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의 꿈 지켜내는
    현대판 도깨비 이야기
    [책소개] 『6번길을 지켜라 뚝딱』(김중미/ 낮은산)
        2014년 03월 15일 05: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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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고 오래된 것은 무조건 새것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마을과 숲, 강이 파괴되는 것을 볼 때마다 도깨비를 떠올렸습니다. 오래된 마을과 숲, 강에 깃든 이야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로 도깨비를 다시 불러오고 싶었습니다. _「글쓴이의 말」에서

    <6번길을 지켜라 뚝딱>은 원래 창작집단 도르리가 공부방 ‘기찻길옆작은학교’인형극패와 함께 만든 인형극이었어요. 힘없는 사람들이 삶의 자리를 빼앗길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을 도와 삶의 자리를 지키는 도깨비 이야기는 바로 우리 이야기였답니다. _「그리고 만든이의 말」에서

    이 작품은 <괭이부리말 아이들> <종이밥> <조커와 나> 등 묵직한 주제의식과 대중성을 겸비한 어린이청소년문학 작품으로 폭넓게 사랑받아온 작가 김중미의 첫 그림책으로, 어느 오래된 마을에 나타난 꼬마 도깨비 삼 형제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 자신들과 주민들의 삶터를 지키려 하면서 서로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인형 사진 그림책이다.

    김중미 작가가 30년 가까이 운영해온 인천 만석동의 공부방 ‘기찻길옆작은학교’ 출신 청년 작가들(창작집단 도르리)이 모든 인물과 배경, 소품을 실물로 만들고 촬영해서 나온 책이다.

    기찻길옆작은학교에서 20년 가까이 해온 인형극 중 하나를 담아낸 이 그림책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 할 청년 작가들과 그들의 성장을 뒷받침해온 김중미 작가가 괭이부리말 주민들, 나아가 저마다의 삶터에서 공존하며 살아가려는 존재들의 오랜 꿈을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게 담아낸 책이다.

    6번길

    우리 곁으로 다가온 도깨비 삼 형제의 압도적 매력

    이 책의 주인공은 도깨비 삼 형제다. 도깨비가 나온다니, 그럼 옛이야기? 아니다. 오늘날의 어느 마을(6번길 마을) 땅 밑에서 나온 꼬마 도깨비들이 펼치는 내용의 창작동화다.

    어린이 독자에게 ‘우리 동네에 도깨비가 나타난다면? 아니, 살고 있다면?’ 혹은 ‘내가 내 또래 도깨비랑 마주친다면?’ 같은 재미있는 상상을 추동하는 이 책은 등장인물인 두 아이와 도깨비의 만남부터가 흥미롭다.

    뿔이 있고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기존 옛이야기 속 몰개성한 도깨비’가 아니라 ‘각자 개성을 지닌 캐릭터화한 꼬마 도깨비 삼 형제’는 동네의 흔한 개구쟁이들과 다름없어 보인다. 배고픔을 “너무너무 배가 불러서 등딱지가 뱃가죽에 딱 붙었어.”라고 표현하는 막내 ‘거꾸로 도깨비’는 특히나 귀여운 매력과 익살을 발산한다.

    이들의 행동도 기상천외하다. 두드릴 것만 있으면 난타를 하고, 남의 대저택을 밧줄로 묶어 옮기고, 온 마을에 각종 똥을 싸지르고, 사람들을 빗자루로 바꾸어놓곤 한다.

    이런 도깨비짓들이 장면마다 손에 잡힐 듯한 실제 인형과 배경, 소품으로 연출돼 펼쳐진다. 신선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이야기가 실물로 시각화된 이 책은 어린이 독자에게 그림책만의 매력인 ‘보는 재미’를 극대화해 ‘상상의 재미’까지 한껏 선사할 것이다.

    ‘지금 여기’와 대면함으로써 오래된 미래를 여는 도깨비

    도깨비 삼 형제가 ‘지금 여기’에 나타날 수 있었던 건 이들이 100년 전 근대화에 따른 개발로 삶터를 잃고 땅속으로 쫓겨 들어갔다가 재개발 공사로 땅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거’인 이들이 곧 ‘현재’가 된다.

    폭력적인 재개발로 삶터를 잃게 될 주민들 처지가 100년 전 자기들 처지와 같아 각종 도깨비짓으로 재개발 공사를 방해해 주민들을 돕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도깨비와 재개발 세력의 결정적 한판이 열리고, 이야기는 아주 현실적이고 의미심장한 결말로 나아간다.

    ‘한판’으론 결코 해결되지 않을 문제 속에서 대결 자체가 주민들과 이웃들, 곧 우리의 삶이 되는 모습을 그려간다.

    대결 덕분에 오히려 사람이 모여 마을이 복원되고 대결 자체가 공동체의 잔치가 되는 결말은 ‘과거’였던 도깨비가 ‘지금 여기’의 문제와 대면함으로써 열어놓은 ‘미래’를 보여준다. 누구나 자기 삶터를 바탕으로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삶이 과거부터의 오랜 꿈이자 미래라는 주제가 형상화된 것이다.

    도깨비들의 기상천외하고 익살스러운 짓들이 시종일관 살가운 재미를 안기기에 이 책은 그 이야기들만으로도 어린이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한데 우리 곁으로 호출된 도깨비가 우리 삶의 첨예한 현실 문제에 자연스럽게 나서면서 이 작품은 독보적인 독창성과 함께 사회적인 의미까지 획득한다.

    또한 오래된 사물이나 자연물에 깃드는 도깨비의 속성 그대로 도깨비 삼 형제가 오늘날 우리의 삶으로 깊숙이 깃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도깨비의 이야기성을 제대로 현대화한 작품으로서도 그 의미가 깊다 하겠다.

    독자 마음을 휘어잡는 재미있는 실물 장면들

    이 책은 ‘창작집단 도르리’가 모든 등장인물과 배경, 소품을 직접 실물로 만들고 연출해 사진을 찍어 만든 인형 사진 그림책이다. 귀엽고 익살스러운 도깨비, 사나운 조 사장은 그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굉장한 재미를 준다. 또 어두운 땅굴, 정겹고 따스한 6번길 마을 등 디테일이 풍성하게 살아 있는 배경은 이 책에 담긴 정성을 실감케 한다.

    도깨비들이 집을 옮기는 장면, 무서운 새벽 철거 장면, 똥이 와르르 쏟아지는 장면, 도깨비와 조 사장의 긴장감 넘치는 씨름 장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을 공터 장면 등은 독자로 하여금 ‘이야, 이런 걸 어떻게 다 만들었지?’ ‘우아, 정말 잘 만들었다!’ 하고 절로 감탄케 한다.

    서사를 이해했다고 책장을 넘기지는 않고 각 장면 속 여러 세부 요소를 하나하나 찾고 들여다보며 재미를 느끼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어린이 독자의 특성상 이 책은 그야말로 아이들이 재미있을 거리로 가득하다.

    ‘기찻길옆작은학교’의 삶과 꿈이 담긴 인형 그림책

    김중미의 대표작이자 데뷔작인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200만 넘는 독자가 찾은 밀리언셀러다. 김중미의 삶과 작품들의 배경이 된 괭이부리말, 곧 인천시 동구 만석동의 오래되고 가난한 마을에서 김중미는 1987년 공부방 ‘기찻길옆작은학교’를 열어 지금껏 운영하고 있다.

    김중미는 낮은 자리에 있는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과 문학이 분리되지 않는 작가로 알려져 수많은 독자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이 책의 사진을 맡은 유동훈 또한 만석동에 살며 20년 넘게 기찻길옆작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근운영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겸 사진작가다.

    이 두 작가가 공부방에서 20년 가까이 아이들과 해온 것이 바로 인형극이다. 이 인형극은 공부방에서 해마다 봄에 여는 공연 ‘우리 아이들의 나라는’에서 상연된다.(올해는 4월 12~13일 상연 예정.)

    이 공연은 준비와 상연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감을 얻으며 공동체성을 배우도록 하려는, 공부방의 가장 큰 프로젝트다. 또한 만석동에서의 삶과 거기서 피어나는 꿈을 표현하는, 공부방 식구들의 공동예술이기도 하다.

    이 공연에서 비중 있게 상연되는 것이 인형극인데, 이 인형극은 춘천 아마추어 인형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적도 있다.(김중미 장편동화 <모여라, 유랑인형극단!>이 인형극을 통해 꿈을 찾아가는 어른과 아이들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공부방 식구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이 책은 2009년 공연에서 상연된 인형극 「얘들아, 거꾸로 가자」를 그림책으로 담은 것이다. 인형극을 그림책에 담는다는 걸 실현하기 위해 인물과 배경, 소품을 실물로 제작했으며, 공연 때 쓰는 관절인형(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무대 뒤에서 몸체를 잡고 관절을 움직여 동작하게 하는 인형)을 축소해 등장인물을 만들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 할, 공부방에서 자란 청년 네 명으로 구성된 창작집단 도르리가 바로 이 인형극을 도맡는 젊은이들로, 이들은 인형과 각종 소품 제작, 무대연출, 무대효과, 인형 동작 연기 등을 해왔다.

    그래서 이 책은 기찻길옆작은학교를 바탕으로 김중미, 유동훈, 도르리가 모여 괭이부리말 사람들의 삶과 꿈을 담아낸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 마을 주민들과 공부방 식구들의 생각과 이야기, 꿈과 염원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책의 모태가 된 인형극이 상연된 2009년은 용산 참사가 일어난 해다. 이 책은 그 비극적인 희생을 낳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하나의 목소리이자, 각자의 삶의 자리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존재의 꿈과 염원을 담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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