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희망버스 154대를 제안하며
    [기고] 모진 폭압에 꺾이지 않는 유성 노동자들에게 힘을
        2014년 03월 05일 03: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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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13층. 다시 그 자리입니다. 흐트러진 사무실, 이 제안문을 쓰고 있는 컴퓨터도 그대로 입니다. 재작년 쌍용차 분향소를 함께 만들고 희망버스 형식의 걷기대회를 제안하던 때 이곳에서 먹고 자며 쓰던 때에 전 라꾸라꾸도 그 자리에 그대로입니다. 한번 펼쳐서 누워 봅니다. 언제까지 이런 외로움을 벗으로 삼아야 하는지 잠깐 서글퍼집니다.

    지난 2월 8일, 백기완 선생님과 김세균 전 서울대 교수님을 모시고 대전구치소엘 다녀왔습니다. 거기 용산참사 건으로 4년째 구속되어 있는 남경남 전 전철연 의장이 있었습니다. 머리가 많이 세어 있고, 이마의 주름살이 더 늘었습니다. 용산 참사 초기 순천향병원 영안실 4층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당신이 우리 모두를 대신해 살고 있다’고, 말하려는데 눈물이 차올라 꿀꺽 삼켜야 했습니다. 외로운 시절을 혼자 버티고 있는 그 앞에서 울면 안되었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다시 작년 10월 13일 옥천나들목 옆 광고탑엘 올라 고공농성중인 유성기업 홍종인과 이정훈 지회장을 찾아갔습니다. 지나 다니는 사람 하나도 없는 너무도 삭막한 고속도로 변, 그곳 역시 감옥이기는 다를 바 없었습니다.

    명절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백 선생께 앉으시라 하고, 저 하늘 위에서 세배를 드리는 두 노동자들을 다시 눈물이 치솟아 올려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올라오는 길에 한 대여도, 두 대여도 좋으니 우리가 다시 내려와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김주익의 129일, 홍종인 이정훈의 129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게 며칠이 다시 지났을 때 홍종인 아산지회장이 이정훈 지회장을 두고 먼저 내려오기로 했다는 급한 전갈을 받았습니다. 망설이던 나를 못난 놈들은 못난 놈들끼리라도 챙겨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오랜 벗인 기륭전자의 김소연이 이끌었습니다.

    무슨 죄진 놈마냥 고개만 숙이고 앉아 있는데 그날이 마침 129일차라고 했습니다. 참았던 분노와 서러움이 치솟았습니다.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가 고립과 외로움에 지쳐, 자본의 폭압에 분노해 자신의 생을 던진 날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2011년 다시 그 자리에서 김진숙이 죽게 할 수는 없다고, 당시 고공농성 129일차가 되던 날, 희망의 버스를 제안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분노의 129일은 언제쯤이나 다시 기억하지 않아도 좋은가요. 김주익 열사가 목을 멘 후 11년이 지났지만 해고와 구속은 끊이지 않고, 손배가압류 폭탄은 더 터지고, 끊임없이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저 높은 곳으로 울면서, 이를 악물면서,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올라야 했습니다. 언제까지 저 고공을, 저 허공을, 저 각박한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한단 말입니까. 언제까지 우리는 제2의 김진숙을, 제3의 한상균 복기성 문기주를, 제4의 최병승 천의봉을 올려다봐야 한단 말입니까.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현대자동차에서는 대법 판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쌍용차에서는 전국민을 상대로 한 국정조사 공약이 공염불입니다. 한진중공업에서는 24시간 생중계되면서 전 국민이 지켜보던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합의된 사항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최강서조합원과 김금식 두 분이 다시 목을 메야 했습니다.

    1895일 싸우고 나서야 타결된 기륭전자의 사회적 합의는 사측의 도망이사로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습니다. 2012년 대법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콜트 조합원들은 며칠만에 재해고를 당해야 했습니다. 며칠전엔 130여명의 철도노조원들이 징계해고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전교조 공무원노조의 법외노조화가 시시때때로 불거져 나오고, 진보정당 운동이 법외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공공부문 민영화, 의료민영화 바람은 잠잘 틈이 없습니다. 모든 곳에서 노동3권이 부정되고 노동기본권이 짓밟히고 있습니다.

    민주노조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처참한 노동현실

    조금은 다른 세상이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3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최선을 다해 버텨 왔습니다. ‘2011년부터 주간2교대제를 실시하되, 노사 협의한다.’ 2009년도에 이미 합의되었던 심야노동폐지, 주간2교대제 요구였습니다. 너무도 정당하고 인간적인 요구였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창조컨설팅을 앞세우고, 청와대, 국정원, 검경, 노동부, 원청인 현대차 등과 더불어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의 1탄이었습니다. 사측은 정상적인 교섭을 부정하며 유도파업을 조장했습니다.

    1월부터 시작한 교섭이 아무런 진전이 없자 어쩔 수 없이 5월 18일 합법적인 쟁의 행위에 돌입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사측은 바로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깡패 수백 명을 투입했습니다. 대포차로 사람들을 치어 십수 명이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두개골이 함몰된 이도 있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든 병원비만 3억원이 넘습니다.

    직장폐쇄 5일만에 항의하던 530여명을 4000명의 공권력이 헬기를 앞세워 들어와 전원 연행하기도 했습니다. 제2의 쌍용차였습니다. 길거리에 비닐천막을 치고 살아야 했습니다. 12억의 손배가압류를 당하고, 별도로 국가로부터 1억 2천만원의 손배를 맞아야 했습니다.

    그간 17명이 구속되고 27명이 해고되었으며, 부당해고 판결이 났음에도 다시 11명이 재해고되었습니다. 관리직들까지 위장가입한 어용 복수노조를 만들어 대표 교섭권을 뺏어갔으며, 반대로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온갖 차별에 시달리며 수십 명이 정직과 출근정지를 반복적으로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홍종인 지회장은 지난 2012년에도 목에 밧줄을 걸고 151일 동안 굴다리 고공농성을 하며 저항했습니다, 다시 129일간에 걸친 2차 고공농성을 해야 했지만 여전히 꿋꿋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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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기업 이정훈 지회장의 고공농성 철탑(사진=미디어충청)

    2012년 국회에서 국정조사와 국회청문회를 통해 이명박 정권하에서 진행된 용역폭력,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폭로되고, 범사회적 항의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폭발적인 여론이 조성되자 서둘러 노동부와 검찰이 특별근로감독과 두 차례에 이르는 압수수색에 나섰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민주노조 파괴에 나섰던 창조컨설팅의 심종두 대표와 김주목 전무는 노무사 자격이 박탈되었고, 법인이 해체당하기도 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이례적으로 이를 사주하고 지휘한 유시영 사장과 두 공장장의 사법처리가 필요하다는 기소 의견을 몇 번에 걸쳐 검찰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자료 보강을 요청하며 2년여를 끌다 결국 ‘혐의 없음’ 불기소 처리하고 말았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파괴하는 시나리오에 등장했던 청와대, 국정원, 노동부, 경찰, 경총, 원청인 현대차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따라 깨진 민주노조가 금속노조 산하만 40여개 사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민주노조의 깃발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이탈했던 조합원들을 재조직해 대표교섭권도 다시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유성기업을 넘어 발레오만도, KEC, SJM, 보워터코리아, 만도, 상신브레이크, 콘티넨탈 등에서 자행되었던 민주노조 파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태생 자체가 불법인 현 정부는 놔두더라도 국회의 책임도 물어져야 합니다. 손배가압류, 구속, 복수노조법, 정리해고법, 비정규법을 그대로 둔 채로는 제2의 한진, 제3의 쌍용차, 제4의 유성, 제5의 기륭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좋은 토양에서 이 땅의 자본가들은 이제 정말 룰루랄라입니다. 쌍용차처럼 버티면, 한진처럼 버티면, 유성처럼 버티면, 콜트-콜텍처럼 재해고하면, 기륭처럼 내빼면 된다는 학습을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그들을 지켜주고, 정부가 앞서서 공권력으로 막아주고 잡아가주고, 법원은 구속하고 손배가압류를 때려 확인 사살합니다. 도대체 1700만 노동자 가족들은 어찌 살란 말입니까. 이 난장이들은 어찌 살란 말입니까.

    2011년 1차 희망의 버스를 준비할 때,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용역깡패들에게 맞아 병원으로 실려가고, 공권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연행당하고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가기 전에 유성 아산공장을 들렸다 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참 많은 논의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3년이 지나 아직도 고공농성 중인 그들을 함께 찾아가보자는 희망의 버스 제안문을 쓰고 있습니다. 이 참담하고 서러운 세월을 도대체 언제까지 지켜보란 말입니까. 언제까지 저 외로운 곳에 사람이 있다라고 써야 한단 말입니까.

    2011년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으로 갈 때부터, 2012년 다시 희망버스가 쌍용차로, 2013년 현대차비정규직투쟁으로, 밀양으로 향할 때 유성노동자들도 늘 함께 하면서 더 절박하고 간절한 곳으로 희망버스가 가기를 바래 단 한번도 요청을 해 볼 생각을 못해 봤다고 합니다.

    속으론 한번만 희망의 버스가 유성으로 와준다면 하는 눈물겨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 손을 잡아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외로운 이정훈에게 기운을 내라고 소리쳐주어야 할 듯합니다. 당신들의 투쟁이 다시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다고, 고맙다고 껴안아주어야 할 듯합니다. 그것은 현재 흔들리고 있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과 다름 없을 것입니다.

    처음엔 정말 백기완, 김세균 선생님의 말씀처럼 한 대라도, 두 대라도 가자 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들이 통했는지, 며칠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전국 154대의 희망의 버스라는 기적을 다시 만들어보자고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기쁜 소식도 들렸습니다. 전국금속노조를 포함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희망버스를 긴급 안건으로 올려 ‘전국의 모든 민주노총 확대간부들은 이번 희망버스를 탄다’라는 결정을 내려준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그것이 바로 내가 청춘을 바쳐 사랑해 온 민주노조의 정신이었지.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리는 복도 바깥에서 몇 시간을 왔다 갔다 했던 내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을 이번엔 막지 않았습니다. 2011년 희망버스 2차를 준비하던 때도 이렇게 복도를 서성였습니다. 185대라는 기적을 만들던 때였습니다.

    3년이 지나 다시 전국 154대라는 기적을 우리 다시 만들어보자고 누구일지 모를 당신께 제안 드려 봅니다. 희망버스의 진정한 운전수는, 차장은 희망버스를 만드는 당신, 힘든 삶과 생활 속에서도 다시 희망버스의 승강구를 올라주는 당신입니다.

    희망버스의 종착지는 정당한 노동자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154대의 희망버스가 출현하는 순간 이 버스는 유성으로만 가는 버스가 아닐 것입니다. 이정훈에게만으로 가는 희망버스가 아닐 것입니다. 이 버스는 그간 자행된 모든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중단시키는 희망버스가 될 것입니다. 이 버스는 모든 이 땅의 자본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99%의 노동자 민중들의 삶의 권리를 지키는 희망의 버스가 될 것입니다. 이 버스는 한국사회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민중생존권 탄압과 공안탄압의 흐름, 그 모든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고 한국사회로 하여금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희망의 버스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부산의 한진을, 제주 강정을, 평택 쌍용차를, 울산의 현대차비정규직을, 진주의료원을, 밀양을 다시 생각하는 희망의 버스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버스는 이게 사람 아니겠냐고, 이것이 사는 맛 아니겠냐고, 우리 자신에게로 향하는 희망의 버스가, 사랑의 버스가 될 것입니다.

    우선 희망버스 운전수가 되어주시겠다는 154명의 기적을 찾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내가 활동하는 부문에서, 내가 활동하는 노조에서, 내가 활동하는 단체에서, 내가 만나는 친구들 속에서 희망버스를 만들고 차장이 보겠다는 분들입니다.

    벌써 인권버스를 만들어 보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1호차의 차장은 여전히 백기완 선생님과 여러 원로 선생님들이십니다. ‘질라라비 훨훨 버스’라고 합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인버스를 만들어 보겠다는 박경석님이, 고래삼촌이모들의 버스를 만들어보겠다는 김규항님이, ‘가장자리 버스’를 만들어보겠다는 홍세화 선생이, 삼성에 반대하는 또 하나의 약속을 만들어보겠다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언론장악음모 분쇄 버스를 만들어보겠다는 이강택, 현상윤님이, 대안교육버스를 만들어보겠다는 정선임, 이상훈님이, 빈민해방 버스를 만들어보겠다는 최인기와 유의선님이, 최소한의 변화를 바라는 사진가모임이, 문화예술인 버스를 만들어보겠다는 이원재 님이, 모든 열사들을 기억하는 버스를 논의해보겠다는 김명운님이, 전남 순천의 박정훈이, 법조계의 권영국님이 있습니다.

    희망버스의 상징이었던 김진숙 지도위원님이 부산에서 함께 해주시겠다고 합니다. 밀양 어르신들이 와주시겠다고 합니다. 현대차비정규직들이 자신들을 찾아와주었던 희망버스를 기억하며 와주겠다고 합니다. ‘함께 살자’고 평택 쌍차 해고자 분들이 출발하겠다고 합니다.

    이번 희망버스는 이렇게 모든 버스가 주제가 있고, 주체가 있는 버스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한 대, 한 대가, 한 분, 한 분이 소중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오시는 분들은 준비된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향해 달리는 버스’에 올라주셔도 좋습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버스’에 올라주셔도 좋습니다. ‘공안탄압 없는 세상 만들기 버스’에 올라주셔도 좋습니다. ‘철도, 가스, 의료 민영화 반대 버스’에 올라주셔도 좋습니다.

    3월 6일 오전 12시 이렇게 나서주신 154인의 희망버스 차장단 전국회의가 잡혀 있습니다. 2시엔 어떤 희망버스들이 출발하는 지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잡혀 있습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한 차가 안 되도 좋습니다. 봉고차 한 대여도 좋습니다. 승용차 한 대여도 좋습니다. 혼자여도 좋습니다. 저도 그렇게 혼자입니다.

    3월 15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라고 묻지 말아주십시오. 무려 열흘이나 남았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나의 한 걸음이 누군가를 살리고, 이 사회 전체를 조금은 더 밝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길 나서주시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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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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