

    서방헌티 맞는 것도 억울헌디, 친정가서 돈 안 해왔다고 시엄니가 패고 쳐박고 그런 거여. 돈에 뒤집힌 거제. 이런 말을 어디 가서 하겄어? 종년도 그런 종년이 읎제. 바깥에도 나다니지를 못혀고. 그르다가 시어머니가 그 전세를 담보로 또 빚을 냈어. 근데 그 돈을 못갚응게 결국 또 거덜이 나버린 거여,

    시어미는 혼차 도망가고. 살 길이 막막허잖여. 그 집 잡은 사람이 왔는디, 자기가 보더래도 내가 참 암껏두 모르고, 시어미 잘못만나 살림이 거덜나버린 걸 안시럽게 본 거여. 그르니 쌀을 얻어주며, 계를 하나 들어서 다달이 계를 부어 그 돈을 갚으라면서 더 이상 뜨잡이를 안혀드라고. 사람을 살려야 돈도 받겄다 싶으니께 그런 거제.

    그 때 우리 이종사촌언니 두엇이 그 부산서 살고 있었거든. 그려서 언니랑 형부헌티 통사정을 혔지. 챙피헌 게 솔직허니 다 말은 못혀지, 그냥 둘러대는 거여. 그르니 형부가 돈을 얼만큼을 혀주드라고. 거그다 친정 동상이 빌려준 오십만원을 합해서 급헌 빚을 갚고는 단칸 사글세방을 얻어 들어갔어.

    큰 시동상은 군대를 가고, 시누는 방 하나를 얻어서 따로 나가고, 막내 시동상은 같이 살았던가 어쩐가 기억이 가물가물 혀. 그 때부터 자갈치 시장가서 생선도 뗘다 팔고, 행상도 하고 혔어, 먹고는 살아야 항게. 남편은 조선공사를 그대로 다니고. 남들 보기는 번듯헌 직장이지만, 남편도 그때는 인쟈 돈 모툴 마음이 안들었을 거여.

    나헌티야 지 어미 욕을 안하지만. 지 속으로는 원망을 안혔겄어? 마누라랑 새끼랑 살려고 부부 간에 일해서 돈을 모타놓으면, 지 에미가 와서 한 입에 탁 털어 흝쳐버리기를 여러 번을 하니, 다 귀찮고 싫은 거제. 그르니 모투지를 않구 술하구 기집질로 읎애고~. 그때부터 술이고 기집질이고가 더 심해진 거여, 때리는 것도 더 심해지고.

    그럼서두 나는 안쓰고 안먹고 모타서는 파출소 옆으로 오십만원짜리 전세를 얻어 들어갔어. 근디 살아볼려구 헐수록, 살아야겄다는 의욕이 푹푹 꺼져지는 거여. 누굴 붙들구 말을 할 수가 있어~?, 글씨를 알아서 글로라도 써볼 수가 있어?~

    그때 이미 우울증이 심허게 생겼었제. 안그렇겄어? 내가 살아야 머하겄나? (눈물이 가득 고여 흐르며) 그른다구 새끼들을 놔두고 죽으면, 눈물을 구멍구멍 흘리면서 거지 천덕꾸러기로 살틴디~ 살자고 장사는 함서도, 맨날 죽을 생각을 혀는 거여.

    그르다가 한 날은 그 어린 새끼들헌티 술을 퍼먹였어. 한바탕 또 뚜들겨 맞은 다음 날이여. 큰 머스마는 시방도 그 술먹은 거를 알아. 죽을라고 한 거는 모르지. 밑에 아그들은 술 먹은 것도 몰러, 시방도. 나는 원채 술을 못 헌 게, 한 모금이나 먹었나 혔고.

    그라고는 그 셋을 업고 걸리고 해서, 오밤중에 부산 바닷가를 간 거여. 막내는 아직 안낳았을 때지. 그러카구서는 깜깜한 밤중에 바닷물로 들어간 거여. 지금두 그르케 새끼랑 같이 죽는 에미 뉴스가 나오고 욕들을 허드만, 내는 그 맘이 이해가 가고 욕을 못허겄어~.

    아~, 근디 바닷가를 순찰허던 순경이 그거를 본 거여. 나오라고 나오라고 마악 악을 쓰며 뛰어와서는 끌어내더라구. 그 순경 이름도 안잊어져. 이분식이여, 이분식. ‘왜 젊은 아짐이 그런 맘을 먹느냐?’고, ‘죽을라고 맘을 먹으면 그 맘으로 살아야지’…. 그려서 못 죽었어. 죽는 거도 팔자가 되야 죽는 거여.

    이혼 생각을 왜 안해봤겄어? 근디 워낙에 친정 아부지가 엄하고,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게 이혼 그런 거랑은 너무 멀응게, 이혼 할 엄두를 못내고 그저 ‘징역살이다, 종살이다….‘ 하고만 사는 거여. 그르케 맞고만 살다보면 주녁(주눅)이 들어요~. 그르니 ’이걸 어뜨케 허면 좀 거시기 허겄다….‘ 하는 궁리를 못하는 거여. 죽고 싶고 불안허고 무섭고 그러기만 하는 거고. 그라니 남 허고 야그도 않고, 허고 싶지도 않고, 점점 생각도 읎어지는 거여. 혼차만 우울증에 빠지고, 사람보러도 안나가고 싶고. 그라고는 내가 정말 머를 잘못해서 맞은 것 모냥, 내 탓만 허는 거여. 며칠 안맞고 지나면 언제 때릴라나 불안하고, 맞고 나야 마음이 편코, 아예 등신이 되는 거여.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헌대지만, 꽈악 밟아버리면 꿈틀도 못허는 거제~. 그 때부터 내가 심장병이 걸렸다니께. 협심증이라나?…. 녹두알만한 작은 약을 항상 지니고 다니다, 가슴이 너무 아프고 숨이 막힐 때 먹었제. 시방도 그 약을 먹어. 조금만 신경을 써도 속이 벌렁벌렁 허고, 소변이 자꾸 마렵고, 잠도 못자고. 우울증 약은 진즉부터 먹기 시작혔제.

    장사해서 번 돈 서방 몰래 넣어뒀다가 약을 사 먹었어. 약국 가서도 맞는단 소리는 못하고, 어뜨케 안좋으가만 얘기를 하는 거제. 지금 누가 그렇게 맞고 살면, 도시락 싸가꼬 다님서 살지 말라고 말을 할 거여.

    단칸 사글세 살며 남편이 월급을 타왔을 때여~. 지난 달 외상 가져온 쌀값도 주고 어쩌고 헐려고, 봉투째로 농 속 이불 틈에다 낑겨넣드라구. 그 전날 시동상이 군대서 휴가 왔었는디, 그 날 낮에 말도 읎이 읎어졌어. 퍼뜩 직감이 나서 농을 뒤져 봉게, 그걸 봉투째로 홀라당 가지고 도망을 간 겨~. 전 달 쌀값을 못 갚으면 다음 달 쌀을 외상을 안줘~.

    나중에 알리면 더 맞을까 싶어서, 새파랗게 질린 채로 아그를 들쳐업고 회사를 쫓아갔어. 사방도 을매나 기가 찼을 거여. 근디 삼일만에 저녁 나절에 기여들어 오더라고. 돈은 다 썼댜~. 나가 먼 귀신이 씌였는지 확 뒤집어지더라구. 정지 칼을 뽑아들고 방으로 들어갔어. ‘당신 죽고 나 죽자. 당신이 인간이냐? 져우 살만하게 맨들면 또 탁 엎질러 쏟아서 맻 번을 이렇게 나자빠지구 하며, 여지껏두 쌀을 외상으로 사다먹는데, 그 걸 통째로 훔쳐가서는 삼일 만에 다 털고 들어오니, 이제 나는 안 산다. 너 죽고 나 죽자.’

    그러고 뜨잡이를 하는데 형이 들어오더만. 지 동생새끼를 보자마자 ‘싸가지 읎는 새끼~’ 하고 귀싸대기를 때리구 둘이 엉켜서 쌈질을 허고. 그라구는 시동상은 도망을 쳐서 나타나지를 않다가 부대로 간 겨. 그려도 휴가 나오면 또 우리 집으로 오더라고. 갈 데가 어딨겄어?

    그려두 시엄니만 안나타나믄, 돈은 모타져. 행상도 허구 포장마차도 허며 계를 타서, 파출소 옆 전세집으로 이사를 갔어. 거그서 막내를 낳았제. 걔가 지금 서른 여덟이야. 그 바로 전에 애 하나가 더 생겼었는디, 두 달이나 됐을 때 수술을 시켰어. 안 살려구 작심을 혔던 때지. 그려서 그 위로는 두 살 칭한데 막내만 세 살 칭하여~. 그것도 생명이니 죄지~. 핑계가 머든 죄여. 그렇지만, 안살려구 허구 죽을려구까지 할 때니, 띠었던 거여. 그 때는 무료로 수술을 해줬어.

    근디, 유산시키고 났더니 애는 또 더 잘 들어서드라고. 걔도 안날려구 혔는데 서방이 애 벤 거를 알구는, 이제 절대로 술 안먹는다고 하도 혀서, ’좀 나을라나~?‘ 허구 낳은 건데, 또 똑같드라구. 막내 낳구서는 루프(여성의 자궁 내에 일상적으로 넣어 놓는 피임 장치)를 허다가, 나중에는 배꼽수술(여성의 나팔관을 묶는 방식의 영구피임수술)을 혔어. 서방한테 수술(무도정관수술. 남성의 정관을 묶는 방식의 영구피임수술)하라는 말을 혀봤는디, 정력이 떨어진대나 으쩐대나 하면서 말도 못끄내게 허더라구.

    18321974출국

    1974년 건설노동자들의 중동 출국 장면

    막내 낳고는 서방이 해외 바람이 불어서는 싸우디를 가겄다드라구. 그 때 중동으로 가는 기술자들이 많았잖여(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중동 산유국들의 경제개발계획과 오일달러의 기세로 전 세계의 자본과 노동력이 중동으로 몰렸었다. 한국도 정부와 민간 차원의 적극적인 중동진출이 진행되었고, 특히 건설업계 노동자들의 진출이 많았다.)

    그란디 조선공사 퇴직금이랑 월급이랑을 술집 기집헌티 다 갔다 바친 거여. 삼사년이나 되게 댕겼으니 퇴직금이랑 꽤 되었을틴디, 그걸 홀라당 바친 거여. 술이 취하면 아무 정신이 읎고, 난중에도 아무 기억도 못혀. 그르니 싸우디를 갈려면 비행기 값이며 머며 돈을 만들어야 헐 거 아녀? 동네랑 시장서랑 사람들이 나를 믿고 헝게, 나가서 이자 돈 오십만원을 빌려다가 줬어. 근디 그게 또 사기를 당했다는 거여.

    그 때 싸우디 바람 불면서, 사기 알선도 많았거든. 몰러~, 진짜로 사기를 당한 겅가 또 어느 계집헌티다 바쳤능가는. 지가 그렇다니께 나는 그런 줄 알지, 내가 캐묻기나 할 수가 있어, 어쪄? 그러니 그만큼을 또 만들어야 하는 거 아녀. 간다고 작정은 해놨는데 어쩔 거여? 다시 또 사십만 원을 빚을 내서, 합해서 구십만원 빚을 만들어놓고, 그 노무 싸우디를 간 거제.

    그른디 거기서 월급 받는 거를, 생활비만 얼마를 들어오게 하고 나머지는 지 통장으로 들어가게 해놓더라고. 나는 그 생활비 오는 거는 손을 안대고 모으고, 내가 버는 걸로 생활비도 하고 빚도 갚고 혔어. 그른디 먼 지랄이 나서 일년 만에 오더라고. 지가 만든 빚 져우 갚을 만 항 게 달랑 온 거여.

    와서는 또 일도 안하고 술 쳐먹고 놀고 집에 있는 거제. 그르니 승질은 더 지랄이고 의처증은 더 심해지고. 그르다가 지 통장 다 떨어지고 나헌티 뜯어간 돈 다 쓰고 어쩌고 허면, 또 가는 거여. 갈려면 또 여비니 머니 있어얄 거 아녀? 그럼 또 나헌티 빌려오게 해서 빚을 만들고 가고, 그 빚 갚을 만~ 하면 또 오는 거고. 가면 일 년을 더 못 있어. 의처증 때문에라도 못 있는가벼~.

    서방이 싸우디 갔을 때 은제, 하도 심장이 아프고 숨이 막혀서 약을 먹었는디, 늦게 먹었나 으쨌나 정지서 씨러졌어. 그러구는 이틀을 못깨났어. 어디 딴 데 가서 그렸으면 죽었을 거여. 내가 씨러지니 아그들이 울면서, 같이 세 사는 사람들을 불러온 거여. 사람들이 한의사를 데려다가 따고 침놓고 해서, 급한 거를 넘긴 거여.

    그 날 밤까지 두고 보자고 하는 그 사흘 만에야 깨난 거제. 깨는 났는디, 머리에 쌀 한가마니를 얻은 거 모냥 무겁고 골치가 아프고, 정신도 멍~ 허니 바보가 된 거 같드라구. 손발이 움직거려지기는 하는디 기운이 하나~토 읎어. 그릇 하나도 짚지도 들지도 못하겄는 거여. 마비가 된 거는 아닌데, 기운이 읎는 거제. 그릉게 인져, 이모 며느리가 같이 세를 살았었는디, 국이랑 끓여서 아그들도 주고 나도 멕이고 거둔 거제. 그 때 씨러진 걸루, 그 전 기억도 많이 읎어지고 티가 나게 기억력도 안 좋아졌더라구. <계속>

    필자소개
    1957년생 / 학생운동은 없이 결혼/출산 후 신앙적 고민 속에 1987년 천주교사회운동을 시작으로 “운동권”이 됨. 2000년부터 진보정치 활동을 하며 여성위원장, 성정치위원장 등을 거쳐, 공공노조에서 중고령여성노동자 조직활동. 현재 서울 마포에서의 지역 활동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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