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춘단과 그이들,
    우리 주변의 실제 이야기
    [책소개] 『양춘단 대학 탐방기』(박지리/ 사계절)
        2014년 03월 02일 12: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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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자 첫 일반소설인  <양춘단 대학 탐방기>는 여전히 젊은 스물아홉 살의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해방 전후부터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를 고농축, 고밀도로 집적해 유머와 풍자로 버무린 새로운 ‘풍속소설’이다.

    감히 21세기 판  <고리오 영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작품은 시종일관 안녕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풍자와 조롱으로 통렬하게 파헤치면서 리얼리즘 소설의 새로운 계보를 잇는다.

    양춘단이 대학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2009년부터 4년에 걸친 시간을 한 축으로 한 이 작품은 또 다른 축으로는 양춘단을 중심으로 남편 김영일,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부모 양호익, 정순규와 차남 김종찬과 며느리 문유정 3대에 걸친 가족사, 더 나아가서는 춘단의 손주, 손녀 이야기까지로 이어진다.

    양춘단이 대학에서 관계 맺는 사람들과 대학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비루하고 치졸하게, 때로는 세상과 한판 붙으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무명씨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은 우리 사회의 정교한 축소판이다.

    양춘단, 대학 가다

    2011년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은 그동안 대학 내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던 노동자들의 존재를 공론화한 사건이었다. 청소노동자는 청소 일을 직업으로 하는 노동자로, 우리에게는 환경미화원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최근 들어서 언론의 집중을 받은 이 사태는 실은 훨씬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소노동자들의 기본권 찾기 투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들의 처우는 쉽사리 개선되지 않고 있고, 눈 돌릴 일이 너무 많은 대한민국에서는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편이다.

    여기 대학에서 일하는 또 한 명의 청소노동자, 환경 미화원이 있다. 양춘단,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우리의 주인공은 주민등록상 나이로는 63세, 실제 나이는 65세다.

    작가는 양춘단이 송정리 시골마을에서 얼마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는지, 그런 그가 왜 서울 아들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 춘단이 어떻게 해서 대학 환경 미화원으로 취직하는지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집안 사정상 초등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늘 배움에 목말랐던 춘단은 ‘대학’이라는 말 한마디에 기꺼이 청소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빽으로 들어와 처음부터 ‘로얄층’을 맡으면서 동료들 사이에서 배척을 당한다.

    춘단이 휴게실에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네다섯씩 모여 도시락을 먹던 무리 중에는 콧방귀를 뀌며 아예 등을 지고 앉아버리는 여자도 있었다. 최 여사가 눈치를 주며 그러지 말라고 해도 미화원들은 잔뜩 심통이 나 있었다. 이번에 5층에 가기로 되어 있던 남씨는 숨기지 않고 아예 들으란 듯이 말했다. 내 참, 더러워서. 이젠 청소도 빽으로 들어오는 세상이네. 춘단은 난생처음 당해보는 냉대에 어쩔 줄 몰라 문 앞에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100쪽)

    환경미화원들의 휴게실인 네 평 남짓한 컨테이너는 몇 년 전 이 대학 환경미화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언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급조된 가건물로 이와 관련해 학내에서 오고간 토론은 우리가 익히 아는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와 마찬가지다.

    컨테이너 박스에 모여든 성씨로만 불리는 사람들은 다들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자들로, 지하주차장 한 켠에 마련된 어둡고 좁고 축축한 컨테이너에서 잠시 쉬거나 급하게 먼지 밥을 먹으며 생활고를 달랜다.

    이들과는 사정이 좀 다른 양춘단은 청소를 끝내놓으면 강의실을 기웃거리며 도둑 강의를 듣기도 하고, 캠퍼스를 오가는 대학생들을 구경하며 대학에 들어온 기쁨을 만끽한다. 어두운 컨테이너가 싫어 자신이 일하는 A관 건물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는 양춘단은 거기에서 시간강사 한도진을 만나고, 둘은 곧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사실은, 내가 그짝 교수 선생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오. 맨날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점심시간만 되면 꼭 여기서 마주치데요. 그때마다 밥은 먹었어요, 그라고 말을 걸어볼라 해도 괜시리 어려워서 못 했는디, 대학에 안 다닐 때는 몰랐는디 막상 대학에 와보니께 대학 다니는 사람한테 말 걸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닙디다.” (107쪽)

    양춘단

    낮은 자의 시선으로, 우리 대학의 풍속도 통해 사회의 안녕을 묻다

    거대한 호수와 코끼리 석상은 이 대학의 명물로 꼽히는데, 그런 명성 뒤에는 오랜 세월 소문으로 다져진 웃지 못할 사연들이 숨어 있다.

    호수는 새만금 간척사업과 궤를 같이하며 매몰 위기에 놓였다가 멋진 조경을 가진 생태호수로 재탄생했고, 제작비보다 운반비가 더 들었을 것이라는 코끼리는 태국 소쿰타빗(실제로는 없는 지명)에 봉사를 나간 대학생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국왕이 친히 보낸 선물이라는 소문이 돌지만 사실은 또 그렇지 않다.

    대학의 비리를 폭로한 대자보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뒤에서 밝혀지는 대자보의 실체 역시 작가 특유의 풍자와 조롱으로 유머러스하게 읽히지만 동시에 씁쓸함을 안겨준다. 최근에 ‘안녕들하십니까’로 다시 대자보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었지만, 스펙 쌓기와 취업을 인생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사실 너무나 생소한 것이기도 하다.

    대자보가 출몰했다. 모두가 무심코 전한 그 말 속에는 마치 기억과 기록에만 존재한, 실제로는 본 적 없는 괴이한 생물체가 늪지대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와 물갈퀴 달린 끈적끈적한 발을 뭍으로 드러냈다는 어감이 숨어 있었다. (…) 대자보는 사라졌지만 그 큰 발이 밟고 지나간 발자국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학교 곳곳에 깊게 파였다. 몇 년 만에 나타난 대자보인가. 학교를 오래 다닌다는 이유로 아버님이라고 불리는 03학번조차 대자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자보가 뭔데요,라고 묻는 09학번도 있었다. 질문을 받은 07학번은 핀잔을 줄 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넌 보고도 모르냐. 아까 니가 본 게 대자보잖아. 09학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157~158쪽)

    교수와 대학원생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한 대자보가 붙자 대학은 발빠르게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학생들은 구시대의 게시판인 화장실에 온갖 비방 글을 남기기 시작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미화원들의 몫으로, 소장이 갖다 붙인 ‘화지특’(화장실 낙서 지우기 특공 미화조)으로 활동하며 정규업무 외에 두 시간을 더 일하게 되지만 추가업무 수당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화지특 활동과 1학기 종강으로 잠잠해진 대학은 2학기 개강과 함께 이번에는 환경미화원들의 시위로 소동을 빚는다. 새로 온 소장과 함께 시급이 깎일 운명에 놓인 미화원들은 난생 처음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는 편지를 정성껏 쓰지만 정작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몰라 골머리를 앓는다. 결국 ‘대학’에게 보내자는 결론을 내린 이들이 생각하는 대학의 실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대학이 누군데?

    결국은 제일 위에 있는 총장이 대학의 주인 아닌가. 아니, 내가 듣기로는 총장을 임명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던데. 대학이란 건 여기 부지랑 건물들을 말하는 거 아니었어? 숫자를 봐, 뭐가 제일 많아? 학생들이잖아. 대학은 학생들을 말하는 거라고. 하지만 학생들을 다스리는 건 교수인데. 교수는 또 총장 밑이잖아. (214쪽)

    용역업체에서 관여할 일이지 본 대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답변을 미화관리 소장을 통해 전달받은 미화원들은 소장으로부터 온갖 모욕을 받고, 이들은 대학과 소장에 대한 반감으로 생사를 건 시위에 나선다. 하지만 “돈보다는 대학에 댕기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춘단은 이 시위에서 빠진다.

    문제는 공권력이 투입되고, 용역업체가 바뀌고, 춘단을 제외한 미화원 전체가 물갈이되는 것으로 해결된다. 영문도 모른 채 총장 담화문을 통해 ‘대학의 의인’으로 하루아침에 둔갑한 춘단은 모든 것이 궁금하다.

    춘단은 물어보고 싶었다. 어제까지 저 그림자 속에 놓여 있던 그 많은 팻말은 어디로 갔는지, 천 명의 서명을 받는다던 공책은 누가 가져갔는지, 이곳을 떠나선 갈 데가 없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어디로 떠났는지. 그러나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70쪽)

    유니폼만 푸른색에서 회색으로 바뀌었을 뿐 새로 온 사람들의 살아온 이력은 그 전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간병일을 한 적 있는 최 여사와 아픈 부인을 둔 빚이 많이 이씨와 공무원이던 한씨가 나간 자리에 역시나 병원 신세를 진 적 있고 한때는 국가를 위해 일했고 월급으로 빚을 갚아나가는 사람들이” 들어온 것이다.

    춘단을 가장 헛헛하게 만든 사건은 시간강사 한도진의 자살이다. 호수에 시체가 떠오르면서 호수는 더 이상 대학의 명물로 남을 수 없게 되었고, 대학은 어수선한 학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특별 강사를 부르는 등 학생들에게 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언제나 그렇듯 잠깐 떠들썩했던 학생들과 언론은 다시 잠잠해진다.

    하지만 춘단은 자신에게 배달된 한도진의 일기장 때문에 내면의 혼란을 겪는다. 부모형제도 아니고, 경찰이나 학교도 아니고, 자신에게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골똘하게 생각한다. 그러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도진의 존재를, 시간강사의 자살 문제를 알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춘단은 비로소 대학에 있는 자기 모습이 아닌, 대학 환경미화원으로서의 존재를 자각한다.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자신도 그들이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대학 생활 4년 가운데 남은 3년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춘단은 걸음을 멈추고 이제껏 살면서 한 번도 눈여겨본 적 없는 그림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희미한 형체지만 분명 살아 있기는 한데 말을 걸어오지는 않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다들 밟고 다니니…….

    나로구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절대 나이 들지 않을, 영원히 젊고 배운 사람들로만 가득 차 있을 이곳에서 쓰레기 봉지를 어깨에 멘 채 복도를 오가는 춘단은 벽에, 바닥에, 때로는 누군가의 발등 위에 겹쳐지는 작은 그림자였다. (305~306쪽)

    21세기 판 <고리오 영감>

    작가는 양춘단이 대학에서 겪는 사건들을 촘촘히 엮는 한편, 그가 태어난 1944년부터 2009년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양춘단을 비롯한 인물들이 어떤 인생역정을 거쳤는지 기발한 방식으로 펼쳐 보인다.

    양호익의 태몽에 의하면 조선을 이끌어갈 대석공의 아들로 태어날 운명이었으나 오빠의 배냇저고리를 물려받을 딸로 태어난 양춘단은 뒤늦게서야 출생신고를 하게 된다. 아들들은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를 했으면서도 유독 춘단의 경우엔 일본 놈들 호적에 올려야 무슨 소용이나며 미루던 아버지다. 그는 1945년 8월 중순 연장을 새로 맞추러 뭍으로 나간 김에 출생신고를 하러 면사무소에 들렀다가 나라가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에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연결하여 자연스레 보여준다. 1950년 한국전쟁과 폐허가 된 나라에서 새롭게 불타오른 교육열이라든지, 이후 시골마을에까지 불어닥친 교회 열풍과 그로 인한 폐해,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새마을운동, 80년대 독재정권과 운동권,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재개발, 새만금간척사업, 상업적으로 변하는 대학과 하다못해 도로명주소 전환까지, 우리 사회 변화의 흔적을 무심하게 인물들 뒤로 숨겨버린다.

    이런 시대적 굴곡은 인물들 뒤로 철저하게 숨지만 오히려 더 크게 부각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춘단과 영일이 장남 종철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끊임없이 나오지만 그가 왜 죽었는지는 정작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뒤에 시간강사가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면 종철의 죽음과 자연스레 이어진다.

    엄메 아베요, 나는 지금도 종철이가 왜 그라고 차디찬 물속으로 들어가서 지 목숨을 끊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오. 아주 나중에…… 종철이 가고 ㅤ몣 달 지나서 종철이랑 이름도 학교도 나이도 똑같은 애가 그해 초에 경찰헌티 고문을 당해서 죽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긴 했는디 그냥 참 ㅤ볠 일도 다 있다, 그러고 말았지요.

    나는 자슥을 잃고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이날 이때까지 살았어라. 죽은 사람이 있으면 죽은 이유도 있을 틴디. 나는 그걸 알아볼 생각도 없이 참말로 천치마냥……. (291쪽)

    차남 김종찬의 집 1층에는 춘단 부부가 쓰는 큰방 말고, 작은방이 하나 더 있는데 서성환이라는 하숙생이 산다. S대 법학과 출신으로 고시 공부한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바가 없는 그는, 밥 먹을 때 말고는 식구들과 거의 마주치는 일이 없으며 늘 방에 틀어박혀 지낸다.

    춘단이 대학 가는 기념으로 산 오렌지색 가방을 메고 첫 출근하는 날, 그날따라 새벽같이 부엌에 나와 있던 하숙생은 춘단의 가방끈을 줄여주며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살가운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결국 이 수상한 하숙생의 정체는 수배중인 노동운동가로 밝혀진다. 게다가 춘단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가방을 통해 버스정류장에서 지령이 오고갔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이를 경찰 조서를 통해 전달하는데, 사건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알게 됨과 동시에 경찰이라는 조직이 갖는 특수성, 그들의 수사 관행이나 어떻게든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가려는 모습까지 자연스레 전해준다.

    지극히 속악한 세상과 맞짱을 뜨다

    작품은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 현재까지 두 세기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시종일관 변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춘단은 대학에서 난생 처음 거대한 코끼리 석상을 보고, 한때 마을 뒷동산에 우뚝 솟아 있던 아버지 양호익이 조각한 예수상을 떠올린다. “남이 알아주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를 도 내에서 겨룰 자가 없는 기술자이자 예술가라고 자부하는” 그는 개척교회 목사의 주문으로 커다란 예수 석상을 조각하는데, 예수의 표정을 놓고 목사와 그가 벌인 대화는 그대로 한편의 코미디가 된다.

    “여기 그림도 이렇게 웃고 있지 않허요.”

    “이게 어디가 웃고 계시는 겁니까. 슬픔을 참고 계시는 표정이지요.”

    “슬픔을 참고 있는 거라고요? 워디가……. 아니 암만 봐도 웃고 있는디. 여기, 눈은 반달처럼 감고서

    여기 입꼬리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지 않허요.”

    “아니요. 예수님에 대해선 제가 더 잘 압니다. 이건 웃고 계신 게 아니에요. 말로 다하지 못하는 고통을 속으로 감내하고 계신 거라고요.”

    “아니, 그란디 웃으면 또 워때서요? 예수님은 웃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소.”

    양호익은 절대 그런 법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물었는데 목사는 정말로 그런 법이 있는 것처럼 훈계를 했다.

    “세상이 기쁨 천지이고 사람들이 다 행복하기만 하면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올 필요가 있겠습니까? 세상이 고통스럽고 슬픔 천지니까 구원하러 오시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땅의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러 오신 예수님이 혼자서만 이렇게 웃고 계시면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양호익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도 우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라? 애고 어른이고 우는 소리는 이제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나는디.” (85~86쪽)

    양호익은 결국 목사의 주문에 충실하게 참담한 세상과 그 고통을 끌어안고 있는 예수의 표정으로 조각한다. 양호익의 예수상이 남평구를 상징하는 대표적 지표가 되고, 신도들의 수가 늘어나고, 교회가 번창할수록 마을 사람들은 살림과 농사일에서 벗어나 교회 활동에 매진한다.

    교회가 세워진 지 5년째 되는 추수감사절에 마을 사람들이 예수상 앞에 오곡백과를 쌓아놓고 하루 종일 통성기도를 드리면서 울부짖는 모습을 본 양호익은 마음이 불편하다. “술을 좋아하고 노래를 즐겨 부르던 남평구 사람들의 얼굴이 사는 기쁨은 하나도 없이 고통으로만 일그러져 있음”을 목격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난 늦가을, 사람들은 주먹만 한 크기의 돌멩이들로 돌아간 신을 마주한다. 마을 사람들은 겨우내 예수상에 관한 갖가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지만 봄이 되자 다시 예전의 그들 모습으로 돌아가 봄을 기뻐하는 노래를 부르며 농사일을 돌보기 시작한다.

    <고리오 영감>에서 젊은 청년 라스티냐크는 결국엔 속물적인 세상과 타협을 하기로 마음먹지만, 우리의 양춘단 할머니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기발한 방식으로 세상에 저항한다. 결코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대한 코끼리 상과 홀로 맞서 싸우는 춘단의 도발은 상아탑의 권위, 더 나아가 속악한 세상에 도전하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보여준다.

    다들 자신의 피에 담긴 누군가를 흉내내고 있었다. 실패는 반복되고 인간은 대를 이어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춘단은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코끼리를 두드렸다.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이어진 그 나쁜 고리를 끊어내려면 손이 부서지도록 망치질을 해야 했다. (355쪽)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고 도는 것처럼 우리 인류의 역사는 지리멸렬하게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양춘단 대학 탐방기>에서도 한 세기가 바뀌고, 그야말로 격변하는 역사를 거치면서도 사회는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양춘단의 아버지처럼, 양춘단처럼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세상과 한판 붙어야겠다 마음 먹는다면, 그래서 작은 인식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거대한 돌덩이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작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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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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