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평화체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위해
한일군사협력 추진의 대일/지역정책 차원의 문제점과 대안
    2014년 03월 14일 10: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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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최근 최윤희 합참의장이 11일(미국 현지시각) 방미 중에 “한일 안보협력 필요”라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일 관계에서 집단적 자위권 추진은 일본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등 과거사와 군사협력은 분리하여 대응하는 기조를 취하고 있다. 당장 한일 군사협력이 추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일 관계를 포함한 동아시아 상황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논문 성격의 다소 긴 글이지만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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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문제 제기

국민들 다수가 한일 군사협력 추진에 반대하고, 정부도 현 시점에는 소극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그 상대가 다름 아닌 일본이기 때문이다.

최근 최윤희 합참의장이 방미 중 북한 위협에 맞서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이 필요하다며 한일관계를 고려하며 일본과 안보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역풍이 불자 원론적 수준의 발언이라고 후퇴하기도 했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 및 독도 문제, 일본 측의 ‘고노 담화’ 재검증 움직임 등 과거사에 진실한 사죄와 보상은커녕 역진하는 움직임,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개헌 추진 등 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는 막아야 하고, 그것을 오히려 합리화하고 위험성을 부추기는 한일 군사협력 추진은 저지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 전체에 대한 즉자적 과잉 반응은 중․일관계에서 보듯 일본의 우경화를 제어하기는커녕 역효과를 부를 뿐이다.

일본의 우경화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한일 군사협력 추진 움직임의 배후에 미국이 있고, 중국이 반발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고 현실이다. 이런 흐름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반대하는 것은 진보‧개혁 진영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경계와 반대에서 나아가 진영 간 대결을 어떻게 저지하고 대안적 지역질서를 형성할 것인가?

만약 일본이 과거사를 합리화하고 군사대국화로 치닫는 것이 확고한 국가적 전략이라면, 그런 일본이 포함되는 다자간 안보협력이나 ‘동아시아평화․공영공동체’라는 목표는 실현 가능하지 않거나 어리석은 꿈일 수도 있다.

한일군사협정-통일뉴스

2012년 한일군사협정 움직임에 반대하는 회견(사진=통일뉴스)

그러나 일본 내에 그런 흐름과는 다른 동아시아 차원의 협력을 중시하는 흐름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들과 연대하거나 일본 내에서 그런 흐름이 다시 강해지도록 의식적으로라도 새로운 동아시아라는 비전을 공유하고, 한 걸음씩 내딛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방적 기대에 근거한 이상론도 문제지만 현실의 복합성을 단순화해 비관론에 빠질 일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일방적 기대에 근거한 이상론이 아닌 현실과의 조화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 주도 질서 혹은 미국과의 동맹을 전제로 하는 것에 그치거나 이상 실현을 위한 적극적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게 함으로써, 동맹 및 한-미-일 관계에 대한 자기식 변환을 주도하는 미국의 인력에 다시 끌려들어가지 않았는지 반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일 군사협력, 혹은 한-미-일 안보협력 제고의 명목상 이유가 바로 북한 위협과 그 억지이다. 탈냉전 이후, 특히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이 우경화로 치닫고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것을 합리화한 근거로 이른바 ‘북한위협론’이 크게 작용했다. 때문에 북한위협론의 근거 자체를 빨리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배후에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의식과 정책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일본 우경화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의 강화, 그것과 나란히 가는 해양 세력 대 대륙 세력 갈등의 질서 형성을 막아내는 지름길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고 난 다음에 미중 갈등이나 일본 우경화 등 동아시아 차원의 문제 해결에 나서자는 단계론적 입장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접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9.19공동성명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전을 위한 안보협력 증진을 약속하고 있다.

물론 실질적 진행과정은 너무 북핵 문제에만 치중해 있었다. 그리고 상당 기간 대화마저 중단되고 오히려 역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비관적인 사람도 많지만, 야권의 대동단결로 정권 교체를 하면 크게 나아질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 하토야마의 지역 정책이 굴절되거나 좌절된 것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정권교체는 하나의 조건일 뿐인 것이다. 교체된 정권이 각국과 국내 보수파의 견제와 이해를 뚫고, 대안적 미래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남탓이 아닌 자신의 한계와 실패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Ⅱ. 한일 관계 혹은 대일 정책 측면에서의 문제

1. 일본과 군사협력 추진은 일본 우경화 위험성을 부채질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의 강화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거의 상수였다. 아베 정권의 폭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과거사 문제를 적당히 덮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재개, 강화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최근의 움직임만이 아니다. 1965년 한-일 수교가 이루어진 것도 미국의 그런 의도와 후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 시대에도 한국과 일본은 동맹은커녕 양자 간 군사협력마저 여의치 않았다.

첫째, 1894년 갑오농민전쟁 당시 일본이 자국민 보호 등을 이유로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 조선의 농민을 대량 학살하고, 이 땅에서 청나라와 전쟁을 벌인 뒤 제국주의적 지배력을 강화시키더니 결국 국권을 찬탈한 경험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 억지에는 한미동맹으로 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셋째, 일본도 전후에 오로지 자국에 대한 침공을 방어하는 데 그친다는 ‘전수방위’를 방위정책의 핵심으로 삼은 가운데,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이나 한반도 분쟁에 직접 휩쓸릴 수 있는 한국과의 군사적 협력에는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NATO와는 달리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양자동맹이 각각 유지되어 왔다.

탈냉전 이후 일본은 국제공헌의 미명하에 해외파병금지의 원칙을 훼손하더니 유사법제 제정 등 우경화의 움직임을 보였다. 최근에는 무기금수3원칙의 완화, 원자력기본법 및 우주기구법 개악에 이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합헌화 추진 등, 전후 형성된 다양한 군사대국화 부정과 방지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

그리고 해양영토를 둘러싸고 센카쿠열도 국유화,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등 외교정책뿐만 아니라 일본판 해병대 도입, 대지 미사일 도입 등 안보정책에서도 주변국을 자극하고 있다. 국가안보를 빌미로 개인의 권리를 크게 제약하는 ‘특정비밀보호법’이 자국 내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끝내 강행 처리된 것은 일본의 민주주의 자체가 허약해지지 않는가 하는 우려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우경화를 견제하기는커녕 합리화해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미-일 집단동맹의 추진과 집단적 자위권 허용이 결합되면, 한반도 분쟁에 일본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단지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에 그치던 일본이 미군(한-미-일 동맹이 현실화되면 한국군)에 대한 집단적 자위를 명분으로 한반도에 군대를 파병할 수도 있다.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기 위해 당나라를 끌어들였다가 자칫 자신마저 망할 뻔했던 신라, 동학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외국군을 불러들인 조선말 조정의 어리석은 행태를 되풀이하는 짓이다.

2. 일본 내부의 동향과 즉자적 반일 대응의 위험성

최근 몇 년간 일본이 한국과의 군사협력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것은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북한 위협론’에 휩싸여 있고,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의식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 판단이다.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서의 충돌과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 등이 중국에 대한 반감과 미국에 대한 의존 여론을 강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론의 동향은 핑계일 뿐, 일본의 일반 국민들이 먼저 중국에 대한 견제 혹은 봉쇄 정책이나 군사적 역할 확대 정책을 요구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전후, 그리고 탈냉전 후 사회당 등 혁신계가 몰락한 뒤에도 핵무장과 급격한 군사대국화를 막는 데는 평화애호세력 및 여론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9조 등 평화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 여론이 강하다.

아사히(朝日)신문이 2013년 5월 2일 발표한 유권자 2194명을 대상으로 한 우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4%가 헌법 개정 요건 완화에 반대한다고 답해 38%에 그친 찬성 응답을 웃돌았다. 개헌 요건 완화의 다음 수순으로 꼽히는 평화헌법 조항(9조) 개정에 대해서도 개정 반대 의견이 52%로 개정 찬성 의견 39%보다 많았다

비록 중국 등에 대한 인식이 과거 좋은 시절과 같지는 않지만 관계 개선 필요성 등에 대해서는 일본의 일반인뿐만 아니라 정치계, 경제계 등 엘리트 집단 내에서도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일본인들이 미국 대신 중국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선택지로 삼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미국발 위기와 중국․동아시아의 성장이라는 질서에 부응하고 그 과실을 향유하고자 하는 전략 역시 모색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 당시 매니페스토에서 내걸었던 ‘동아시아공동체 지향, 아시아외교 강화’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국제적 위신의 제고에 있어서는 일치하면서도 군사부문과 경제부문의 인식․정책의 모순과 내적 갈등이 혼재해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보다 효율적이고 강한 국가에 대한 열망이 극우 민족주의자 하시모토 등에 대한 일부의 묻지 마 지지로 나타나거나 혐한 시위 등 일부 퇴행적 현상도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과격한 반일 감정의 표출, 즉자적 대응 등은 일본 내 중도층의 반감을 초래함으로써 오히려 우경화 추진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2004년 아시안컵 결승 당시 보였던 중국 관중의 일본 자체에 대한 강한 반감이나, 2010년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충돌 당시 희토류의 무기화가 일본인에 주었던 충격과 그 이후 일본 정부가 미국에 대한 의존 정책을 강화한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한일 군사협정과 일본의 우경화는 막아야 하나, 즉자적 반일 감정의 동원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인에게도 “한일 군사협정 체결과 한일 군사협력 강화는 단지 유사시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한 항공기나 배를 보내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전전처럼 일본 군대가 해외에 진출해 전쟁을 벌이는 나라로 되돌아가는 것을 바라느냐”라고 경고하고, “평화와 협력의 대안을 모색하자”는 메시지를 함께 던지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 곧 일본이 핵무장을 하거나 군국주의화할 것처럼 과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일본 사회가 다각도로 우경화하고 있지만 재 군국주의화한다는 것은 중국 위협론과 비슷한 왜곡과 과장이 아닌지 자문할 일이다. 이런 주장이 내포하고 있는 국방력 증강과 미국과의 동맹관계 강화 혹은 불가피의 논리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군국주의는 전전의 메이지유신체제 전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1930년대 이후 국내적으로 군부가 실권을 완전히 틀어쥐고 다이쇼 민주주의가 전면 후퇴하는 것과 함께,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폭주하던 전체주의 체제를 가리킨다. 상황에 대한 보편적‧객관적이지 못한 인식과 과도한 대응은 오히려 일본 내 중도적 시민들의 반발을 가져오고 우파의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

아베 313

Ⅲ. 지역 질서 혹은 동아시아 정책 차원에서의 문제점

1. 일본과 군사협력 추진은 대중국 미-일동맹의 보조축 자임

한일 군사협력 추진은 2012년 군사협정 체결이 무산된 이후 주춤하고 있으나,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바와 같이 이명박 정권은 초기부터 한미동맹 강화, 일본과의 군사협력 강화가 추진되었고 후자의 경우 국내 여론을 의식해 기다려 줄 것을 요구했을 따름이다.

박근혜 정권은 아베 정권의 과거사 퇴행 등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고 있으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에 대해서는 양해를 하는 듯한 발언을 거듭 했고 군 관계자를 중심으로 군사협력 추진의 군불을 때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부응해 기회를 엿보면서 북한과의 갈등 고조와 그에 대한 대응을 핑계로 삼았던 것과 질적인 차별성이 있는지 의심을 받을 만하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움직임이 1차적으로 가시화되었던 2011년 1월, 미국의 <성조지>는 11일자에서 전문가들을 인용해 “한일 군사협정의 진정한 목적은 중국에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동년 6월 14일 발표된 한미 외교/국방 (2+2) 장관회의 공동성명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의 강화를 천명했고, 이때 미국 측은 노골적으로 한일 군사협정 체결을 고무, 격려했다는 것은 보수 언론에서도 인정한 바 있다.

한일 군사협정 체결 불발이나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명시적으로는 부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추진되고 있는 한국의 미사일 방어능력 강화와 미사일 방어 정보체제에의 편입은 미국 주도, 일본 협력의 MD체계에 한국이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한일 군사협력을 재개,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미국이 정점이 되는 미-일 동맹에 한국이 보조축으로 참여하면서, 점선에 불과했던 일본과의 동맹을 실선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남아 혹은 남중국해를 대상으로 한 미-일-호(주), 인도양 혹은 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미-일-인(도)의 3각 동맹을 동북아라고 하는 소지역 차원에서 현실화하려는 것이다.

미국 정점의 미-일-( )동맹을 소지역별로 지역동맹화하고 이것들을 묶으면서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과의 동맹 복원 혹은 군사협력 강화를 꾀하는 목적이 중국 봉쇄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호주, 인도 등과 달리 한국은 상대적으로 전방에 돌출해 있고, 중국의 주요 지역에서 훨씬 가까우므로 중국으로서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한국 공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험 발사. ⓒ국방부

2.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 간 대결은 한국에게 최악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한-미-일 군사협력의 표면적 목적과 대상이 북한을 빌미로 삼지만 중국을 힘으로 억지하고자 하는 구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당연히 중국은 강하게 불쾌감을 표시한다.

2012년 한일군사협정 체결 추진 당시 중국의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협정은 한미, 미일 동맹이 한미일 3각 동맹으로 나가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일의) 준 군사 동맹은 명목상으로는 북한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겨눈 전략적 함의를 갖는다.”면서, “한국이 계속 지금 같은 길을 걸어간다면 최종적으로는 중국과 대립하는 위치에 오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록 박근혜 정권의 경우 이명박 정권에 비해 중국과의 관계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관계가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에 등 떠밀려서든, 북한 위협 대비론과 중국에 대한 기대의 좌절에 의해서 스스로 선택하든 일본과의 군사협력 및 동맹의 지역 차원으로의 성격 변환을 추진하는 것은 중국 등의 강한 반발을 살 것이다.

중국은 한-미-일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말로만의 경고에 그치지 않고 군사․외교적 대응을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가 포함된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아프가니스탄과 터키를 옵저버로 끌어들이고 회원국들에게 10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지금 당장 상하이협력기구가 냉전기 바르샤바조약기구와 같은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나, 중국이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MD 문제 등 때문에 러시아가 일정한 보조를 취하고 있다.

시진핑-김정은 시대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비록 중국이 북한을 전략적 자산이라기보다는 전략적 부담으로 느껴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나, 북한 비핵화를 추진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단호한 입장이 큰 역할을 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2009년 2차 핵실험이나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 편에 서버린 이유를 단지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 등의 이유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대미중일 정책 자체가 자초한 측면도 크므로 다시 실패한 정책으로 회귀할 수는 없다.

미․중 간 협력과 갈등 중 갈등 요소가 상대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일방과의 군사동맹 및 군사협력 강화는 아직은 잠재적일뿐인 진영 간 대결을 현실화시키고, 미․중 사이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 역시 강화할 따름이다.

Ⅳ.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일괄타결’,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을 위해

o 왜 포괄적 타결 혹은 일괄타결의 ‘조기’ 실천이 필요한가?

한일 군사협력이 북한 위협을 빌미로 해 미국 주도 중국 견제 체제 형성의 목적에서 추진되듯, 그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안도 빌미의 해소와 함께 미·중 대결 구도를 뛰어넘는 지역 차원 평화 형성 전략과 실천이 병행되어야 현실화될 수 있다.

9.19공동성명 등에도 불구하고 실천이 몇 년 동안 지체된 결과는 북한 핵 능력 증강, 남북 긴장 고조, 미국의 중국 견제 노골화와 일본의 우경화 대 중국의 군비증강과 러시아와의 협력 가속화 등이다.

아직은 냉전 시대 진영 간 대결 구조가 재연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데올로기 등 모든 면에서의 대결체제였던 냉전시대와 달리 미·중의 경제적 상호 의존관계는 대결의 심화를 막을 수도 있다.

오바마 집권 이후 한 때 미·중 밀월관계가 운위된 적도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회귀 전략과 중국의 냉전시대 미국의 기득권에 대한 현상 변경 전략 등이 부딪히는 가운데 아직 ‘신형 대국관계’가 형성되지는 않았다.

북핵 문제나 한반도의 안정과 관련해서는 미국과 중국이 비교적 협조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아직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물밑의 접점 모색도 구체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특히 미국으로서는 상황 악화만을 방지하면 될 뿐 그렇게 서두를 이유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처지는 다르다. 북핵 문제의 연원이나, 지금까지의 진행과정 등으로 보았을 때 이 문제 해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모든 것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며 당장 핵문제가 해결돼야 북한 문제-동아시아 평화가 본격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과 포괄적 타결을 위한 실천을 서두르는 것은 다른 접근법이다. 마냥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는 한편으로 군사적 차원의 봉쇄 대 대항의 흐름이 가속화되면 한반도 비핵·평화체제도, 동아시아공동체도 영영 물 건너갈 수 있다.

반대로 너무 늦기 전에 한반도 비핵·평화체제와 동(북)아시아 다자안보를 위한 협력이 구체화되고 결실을 맺으면 일본의 우경화도, 진영 간 대결도 예방할 수 있다.

1. 대일 정책에서의 의의 : 우경화 제어 위한 현실적 대안

일본의 우경화는 우경화대로 경계하고 방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일본 전체에 대한 감정적 비난은 우경화에 대한 실제적인 방책이 될 수 없다. 일본은 탈냉전 이후 사회당 등 정치세력의 몰락과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국 정도의 나라로 변신하지 못했고, 헌법9조 개헌 및 핵무장 등도 여의치 않다. 거기에는 9조회 등 일본 내 평화애호세력과 함께 분쟁에의 연루 거부, 핵무기에 대한 강한 반감 등 일본인의 인식과 여론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역으로 90년대 후반 이후, 특히 최근에 일본 우경화의 빌미로 가장 많이 이용된 것이 ‘북한위협론’, 그리고 ‘미일동맹 유지를 위한 불가피론’이다.

‘98년 ’대포동미사일‘(북한의 주장으로는 광명성 위성)의 발사 사태와 납치 문제 등으로 반북 의식과 북한위협론이 횡행하게 된다. ‘98년 사태 이후 유사시 미군의 후방지원을 원활하게 하는 주변사태법이 통과되었다. 납치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는 평양선언 등 북-일수교를 위한 일본 나름의 대안 모색이 중단되고, 유사법제 통과 등 우경화와 MD체제의 공동 개발 등 미일동맹 강화가 심화된다. 천안함 사태는 후텐마기지 이전을 둘러싼 미-일 갈등을 종식시키고 일본 정부가 미국의 주장을 수용하는 데 빌미로 이용되었다.

일본인의 인식 혹은 여론은 이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양자를 다 갖고 있다. 부정적인 면이 미국과 일본의 매파에게 이용될 소지를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면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북한이나 중국이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게 하면서 냉전의 논리에서 벗어나 공존과 공영을 모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현실화시킴으로써 여론의 방향을 돌릴 필요가 있다.

분쟁에의 연루 거부의식을 활용해 한반도 분쟁에 일본이 개입하게 되는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북한위협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조속히 한반도 비핵·평화체제를 달성하기 위한 일괄타결의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 이와 병행하여 수교와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협상 재개를 촉구해야 한다.

중국 위협론, 혹은 중국 위험론이 아닌 중국 기회론을 확장하고, 일본 스스로의 국제적 위신과 역할의 제고 및 미국에의 일방적 경사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의 전환을 위해서도 과거사에 대한 확실한 청산과 동아시아 평화-공생의 공동체 형성을 위한 능동적 역할이 필요함을 주문하고 설득해야 한다.

2. 비핵·평화체제 및 공동체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실천 필요

o 만만치 않은 현실

평화체제는커녕 정전체제마저 위협받고 한반도 비핵화도 후퇴하였으며, 대화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상황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한반도 비핵·평화체제의 조기 달성 혹은 달성 가능성 자체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지역 차원 공동체 형성의 가능성도 녹록치 않다. 동아시아공동체의 구상은 오래전부터 발표되었지만,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야 아세안을 뛰어넘어 동북아까지 포괄하는 공동체 형성의 노력이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각국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경쟁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주도권을 놓고 공동체의 범위 등에서 샅바 싸움을 하는 형국이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기금(CMIM)’에서의 분담금 배분 비율경쟁, 아세안+3 대 동아시아정상회의를 둘러싼 중·일 등의 경쟁이 그 예이다.

한국의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과 일본의 하토야마 정권은 지역 공동체의 범위와 주도권 등에 있어 이견이 있었다. 그 현실화에 있어 미국과의 동맹질서를 극복하지 못한 점 등 많은 한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 등과의 적극적 협력 전개라는, 변화하는 세계질서 및 탈냉전의 시대정신에 부응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하토야마 정권에서 보듯 결과적으로는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미국과의 동맹 강화로 회귀하고 말았다. 미국과의 동맹 유지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 불균형성에 일정한 수정을 가하는 것과 함께, 지역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한, 일의 정책이 공히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반대와 미군 철수 혹은 동맹 약화, 동맹 내 지위의 상대적 약화 제스처 등 다양한 공세와 이에 부화뇌동하는 각국 내 보수 진영의 공세, 북한․중국과의 안보․외교상 긴장의 잔존과 대두(핵실험, 센카쿠열도 갈등) 등은 상황적 요인이었다.

그것과 함께,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중심국가’ 구상 등에 내재한 자국 국가 중심주의의 문제도 있었다. 이는 역사 문제나 영토 문제가 대두될 경우, 공동체주의와 쉽게 모순을 일으키며 내부에서부터 후자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대국으로서의 굴기는 이런 경향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현재 미·중간에는 남중국해 등 해양영토 문제와 방공식별구역, MD 등을 둘러싼 안보 영역에서의 갈등 외에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대 한·중·일 FTA 구상 등을 둘러싼 경제 영역에서의 갈등도 전개되고 있다.

o 일관되고 과감한 실천의 필요

그러나 미·중 간, 혹은 진영 간 대결이 굳어지는 것을 상수로 놓기 보다는, 6자회담 등을 통한 지역 내 평화 협력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지역 내 갈등의 현재적 요인이자, 핑계가 되고 있는 북한 핵과 한반도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해결의 가닥을 잡지 못하는 상태에서 동아시아공동체라는 것은 이상론에 그칠 수 있다. 더불어 한반도 차원의 비핵화·평화체제 형성과 통일의 토대 구축이라는 비전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도 세계 및 지역 차원의 시야를 가지고 ‘동아시아 평화·공생의 공동체’ 등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현실화시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일본은 탈냉전 이후 무라야마 수상과 오부치 수상 등 정부 차원의 과거사 반성 등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등에 비해 정치권 전반의 성찰이나 피해 보상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국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어디에도 극우파는 존재한다. 그러나 국가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상대국을 자극하는 망언과 행동을 일삼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일본이 지도적 국가로 부상하고자 하는 국가적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도 협량한 국가주의적 인식과 정책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남북한도 주변국에 불신을 조장하는 행위는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군비팽창, 군사협력과 동맹의 강화 등으로 불안을 자극함으로써 진영 의식을 강화시키고, 강대국에 의존하고자 하는 흐름에 힘을 실어줘서도 안 되겠다. 그리고 국수주의적 감정에 휩쓸린 즉자적 대응은 우경화의 흐름을 실질적으로 저지하기는커녕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기존 미국과의 동맹 변환을 뛰어넘는 동아시아 국가 공동의 안보․평화 협력 등 동아시아평화‧공생의 공동체를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경제적 의존관계 심화는 단지 한국만이 아닌 일본도 공유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경제적 의존관계의 강화 등이 저절로 정치․군사적 협력 관계로 전화되지는 않고 있다. 안보 영역에서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실천해가는 습관을 배양, 이런 습관을 제도화시키는 노력은 다가오는 미래 미·중간의 세력균형이 변화될 때를 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역 차원의 안보협력 증진은 북한 핵 문제 해결 이후에나 현실화될 수 있다는 소극적 접근법에서 벗어나 비전통적 안보협력과 함께, 안보 불안의 근본적 원인의 해소를 위한 ‘동북아 3+3 비핵지대화’ 등을 위한 과감하고 직접적인 접근법을 논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다자간 평화협력을 위한 실천을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다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아시아는 현재 진영간 군사협력 강화 대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이 경쟁하고 갈등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움직임을 막아내고 후자를 현실화시키지 못하면, 신냉전은 현실로 굳어져 우리의 실천으로도 어쩔 수 없는 질서가 되어버릴 것이다.

현재는 전자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분쟁에의 연루 거부 의식 등이 가지는 일국적 한계를 뛰어넘는 지역적 차원의 연대를 강화하고 평화 협력의 대안을 현실화시키는 꾸준한 정책적 노력이 가시화된다면 후자도 현실화될 수 있다.

대북 관계에서 일희일비하지 않듯, 대일‧대중 관계 등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압력과 거기에 내응하는 군부 등을 중심으로 한 한‧일 군사협정 체결 등의 퇴행적 행태를 저지하는 한편, (한‧미‧일이 아닌) 동아시아 국가 공동의 안보‧평화 협력을 적극적으로 현실화시켜야 할 것이다. <끝>

필자소개
정의당 평화-통일 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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