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람과 여성
     그리고 끊나지 않은 베일 논쟁
    [책소개]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오은경/ 시대의 창)
        2014년 03월 15일 05: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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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할례의 아픔을 딛고 세계적인 수퍼모델이자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는 와리스 디리.
    결혼 후 구타와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붙잡혀 코와 귀를 잘린 《타임》지 속의 소녀 아이샤.
    베일을 벗고 브라운관에 등장했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을 당한 아프가니스탄의 비디오자키 샤이마 레자위.

    ‘베일 착용’, ‘베일 논쟁’, ‘베일 금지법’. 잊을 만하면 기사 제목에 등장해 얼굴을 내미는 단어들이다.

    프랑스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공화국 이념인 세속주의 원칙에 따라 2011년 부르카(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부분을 가리는 가장 보수적인 형태의 베일) 금지법을 제정해 공공장소에서의 베일 착용을 금지하고 있는데, 2014년 현재도 이 부르카 금지법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으며, 이로 인해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다문화 사회의 성격이 강한 영국 역시 베일 착용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왜 본인들이 쓰겠다는데 법까지 제정해 베일 착용을 금지하는지, 왜 보기만 해도 갑갑한 베일을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쓰려고 하는지, 왜 베일 논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프랑스 ‘이슬람 베일 허용해야 하나’ 재논란 연합뉴스 2013.12.14
    영국 학교 ‘이슬람 베일’ 금지해 종교차별 논란 연합뉴스 2013.9.11
    이슬람 여성 “베일 착용은 내가 원한 것” 천지일보 2011.6.12

    베일 여성

    이 책의 저자는 ‘베일’을 수많은 담론이 부딪치는 지점으로 보고 이슬람 여성들의 삶, 역사적 기원, 종교적 사회구조, 근대 이후 서구 열강과의 대결 속에서 빚어진 민족주의 갈등, 베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등을 분석해 나간다.

    베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슬람 문화를 포괄적으로 훑는 여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베일로 상징되는 이슬람 여성의 인권 문제, 그리고 그들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들여다 보고 나아가 여성, 남성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 이 문제를 살필 때 베일 논쟁은 물론 이슬람 문명 자체를 이전보다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빠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슬람 베일 논쟁을 거울로 삼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옳은 방향은 무엇인지 역시 성찰해볼 수 있다.

    베일은 인권 억압의 수단인가? 

    이 책은 이슬람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슬람 여성의 인권 문제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여성을 살인하는 명예살인, 클리토리스와 음순의 일부를 제거하거나 아예 음부를 봉합하는 여성 할례, 한 명의 남성이 여러 아내를 거느리는 일부다처제이다.

    저자는 각각의 역사적 근원과 사례를 짚으며 명예살인, 여성 할례, 일부다처제가 여성을 억압하는 명백한 인권침해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했지만 근대화에 실패하며 서구 열강의 탄압을 받게 된 이슬람 세계가 자신들의 정통성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벌인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을 짚어보고, 이 운동이 가부장제와 결합해 여성 인권을 유린해온 과정을 살핀다.

    베일은 민족 정체성의 상징인가?

    그렇다면 여성 인권 억압의 또 하나의 수단으로 지적되어온 베일은 무조건 벗어야 하는 것일까? 베일이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베일은 또한 이슬람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알제리 식민 통치 정책의 하나로 여성의 베일 착용을 전면 금지했는데, 알제리 여성들은 이에 저항하며 베일 속에 정치 문서나 무기를 숨겨 몰래 운반해 알제리 독립에 간접적인 기여를 했다.

    또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구원해주었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최초로 여성 앵커를 고용하고 여성들이 부르카를 벗게 했으나,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앵커는 “부르카를 벗었다고 해서 우리에게 해방이 온 것은 아니다”라고 울부짖었다.

    쓰느냐 벗느냐,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베일을 인권 억압의 수단으로 보아 벗게 한 것이나 베일을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보아 쓰게 한 것 모두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국익’이나 ‘민족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을 뿐 이슬람 여성의 자발적인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베일의 존폐 문제는 각각 다르게 표출되었고 여성을 제외한 각자의 욕망이 베일에 투영되었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을 이용해 이슬람 여성, 이슬람 남성, 서구가 각각 어떤 욕망을 가지고 베일을 바라보는지 분석하는데, 이슬람 여성은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 이슬람 남성은 어머니, 즉 여성으로 은유되는 조국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서구는 자국의 인권 문제를 감추기 위해 베일을 이용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편협한 잣대로 베일 문제를 판단하려 하지는 않았는가? 서구의 주장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는가? 다양한 욕망이 엉켜 있는 베일 문제는 한 가지 잣대로 쉽게 판단할 수도, 명쾌한 답을 내릴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베일이 놓여 있는 다양한 맥락을 살펴보며 타 문명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의 여성 문제는 어떠한지 돌아보는 것은 이슬람 문명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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