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처럼 우리도
‘좌파로 산다는 것’을 고민한다 
[책소개] 『좌파로 살다』(뉴레프리뷰/ 사계절)
    2014년 03월 15일 05: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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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한 대학생의 대자보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향은 뜨거웠다. 대학생뿐 아니라 중학생, 고등학생, 나이든 어르신과 해외의 교포들도 각자의 안녕하지 못한 현실을 담아 대자보를 확산시켰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에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을까.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주류에 편입하기 위해 매일매일 팍팍한 삶을 사느라 우리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한 현실에 대한 미안함과 불만이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며 경제적 격차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삶이 나날이 황폐해져가는 상황에서 좋은 삶, 좋은 사회를 도모하는 대안 세력이어야 할 좌파 운동조차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우울한 현실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한때 젊음과 이상, 헌신을 상징했던 좌파가 ‘낡음’, ‘구태의연함’을 상징하게 된 한국 사회의 슬픈 현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안녕하지 못한 시대에 좌파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주의라는 괴물과 맞서 싸우며 좋은 삶을 꿈꿨던 좌파의 역사는 무의미했던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비판하고 저항하며 버텨 나가는 좌파들의 존재는 무가치한 것일까.

<좌파로 살다>는 지난 100년의 시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자본과 권력과 불의에 맞서 싸웠던 16명의 좌파 인물들의 고민과 고백을 통해 좌파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캐어묻고 고민하고자 한다.

좌파로 살다

좌파로 산다는 것의 정치적 철학적 실존적 고민들 

세계 최고의 좌파 지식인들이 집결해 있는 좌파 저널인 <뉴레프트리뷰>는 창간 직후부터 지금까지 좌파의 주요 인물들의 육성을 담아 왔다. 그중 치열하게 고투했던 16인을 엄선해 이 책 <좌파로 살다>에 담았다.

이 책에 실린 좌파들의 육성은 20세기 초반 활동한 루카치, 코르쉬 같은 인물부터 시작해 2000년대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한 아리기, 하비, 왕후이 등까지 지난 100년의 시간을 아우르고, 서유럽만이 아닌 동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 있었던 투쟁과 고민들을 아우른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처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고민해왔다.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와 공산당의 획일화를 비판하고 고민한 좌파들과 좌파 이론의 토대를 다지고 마르크스주의의 혁신을 고민했던 좌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좌파 지성들의 치열하고 엄격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 인도와 브라질, 멕시코, 중국, 일본 등 제3세계에서 활동한 지식인들은 서구 좌파 이론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지역적 조건과 문화적·역사적 차이에 대해 숙고한다. 각기 다른 시대와 다른 지역에서 분투하고 성찰했던 좌파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며 좌파로 산다는 것의 정치적이고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고민들을 들려준다.

20세기 좌파 지성사를 정리하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 상당수는 좌파 이론의 주요한 혁신을 이끌어온 인물들이자, 각국의 혁명적 상황에 누구보다 앞서서 뛰어들어 실천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들의 인터뷰 면면은 그것으로 이미 20세기 좌파 운동의 흐름과 지성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역사와 계급의식>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소련식 전통과는 다른,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루카치를 비롯해 마르크스주의가 유럽이라는 지역을 벗어나 아시아 등 제3세계 국가에서 힘을 발휘할 것을 예측한 칼 코르쉬, 소련의 과도한 간섭에 반대해 ‘프라하의 봄’으로 대표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사회주의 개혁 운동을 주도한 이르시 펠리칸,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더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들기 위해 칸트 등의 철학과 연결시키려 했던 루초 콜레티.

그리고 신좌파 운동과 직접 연계해 활동한 루치아나 카스텔리나, 마르크스 철학을 새롭게 재정립하려 한 사르트르,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의식으로 지리학의 문제를 파고든 데이비드 하비, 중국에서 좌파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서구의 좌파 전통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왕후이, 세계 체계론적 시각으로 자본주의의 기원과 변화를 추적한 조반니 아리기까지.

이 책은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벌어진 좌파의 지적 활동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게다가 이 책은 그동안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좌파 지식인의 고민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칼 코르쉬, 이르시 펠리칸, K. 다모다란, 루초 콜레티, 루치아나 카스텔리나, 아돌포 힐리,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 등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다.

칼 코르쉬의 경우 <마르크스주의와 철학>이 1986년 번역된 적이 있지만 루카치 등 다른 지식인에 비해 지속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좌파로 살다>는 미처 알지 못했던 좌파의 운동과 이론을 소개하며 좌파 지성사의 지평을 확장해준다.

당대 탁월한 좌파 이론가들이 맞붙은 대담의 성과물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인터뷰를 담당한 인물들 역시 좌파의 역사에서 주요한 한 축을 담당한 인물들이란 점이다. 페리 앤더슨, 타리크 알리, 실라 로보섬 등 좌파 이론의 혁신을 이끌어왔으며 <뉴레프트리뷰>의 편집위원으로 활약해온 좌파 지식인들이 직접 기획하고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에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논의에서 치열하고도 밀도 높은 성취를 이뤄냈다.

인터뷰어로 참가한 이론가들은 대담자의 이론적 작업의 성과를 알기 쉽게 이끌어내면서도 날카롭게 허점을 공격하기도 하면서 대담자가 이뤄낸 이론적 · 실천적 성과를 다채롭게 드러낸다.

또 대담자들의 이론적 작업의 공백, 정치활동과 같은 실천 과정에서 저지른 오류 등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지적하면서 치열하게 논쟁을 이끌어가고, 대담자들 또한 자신의 이론적 · 실천적 과오와 실수를 인정하면서 비판과 성찰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도 한다. 특히 데이비드 하비가 조반니 아리기를 인터뷰한 것에서는 당대 가장 탁월한 좌파 이론가들의 사유와 고민의 정수를 맞볼 수 있다.

끊임없는 자기 혁신의 문제적 좌파 잡지, <뉴레프트리뷰> 

이 책의 인터뷰를 기획하고 진행한 <뉴레프트리뷰>는 1960년 서구 사민주의 정당과 현실 사회주의를 비판하며 창간한 이래 지금까지 당면한 정치적 쟁점에 대한 논쟁은 물론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쇄신과 자기성찰을 이끌어왔다.

얼마 전 타계한 스튜어트 홀을 비롯, 레이먼드 윌리엄스, 에드워드 파머 톰슨 등 당대를 대표하는 좌파 이론가들이 창간한 <뉴레프트리뷰>는 2세대 편집진인 페리 앤더슨, 타리크 알리 등에 의해 서구의 좌파 지형뿐 아니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좌파 운동의 현실과 가능성을 분석하는 등,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지형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좌파로 살다>는 <뉴레프트리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기획이기도 하다. 지난 6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주류가 아닌 비주류 좌파 지식인들을,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지식인들을 꾸준하고 일관되게 인터뷰한다는 것은 <뉴레프트리뷰>라는 튼튼한 지반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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