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도의 시간'마저
    박탈하는 언론들의 행태
        2014년 03월 09일 09: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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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가 8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부고 소식을 전해들은 이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장례식장을 찾아 명복을 빌었지만, 언론들의 행태는 천박하기 짝이 없었다.

    ‘충격’이나 ‘무슨 일이…?’와 같은 낚시성 제목은 물론, 그녀의 아들이 최초 발견자라며 ‘참담’, ‘충격’과 같은 선정적인 제목을 달기도 했다. 그녀의 페이스북을 뒤지며 그녀의 죽음과 상관 없는 과거 발언을 추적하기도 했다.

    내용은 별달리 차이가 없지만 제목만 바꾸며 이른바 ‘어뷰징’으로 조회수를 올리는 행태들도 적지 않았다.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베껴 쓰는 이른바 ‘우라까이’로 잘못된 정보를 양산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팀’, ‘e뉴스팀’ 등 기자 이름이 없이 실시간 검색어에 따라 ‘우라까이’ 기사만 전담해 쓰는 팀에서 양산하는 기사들이다.

    박은지

    <MBN>과 <티브이데일리>는 박은지 부대표가 과거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인용하며 제목으로 “자살,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제목도, 내용도 거의 동일한 것으로 미루어 어느 한 쪽이 그녀의 페이스북을 뒤져 보도한 것을 다른 한 쪽이 베껴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도된 박 부대표의 해당 글은 모 연예인이 여자친구가 자살한 같은 차에서 자살을 시도했다는 기사가 연일 가십성으로 보도되는 언론 행태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딱 여기까지만 알고 넘어가자. 우린 그의 비극에 대해 너무 속속들이 알았다”고 쓴 글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녀가 “미쳤다고 볼 수밖에…참”이라고 쓴 것 역시 가십거리로 다루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해당 댓글들을 보면 분명히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맥락이었다.

    <티브이데일리>와 <MBN>은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박은지 부대표가 평소 자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도 자살을 선택했다는 듯이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아예 기자 이름이나 ‘온라인뉴스팀’과 같은 ‘우라까이 전문팀’의 이름도 없이 4개의 기사가 올라왔다. 심지어 카테고리는 ‘스포츠, 연예’이다. 아들의 나이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최초 발견자’, ‘아들은 어쩌라고’ 등의 낚시성, 가십성 기사를 올리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디지털뉴스팀’에서 사망 소식을 알리는 기사를 시작으로 1분에서 5분 간격으로 제목만 살짝 바꾸면서 ‘우울증’, ‘아들이 발견’ 등과 같은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반복적으로 전송했다. 14개에 달했다. 그 중 절반인 7개의 기사는 아들이 직접 발견했다는 제목이었다.

    <위클리 오늘>은 ‘9살 아들이 시신 발견해 충격’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서울신문>역시 마찬가지로 같은 제목을 달았다.

    <동아일보>는 한 술 더 떴다. ‘9살 아들 큰 충격 받아’라는 제목을 달았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을 보면 아들이 직접 현장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만 보도되어 있지, 실제로 9살 아들이 충격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없다. 추측에 의한 보도인 것이다.

    <한국일보>는 제목을 바꾸는 노력조차 없었다. ‘아들이 현장 발견’이라는 같은 제목의 기사만 11개만 반복적으로 썼다. 박은지 부대표의 사망 기사만 총 21건이다.

    <헤럴드경제>는 ‘과거 발언 알고 보니?’와 같은 낚시성 제목을 달았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다.

    낚시성, 선정적 제목의 기사 때문에 악플 양산

    이러한 낚시성, 선정적 제목의 기사 덕분에 박은지 부대표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는 악플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해당 매체들 중 전화 연결이 가능한 곳은 거의 없었다. 선정적 보도에만 열을 올리는 곳이 한 두 군데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노동당에서는 주요 포털사이트측에 박은지 부대표 사망 기사의 댓글을 차단해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Daum에서는 댓글을 닫아놨지만 Naver에서는 여전히 댓글쓰기가 가능해 고인에 대한 악플이 달려 있는 상황이다.

    다시 그녀가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다시 인용해보자.

    “여기까지, 딱 여기까지만 알고 넘어가자. 우린 그의 비극에 대해 너무 속속들이 알았다.”

    필자소개
    장여진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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