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오른쪽에서 옳은 쪽으로
    [책소개] 『약자의 경제학』(이정우/ 개마고원)
        2014년 03월 15일 05: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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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자들은 대개 보수적이다. “가장 급진적인 경제학자도 가장 보수적인 사회학자보다 보수적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경제학자들은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놓고 한 실험에서 경제학 전공자들은 60%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걸 택했다. 반면 비전공자들은 60퍼센트가 서로 협조하는 걸 택했다. 실제 생활에서도 그러한데, 경제학 교수들은 교수들 중에서 가장 기부를 안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의 이기심을 강조하는 경제학의 학문적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이기적인 사람들이 경제학을 선택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오른쪽 경제학’, 즉 현재 주류인 우파 경제학은 사람의 경쟁과 이기심을 강조하며 그에 기반하여 경제 정책을 제안한다. 소수의 승자에게 큰 인센티브를 주며 사기업과 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경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방향이 장기적으로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불평등은 결국엔 경제 성장을 저해하며, 경쟁만을 강조하면 효율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책은 현실의 여러 경제 현상을 짚으면서 약자를 위하는 경제학이 ‘옳은’ 경제학임을 역설한다.

    약자의 경제학

    불평등은 경제 성장의 적이다

    경제학계에서는 불평등을 경제 성장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불평등이 있어야 경쟁이 활발해지고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대 99의 사회에 면죄부를 줘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과도한 불평등이 경제위기를 가져온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전통적으로 소득편차가 큰 직종인 배우. 가수. 스포츠 스타뿐만 아니라 재계까지 보상체계가 극심한 불평등을 보이니 미국 전체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싹쓸이 사회’라는 향기롭지 못한 별명을 갖게 되었다. 각종 기발한 금융파생상품이 다투어 개발된 것도 천문학적 크기의 물질적 인센티브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도 이런 불평등한 보상체제가 촉발한 면이 있다. 엄청난 보상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냉철한 기업가, 금융인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16~17쪽)

    1929년과 2008년, 빈부격차가 사상최대로 벌어졌을 때 경제공황이 닥쳤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며, 역사의 선례를 들어가며 불평등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미국에서 최고 10% 부자의 소득몫은 대개 35% 정도인데, 공화당 정권의 연이은 경제실정으로 1920년대 말에는 50%까지 올라갔다. 그러다가 대공황을 맞았다. 이 비중이 다시 50%로 치솟은 것은 80년 뒤 부시 임기 중이었다. 레이건과 부시의 경제정책은 1920년대와 판박이처럼 같았다. 작은 정부/ 부자감세/ 규제완화/ 친기업/ 반노조가 그것이다. 그 결과 빈부격차가 사상 최고로 커졌고,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세계적 불황이 닥쳤다. 역사는 80년을 사이에 놓고 정확하게 반복했다. (84쪽)

    저자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사례를 들어가며, 불평등과 격차사회의 문제를 지적한다. 첫 꼭지인 「경쟁이냐 협력이냐」에서부터 마지막 꼭지인 「장학금은 누구에게 주어야 하나」까지 다종다양한 이야기에서 저자의 논지는 항상 약한 편의 처지가 개선되고 불평등이 감소되어야 한다는 쪽에 가 있다.

    친기업이 경제를 망치고, 반기업이 경제를 살린다 

    그간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주의라는 이름으로 기업과 부자들을 위하는 정책이 여러 나라 추진됐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크게 강조되었다. 기업이 잘 활동해야 경제가 나아진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이 책은 친기업적인 정책이 외려 경제를 망치고 반기업적인 태도가 정부에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감세, 규제완화, 반노조 등으로 대표되는 친기업 정책이 소수에게만 부를 집중시키고 시장의 투기와 과열을 불러와 경제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들의 공통점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반기업적 태도다. (…) 제퍼슨은 “금융계는 군대보다 더 위험하다”라고 했다. 링컨은 “노동은 자본에 선행하며 독립적이다. 자본은 노동의 아들이며, 노동 없이는 애당초 존재조차 않을 것이다. 노동은 자본보다 우위이며, 더 우대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친노동적 발언을 했다.

    링컨이 암살되었을 때 부통령이었으며,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수행한 앤드루 존슨은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 “우리가 다음에 싸워야 할 전쟁은 금융과의 전쟁이다”라고 술회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부자가 있다. 범죄자 부자와 바보 부자”라고 반부자 발언을 했고,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후나 항상 대기업과 정면으로 싸웠기 때문에 ‘독점분쇄자’란 별명을 갖고 있다. 

    이들과 반대쪽에 친기업적 대통령들이 있다. 친기업적 대통령 중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은 거의 없다. (…) 친기업 대통령은 주로 공화당이 많은데, 1920년대의 하딩.쿨리지.후버 그리고 근래의 레이건과 부시 부자가 손꼽힌다. 친기업적 대통령들은 임기 중 경제성적이 나빴고, 심지어 대공황과 경제위기를 일으킨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25~26쪽)

    기업 또한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감원과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기업은 생산성이 오히려 감소한다고 말한다.

    해고를 남발하는 회사에서는 노사간에 신뢰가 깨지고,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한 약삭빠른 행동 즉 단기적, 전략적 행동에 몰두하므로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해고의 칼날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쫓겨난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즉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빠져 인간관계가 나빠지며, 생산성이 지체된다고 보는 연구가 있다. 실제로 감원과 구조조정을 남발하는 회사가 심각한 내부 갈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점을 다 감안하면 해고는 결코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도 있듯이 어려울 때일수록 인간존중의 경영철학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19쪽)

    저자는 이처럼 위에서는 손해를 보고 아래에서 이득을 보는 ‘손상익하’의 경제가 종국적으로 더 건강한 경제 시스템이 된다고 주장한다.

    약자를 위하는 경제가 좋은 경제다

    저자는 한결같이 이 책에서 약자를 위한 경제가 좋은 경제라고 강조한다. 부자감세ㆍ토건경제ㆍ비정규직 확대ㆍ민영화 등을 비판하고, 최저임금 상승ㆍ노동권 강화ㆍ소득분배율 개선이 국민경제를 건강하게 만드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국내외와 동서고금의 여러 사례를 곁들인 저자의 설명은 부드럽게 읽는 사람을 설득한다.

    이 책에서는 탄탄한 경제학적 지식과 더불어 인문학적 향기가 짙게 묻어난다. 흥미로운 역사적, 문화적 사례가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데 다양하게 동원될 뿐 아니라, 글에 담긴 고민의 철학적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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