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들이 타인의 고통을 아느냐?
    [이상엽의 시선] 영화 이상의 것 영화 잣대로 보면 안돼
        2014년 03월 03일 05: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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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진보언론 기자가 <또 하나의 약속>이 아무리 의미 있는 영화라도 영화는 영화로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냉정한 평을 부탁했다. 그래서 거절하고 이렇게 말해줬다. 이 영화는 그냥 영화가 아니다. 영화 이상의 것이다. 영화 이상의 것을 어떻게 영화를 보는 잣대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한 중견 영화 제작자가 들려준 이야기다.

    예술이라는 것, 평론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다. 하나의 창작물이 장에 들어오는 순간 장르적 특성에 고정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목적으로 장에 들어왔는가를 살피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 없이 규정화되고 세련된 오브제만을 감상하게 되는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예술의 탄생 후 비평이 등장하는데도, 요즘은 그것이 전도돼 비평 다음 예술인 듯하다. 비평이 설계한 예술의 세계에서 창작을 하고 있다고 할까?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라는 요즘은 그렇다. 수잔 손택이 이야기하는 ‘타인의 고통’은 외면당하고 있다. 창작의 동기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혹시나 나도 그런 고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은 오히려 현실에서 소유할 수 없는 행복한 이미지에 대한 천착으로 나타난다.

    잡지에는 고통스런 이웃에 대한 기록 대신 명품 광고가 넘치고 인터넷 사진 갤러리에는 99% 아름다운 사진들로 채워진다. 미술관 역시 불쾌한 고통의 사진은 차지할 공간이 없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중독이다. 결국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중단되고 현실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는 금단 증상과 함께 공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건강하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잃는 것이다.

    “어이! 화장실 좀 갑시다.”

    “밑으로 가세요.”

    “거긴 있어요?”

    “몰라요.”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모른다. 내가 얼마나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당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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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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