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핵, 잊혀가는 것에 대한 단상
        2014년 03월 14일 0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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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가는 것들’이란 얘길 들으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멀리는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이어졌던 세시 풍속이나 전통문화를 떠올릴 테고, 가까이는 70~80년대 골목길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응답하라 1994’의 열풍을 공감하는 사람들은 무선호출기나 시티폰처럼 좀 더 가까운 것도 아쉬워할 테다.

    잊혀가는 것들이란 한편으론 아스라한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론 사라지는 운명이기 때문에 잊힌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힌다는 시간의 개념이 항상 10년, 20년, 100년이라는 긴 시간에 종속되는 건 아닌가 보다. 불과 몇 년 전 일도 잊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가 적지 않다.

    이제 춘삼월인데 1월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되새겨보는 건 퍽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건망증과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모호한 지점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잊혀가는 것들’은 우리 삶 속에서 수없이 명멸해왔다. 그것이 스스로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명멸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져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정보 홍수 시대라는 수식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너무나 많은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밀려나고 밀려나는 것들도 있다. 게 중에는 정말로 잊어서는 안 되는데 무관심에 의해 잊혀가는 것들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것도 있을 게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폭발을 보도하는 방송화면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폭발을 보도하는 방송화면

    지난 일요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3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여느 해와 같이 탈핵을 요구하는 단체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부스를 차리고 시민들을 맞이했다. 무대 위 단상에서는 문화공연이 이어졌고, 시민단체들의 부스는 더욱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북 페어가 진행된 한켠에서는 한 눈에 다 넣지 못할 정도의 다양한 탈핵 책들이 전시되고 배포되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방문한 시민들은 눈에 띄게 줄었고, 그나마도 관심을 보이며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행사 말미에 여성대회를 마치고 동참해준 참가자들이 없었으면 주최 측도, 참여단체들도 참 많이 당황스러워했을 것 같다.

    풀리지 않은 봄 날씨를 고려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온 사회를 우려 속으로 몰아넣었던 핵발전에 대한 관심은 어디로 간 걸까.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가 일어난 지 정확히 3년이 되던 날 언론들은 앞 다퉈가며 후쿠시마에서 아직도 방사능수가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쏟아냈다. 또 일본에서 핵발전소 재가동 방침을 전했다는 소식이 속보를 통해서 전해졌다. 방송에서는 직접 후쿠시마를 찾아가 위태위태하게 통제지역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일상까지 취재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3월 12일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후쿠시마 사고 소식은 자취를 감췄다. 새로운 소식을 전해야 하는 언론의 고충을 이해한다고 해도 방사능이 아직도 나오고 있고, 그 며칠 전 영광의 한빛 핵발전소 재가동 승인 소식이 있었지만 더 이상 힘을 받지 못했다.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 되는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가 이처럼 연례 가십거리처럼 취급되는 이유는 사고를 사고 이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의 관심은 방사능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고 수습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에 쏠렸다. 일본산 식품 안전성 문제처럼 다소 예외는 있었지만 후쿠시마 사고는 마치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해외의 사건 사고처럼 다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수십 건의 핵발전 사고가 있고, 아직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핵발전소가 재가동되고 있으며, 정부는 앞으로도 핵발전소를 십 수기나 더 지을 계획이란 건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와는 별개처럼 여겨졌다.

    그 결과 2013년 정부는 힘들이지 않고 핵발전 위주의 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확정될 예정인 전력수급기본계획도 어렵지 않게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관심이 너무 후쿠시마 사고 자체에만 쏟아지는 양상이 고착화된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탈핵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에도 아쉬움이 남는 건 마찬가지다. 혁신에 사활을 걸고 있는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수한 정보가 빠르게 스쳐가는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진화할 필요가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 1주년과 비교했을 때 콘텐츠나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방식에 차이가 없다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도 마찬가지여서 부끄럽긴 하지만, 적극적이지 않은 시민들의 반응은 우리가 무언가 오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추할 필요가 있다.

    지난 2월 9일 치러졌던 도쿄도지사 선거의 쟁점은 탈핵이었다. 즉각적인 탈핵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이에 반대한 집권여당의 후보에게 2배 이상의 표차로 졌다. 심지어는 진보 성향의 제3의 후보보다도 득표수가 적었다.

    이 선거 결과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예상보다 탈핵 이슈가 핵심이 되지 못했고, 선거 구도가 전 총리와 현 총리의 대결로 결을 달리했다고 해도 사고 당사자였던 일본에서조차 탈핵 이슈가 힘을 받지 못한다는 건 충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적 사고 당사자도 아니었던 우리나라에서 탈핵 이슈가 핵심 의제가 될 리 만무하다.

    시민들의 인식은 시시각각 변한다. 3년 전 큰 관심을 끌었다고 해서 지금까지도 생각하고 있으리라고 여기는 건 안일하다. 고작 몇 개월 전의 공안조작 사건들도 벌써 가물가물해지는 판에 시민들 상당수는 이제 탈핵이라는 단어조차 생경해졌을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여전히 후쿠시마를 기억하자고 얘기하는 건 어떻게 보면 탈핵을 주장하는 사람들 스스로 탈핵이라는 사회전환담론을 후쿠시마에만 가둬놓는 효과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도쿄도지사 선거와 후쿠시마 3주년 행사는 내게도 너무 많은 숙제를 던져주었다. 관성에 젖은 건 아닌지, 나조차 탈핵의 모티브를 잊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잊혀 간다고 해서 모두가 잊혀야만 하는 운명은 아니다.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들마저 그렇게 두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앞으로 3년간 에너지대안 시나리오를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다.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잊히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 맞기를 소망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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