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칭모델, 신좌파, 중국의 미래
    [책소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추이즈위안/ 돌베개)
        2014년 03월 02일 12: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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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후 20년,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난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는 중국 지도부가 주요 정책 방향을 발표함으로써 이후 중국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회의였다.

    1978년 열린 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 노선이 채택되었고, 1993년 14기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공식화한 바 있다. 이번 3중전회 또한 중국의 새로운 성장모델과 개혁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국유경제를 양립하겠다는 절충안에 그쳤다.

    하지만 이 회의는 그간 중국사회의 문제로 줄곧 제기된 쟁점들을 전면화함으로써 중국의 향후뿐만 아니라 그간 중국이 지나온 길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국유기업 개혁, 반부패 정책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민생문제들, 즉 도시.농촌 격차, 농민공(농촌 출신으로 도시에 와서 일하는 노동자. 중국은 엄격한 주민등록제를 시행해, 도시 주민등록이 없는 농민공에게는 복지 혜택을 주지 않는다.)을 비롯한 도시빈민의 교육.주거.의료문제, 주민등록제(후커우)문제, 토지개혁 등이 논의되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확립 이후 20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구호로 내세우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기존의 체제 유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앞서 언급한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했다.

    특히 거대 국유기업을 위시한 특권층은 막대한 부를 독점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은 중요한 구심점이 되었다.

    프티부르주아

    이른바 ‘충칭모델’

    1990년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돌출된 흐름이 이른바 ‘신좌파’이고, 이후 이들의 이념에 바탕해 중국 서남부의 대도시 충칭에서는 국유자산과 시장원리가 독특하게 결합된 경제.사회 정책이 추진되었다. 이른바 ‘충칭모델’이라 불리는 것으로, 시장개혁론에 입각해 국가의 지나친 개입을 반대하는 ‘광둥모델’과 대비되는 발전모델이다.

    2012년 중국 최대의 정치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보시라이는 ‘중국 좌파의 영웅’이었고 충칭의 당서기였다. 보시라이 실각 이후, 충칭모델과 신좌파의 목소리가 뒷전으로 밀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충칭시 시장 황치판은 18기 3중전회에 제출된 중대한 개혁방안의 초안 작성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도대체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국의 대표적인 신좌파 지식인이자 충칭 제도개혁에 깊이 관여한 바 있는 추이즈위안은 이러한 중국의 상황에 대해 과감한 분석과 대안을 들려준다. 그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사상적 입지로 삼으며, 중국적인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충칭의 경험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작업을 시도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돌베개, 2014)는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창비, 2003) 이후 11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추이즈위안의 저작이다.

    서구의 프레임 밖에서 중국 현실에 대한 독자적인 사유를 모색하는 중국 지식인들의 텍스트를 선별한 ‘현대 중국의 사상과 이론’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원톄쥔의 <백년의 급진>에 이은 두 번째 책.

    중국의 경험과 진보적 이론들을 종횡하는 실천의 궤적

    현재 중국 칭화대학 공공관리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추이즈위안은 중국 신좌파 지식인 그룹의 대표적 이론가이다. 중국 국방과학기술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다양한 사상적 자원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구축했다.

    추이즈위안은 1990년대에 중국적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제도적 혁신에 관한 글을 발표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사회가 서구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고수했으며, 정치적 구호로 치부된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는 중국의 개혁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려면 사회주의적 경험의 합리적 요소를 살리되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나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서구의 사회민주당은 급진적인 영감을 일찌감치 잃어버렸다. 사회민주당의 강령은 기존 시장경제 체제의 형식에 도전하고 이를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회의 구조적 격차와 계급계층 제도로 인한 후유증을 완화시키는 데 치중한다.”(24쪽)

    그래서 그는 프루동, 존 스튜어트 밀로부터 헨리 조지, 실비오 게젤, 제임스 미드,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 등의 진보적 이론들을 흡수하여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자유사회주의)의 흐름을 복권해내며, 그러한 시야 속에서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분석한다.

    여기에는 물론 중국의 현실적 경험, 페이샤오퉁과 장펑춘 같은 중국 현대 사상가들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 홍콩 등 다른 국가의 제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뒷받침되어 있다.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농촌 토지소유제도, 향진기업, 국유기업제도 등에서 이 새로운 사회주의의 싹을 발견해냈으며, 충칭의 실험에서 자신이 주장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가 하나의 체제로 실현될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당시 충칭시 시장이었던 황치판의 제안으로 2010년 5월부터 충칭시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에서 일하며 정책개혁에 참여했다.

    이처럼 추이즈위안의 궤적은 비서구사회인 중국에서 가능한 보편적 이론 생산의 한 가지 모델을 제시한다.

    해제에서 류준필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추이즈위안은 이른바 서방의 기준으로 중국의 현실을 판단하는 시각을 경계하는 한편,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일반적 존재 양상과도 구분되는 중국적 현실과 경험의 독자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서구의 전통에 내재된 요소들을 당대 중국적 현실을 해명하는 데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201쪽)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현실에 바탕을 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서구 사상의 전통적인 요소들과 동시대 사상들을 종횡하며 진보적인 이론을 재구성한다. 또한 충칭실험에 나타난 새로운 정치·사회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재해석하고 직접 정책생산 과정에 개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의 기록이 담긴 추이즈위안의 글들은 서구 이론과 중국의 현실, 보편과 특수, 이론과 제도가 만나는 지점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촉발한다. 이론이 한 시대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자 응답임을 환기시키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한국의 학자와 정책 관계자들에게도 풍부한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자유사회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신국제주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에 수록된 글들은 크게 세 가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자유사회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신국제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헨리 조지, 제임스 미드, 안토니오 그람시: 충칭개혁의 세 가지 이론적 관점」「‘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경제학적 함의에 대한 재인식」「‘충칭의 경험’과 제도혁신」 등 네 편의 글은 프루동과 존 스튜어트 밀에서 제임스 미드에 이르기까지의 ‘자유사회주의’ 이론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개혁 경험, 특히 충칭의 실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한편,「‘혼합헌법’ 그리고 중국정치의 세 층위 분석」은 ‘공화주의’ 시각에서 중국의 정치개혁을 탐구하며, 「‘아시아적 가치’ 대 ‘서구적 가치’라는 사유방식을 넘어서: 인권문제를 보는 시각」「제3세계에서 서구중심주의와 문화상대주의의 초월」「시바이포 포스트모던: UN인권선언과 보편적 역사의 여명」은 민족주의와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적 발전을 기원하는 ‘신국제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전통과 그 의의를 과감하게 재구성한「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에서 추이즈위안은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자유사회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으며, “중국 및 세계에서 마르크스주의,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경쟁할 것”이라는 야심을 내비친다.

    그가 이야기하는 프티부르주아(소자산 계급)는 ‘중산 계급(중산 계층)’이라는 개념과 다르며, 당연히 농민을 포함한다. 그에 따르면,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경제적 목표는 개혁과 기존 금융시장 체제의 전환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며, “정치적 목표는 ‘경제적 민주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계급 대립 없이 모든 시민이 공동의 부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강조한 덩샤오핑의 ‘소강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추이즈위안은 현대 중국의 토지소유제, 기업제도 등이 자본주의와는 다른 대안적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설명하며, 여러 이론가들의 논의를 오가며 금융과 노동과정, 소유권 개혁 등 제도혁신과 관련된 아이디어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이즈위안의 구상이 현실에 가깝게 구현된 곳이 바로 충칭이었다. 「헨리 조지, 제임스 미드, 안토니오 그람시」「‘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경제학적 함의에 대한 재인식」「‘충칭의 경험’과 제도혁신」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관한 의미 있는 실천으로서 충칭 제도개혁을 맥락화해낸다.

    충칭실험의 핵심은, 정부가 토지와 기업을 공유자산으로 소유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지가 상승 수익과 국유기업의 시장 수익을 사회적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달리, 높은 세율 없이도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 민간부문의 발전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민생을 지원해왔다.

    또한 지표거래제도의 시행과 주민등록제(후커우) 개혁을 통해 도농 통합발전을 촉진하고, 차별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농민공’들이 도시주민과 동등하게 공공임대주택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충칭시 정부는 삼진삼동, 빈농 자매결연, 민생 대탐방 등의 제도를 통해 간부들이 인민에게 봉사하도록 독려했다.

    추이즈위안은 이러한 충칭의 제도개혁에 대해 헨리 조지, 제임스 미드, 안토니오 그람시 등의 이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충칭개혁 이론가의 언어를 통해 중국을 뜨겁게 달군 충칭의 경험을 다각도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중국이 겪고 있는 첨예한 문제들, 그리고 그것을 돌파하는 사유와 실천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추이즈위안은 공산당 중심의 관료주의와 국가주의의 위험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탐색하고, 서구 중심의 보편주의와 중국 민족주의를 넘어선 신국제주의 이념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한국의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문제를 해결해고자 하는 충칭의 혁신적인 실험과 추이즈위안의 이론화 작업은 중국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소중한 교훈을 전달한다. 이 책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국가의 역할, 자본주의 너머의 정치, 좌우라는 경직된 이념을 넘어서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고민하는 한국의 진보적 독자들에게 신선한 지적 자극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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