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연 "세 번 거절 끝에 출마 결심"
    "문용린 교육감 성적은 공삼과칠...혁신교육 시즌2 이뤄나갈 것"
        2014년 03월 02일 04: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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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민교협 전 공동의장)가 지난 28일 장혜옥 학벌없는사회 대표와 최홍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에 이어 진보진영의 서울시 교육감 진보 후보로 나섰다. 80년대 이후 비판적 지식인운동을 주도했고 1995년 박원순 당시 변호사와 함께 참여연대를 창립하는 등 대표적인 진보지식인으로 활동해왔던 그가 서울시 교육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조희연 교수는 2일 오후 서울 정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교육영역의 박원순, 서울의 김상곤”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기자간담회 중인 조희연 교수(사진=장여진)

    기자간담회 중인 조희연 교수(사진=장여진)

    “세 번의 잠적 끝에 출마 결심…’혁신교육 시즌2′ 열어나갈 것

    그는 출마의 변을 통해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의 주요활동은 사회민주화와 교육문제였다. 24개의 학술단체들이 모인 학술단체협의회가 교육운동연대를 만들었고 교육비상원탁회의 참여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초중등 교육의 아픔을 직접 체험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로 그러한 문제를 글쓰기를 통해 지적인 비판, 새로운 정책들을 요구해왔지만, 이제 현실 속에서 직접 바꿔보고자 결심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사실 2달 전부터 출마 압박을 받았다. 그래서 총 세 번의 잠적 끝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마을만들기 사업과 협력해 학교와 마을 공동체 만들어갈 것”

    핵심 공약에 대해 그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혁신교육 시즌2’를 열자는 것”이라며 “시즌1에서 잘해왔던 80%를 계승하면서 나머지 20%는 시즌2에서 보완해 교육 일반을 포함한 교육 혁신, 행정, 학부모와의 관계, 학교와 마을의 관계를 형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교육 시즌2’와 기존의 곽노현 전 교육감의 혁신교육과의 차이에 대해 그는 “혁신학교의 최대 장점은 주체의 눙동성을 살리는 것이다. 교사와 학습 받는 학생의 능동성을 살리는 정책이었다”며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체의 능동성은 혁신학교의 교장이나 교감선생,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일부 교사들로 왜소화되었다. 전체 모든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재건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학교와 마을 간의 관계를 형성하겠다는 공약에 대해 “서울시의 마을만들기 사업과 협력적 분업을 통해 공동체의 가치와 원리를 학교 교육에서 관철시킬 것”이라며 “현재 학부모들은 공적 지향보다는 자신의 자녀의 학업성취를 늘리려는 가족 중심적인 학부모가 많은데, 학부모들에게도 다양한 참여기회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인권, 교권 위협하다는 인식이 과잉돼서는 안돼”
    학생인권→학교인권 개념으로 확장해야…인권친화적 교권 수단 찾아야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공약에 대해 교사나 학부모의 반발이 강한 것에 대해 그는 “학생인권조례가 마치 교권과 대립하는 개념이 되어 버렸지만, 경기도의 김상곤 교육감 체제에서는 학생인권이 ‘학교인권’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학생들을 훈육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학생인권과 체벌 문제가 대립된 것이지만, 일정 측면에서는 교권이 위협받는 문제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학생인권과 교권이 대립하는 것에 대해 “학생인권이 없던 시대에 이제 학생인권이 있는 시대로 이행했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가면서 이제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내걸 듯, 학생인권이라는 시대적 흐름은 막을 수 없다”면서 “학생인권의 흐름 내에서 인권친화적 교권수단이 무엇인지 국민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또한 보수진영에 교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권위가 있어야 하고 학생들의 롤모델이 되어야 하는데 공교육의 붕괴로 그 기능이 실추됐다”며 그러나 “학생인권을 교권붕괴로 과잉 인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교육감은 학생 성적에 관심 없다?…”혁신학교, 학업성취 긍정 효과 있어”
    “한국의 입시경쟁, 과잉경쟁 넘어 미친 경쟁 수준….경쟁의 합리성마저 파괴”

    서울시장 선거 결과와 다르게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성향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는 이유가 진보교육감 후보들이 학부모들이 기대하는 학업성취 문제에 취약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경기도의 경우 혁신학교의 대학입시 결과가 향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혁신학교에서 교사가 적극적으로 교육에 임하다보니 전통적인 의미에서 학업성취, 즉 입시에 좋은 결과로 나오고 있다”며 “서울시의 경우 저소득층 지역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구로, 금천지역에 교육혁신지구가 만들어졌는데, 교육소외지역 혁신학교를 200개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교육감의 역할은 아니지만 현재의 대학입시체제, 학벌체제를 통합국립대학방안이나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이라는 준국공립사립대학을 만드는 방식 등으로 입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한국의 입시 경쟁과 관련해서는 “과잉경쟁을 넘어 미친 경쟁의 수준에 도달하면서 경쟁의 합리성까지 파괴하는 수준에 있다”며 “경쟁은 원래 합리적인 것인데 미친 경쟁으로 가면서 중산층에서 모든 자원을 자녀 입시에 올인하고 있다. 은유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전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행학습 때문에 경쟁이 과열되면서 교과서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 학생들은 단기간에 높은 난이도를 공부하고 입시성적을 올려야 하는 폐해가 있다”며 “교과서의 난이도를 대폭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용린 교육감, ‘공3과7′…잘한 일은 과감히 계승할 것”

    문용린 현 교육감에 대한 평가에 대해 그는 “문 교육감은 성품이 온화하고 튀는 성격이 아니라서 행동거지가 모나지 않는 것 같다”며 “그래서 굉장히 신중한 행동을 하시는 것 같은데 그래서 박근혜표 국정교과서 문제에 거부를 못하고 쭉 편승해서 가신 것 같다. 교학사 문제에 다소 불철저한 태도 갖고 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공삼과칠이라해서 공이 3이고 과가 7″이라며 “자유학기제나 인성교육, 진로체험 맞춤형 교육 등 이런 일들은 충분히 잘 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가 교육감이 된다면 이러한 ‘공삼’은 과감히 계승하고, 혁신학교의 일부 문제점은 보완할 것”이라며 다만 문 교육감에 대해 “상대방이 해왔던 정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하는 전략만 하지 않기를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다른 진보후보들과 달리 초중등 교육경험이 적고, 진보인사 색깔이 강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사실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제가 부족한 지점도 있다”면서 “하지만 직간접으로나마 아내를 통해 교육 현실을 견문한 바도 있고, 지난 2년반 동안 교육운동연대, 교육원탁회의 등의 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아왔다”고 강조했다.

    또한 진보적 색채에 대해서도 “문용린 교육감은 관료의 정체성이 있다면 저는 시민사회 개혁가의 정체성이 있다”며 “진보적 정체성, 사회운동적 정체성도 있지만 박원순 시장이 시민개혁가로 온화한 이미지 있는 것과 같이 저도 시민사회개혁가로서의 정체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조희연 교수는 1956년 전북 출신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거쳐 연세다 사회학과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지내고 있다. 성공회신학대학 당시 이재정 총장과 함께 지금의 성공회대의 진보적인 정체성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성공회대에 시민운동의 재교육기관인 NGO대학원을 만들기도 했고, 2007년에는 아시아의 NGO활동가를 양성하는 석사과정 MAINS(아시아정부기구학)을 만드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외에도 민주화운동 자료를 수집, 정리하는 민주자료관을 만들었으며 2003년에는 민주주의연구소를 만들기도 했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80년대에 김진균 교수 등과 비판사회학회을 창립하고, 87년에는 학술단체협의회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2011년부터는 민교협 의장을 맡고 있다.

    시민사회 운동가로서도 1995년 박원순 당시 변호사와 함께 참여연대를 창립해 1대 사무처장을 맡았으며, 2000년 박원순 변호사가 이끌었던 낙선운동에서는 ‘정책자문교수단’을 조직해 이끌기도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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