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혁명의 가능성과 필요성
        2014년 03월 07일 05: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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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림반도…지금 전쟁이 터질까 말까 하는 그 크림반도에, 제가 1989년 봄과 1990년 여름에 몇 주씩 있어본 적은 있습니다. 한 번 견학 가고, 한 번 고고학적 발굴 현장에서 삽질했습니다.

    그 때 북부 러시아 출신인 저에게는 크림반도에 대한 느낌은 한 마디로 아찔했습니다. 뜨거운 태양빛, 가두의 반라의 인간군들, 그리고 좀 시무룩한 북부 사람들과 너무나 다르게 자주 웃고 즐거워 보이는 현지인들…

    현지인들은 놀랍게 다양했습니다. 타타르족의 귀환도 이미 그때 시작되고, 또 제가 그 때 가본 추푸트 칼레 (“유대인의 성곽”: 관련 링크) 유적은 유대교를 믿는 터키계인 카라임족 (관련 링크)의 유적이었습니다.

    전사로 유명한 바로 그 카라임족인데, 유대인이라면 늘 포그롬(학살)을 두려워하는, 폭력을 쓸 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제게는 “유대교의 전사들”은 아주 이국적이었습니다.

    아아, 그 태양빛, 그 웃음들, 그 다양성, 수천년 간의 희랍, 이태리, 토이기, 로서아 등등의 수없이 많은 문화들의 교류의 흔적들… 이제 그 곳이 러시아 침략을 받아 전쟁터가 될 지도 모르니 정말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 침략…러시아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러시아군 군인들이 다른 국가의 영토에 무허가 침입한 것은 확실한 듯하고, 그런 의미에서는 국제법적으로 “침략”은 맞습니다. 비록 (아직은) 교전행위는 없었다 해도 말입니다. 사회주의자로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늘 마땅히 반대해야 하는 것은 “침략”입니다.

    그러나 이 침략을 둘러싼 상황의 전개는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 총인구의 17%는 러시아인들이고, 수도 키예프만 해도 무려 13%는 러시아인들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키예프 주민의 다수는 비록 러시아 침략을 반대해도 키예프에 사는 러시아인들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은 듯합니다. 또, 여론조사를 보면 조사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러시아에서는 약 70% 안팎의 응답자들은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친서방 정권을 부정적으로 의식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인 전체에 대한 호의적 태도 (약 69%는 우크라이나를 호의적으로 인식합니다)는 거의 그대로, 바뀐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한 것은, 양쪽에서는 “정부/지배자”와 “국민 일반”을 구별하려는 태도는 역력합니다.

    러시아쪽에서도 “우크라이나인”보다는 “친서방 파쇼”를 문제 삼는 듯하고, 일부 극우파를 제외한 우크라이나인의 태도에서도 “푸틴”과 “러시아 국민”은 구별됩니다.

    “국민” 사이의 감정대립은 아직은 다행히 없습니다. 그러니까 크림반도에서는 러시아 침략군과 우크라이나군은 대치를 해도 어느 한 쪽에서도 교전행위를 벌이려는 욕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엘리트층의 정신 나간 민족주의자들은 뭘 어떻게 외쳐도 양쪽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적의라고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키에프 시위장면

    사실 적의가 있다면 이건 “위”를 향한 적의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재벌 (“올리가르크”)이라는 말은 가장 더러운 욕 중의 하나입니다. 양쪽에서는 대부분의 피지배층은 재벌과 재벌이 조종하거나 재벌을 키워주는 국가를 그저 불신할 뿐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도둑 대통령” 야누코비치에 대한 대중적 증오도 하나의 좋은 사례지만, 러시아에서의 민중의 태도도 본질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30%에 불과하며, 경찰의 신뢰도는 아예 18% 정도입니다 ( 관련 링크).

    아직은 “미국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고 다수가 믿고 있는 푸틴 개인의 지지도야 그것보다 많이 높지만, 기본적으로 대다수 러시아인들에게 현존하는 국가란 그저 믿을 수 없는 적대자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적대감은 과연 근거 없는 것일까요? 세계보건기구의 각국 자살률 통계를 한 번 보시죠. 물론 리투아니아와 함께 생활고에 지친 서민으로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 원한을 안고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것이 예사인 우리 위대한 대한민국은 각각 명예의 1 ,2위를 차지하지만, 우크라이나는 12위, 러시아는 13위입니다.

    다수를 비교적 더 가난하게 만들고 남미 수준의 격차를 낳고 사회의 모든 가치들을 파괴한 자본화는 수많은 서민들로부터 살 의욕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그 자본화를 이끈 엘리트들을 과연 왜 신뢰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왜 “대도” 야누코비치를 쫓아낸 키예프의 시위자들은 “조국 우크라이나에게 명예를!” 외쳤을까요? 왜 그들 중의 수많은 이들은 극우정당인 “스보보다”(자유) 등 유사 파쇼 조직에 대한 친근성을 느꼈을까요? 왜 홍기를 들고 야누코비치 반대 시위 하는 것을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까요? 왜 푸틴의 지지율은 여전히 69% 정도나 되나요? (관련 링크)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양쪽의 대중들은 자본화에 고통 받기도 하고 자본화의 주범들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예컨대 (우리들의 부정부패와 가난, 폭력의 개판과 다른) “좋은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환상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금번 사태가 유럽연합과 관련한 협정 체결이 무산되자 발발된 것부터 의미심장합니다. 아직도 상당수의 짓밟히고 도둑질 당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유럽의 꿈”이 남아 있단 말입니다.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다른 측면에서도 작동됩니다. 아직도 국가/정부기관보다 기업들은 훨씬 더 많은 신뢰를 받고 있으며, 재벌이 아닌 “자수성가형”이라고 (잘못) 믿는 중소기업인 등에 대한 대중적 반감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이번 야누코비치 타도 시위들을, 사실 “도둑 정권” 밑의 과도한 상납 요구에 불이 난 많은 기업인들이 지원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개개인이 “열심히 해서” 잘 살게 되고 성공한다는 것은, 아직도 러시아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도 대다수에게 삶을 보는 시각의 기초 프레임입니다.

    20여년 전에 도입된 자본주의는, 그 만큼 그들에게 아직도 그 생명력, 그 호소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삶의 중심에 “나”, “나의 가족”, “나의 벌이”가 들어선다면, 그 연장선상에서는 “우리 민족” (대가족)이나 “우리를 보호해주는 우리 대통령”도 수용됩니다. 지금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에서 다수의 머리를 지배하는 보수이데올로기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전쟁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시키자면 이런 이데올로기부터 철저히 파산돼야 합니다. “나의 성공”이라는 배타적 프레임이 아닌 “나와 너의 연대”가 사고의 중심에 들어서면 결국 우크라이나 민중과 러시아 민중의 연대도 가능해지고, 이런 민중의 연대는 결국 양쪽 “권력 잡은 도둑”들에 대한 공동의 반항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전쟁의 위험을 막는 것은 혁명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길은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 가능할까요? 당장은 가능성이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상황의 전개는 “좌파적 전환”의 일부 가능성들을 열어줄 것 같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주요 우크라이나 동부 재벌들이 새로운 친서방 정권과 손을 잡은 상황에서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민병대들은 어쩌면 “안티 재벌” 노선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 약간이라도 왼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쟁위기가 낳은 루블화 폭락 등 경제적 악조건 속에서는 러시아 민중의 불만이 보다 많이 누적돼 일정 정도의 좌경화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좌우간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민중의 연대입니다. 그런 연대가 만들어지자면 일단 양쪽의 피해대중들은 “민중”으로 전환돼야 되는데, 이것부터 참 지난한 과제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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