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사태
    딜레마에 빠진 민중저항의 미래
    [기고] 신자유주의로도, 과거로도 갈 수 없는 곤혹스러움
        2014년 03월 06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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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도주와 조기 선거 실시 결정 등으로 3달 가까이 이어져왔던 사태가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던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 흑해 함대 기지가 위치해 있고, 러시아계 주민들이 압도적인 크림반도에서의 긴장 고조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인들의 보호를 위한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러시아군 병력이 크림반도를 장악한 가운데, 미국과 유럽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협약에서 보장된 훈련을 위한 이동이라고 주장하면서 날카로운 대립을 이어왔다.

    또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은 15억 3천억 달러에 이르는 우크라이나의 가스 대금 체불액의 상환을 요구함과 동시에 30%에 이르는 가스 할인 가격도 더 이상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 밝히며 가스의 5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경제적으로도 압박해 왔다.

    미국과 유럽 역시 G8으로부터의 회원 박탈과 러시아 관료와 기업 자산 동결, 러시아로의 투자와 무역 제한 등 각종 경제 제재를 예고하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크림 뿐 아니라, 하리코프와 도네츠크 등 일부 동부지역 도시에서 러시아인들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행보에 발맞춘 시위가 확산되며 크림 자치 공화국의 분리 독립 혹은 러시아로의 병합, 그리고 내전과 미-러의 군사적 충돌까지 예상하는 보도가 넘쳐났었다.

    하지만 서방과 러시아 양자 모두 서로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는 전쟁도 불사한 대립이 아니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서방이 제시한 중재안에 즉각 합의했으며, 군대도 원대 복귀를 명령함으로써 이번 사태는 일단 표면상으로는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발발 원인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해설보도가 이어져 온 바 있다. 동남부와 북서부, 친유럽파와 친러시아파의 대립 등등… 그러나 이런 설명은 사태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독자적 민족국가를 제대로 형성해 본 역사가 거의 없었던 우크라이나는 말 그대로 근대에 들어서 만들어진 국가이다(그러나 우크라이나 민족과 러시아 민족 간에 차이가 없었다는 일각의 과도한 교조주의적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 마치 옛 유고연방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처럼 지금의 동부 지방은 러시아에, 그리고 서부 지방은 폴란드, 오스트리아 제국 등에 오랫동안 복속되어 온 탓에 양 지역의 문화적 차이는 극도로 이질적이다.

    이후 소련 시대를 거치면서 한층 더 큰 규모로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은 거의 동부 산업지대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게 되었고, 이는 한층 더 동부지역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체성이 서부지역과 다르게 나타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또 종교 역시 양 지역의 우크라이나인들의 차이를 더 크게 하는 요인이었고, 동부지방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어보다 러시아어를 더 잘 구사하게 되는 등 언어적 요소는 양 지역 간의 차이를 확연하게 만들어 준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로 인한 갈등이 토대를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번 사태를 이런 차이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지도

    우크라이나 지도

    미국과 서구의 세계자본주의 재편 전략 속 체제전환 국가들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전 지구적인 정치적, 사회적 변동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 재편 전략의 구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중동과 중남미, 동북, 동남, 남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등 거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들은 이러한 구도 하에서 파악하지 않을 경우 큰 한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옛 사회주의 진영으로 한정하더라도 체제 자체의 붕괴는 물론, 2000년대 중반의 소위 아래로부터의 민중 혁명,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색깔혁명’ 역시 석유와 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확보를 위한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전략적 포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2018년까지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요격 미사일을 배치해 MD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고, 폴란드에는 독자적 MD시스템 구축을 도와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EU는 지난 2009년부터 우크라이나를 비롯 몰도바, 조지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옛 소련권 국가들을 EU 영향권 안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는데, 최근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이들 국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지아를 필두로 EU 에너지 공동체로 끌어들이려는 협상을 시작했다.

    동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친러시아 국가로 남아 있었던 세르비아조차 코소보 독립에 대해 특별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로까지 하면서 EU에 가입시키려는 협상을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과 NATO 가입 시도는 러시아에게 있어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양의 셰일 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에너지의 대부분을 의존해왔던 러시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며 우크라이나는 로열 더치 셸과 셰일 가스 공동 개발에 합의한 바 있다.

    국가 총수입의 60%를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가스 판매 감소는 곧 러시아 정치 개혁을 촉발시켜 지배 엘리트들의 지배 구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국제투기자본에 의한 식량산업의 투기 조작 속에서 극심한 가뭄까지 겹쳐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서부 우크라이나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또 현재 러시아는 카자흐스탄과 벨로루시 등과 함께 옛 소련권 국가들을 다시 러시아의 영향권 안에 두고자, EU와 유사한 ‘유라시아 연합’이라는 경제 공동체를 추진 중인데, 2015년에 발족을 계획하고 있는 이 구상에서 우크라이나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은 러시아의 구상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1991년도에 미국이 주도하는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체제전환 국가들에게 경제개방과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요구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가격과 무역, 자본시장 등의 자유화, 외환 시장 개방, 관세인하, 기업과 토지 등의 사유화, 노동시장 유연화, 정부 예산 감축, 각종 보조금 철폐, 복지 등 국가 예산 축소 등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정책이 이들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강요되었다.

    소련 붕괴 직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곧바로 도입되었던 러시아와는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2004년 소위 ‘오렌지 혁명’ 이후 이러한 모델에 입각한 경제개혁과 경제개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2004년 미국과 서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오렌지 혁명’ 이후 수립된 친서구 유셴코 정부는 러시아로의 의존을 탈피하는 대신 EU로의 개방과 접근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했다. 2008년에는 이런 정책의 중요 목표였던 WTO 가입까지 이루어냈지만, 곧바로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라 외환 유출, 환율 폭력, 그리고 은행의 대량 예금 인출 사태 등이 일어나 구 소련권 국가들 중에서는 최초로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 위기 이전에 이미 우크라이나 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주요 수출 품목인 철강재 등의 가격 하락, 에너지 등 자본재 수입 증가, 그리고 러시아의 가스 중단 사태 등도 중요한 원인이 되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유셴코 정권이 국영기업 사유화 과정을 외국인 투자자에 전면 개방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본격화였다.

    2004-2005년에만 해도 무려 2000여 개의 각종 국영기업들이 국제입찰을 통해 사유화되어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기업들 경우에는 서구 등 외국인 자본가들이 대부분 구매하였다. 이러한 조치와 더불어 정부는 유통, 금융, 건설 등 서비스 산업에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시장을 대대적으로 개방하였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로의 FDI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는데, 특히 금융산업으로의 투자로 인해 외국 자본의 우크라이나 은행 인수가 크게 증대되었다. 이 금융시장 개방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직접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친러시아적인 야누코비치로의 정권 교체가 일어나게 된 것이고, 친서구적이고 신자유주의적 개방정책 대신 친러시아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정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10, 2011년도 연속으로 연 4%의 성장률을 보이는 듯 했지만, 성장의 결정적인 이유는 가스 가격 동결 및 가스 통과 수수료 등 러시아로부터의 적극적인 직간접적 지원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체제전환 국가들의 공통적 특징은 적극적인 개방정책 등 신자유주의 정책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보호주의적 정책으로의 선회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야누코비치 정부 치하에서도 경제 위기는 한층 더 깊어졌으며, 이번 사태의 발발 직전까지도 우크라이나의 외환보유액은 204억 달러에서 최근 178억 달러로 감소한 반면, 총외채 730억 달러 중 1년에서 1년 반 사이에 상환해야 하는 외채는 400억 달러에 달하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 위기 속에서 소수의 가신들에게 경제권력이 집중되면서 지배동맹의 일원인 기존의 특권 올리가르히들의 반발이 동서 올리가르히들의 균열을 가져 왔고, 대중운동이 권위주의 국가에서 조직화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했다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원인이 어디에 있었든지 이번 사태에서 간과되어 온 것이 있다면 바로 심각한 경제 위기 속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 그리고 권위주의적 정권에 대한 동과 서, 친유럽과 친러시아를 막론한 민중의 불만이 저항의 토대였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키에프

    작년 12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의 독립광장 시위

    현실 사회주의, 공산당, 그리고 저항세력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마르크스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거나 심지어는 모종의 자본주의라고 하는 주장들이 있지만, 공산당 지배 하에서 지금의 시장체제, 자본주의체제와는 전혀 다른 체제를 경험했던 현지인에게 있어서 과거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명백히 현재 시장체제와는 전혀 다른 비시장적 체제였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 체제를 무엇이라 칭하든 간에, 그런 비시장적 체제는 1990년대 초 정치적으로는 말 할 것도 없지만, 부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도 파산을 선고받았다. 이제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공식적으로 실패를 인정하고, 시장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체제전환은 반공산주의/자유주의적인 것이었을 뿐 아니라, 매우 민족주의적인 것이었다. 식민지-피식민지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소련 체제는 사실상 러시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온 러시아 외의 신생 독립 국가의 민족들에게 소련 체제의 해체는 ‘공산주의 체제’의 해체 뿐 아니라 소련 치하에서 박탈당했던 주권 쟁취와 민족 국가 수립이라는 민족주의적 과제의 실현을 의미했다.

    이들 신생 민족국가에게 민족주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강요하는 서구라는 또 다른 외세의 개입이라는 문제와 크게 대립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자본주의체제로의 재편입에 있어서의 종속적 지위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방하면서, 주변부가 되더라도 서구의 일원이 되는 것이 러시아로의 종속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련 사회주의 체제의 중심이었던 러시아에서조차 공산당은 ‘좌’의 이름을 한 지배 집단일 뿐이었다. 체제전환 이후에도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오랜 지배정당의 역할에 더 익숙한 공산당 등 현실 사회주의 좌파 후예들은 서구를 비롯한 사회주의권 바깥에서 발달한 (신)좌파적 의제들에는 물론 자유주의적 의제조차 받아들이지 못 하고 있다.

    세계화 과정에서 중심부 국가와 자본이 러시아를 비롯한 중심부 외 지역에서 가하고 있는 불공평하고 부정적인 행위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지만, 자국의 안팎에서 자국에 의해 행해지는 유사하거나 더 잔혹한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무관심 혹은 아예 무지한 것이 사실이다.

    비록 그 어느 정당보다도 노동대중과 서민의 이익을 수호한다는 강령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1990년대를 거치면서 공산당은 러시아 애국주의/민족주의/반유대주의적 정당으로 완벽하게 변신했으며, 개혁의 수혜를 얻지 못한 상당수 지방의 경우에는 노동대중이 아닌 지역 정치, 경제 엘리트, 반(半)범죄적 인사들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구에서는 우파보다는 (신)좌파적인 운동 영역이었던 환경, 여성, 반핵, 인권 등의 문제가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권 국가들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의 의제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좌파적 정당과 시민사회 운동의 사상적 동질성은 많지 않으며, 반면에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극좌파와 극우파, 신자유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의 연대도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다른 문제에는 신경을 쓰기 힘들만큼 권위주의적 정권의 정치적 탄압에 저항하는 데 집중해야하는 이들 국가의 후진적 정치현실도 올바른 관점의 연대를 방해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이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더 근본적인 이유들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서구에서 수백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일들이 압축적,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더하여 자본주의의 경험도 없고, 자유주의적 가치가 제대로 실험되지도 못한 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시장경제로 회귀하면서 여전히 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적 가치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단계에 있는 이들 체제전환 국가의 특수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키에프 시위장면

    우크라이나에서의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하다. 현실 사회주의의 대안은 곧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고 생각했던 시기, 사회주의는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정체성의 파괴를 의미했고, 소련은 곧 러시아를 의미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소련에 반대하는 것이란 자유주의와 동시에 민족주의적 과제를 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탈소련/러시아란 곧 유럽화를 의미했고, 동시에 유럽자본주의의 주변부로의 종속이 차라리 낫다는 논리 속에서 시장경제로의 복귀는 곧 유럽으로의 통합을 위한 적극적 개방을 의미했다.

    우크라이나 공산당은 ‘좌파’적 당이라기보다는 ‘친러시아적인 당’ 혹은 ‘러시아화된 우크라이나인들의 당’, 혹은 아예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당’으로 간주되었다.

    소련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도모하던 당시에 ‘좌’란 지배자 러시아를 의미했으며, 저항 세력은 말 그대로 ‘러시아적인 것’과 ‘현실 사회주의적인 것’에 반대되는 거의 모든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좌’는 양 민족을 막론하고 그 어떤 진보적 의미도 갖지 못 한 채, 그저 ‘새로운 시장체제를 제대로 선도할 수 없는 무능하고 억압적인 옛 지배층’을 의미할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체제전환 이후 동이든 서든, 구 공산당 세력이든 저항세력이든 간에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매우 빠르게 구 노멘클라투라 관료집단들의 지배를 용인하거나 혹은 스스로 그 일원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과거 ‘좌’라는 이름으로 지배했던 기간 동안에 이론과는 달리, 실제로는 자유주의 단계에서 쟁취한 성과조차 파괴되었던 이 땅에서 이제 오히려 진보적인 의제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절묘하게도 ‘자유민주주의 정치 질서와 시장경제’를 지원한다는 서구의 이익과 맞아떨어졌거나 혹은 그 명목 하에 체제를 붕괴시켰고, 러시아와 구 엘리트들(현재는 동부 지역 산업 올리가르히)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권 세력에 맞서는 세력은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서구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적인 세력이자 서구식 시장경제 개혁을 추구하며 우크라이나의 이익을 지키는 세력으로 칭송되었다.

    이 세력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중의 힘을 이용하여 소위 색깔혁명을 일으켜 집권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들의 정책은 대대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었고, 계속된 경제 위기 속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아 현 친러시아 세력들에게 정권을 내 주고 만다.

    그러다 보니 소위 저항세력에는 반러시아 극우 민족주의 세력에서 아나키스트들,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친서구적 신자유주의 세력까지 함께 하는 기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심지어 시위대 내에는 반유대주의를 외치는 극우파시스트와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유대인 조직이 같이 행동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저항세력에는 서구의 지원을 받는 시민사회단체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일반 시민들, 사회민주주의 정치세력들, 인권활동가, 반인종주의/반파시스트 사회운동가들, 양심적 언론인, 작가들과 같은 매우 모순적인 집단들이 함께 하고 있다. 게다가 서구와 이해를 같이 하는 올리가르히들도 이들을 후원한다.

    중요한 건 반대편인 친러시아 세력 쪽에는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쪽 진영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조직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비서구/비중심부 지역에서의 정치 변동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위하여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국가’와 ‘민족’,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강박관념에 가까운 거부감으로 인해 비서구/비중심부 지역 국가들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적 격변들에 대해 올바른 관점에 입각한 해석을 하지 못 하고 있다. 이 한계는 좌파들조차 서구 중심적 시각과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비중심부/비서구 지역들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에 대해 매우 단선적이고, 일면적인 사변적 분석만을 고집하다 보니, 가령 좌파적 성향의 조직들이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거나 저항운동의 이데올로기가 민족주의적이거나 종교에 기반해 있거나 심지어 특정 지배 엘리트를 지지하는 양태로 나타나는 외형상 이들 지역에서의 극도로 모순적인 상황들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비서구/비중심부 지역들에 대한 진단과 분석이 이러할진대, (신)자유주의자들이 좌파들보다 급진적인 의제를 내세워 개혁을 주도하고, 시장주의자들/서구화주의자들이 민주화운동 혹은 저항운동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등 옛 사회주의 진영 혹은 체제전환국들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서는 한층 더 이해의 어려움을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정당 중심의 서구 정치학 논리에 빠져 선출되지 않은 관료 등에 의한 과두 지배 세력의 지배를 간과하고, 시장체제를 근본적으로 대체할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시장체제를 건드리지 못 하는 모든 운동을 신자유주의의 잣대로 설명하려는 비과학적인 경향이 만연해 있기도 하다.

    영화 ‘화려한 휴가’ 중에서 시민군들이 미국이 항공모함을 한국에 보냈다는 뉴스에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면서 환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역사적, 국제정치경제적 맥락을 모른 채, 이 장면만을 보고 누군가가 그들에 대해 ‘친미주의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가차없이 그를 현실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코소보와 동티모르가 미국의 힘에 의해 독립했기 때문에 미국의 국기를 흔드는 민중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을 무작정 ‘친미주의자’거나 ‘미국식 시장근본주의 찬양자들’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함정에 빠져 있다.

    올바른 저항 이데올로기를 갖지 못 하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들에서 반외세, 반제국주의, 반권위주의 세력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반동적인 이슬람근본주의나 민족주의에 의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모든 주의들은 사실상 그 특정 민족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여전히 모택동주의나 김일성주의를 저항이데올로기로 삼아 투쟁하고 있는 세력들도 있다. 반제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이들의 이념은 좌파적인 것과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은 바로 미국과 유럽을 등에 업은 소위 민주화 세력들의 반독재 저항에 대한 해석이다. 바로 이러한 한계로 인해 이들을 반동세력으로 칭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진보좌파적 시각을 가진 이들에게 우크라이나 사태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크라이나 저항세력, 이제는 집권세력이 된 집단의 실체에 대한 논란일 것이다.

    동남부와 서부 간의 대립, 동남부를 기반으로 하는 친러시아 정권에 대한 친유럽적 세력의 저항 구도에 미국/유럽과 러시아의 직간접적 지원 등으로 인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매우 곤란을 겪는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노골적인 저항세력 지지와 더불어 시위를 폭력적으로 만든 ‘스바보다(자유)’, ‘우파 센터’ 등 극우민족주의 세력의 대두로 인해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민중의 저항은 외세의 지원에 의해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비록 서구의 지원을 노골적으로 받거나 신자유주의, 극우 민족주의적 이념이나 근본주의적 종교, 그리고 특정 지배 엘리트를 저항의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다고 하더라도, 민중의 저항이 일어나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반동적 사상들이 저항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는 현실을 하루라도 빨리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좌파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단 현실 사회주의를 겪기 전의 좌파적 대안과 겪은 후의 대안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

    필자소개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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