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설극장과 콩쿠르 대회
    [이기순의 생애 이야기] 어무이가 받은 연애편지
        2014년 02월 27일 01: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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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순의 생애 이야기-2 링크

    아부지가 엄해서 어디를 못댕기게 헝게, 칭구들 만날려면 큰집 간다고 거짓말하고 가는 거여. 그 때는 콩쿠르 대회니 가설극장, 그런 게 가끔 들어 왔거든. 그럼 그런 거를 을매나~ 을매나 가고 싶었겄어? 근디 아부지가 다 큰 가시나가 사람 많은 데를 머하러 가느냐고 못 가게 허고, 마당서 지키고 섰는 거여. 멀기도 혔어, 그 하는 데가. 그려도 다른 칭구들은 많이 갔었제. 남동상들은 댕겼제.

    한번은 “울을려고 내가 왔던가….”(가수 고은봉의 가요 “선창”의 가사 첫 부분을 영화의 제목으로 한 “울려고 내가 왔던가”.(김화랑 감독, 1960년 개봉. 김진규, 도금봉, 엄앵란, 황정순, 황해, 최남현 등 당대의 유명 배우들이 총출연한 영화)), 그 가설극장이 들어왔는데, 칭구가 그 활동사진을 보고 와서는, 너무너무 잘되았다고 자랑을 하드라구.

    그려서 걔랑 그걸 또 보러 가기로 약조를 허고 눈치를 보는 거제. 한번 오면 여러 날을 하거든. 근디 그 날 꿀 장사가 우리 집서 진주각을 혔었어. 여관처럼 밥 먹고 자고 쉬고 하는 거가 진주각이여. 장사꾼들이 우리 집서 진주각을 많이 혔제. 근디 그 꿀장수가 나랑 칭구랑 하는 소리를 듣고는 아부지헌티 일른 거여. 그랑게 아부지가 마당을 지키고 섰는 거제. 그려도 가고 싶어서, 아부지 모올~래, 나가서 입을 옷보따리를 뒷마당 돌담 울타리로 먼저 넘기고, 나는 개구녁으로 기어서 빠져 나왔어.

    울려고내가왔던가-도금봉1

    영화 ‘울려고 내가 왔던가’의 배우 도금봉

    아부지가 난중에사 알고서는 어무이헌티 난리를 치면서, 나를 끌고 오라구 보낸 거제. 어무이가 날 찾으러 가설극장에를 왔던 가벼. 근데 커다란 천막 안에 사람도 빽빽허니 찼을 거 아녀. 게다가 돈도 안들고 왔으니 들어가지를 못혀지. 딸년 찾으러 왔다고 말을 허면, 사람 많은 데서 우세를 하는 거고. 그려서 그냥 집으로 갔 던 가벼. 다 끝나고 깜깜헌데, 심장이 두근두근 하매 다무락 구녁으로(담장 구멍으로) 기여드는디, 아~ 귀신이 따악 섰는 거여. 을매나 놀랬겄어~?

    근디 우리 아부지는 천날 가도 때리지는 않였어. 대신에 무르팍을 따악~ 꿀려 앉혀놓고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소리도 크게 안내시고, 조곤조곤 나무라면서, 말을 한도 끝도 읎이 하는 거여. ‘말만허게 큰 가시나가, 그런 데를 가믄 쓰겄느냐? 안쓰겄느냐?, 동네서 나쁜 소문나믄 너나 어무이 아부지나 좋겄냐 안좋겄느냐?’를 해쌈서, 그냥 ‘세월아~ 가라~’ 하매 날이 새도록꺼정 그라고 계시는 거여.

    아무리 충청도 양반이래지만 그르케 느려 터지구 거시기 헐 수가 없는 거여. 나는 차라리 퍼뜩 몇 대 맞고 들어가 잠이나 잤으믄 쓰겄그만, 그걸 붙들어 꿀려 앉혀놓고,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고~ 하염읎이 끝을 안내며 “되긋냐? 안 되긋냐?“를 물어쌌고, 나는 답을 해야헝게 ”안되겄네유~~“를 수도 없이 해쌌구. 아구~ 내가 졸려 죽겄구 속이 터져서 나가 자빠지겄드랑게~.

    하하하~ 지금사 말구 웃제, 그 때는 참말로 죽겄드랑게~. 눈에서는 주먹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열댓살 넘어서나 되았을 거여, ‘울을려고 내가 왔든가?’ 그 게~. 그 때 혼나매 울매 하며 속으루, ‘울을려고 내가 봤든가?’ 그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당게~ 하하하~. 그려서 그 제목이 안잊어지는 거여. 그려도 또 오면 어뜩케든 해서 또 봐~. 안볼수가 있어? 을매나 보고싶은디~그 시골 깡촌에 천막극장이 들어옹게~. ‘팔도강산’이니 ‘벙어리 삼룡이’니 그런 활동사진도 봤제.

    콩쿠르 대회도 했어. 연극이랑 노래자랑 그런 걸 해서, 상도 주구 하는 거여. 한번은 바로 집 근처서 그걸 혔어. 무대에 올라가서 칭구들이랑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하는데, 나도 연극을 혔어. ‘이수일과 심순애‘ 그 걸. “우~울려고 내가 왔던가” 그 노래도 혀고. “잡지마라 잡지마라 잡으면 찢어진다.” 함서 발로 탁 차내고 하는 거. 내가 심순애를 했었제. 코트를 차악~ 걸치고 있는 남자 바짓 가랭이를 잡음서 울고 못 가게 늘어지는, 그 심순애를 혔어.바로 집 근처니께 아부지도 못가게를 안혔어. 나보고 칭구들이랑 동네 아짐들이랑 모두 잘한다고 박수를 치고 소리를 치고. 우리 연극이 일등을 했었제~.

    어려서 동네 뒤 높은 산에 “호랭이굴”이라는 데가 있었어. 거기서 호랭이가 새끼도 낳고 산다고 다들 무서워라 하는데, 나는 거그를 혼차 가서 들여다보고 그렸어. 호기심이 많아서 무서운 줄도 모르는 거제.

    밤이면 큰집 간다고 거짓말을 혀고는, 톱이랑 횃불을 들고 냇물에 고기 잡으러도 많이 갔제. 불이 환하니께 고기가 훤히 보여. 고기들이 자다가 말고 불빛에 깨서는, 정신이 읎응게 도망을 못가그든. 그걸 톱등으루다 물을 가르면서 잽싸게 후려치면, 고기가 기절을 하는 거제, 죽기도 하고. 그럼 그걸 주서 담는 거여. 냇물에 고기도 그르~케나 많았어. 꼬치장이랑 쌀을 미리 감춰뒀다, 그걸 잡아서는 밤에 냇가에서 매운탕을 해 먹는 거제, 마늘이니 호박도 낮에 미리 서리들을 해놓고. 다 그 칭구네들 밭이지 머~. 그러고는 모욕들도 같이 하매, 한바탕 노는 거여.

    아부지가 매운탕을 좋아하시니 일부러 한 그릇을 떠놓지. 밤에 냇물서 놀았다고 하면 난리가 낭 게, 아부지헌티는 큰집서 매운탕을 해왔다고 허고. 두 집서 늘 음식이니 반찬을 해 날르고 했응게, 아부지는 머 그런가 부다 하고 잘 잡수시지. 그거 해서는 안 들켜봤어, 하하하~.

    복숭들을 사먹으러 과수원을 갈라믄, 미리 보릿쌀을 감촤놔. 내가 살림을 맡았으니께 돈 될 거 감촤놓는 거는 얼마든지 혀거든. 어무이랑 아부지는 보리구 고구마구가 을매나 있는가 을매나 굴었는가 관심도 읎응게. 장돌뱅이니 행상이니 우리 집서 먹는 사람이 많응게, 그런 걸 따질 생각도 안쿠.

    어무이 아부지헌티는 또 큰집 간다 하구는 집을 나오는 거여. 가서 자고 온다 그려도 큰집은 괜찮혔어. 난중에라도 들킬까봐, 오분 거리에 있는 큰집 들러서 사촌 여동상을 데꾸 가는 거여. 갸를 업구 그 위 동상을 걸리구, 큰아부지헌티는 “야들 데꾸 가서 모욕하구 오께~”하구 거짓말을 치구 나오는 거제. 동네에 내 또래들이 솔찮혀서(꽤 많아서.), 열댓 명은 되았어. 밤에는 여자들만 여서일곱이 가는 거여.

    한 번은 한 밤에 복숭을 한~ 보따리를 사서 둘러앉아 먹구 있는 디, 동네 구장이라는 냥반을 거기서 만난 거여. “너그들 이 밤에 왜 여그 있냐?” 지나가는 말루 그러는디, 나는 괜시리 겁이 확 나~. 도둑이 제 발 저린거지 머여 그게~. 작은 아그를 업구 큰 동상은 손을 잡구, 마악 산으로 도망을 쳤어. 근디 또랑을 건너다가는 업은 아그를 떨쳤어. 아그가 또랑에 쳐박혀가꾸, 막 울고 난리가 난 거제. 애들도 다 흝어져 부렀어.

    그 구장이 남두 아니구 먼 친척으로 오빠되는 냥반이여. 머한다구 산으로 도망을 갔능가 몰러~. 아그가 소리내서 웅게 더 겁이 나서 입을 틀어막구, 옷을 벗어서 아그를 딲아놓구 물에 가서 씻기고, 일르지 말라고 다짐다짐을 혀고~ 하하하. 시방도 사촌동상 만나면 그 야그들을 함서 깔깔대구 웃는다닝께.

    뚝허면 큰집서 동상들하구 밤새 웃고 떠들고 노는 거제. 그 집에는 딸만 있으니 재밌잖혀. 우리가 밤새 웃고 떠들면 큰아부지가, “너그들은 머이가 그리 좋아서, 밤새 잠도 안자고 웃어쌌냐?” 함서 야단도 안치시제~. 밭 서리들도 몰려다니면서 많이 혔어. 오늘은 우리 밭, 니얄은 니네 밭 해감서. 명일에는 여자들끼리 모욕도 하구. 더 어려서야 머 남녀 그랑 것도 모르고, 같이 빨개 벗고 모욕하고 그렸지.

    솔직을 헐려면 마음이나 솔직허니 말을 혔어야지이~

    집이 하도 엄한 게 사춘기 머 그런 거도 잘 몰렀어. 근디 나를 좋아하는 동네 총각들은 많았제. 그려두 만나서 말을 하거나 그런 거는 읎어. 동네서야 ‘아무거시 딸, 누가 데려갈 지 복덩이다’ 그런 말들은 많았제. 집 근처 동산 너머 한 총각이 나를 좋아한다고 칭구가 그러드라구. 그 사람은 대핵교꺼정 나오고 박대통령 상까지 받은 사람이여.

    솔직허니 말허지만, 그 사람하구 나하구는 따로 약속을 혀고 만나고 헌 적은 읎어. 집이 잘 살았제. 그 아부지가 면에서 멋 좀 보고, 형제들도 다 빵빵허니 거시기 혀고. 그르니 잘생기고 잘났다는 거는 들었는디, 만나본 적은 읎었지. 칭구 하나랑 어딜 가다가 멀리 그 남자가 섰는 거를 보고, ‘저 사람이 너 좋아하는 그 남자다.’ 혀서 얼굴이나 아는 정도였지. 나도 마음에는 있었지만, 아부지 무섭구 동네 말 무서워서, 으뜨케 해본 적이 읎었어.

    그 사람 말구 동네 시영오빠 한 사람도 나를 좋아혔어. 그 때는 시영오빠 시영언니 그런 게 많았거든. (팔뚝에 검푸른 점 문신을 보여주시며) 이게 전라도서 시집온 시영언니랑 한 거여. 하도 가난혀서 글루 팔려서 시집온 성(누나 또는 형님을 일컫는 충청도 방언.)이였제.

    그 성 서러운 거랑 시집살이 야그를 들으매 친해져서는, 나랑 언니동상을 삼은거제. 나는 언니가 읎응게 언니 있는 게 너무 부러워서, 둘이 의형제를 삼았제. 바늘에 실을 꿰서 먹물을 묻혀서는 살을 꿰~. 나는 그 성을 해주고, 그 성은 나를 해주고. 이런 게 내 팔에 많았었제. 다른 거는 다 지워지고, 이거 하나만 남은 거여.

    시영오빠를 삼기도 혔어. 좋아하고 머 그런 게 아니고, 순수허니 시영오빠를 삼는 거여. 열여섯 열일곱에 한 동네 오빠랑 시영오빠를 삼았는데, 나는 진짜루 오라버니 읎는 게 너무너무 아쉽고 그렸어. 다른 게 그르케 부러웠으면 진짜 도둑질이라도 했을 거여. 근디 오라버니를 으뜨케 도둑질을 하느냐구? 그르니 시영오빠를 삼은 거제.

    그걸 아부지가 알았으면 난리가 났겄제. 절대로 아부지헌티는 모르게 허고, 어무이헌티는 말을 혔어. 어무이 친정동네 사람인데, 어무이도 머이라고 안하드라구. 따지자면 먼 친척잉게, 자주는 아니더라도 편케 드나들던 사람이지. 어무이두 큰애기 쩍에 시영언니오빠 그런 걸 했었드라구. 나는 다른 맘은 증~말루 하나두 읎고, 진짜 오라버니로만 대혔는디, 어느 날 그 시영오빠가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드라구. 애인으루 생각을 한다구. 그려서 “나는 아니다” 딱 잘라 거절을 혀고, 그 뒤로는 절~대로 안봤지. “너하구 나하구 연애를 허며는 안되긋냐?….” 그 얘기를 하드라구.

    동산 너머 집 총각 이야기가 나오다말고 싹둑 잘리는 듯하여, 되짚어 물었다.

    (이기순) 동산 넘어 집 그 남자? 싫지는 않구 설레이기도 혀구 그러기는 혔제~. (한참 뜸을 들이시다가) 솔직허니 말혀서….. 설랬던 사람은 딱 그 사람 하나여. 한번은 “대평”이라고 십리를 나가는 디서 콩쿠르대회가 있었어. 그려서 또 큰집서 자고 온다고 거짓말을 치고는 거기를 간 거제. 근디 거기에 그 남자가 왔드라구. 나를 보고는 일부러 가차이 와서 반가와 하믄서 ‘귀경 나왔느냐?’고 말을 시키드라구. 암말도 안혔지~. 그르니께 오늘 기분이 좋으니께, 자기가 무대 올라가서 노래를 하긌다 그러는 거여. 나보다 서너살 많었어. 근디 노래한다구 무대 올라가는 거를 보고는, 무서워서 그 길로 도망을 왔어, 나가….

    (최현숙) 허이구~, 이 깝깝한 양반아~. 마음 설렌 총각은 그 하나였다며, 빼더라도 적당히 좀 뺏어야지~~

    (이기순) 그르게 말여…. 바보제~. 시방 생각으루는 그려~. 근디 그 때는 맥읎이 겁이 나고 발발 떨리더라구. 그르다가 그 남자가 나하구 결혼을 허고 싶다고 하도 그려 싼 게, 난중에는 동네 구장, 그 복숭 사먹다 들켰던 그 구장을 세워서는 말을 넣은 거여, 그 남자 어무이가, 사돈삼자고 딸을 우리헌티 여의면(시집보내면) 안되겄느냐고. 참~, 그러기 전에 그 남자가 한번 나헌티 편지를 보낸 게 있었제. 사람 시켜서가 아니구 우체국으루 혀서. 근디 그 편지를 우리 어무이가 받은 거여.

    우체부

    1960년대 시골 우체부의 모습

    (최현숙) 하구~ 그 총각두 깝깝하구만~. 우체국으로 해서 부치면 누가 받을 줄 알어? 사람을 시켜서 몰래 줘야지…. 막상막하구만, 그 처녀 총각이~

    (이기순) 아녀~, 혔어~, 많이 혔어~. 사람을 시켜서 여러 번 보냈어~. 근디 나가 안받응게, 결국은 우체국으루다 해서 보낸 거여. 편지 말구두 사람을 시켜서 나를 만나자고 여러 번을 그렸는디, 나가 그저 모르는 척을 헌 거여, 바보여~. 싫지는 않았는디, 설레구…. 거시기두 혔어. 근디 사귀고 그런 걸로 남자 만나는 건 생각도 못혔던 거여. 설레기는 혀는디, 왜 그르케 무서웠나 몰러~.

    그 때는 남자하믄 그저 오라버니만 바랬던거여, 오라버니 읎는 거만 아쉽고 부럽고 그렸던 거여. 오죽 속이 탔으면 우체국으로 해서 편지를 보냈겠어? 잘못허면 으른들이 받을 줄 알면서두. 아닌 게 아니라 그 편지를 어무이가 받은 거여. 그라구는 글자를 모릉게 그 구장헌티다 보여준 거여, 글씨~~. 무슨 편지가 왔는데 누가 보낸 거냐고, 머라고 써졌느냐고 물은 거제~. 그랑게 구장이 “이 집 큰딸헌티 온 거그먼유~” 하매 ‘아무거시 큰아들이 보낸 거라’고 알려준 거제.

    편지 내용은 난 모르지~ 어무이헌티야 읽어줬겄제. 근디 나헌티 그걸 말을 혀? 나두 궁금허기야 혔지. 근디 편지를 찢어버리구는 나한테는 야단만 치는 거여. 아니, 내가 멀 혔다구? 편지 거시기나 알려주구 야단을 치든가~. 그러구는 더 단속만 심해진 거여, 말만한 딸년 어트케 될까봐서. 그르니 그 남자는 더 애가 닳아하구, 결국 그 집 어무이가 며느리를 삼자구, 구장을 세워 정식으루 말을 넣었던 거제.

    남자가 키는 작아도 잘 생기고 똑똑혔어. 그 남자 아는 사람들은 다 그 말을 혔고, 나도 거시기혔고. 난중에 어무이가 나헌티, ‘그 사람이 너를 많이 좋아하고, 그 부모들까지도 며느리를 삼고 사돈을 하자는디, 니 맘은 어떠냐?’ 하고 묻더라구. 그 편지만 아니었어두 나는 싫다고 안혔을틴디, 그 편지 땜에 내가 “좋다~“ 그 소리를 못혔어. 편지가 들통이 났응게 내가 무신 연애하다가 시집갔다고 그 소리 날까벼, 싫다고 혔어, 맴은 그게 아닌디~…. 기여~, 내가 복을 찬 거여. 내가 그르케 바보여. 그 남자는 나 아니면 장가 안간다고 혔다드라구. 그르다가 내가 다른 데로 시집을 간 거 아녀~. 솔직허니 말하지만 손도 한 번을 못잡은 거여~.

    (최현숙) 먼 노메 얼어죽을 솔직허니를 육십년이 지나서도 그렇게 찾아싸요~? 솔직을 헐려면 그 때나 마음을 솔직허니 말을 혔어야지이~~ (내 말투도 어느 새 충청도 사투리로 바뀐 채, 스무살 충청도 촌 색시한테 속이 터지고 있었다.)

    (이기순) 그르게나 말여~. 내 평생의 젤로 큰 후회여~, 그게. 그 콩쿠르 대회가 마지막이었지. 그 후로 딱 한번 보긴 봤어. 시집가서 딸 낳고 어찌하다 부산 살 때여. 이불을 널려고 마당을 나갔는디, 그 남자가 집 앞을 지나가드라구. 그 사람은 나를 못봤는데, 나는 봤어. 을~매나 놀랬던지 이불 널려다말고, 후닥딱~ 돌아 들어왔어. 그라구는 못 봤어, 그게 끝이여~. 나 시집가고도 그 남자는 한참을 선도 안보았다드라구. 시집갔다 혹시라도 다시 오면 나랑 혼인하겠다는 소리까정 허면서. 장개도 늦게 갔어. 난중에 늦게 늦게 외지 사람하고 혔다드라구. 내가 시집가서 힘들게 살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드라구. 어무이도 난중에 내가 사는 게 하도 거시기 허니께, 그 사람 야그를 하드라구.

    결혼 전 사주단자가 왔을 때, 남동상이 매형될 사람헌티 그 남자 야그를 한 거여. 누나가 을매나 좋은 혼처자리가 많았는지 아느냐며, 동상은 그냥 나 세와줄라구 한 거제. 근디 남편은 그 남자 야그를 을매나 을매나 울거먹어싸며, 의처증이 심혔는지~. 말도 마슈, 그 말 땜에 내가 당한 거는. 심지어 큰애가 그 남자 아그가 아니냐는 억지까지 하드라니께. 지가 날짜를 따져보면 몰르겄어? 그냥 억지소리를 하는 거제. 나는 솔직허니 말혀서 말 한마디를 안혔는디~. 근디 시방은 한번 보고 싶어. 증말 한번만이라도 봤으면 좋겄어. 시방은 연애라도 허자 그러믄 허겄어~.

    그라구봉게 또 있었네~. 내 칭구 어무이가 무당이었는디, 그 어무이가 시영아들을 삼은 총각이 나를 많이 좋아혔어. 칭구 말이 상사병이 걸려서 다 죽게 됐다드라구. 근디 나는 머 아무 생각도 읎고, 직업도 뚜렷혀니 읎는 사람이고 한 게, 좋지를 않혔지.

    필자소개
    1957년생 / 학생운동은 없이 결혼/출산 후 신앙적 고민 속에 1987년 천주교사회운동을 시작으로 “운동권”이 됨. 2000년부터 진보정치 활동을 하며 여성위원장, 성정치위원장 등을 거쳐, 공공노조에서 중고령여성노동자 조직활동. 현재 서울 마포에서의 지역 활동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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