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진보정치 현장] 가혹하고 야만적인 '부양의무자' 규정의 실태
        2012년 06월 20일 04: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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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7월이 되면 지방의원으로 일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채워진다. 그 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또 앞으로 만나게 될 터이다. 나를 필요로 해서, 만남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거칠게 분류하면 크게 두 부류인데, 첫째는 내가 진보정당 의원이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내가 특정 지역의 지역구 의원이기 때문에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전자에는 대체로 어떤 경향성이 있는데, 먼저 이들은 곤궁한 상황에 빠져 있다. 그 곤궁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힘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이미 만나보고 난 이후의 만남인 것도 그 경향성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공기관 뿐 아니라 심지어는 스스로 만남을 요청하여 만나고 있는 나에 대해서도 큰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 후자에 속하는 분들은 여유 있게 자신의 곤란함을 설명하고는 느긋하게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 정도 일을 해결해 주지 못하면 다음에는 국물도 없다고 말하는 느낌도 받는다.

    당연히 앞쪽 분들에게 더욱 애를 쓰게 되는데, 문제는 이들이 나를 만나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된 사건이 아무리 잘 마무리되어도 사실은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오늘은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내 지역구에 호박골이라는 오래된 동네가 있다. 어느 날 밤 여기 사시는 자율방범대 총무님이 전화를 하셨다. 내일이라도 자기 집에 방문해 달란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지층에 사는 세입자 때문에 무서워서 못살겠다고 한다. 동 사무소에 얘기했지만 소식이 없다는 말과 함께 내일 꼭 방문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다음 날 오전 일정을 미루고 호박골로 갔다. 총무님은 내 손을 이끌고 지층의 어느 방의 문을 노크했으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니 60대쯤 되어 보이는 초췌한 모습의 아저씨가 눈으로만 인사를 하신다. 담배 찌든 냄새와 음식 냄새가 정체 모를 냄새와 함께 섞여서 코를 찌른다. 방에는 작은 식탁과 식탁 위의 디스 담배 한 갑, 재떨이로 쓰고 있는 밥그릇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못을 박아 놓은 벽에는 옷 몇 벌이 질서 없이 걸려 있다. 식탁 밑에는 서울막걸리 빈 통 서 너 개가 볼링 핀처럼 서 있다.

    아저씨는 총무님에게 눈을 껌뻑이면서 어제 미안했다고 하신다. 무슨 일이 있었냐 물으니 라면을 끓이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려 놓고는 잠들었는데 불이 냄비를 다 태워먹고 근처로 번졌다가 연기 냄새를 맡은 총무님이 황급히 진화를 했다고 한다. 정체 모를 냄새는 연기냄새였던 것이다.

    62세셨고 함께 사는 가족은 안 계신다. 3년 전 뇌출혈로 수술을 하신 후 거동이 불편해졌고 연락이 되는 가족은 없으며, 총무님과 함께 사시는 총무님 부모님의 배려로 월세 없이 그냥 사신다고 한다. 총무님의 어머님께서는 월세 받아봐야 얼마나 받는다고 쫓아 내겠냐 하시면서도, 최근에는 아저씨가 정신이 깜빡깜빡 하는지 잊을만 하면 불을 낸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동 사무소에 알아봤더니 이 분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다. 부양의무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총무님은 이 집에 친족이 찾아온 것을 못 본 지 2년은 족히 넘었다고 하시고, 아저씨도 가족들 연락처를 모른다고 한다. 가족관계가 단절된 상태였다. 총무님 집을 나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지층 아저씨는 골목길 한 가운데 쪼그리고 앉아 누군가 올지도 모를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멀리서 쭈그려 앉아 쳐다보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

    우리 동네 임대아파트에 사시는 신씨 아저씨는 딸과 함께 사는 2인 가족이다. 안타깝게도 딸은 2급 정신지체 장애인이고 이들 가족은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이기도 하다. 아저씨의 경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설일용직 일을 했는데 최근에는 힘이 부쳐서 이 일마저 나가지 못한다. 법적으로도 근로무능력자가 아니어서 수급이라 해봤자 모두 합해서 70여 만원이 전부다. 딸은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화장도 하고 좋은 옷도 입고 싶고, 구청에서 지원받은 컴퓨터 사양으로는 구동되지 않는 컴퓨터 게임도 하고 싶다.

    딸에게는 통제되지 않는 도벽이 있다. 아저씨가 다니는 교회 권사님이 쌀 포대나 반찬을 이고 지고 집에 방문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권사님의 지갑을 뒤지는 게 일상이어서 누구나 이 아이의 이런 습벽을 경계한다. 방법이 있는가? 딸은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로 돈을 벌었다.

    한 번은 모텔에서 일을 치렀는데 남자가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았다. 화가 나서 그의 지갑을 들고 줄행랑을 쳤는데 놀랍게도 그는 그녀를 절도죄로 신고했다.

    경찰은 남자를 성매매방지법 위반으로 벌금 처분 했고, 그녀에 대해서는 같은 죄에 더해 절도상습범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붙여 검찰에 송치했다.

    나를 비롯하여 아저씨의 교회 신도들이 나서서 탄원서를 냈으나 크게 참고되지 않았는지 현재까지 교도소에 수감중이다. 나는 실형이 불가피하다면 차라리 일반수용시설이 아닌 치료감호처분을 해 달라고 하면 어떻겠나 생각했지만 조언을 해 준 정신지체 장애인 인권전문가는 대한민국 치료감호소가 어떤 곳인지 아냐고 했다. 같은 말을 이 사건 검사도 했다.

    신씨 아저씨는 어쨌든 기초생활수급비와 구청의 작은 배려와 주변의 도움으로 살고는 있다. 얼마 전 전화가 왔다. 딸이 교도소에서 공장에 다니며 직업교육도 받고 편지도 자주 쓴다고 했다. 나도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뭐라고 썼더냐고 물었더니 말을 흐리며 ‘나는 글을 못읽어’ 하신다. 알게 된 지 3년이 지났지만 나는 이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딸은 편지에서 신씨 아저씨에게 ‘나를 사랑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 분들을 만나며 기초생활수급제도의 ‘부양의무자’ 규정이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제도가 얼마나 얕은 것인지 체감했다.

    나는 지방의원으로서 이들과 함께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도와드리고 본인의 동의를 얻어 간호가 가능한 시설입소를 알아 봤고 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딸의 편지를 읽어 드렸고 딸이 남기고 간 상환하지 않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파산상담을 해드렸으며 사실상 근로무능력 상태인 신씨 아저씨가 근로무능력 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방안을 알려 드렸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하는 동안 이들과 내가 함께 경험한 빈곤의 악순환이 해결되었거나 그 해결과정에서 어떤 뿌듯함을 느꼈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 찝찝함, 이 무력감이 진보정당 활동의 근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빈곤의 악순환을 만들었거나 재생산하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는 정치집단에 맞서, 혹은 이런 기득권 세력들 일부와 손을 잡는 방식으로라도 힘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는 세력에 저항하며, 말 그대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 절실히 필요함을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은가!

    더불어 나는 우리 진보진영의 지역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며 빈곤계급의 상황과 이들이 겪는 곤궁함의 실체를 파악하여 단기적인 혹은 장기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소개
    정의당 심상정 선대위 상임공동선대위원장. 전 관악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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