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진이 아빠 그리고 고선영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두 죽음과 한 명의 실종
        2014년 03월 13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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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하나.

    지난 4일, 7년 전 유괴 살해된 딸을 그리며 혜진이 아빠가 세상을 마감했다. 그 동안 고통을 술로 억누르며 살았지만 끝내 심장마비로 혜진이가 있는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7년 전 사건 이후 혜진이 아빠와 가족에게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딸을 찾아 직장도 그만둔 뒤였고 가족과도 친구와도 벽이 생겼다. 겨우 생계를 이어가려고 공공근로사업에 나갔고 폐지를 모아 팔았고 엄마는 식당일을 해야 했다. 그들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혜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난 예슬이 가족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예슬이 언니는 이름도 바꿨고 가족 모두는 친척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도망치듯 이사를 갔다.

    매년 2만 7천-8천명의 아이들이 실종된다. 매일 74명이 실종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길을 잃거나 단순 가출로 며칠 내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만, 반면 그들 중 매년 60~120명은 유괴사건이나 강력범죄와 연결된 피해자들이 된다.

    늘 그랬듯이 혜진이 예슬이 사건 때도 정부는 아동 안전 대책을 죄다 쏟아냈다. CCTV를 대폭 늘리고 곳곳에 ‘아동 안전 지킴이집’도 마련하고 ‘아동 지문 사전등록제’도 시행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도 또 그 다음해도 실종, 유괴, 살인 사건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유명 여성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누군가 크게 한 번 **봐야” 하는 시늉 정도하는 것이 우리 정치인들이고 관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 아이들과는 무관한 사람들일뿐더러 사진에 찍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관심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늘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것이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만 관심을 갖지 말고, 일상적으로(ROUTINE) 아동 유괴 및 실종 사건을 예방, 관리하기 위한 방안을 시스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시스템을 갖추자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건만 현재에도 유괴 및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는 경찰이 하고, 예방 교육은 보건복지부가 하고 청소년과 여성이 관련된 사안은 여성가족부가 한다. 그들의 말은 거창하지만 자기들끼리도 손발이 맞지 않는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이런 종류의 아동유괴, 실종사건에는 외국처럼 별도의 통합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전국 실종 착취아동 방지센터’(NCMEC), 캐나다의 경우 ‘국가실종아동서비스’(NMCS) 등과 같은 것이 좋은 사례이다. 여기에 경찰의 실종 관련 전담부서가 일상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아동센터

    전국 실종 착취아동 방지센터’(NCMEC) 건물(방송화면)

    지난 주 토요일, 청주에서 실종된 여고생에 대한 생방송을 하고 오면서 또 마음도 아프고 분노도 치밀었다. 초기 대응만 제대로 잘했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허둥대지 않고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을 우왕좌왕 허둥지둥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쯤 이런 황망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죽음 둘

    지난 달 22일 나의 서울경찰청 동료이자, 뛰어난 범죄 프로파일러 고선영 박사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 갓 마흔이 넘은 나이에 네 살짜리 아들을 두고 떠났다. 이렇게 허망한 죽음의 이유는 바로 뇌종양. 평소 같이 근무할 때도 가끔 두통을 호소했었는데 단순한 스트레스 증상이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프로파일러는 각자 특기 전공영역에 차이가 있다. 나와 같이 연쇄(강간)살인범의 가족생애사를 통한 범죄 재구성, 연쇄 방화 등이 전공인 경우도 있지만 지리적 프로파일링이 전공인 경우도 있고, CSI 범죄현장 재구성이 전문인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 고박사는 성범죄 전문이었고 성범죄 중에서도 청소년 아동 관련 성범죄가 전문이었다. 앞서 언급한 혜진이 예슬이 사건의 범인인 정성현을 수사, 면담한 사람도 바로 고박사이다. 그런데 이 능력 있는 사람이 허망하게 뇌종양으로 죽었다.

    우리나라에서 프로파일러가 처음 채용된 2004년 이후 매년 10여명 이상은 선발하겠다던 경찰청장의 공언이 무색하게 딱 3년 40여명 선발하고 그대로 끝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억하듯이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강력범죄자들 즉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을 비롯, 상상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은 오히려 전염병처럼 창궐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에는 발표되지 않은 사건화되지 않은 범죄, 사건의 실체를 모르는 범죄, 미제사건들은 과거에 비해 폭증하고 있다. 다만 가시적으로 노출이 되지 않을 뿐이다.

    앞에서 여성 개그맨이 한 말을 다시 하면 “누가 크게 한번 **봐야” 또 다시 하는 시늉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얼마 안 되는 프로파일러들의 업무 하중은 심화되었고 하나 둘 떠날수록 남은 사람들의 업무하중은 더욱 더 심해졌다.

    40여 명 중 현재 본청 서울청 경기청 대구청 부산청 등을 합해도 실제 이 업무를 하는 사람은 채 15명이 안 된다. 나머지는 이 업무를 포기하고 다른 부서로 전출을 갔다. 실제 업무형태가 일근(9-6시 근무)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대기업 직원에게 9시 출근 6시 퇴근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범죄사건이라는 게 예고를 하고 터지는 것도 아니고 범죄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며칠이고 그 사건에 매달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도 고정적인 업무(치안정책 보고, 범죄자 면담, 강력범죄 스크리닝 등)가 밀려 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다른 인원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프로파일러 고유한 업무영역이므로, 사실 이 정도 인원으로 그러한 업무량을 버틴 것이 신기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고박사는 이 기간 동안 출산도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처음 이 사람의 뇌종양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올 것이 온 것 같은 느낌, 시청자들이 즐겨보는 미드에 나오는 프로파일러, 미국에서 활동하는 FBI의 프로파일러들은 영상으로는 멋있게 나오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미국 같은 경우는 시스템과 인력이 지원되므로 우리와 같이 살인적인 업무량은 아니다.

    무엇인가 제대로 된 결과를 산출하려면 차근차근 필요한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세상일의 기본이다. 평소에도 폭주하는 사건과 과중한 업무로 진을 다 빼놓다가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는 큰 사건이 터지면 빨리 범인을 잡으라고 생떼를 쓰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늘 절대 부족한 인력과 지원 시스템으로 고생했을 고박사와 동기 후배들을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 한 쪽이 아리다.

    올해 오랜 만에 프로파일러들을 10여 명 충원한다고 한다. 좀 더 진작 인력 보강이 이루어졌으면 아까운 목숨 허망하게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금 분노가 치민다.

    언제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어질까?

    죽기 전에 고선영 박사와 약속한 것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프로파일러들을 키워낼 수 있는 Criminal Justice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와 관련된 과정이, 경기대학교 대학원에 범죄학, 범죄심리학 전공 대학원 과정 밖에 없다.

    그나마 경기대학교의 경우에도 학부과정은 없고 석박사 과정만 있는데 그것도 교정 관련 범죄심리에 가깝고, profiling과 Criminology, 법과학 등을 포함하는 과정은 전무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이런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미국으로 유학을 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아카데미 과정을 만들자고 굳게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고박사가 떠나고 나니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인다. 열심히 사시고 좋은 것으로 가신 고선영 박사의 명복을 빈다. 가신 곳에서나마 부족한 이 사람을 응원해 주시길…..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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