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이후'
    변한 것들과 변하지 않은 것들은?
    [책소개] 『3.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다쿠키 요시미쓰/ 돌베개)
        2014년 03월 15일 05: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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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대규모 방사능 유출 사고를 일으킨 지 3년이 지났다. 사고 가능성이 로또복권 1등에 연속 두 번 당첨될 확률만큼 낮다던 기술 관료들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체르노빌 이후 또다시 재앙이 일어났고 후쿠시마의 비극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냄새도 형체도 없이 후쿠시마를 점령한 방사능은 일대를 유령의 세계로 만들었다. 사고 초기에 비해 양이 줄긴 했지만 지금도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고 있고, 녹아내린 핵연료를 수습하는 데만 몇십년이 더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까지 후쿠시마 원전이 버텨 준다면 말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행동하는 작가이자 원전 사고 피해 주민이기도 한 저자가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당부와 응원’의 메시지를 띄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실상과 원자력을 둘러싼 온갖 모순을 가감 없이 알리기 위해 쓴 이 책은, 간결한 문장과 생생한 묘사, 꼼꼼한 설명으로 중학생 이상 독자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원전에 대한 문제제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석유 문명이 정점에 달한 시대에 우리가 어떤 삶의 방식을 추구해야 할지 생각할 거리를 제시함으로써 더욱 폭넓은 고민과 사유로 이끈다.

    저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단지 과학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적 모순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문제임을 정확히 지적한다. 전후(戰後) 고속성장, 원자력에 대한 그릇된 환상, 저성장 고령화 시대 돌입, 핵연료 재처리와 고속증식로 추진을 핵심으로 하는 원자력 정책 등,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우리나라 젊은 세대에게 더욱 많은 것을 일깨워 줄 책이다.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읽어야 할 책

    3·11 이후 많은 관련 서적이 출간되었지만 청소년을 위한 책은 찾기 힘들었다. 원전 사고가 워낙 복합적인 문제이고, 원자력 발전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간단치 않으며, 원전을 이야기하다 보면 부정부패나 이권 다툼 같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의무다. 저자는 앞으로 많은 날들을 살아갈 청소년들이 교실에서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며 자기 생각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원전 반대자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원전의 원리와 한계를 꼼꼼하게 설명한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면서도 정확히 알기는 힘들었던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어른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어린 벗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부와 비겁한 언론이 키운 상처

    이 책에는 진실 은폐와 허위 발표를 일삼은 일본 정부와,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채 불안만 부추긴 미디어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저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거나 알고도 모른 체하면서 오락가락했던 정부의 실책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예컨대 구조를 기다리는 지진 생존자들을 방치해 속절없이 죽어가게 만들거나, 방사능 수치가 낮은 지역 주민들을 오히려 극심하게 오염된 지역으로 피난시킨 사례들은 철두철미한 방재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알려진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 정말 맞는지 눈을 의심케 한다.

    또한 저자는 정부의 무능한 대처가 일본을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한다. 체르노빌 사고에서 이미 경험했듯, 방사능 물질은 일본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로 퍼지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터무니없는 피해 보상 정책을 따끔하게 지적한 대목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불공평한 보상금 분배로 지역민들 사이에 대립과 분열이 일어나 지역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고, 눈먼 돈이나 다름없는 보상금을 챙기기 위해 귀가를 거부하는 사람, 구호품을 몰래 빼돌리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피난지에는 보상금으로 두둑해진 주머니를 노린 술집과 파친코 업소가 불야성을 이루었고, 사람들은 피폭 그 자체보다 피폭 지역민이라는 스트레스에 더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비극이 언론의 비겁한 침묵 속에서 벌어졌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원자력 발전이란? 거대한 물 끓이는 기계, 화장실 없는 아파트!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고발하는 르포이자, 원자력 발전의 기본 원리부터 한계까지 차근차근 설명하는 과학 교양서 역할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이란 ‘거대한 물 끓이는 기계’다.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시켜서 나온 열로 물을 끓이고, 그 물의 증기 압력으로 발전 터빈을 돌린다. 원자력 발전 역시 증기기관의 일종이며, 기본적인 구조는 증기기관차와 같다. 증기기관차가 석탄을 태운 열로 물을 끓이는 데 반해, 원전에서는 우라늄 연료의 핵분열에서 나온 열로 물을 끓인다는 점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증기기관의 연료인 석탄은 태우면 재가 되고, 재를 버려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라늄을 핵분열시키고 남은 쓰레기에는 방사능이 많아서 아무 데나 버릴 수 없다. 어딘가에 엄중하게 격리 보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전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도 한다. 원자력은 이처럼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위험천만한 에너지인 것이다.

    또 원전을 유지하려면 정기검사와 보수공사를 해야만 하는데, 그때 노동자는 예외 없이 피폭을 당하게 된다. 이 위험한 작업을 하는 노동자의 다수는 하청의 하청 형태로 일하는 사회 최약자 계층이다. 보험 인정도 못 받는 열악한 처지의 사람들을 모아 원전에 ‘인부’로 보내는 과정에는 폭력조직이 개입하기 일쑤다. 쉽게 중개료를 갈취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원전 머니’라는 마약에 취한 원자력촌 사람들

    후쿠시마에서 18년간 지사로 재임한 사토 에이사쿠는 3·11 이후 <후쿠시마 원전의 진실>이라는 책을 출간해 ‘국책’이라는 미명 아래 추진 중인 원전의 실체를 고발했다.

    원전을 받아들인 지역에는 곧바로 거액의 ‘원전 머니’가 뿌려지는데, 거기에 맛을 들이면 마약처럼 중독되어 자꾸만 더 달라고 정부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원전 경기’의 단맛을 경험한 지역민들은 원자력 발전소와 단순한 공생관계를 넘어 ‘운명 공동체’가 되어 버린다.

    보통 지역사회나 공동체라는 말은 ‘지켜야만 할 소중한 것’이란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공동체가 잘못된 이념 아래 똘똘 뭉치면, 부당한 일이 통용되는 사회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운명공동체를 구성하는 주민들이 평범하고 ‘좋은 사람’들, 소박한 시골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후쿠시마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고 진단한다. ‘후쿠시마 힘내라!’라고 응원하는 것 자체는 고마운 일이지만, ‘마약 환자’ 같은 공동체를 부활시켜 봐야 같은 일이 되풀이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 뒤에는 원자력 추진 이권으로 풍요를 누리는 ‘원자력촌’ 사람들이 있다. 원자력촌이란, 전력회사, 감독관청, 원자력 기술에 긍정적인 연구자, 언론, 폭력조직 등, 원자력을 둘러싼 이익집단을 빗대어 부르는 명칭이다.

    원전 추진으로 돈을 번 이들은 하다못해 원전 사고 이후 ‘오염 제거’ 사업조차 독점해 돈을 벌고 있다. 3·11 이후 후쿠시마를 비롯한 일본의 재해지역에는 오염 제거 명목으로 막대한 돈이 투입되고 있다. 철저한 관리하에 공정하게 쓰여야 할 이 돈이 여전히 원자력촌 사람들의 주머니를 불리는 데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은 엄청난 비극을 겪고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개탄한다.

    문제는 삶의 태도, 마이너스 성장 시대의 행복 찾기

    저자는 원자력 에너지뿐만 아니라 자연에너지에 대한 맹신도 거침없이 무너뜨린다. 석유나 석탄, 천연가스처럼 언젠가는 고갈될 지하자원 대신 풍력 발전이나 태양광 발전에 무작정 희망을 거는 것도 금물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풍력 발전이나 태양광 발전 역시 결국은 ‘발전’ 방식의 하나이며 생산해 내는 것은 똑같은 전기일 뿐이다. 그 자체가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가스, 석유, 장작과 달리 에너지를 전달하는 수단인 전기를 똑같이 ‘에너지’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석유가 고갈된 세계에서는 애초에 발전 장치와 송전망 같은 기반 시설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지금 같은 문명은 유지될 수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결국은 삶의 태도, 삶의 방식이 문제다. “3·11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는 현재의 문명이 ‘기간이 정해진 떠들썩한 축제 문명’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혜’라고 말한다. 다가오는 시대에는 행복의 기준을 ‘마이너스 성장’에 적합하게 맞추어 가야 한다.

    마이너스 성장 시대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지구 환경 속에서 그 일부로 무리 없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어린 벗들에게 전하려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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