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사회민주주의를 위해
    제3의 길 사민주의로는 사민주의 미래 없어
        2014년 02월 26일 02: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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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2일 사회민주주의센터의 ‘사민저널’ 창간 기념 토론회에서 조원희 선생이 발표한 세 논문의 하나인 ‘21세기 사회민주의를 향하여’를 필자와 사회민주주의센터의 양해를 얻어 게재한다. 이 글은 ‘사민저널’ 홈페이지(링크)에도 실려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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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이념의 소진과 황폐화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근현대의 기본적 정치경제 이념은 자유주의(보수)와 사회주의(진보)이다. 이 두 이념은 자본주의라고 하는 근현대적 경제사회 체제에 인간이 정치적으로 개입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개념 틀을 제공한다. 19세기 이래 이 두 이념은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기획(버전)으로 구체화되면서 서로 각축을 벌이며 두 세기에 걸친 역사 발전을 이끌어왔다.

    먼저 등장한 이념은 자유주의였으며 그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적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라는 기획으로 19세기 초중반의 유럽을 지배하면서 절대 왕정과 봉건적 경제사회 질서의 해체에 크게 기여했다.

    19세기 중반에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출현해 급속히 성장했다. 급기야 19세기 후반에는 제1인터내셔널 및 제2 인터내셔널과 함께 유럽에서 사회주의적 노동계급 정당의 정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데, 그 정당들의 이념은 당시 사회민주주의라고 불렸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정치적으로 각축전을 벌이면서 서로 헤게모니 다툼을 벌였는데, 양 진영 간의 경쟁과 협력은 결과적으로 봉건 잔재의 제거와 보통선거권의 확립 같은 일반 민주주의의 발전과 그리고 민족국가의 형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고전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모두 19세기 말 이래 서구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타락해 서구 열강이 적대적으로 경쟁하면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현실에 무기력하게 대응했으며, 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쇼비니즘)의 이름으로 진행된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했다.

    양자 모두 러시아의 레닌이 20세기 초반에 주창한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제국주의 전쟁 반대, 식민지 지배 반대에 속수무책으로 대응했다. 게다가 러시아혁명과 연계되어 조선 등 식민지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 피압박민족 해방운동에도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양자 모두 – 스웨덴 등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를 제외할 때 – 1930년대의 대공황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지하지 못했다.

    따라서 양자 모두 정치경제적 위기의 누적과 그 폭력적 해법으로 등장한 나치즘, 파시즘의 집권과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발생도 막지 못했다. 그 결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변방인 러시아와 중국 같은 후진국에서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이념이 승리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경험하면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과거에 대한 반성 위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자유방임 상태로 방치할 경우 스스로의 모순으로 경제위기가 심화된다는 사실, 그 결과 빈부격차 등 계급적 모순이 위험한 수준으로 격화된다는 사실, 이렇게 되면 자유주의적 정치 자체가 적대 세력의 공격에 견딜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유주의자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념을 버리고 수정 자유주의 또는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로 변신했다.

    사회민주주의 역시 한편으론 혁명적 사회주의를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 경제에 대한 적극적 국가개입과 자본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통제, 그리고 소득재분배와 같은 새로운 방향의 경제사회 정책을 통해 시장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곧 민주적·점진적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희망이었다.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체제를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조하려는 사회민주주의와 수정자유주의의 경쟁적 노력은 결과적으로 전후 선진국들에서 대번영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이 빈부격차 심화와 빈발하는 불황과 공황을 동반했던 19세기 중후반과 20세기 초반과는 반대로,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 이후 1970년대까지 서구에서는 빈부격차가 축소되고 불황과 금융위기 등이 억제되어 안정적인 시장 경제 관리가 상당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경제성장율 또한 그 이전 시기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삼십여 년 간 지속된 이 대번영의 시기에 서구에는 (사회)민주주의가 우세를 점하고 (수정)자유주의가 상대적으로 열세이면서도 양자 간에는 서로 평화적인 경쟁과 협력의 관계가 유지되었다. 사회민주주의와 수정자유주의는 모두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 규제된 또는 조정된 자본주의와 복지국가를 만들어내자는데 합의했다. 그것은 대타협 또는 ‘합의의 정치’라고 불렸다.

    비그포르스

    스웨덴 사민당의 이론가 정치가 비그포르스

    파산한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그렇지만 양자 간의 평화적 경쟁과 타협의 정치는 1970년대 중후반에 깨졌다. 서구 자본주의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동시에 인플레가 가속화하며 실업자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전후 합의 체제’가 속수무책으로 갈팡질팡하게 되자,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자유주의의 고전적 요소들이 다시 등장했다.

    자유주의는 다시 그 본연의 뿌리로 돌아가 급진화하기 시작했다. 수정자유주의는 폐기되고 고전적 자유주의가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부활했으니, 그것을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198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는 마가렛 대처 수상,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영국과 미국에서 집권 세력으로 등장했는데, 그 이후 신자유주의의 이념은 IMF와 세계은행, WTO와 OECD 같은 국제적 경제기구들을 지배했으며, 또한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와 유럽중앙은행(ECB)의 탄생과 성장을 이끌었다. 이렇듯 신자유주의는 2008년 말 글로벌 경제위기가 도래할 때까지 30년간 전세계를 지배하는 헤게모니적 정치 기획으로 득세했다.

    그 뿌리로 회귀한 자유주의의 현대판 버전인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자신을 내세웠나? 공산주의(혁명적 사회주의)를 급진과격(radical)한 사상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급진 과격’이라는 표현이 진보적 이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 신자유주의의 이념과 그 정치운동이었다.

    그것은 급진적인 규제 완화와 사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자유화(개방화), 복지축소를 내세우면서 그 뿌리로 돌아가 19세기적인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급진적으로 복구하고자 했다. 더구나 자유 시장 원칙을 경제를 넘어 모든 사회 영역에 침투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정신과 영혼까지 이기성과 황금만능주의, 개인주의로 철저하게 개조하려한 매우 근본주의적인(fundamentalist) 사상이었다.

    종교적 근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의 정신에 따라 구성된 세계 체제는 결국 고삐 풀린 자본의 투기와 버블을 야기했으며 또한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와 국가 간 양극화를 야기하면서 2008년 말에 스스로 내파(implode)했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21세기 버전인 신자유주의로는 더 이상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한편, 20세기의 혁명적 사회주의는 소련에서 공산주의 -그들의 용어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도 불린다-로 진화했다. 혁명적 사회주의는 세계의 여러 후발국들, 특히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와 지역들로 수출되었으며, 그곳에서 민족해방 인민민주혁명(NLPDR)의 이념 형태를 취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이념은 제3세계 또는 개발도상국의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자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 이념은 중국과 , 그리고 한반도와 같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맹위를 떨쳤다.

    그렇지만, 주지하듯이 이 이념은 1990년대 초반 소련 및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의 화려한 성과를 배경으로 세계사적으로 더 이상 의미 없는 이념으로 전락했다. 그렇지만 한반도의 경우,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이 이념이 아직도 진보적 이념인양 수용되어 잔존하면서 한반도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진보 정치의 미래 기획을 가로막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민주주의는, 1990년대 중반 영국의 토니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제3의 길’을 천명한 이래 마르크스의 사상을 최종적으로 버리고 결과적으로 사회주의라는 뿌리를 잘라 버림으로써 사실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변신했는데, 그 결과 유럽의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미국의 민주당처럼 되어버렸다.

    영국의 경우 토니 블레어가 이끈 제3의 길 노동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은 직접적인 책임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리스와 스페인의 경우 집권 사회민주당은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복지축소와 노동권 축소, 재정긴축을 요구하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신자유주의적 주장을 스스로 지지함으로써 사실상 자유주의 정당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판명됐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사회민주주의 역시 전세계적으로 회의와 불신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1980년대 이후 특정 방향으로 재해석된 보수(신자유주의)와 진보(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의 이념은 둘 다 모두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불황, 그리고 극심한 사회 양극화에 대하여 직간접적 책임을 져야 한다. 더구나 위 두 이념으로는 현재의 정치경제적 위기와 불행으로부터 인류가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데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 전세계의 이념적 지형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지난 2백년간 융성해온 정치경제적 이념의 소진과 황폐화라고 할 수 있다. 20세 초중반에 발전한 혁명적 사회주의는 1990년대 초반에 최종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리고 전후 세계경제를 지배했던 수정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각각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로 변신했던 바, 하지만 양자는 공히 2008년 이래 글로벌 경제위기와 대불황의 시대를 낳으면서 현재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반도의 특수 상황에서 기존 이념의 황폐화

    현재 한반도의 상황은 세계무대에서 전개되는 기존 이념의 황폐화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하다. 우선 북한 체제는 자위의 마지막 수단인 핵무기를 확보하여 ‘생존을 위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지켜야 할 가치,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를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고 체제의 생존 그 자체만을 위해 절취부심하고 있다. 이것은 이념적으로 공산주의(혁명적 사회주의)가 한반도 차원에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공산주의가 경제사회적으로 경쟁력을 가졌다면, 즉 북한이 경제사회적으로 번영했더라면, 핵무기가 아닌 빈약한 재래식 무기만을 보유했다 하더라도 북한이 지금과 같은 체제적 안보 위협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 즉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남북 간의 경제체제 경쟁에서는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남한의 자유주의는 기이할 정도로 왜곡되어 지금까지 지배해왔다. 한국판 자유주의는 반공 즉 자유의 부정 그 자체였다. 특히 유신독재 이후 1987년 민주화가 성공하기 전까지, 이 나라에서 정치적 자유는 완전히 질식당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 체제는 온전한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지 못했다. 그 근본 이유는 한국의 경우 서구보다 산업화가 100년 늦다 보니 산업화 초기에 필수적인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즉 중상주의)을 형식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수행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에 서구가 거친 산업화를 압축적으로 수행하려다 보니 이렇듯 국가가 경제를 이끌면서 동시에 정치적 자유도 억압하는 일이 발생했다.

    자유주의의 이중적이고 자가당착적인 모습은 1997년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나타났다. 이 시기에 정치적 민주화를 완성하면서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박정희식 중상주의 경제체제를 해체하는 자유주의적 개혁이 시행되었다.

    그런데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금융위기의 원인 제거를 위해 진행된 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은 IMF와 세계은행 등 글로벌 신자유주의 세력이 그 내용과 방향을 사실상 주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수정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한국경제의 재편을 주도한 것이다! 진보를 내세운 민주 정부가 보수의 정신인 신자유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급진적 시장주의를 집행했다. 그 결과 일반 국민들은 민주주의=신자유주의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는 완전히 ‘뒤죽박죽’이 돼버린 것이다.

    다른 한편, 민주주의 세력 내의 더욱 진보적인 일파는 구소련의 혁명적 사회주의노선(이른바 PD)을 추종하거나, 또는 그 노선의 개발도상국 변형인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 노선을 추종했다. 그런데 구소련 모델을 추종하던 PD 세력은 1990년대 들어 소련 및 동유럽의 몰락과 함께 급격히 쇠퇴했다.

    그들은 그 이후 포스트모던 철학과 포스트-맑시즘의 수용을 통해 새롭게 서구적 신좌파의 일종으로 변모했는데, 하지만 서구 신좌파의 본질적 속성상 이들은 여전히 문화예술적, 철학적 좌파에 머무를 뿐 현실성 있는 경제사회적 대안을 제시하여 정치적으로 대중을 이끌어가는 일에서는 무능력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대중적인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른바 엔엘(NL)이다. 그렇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초기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우파가 민족국가 형성에 앞장선 서구와 달리, 우리처럼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들의 경우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과 완성에 좌파가 앞장서는 양상이 일정하게 불가피하다. 게다가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간섭으로 남북이 분단되고 동족상쟁의 전쟁까지 치른 나라에서는 민족국가의 완성운동(통일운동)이 반제국주의 또는 반패권주의 성향을 띄면서 대중적 호응을 얻는 일이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통상의 경우라면, 즉 우리처럼 외세에 의한 식민지화와 분단을 경험하지 않은 나라라면, 좌파적 민족주의는 민족해방 또는 통일 이후 그 역사적 소명을 다하고 소멸했을 것이다. 과거 계급문제와 민족문제 사이에서 혼선을 겪던 독일의 사회주의 운동은 프러시아(우파적 민족주의)의 주도로 1871년 독일이 통일되자 그러한 이념적 혼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 남북분단 상황에서 여전히 남북 간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으며 그 결과 여전히 사회주의(계급운동)와 민족주의(통일운동)가 분리되지 못한 채 결합되어 있다. 이렇듯 사회주의가 좌파적 민족주의로부터 명확하게 분리되지 못한 점 또한 우리나라 진보의 이념 지형을 뒤죽박죽으로 만든 또 하나의 특수한 요인이다.

    결론적으로, 한반도에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기존 이념들은 그 역사적 생명을 다했으며 이제 완전히 새로이 혁신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 단순히 물리적 시간으로서의 21세기를 넘어서, 새로운 역사적 시간으로서의 21세기를 열고자 한다면, 현재의 세계적, 한반도적 위기를 타개해 나갈 새로운 정신과 이념을 모색해야 한다.

    조원희

    조원희 국민대 교수(사진=미디어오늘 이치열)

    새로운 정치적, 이념적 기획의 출발점

    이념과 정치에서의 모방·학습과 추격, 혁신

    서구에서 근대 이후 탄생한 모든 기존 이념들이 한반도에서도 -뒤죽박죽이기는 하지만- 적용되어 그 역사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그 결과 현재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이념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살펴보자면, 우선 자본주의적 산업화·근대화와 정치적 민주화 즉,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과제가 우여곡절의 역사 속에서 어찌되었건 상당 부분 달성되었다.

    둘째로, 온전한 민족국가의 완성(통일국가)의 과제는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는 북한의 지리멸렬한 행태를 보건데 당분간은 앞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셋째, 오늘날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년간 한반도의 남쪽에서 수행된 신자유주의가 심각한 사회 분열과 양극화를 낳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오늘날 계급 간 양극화와,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정규직-비정규직간의 양극화와 과다부채에 짓눌린 서민가계의 위기를 목격하고 있다. 젊은 층의 ‘삼포세대’로의 전락과 저출산 성향, 노인들의 고령화와 빈곤층으로의 전락이 급진전되고 있다. 소속감과 위안의 거처였던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의해 파괴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혼과 자살, 흉악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삶의 현실과 이념 모두에서 황폐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이 황량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기획은 무엇인가?

    후발 공업화를 수행한 한국 자본주의는 선진국에서 이미 개발된 기존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즉 기존의 기술경로를 모방해 만든 제품으로 시장을 확보하고 그리하여 어느 정도 기술과 자본이 축적한 단계이후에서는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혁신을 수행하는 탈추격(post catch-up) 모델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을 통해 오늘날 세계시장에서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다.

    이념 지형에 있어서도 이와 유사한 추격과 탈추격의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 즉 먼저 서구에서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수정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경쟁과 협력의 구도를 모방하여 그것을 우리의 정치 현실에 뿌리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보수는 신자유주의 사조에, 그리고 진보마저도 신자유주의에 상당 부분 편승한 미국의 자유주의 또는 유럽의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 사조에 올라타는 바람에,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상적 삶이 극심하게 황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파괴해버린 물질적, 정신적 삶을 치유하고 복구해 국민들의 삶의 안정과 희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서구에서 전후에 구축된 제3의 길 이전의 사회민주주의와 수정자유주의의 경쟁과 협력의 구도를 우리의 정치 현실, 이념 현실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1970년대 이전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창조해낸 ‘복지국가’와 ‘조정된 시장 경제’의 경험과 이론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익혀 나가는 추격형 발전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더 이상 신자유주의와 별로 다를 것 없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전후 1970년대 이전까지 서구에서 융성한 수정 자유주의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익히면서 사회민주주의와의 경쟁과 협력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러한 추격형 발전을 통해 사상과 정신, 정치를 성숙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날 21세기의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세계사적 위기와 세계사적 과제, 그리고 한반도 및 남한의 독특한 상황에서 비롯된 과제를 고려하면서, 새로운 혁신과 탈추격의 길을 서서히 개척해 나가야 한다.

    산업화 및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가 후발국의 이점을 십분 활용했듯이, 이념과 정치의 선진화 과정에서도 우리는 선진국의 경험을 활용하고 그 시행착오를 피해가면서 우리에 맞는 창조적인 내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진보만 홀로 변신한다고 될 일은 아니고, 보수도 변신해서 양자가 정치 무대에서 수준 높은 새로운 차원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한국 정치의 대도약을 이끌 것

    지금까지 한국에서, 그리고 한반도와 아시아 대륙 전체에서 한 번도 이론적, 실천적으로 제대로 시도된 적이 없는 이념이 있다면 바로 사회민주주의와 수정자유주의(진보적 자유주의)이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는 이미 한국과 한반도에서 이론적, 실천적으로 충분히 시도되었고, 이제는 그 역사적 유용성이 소실됐다.

    이제부터는 사회민주주의와 수정자유주의라는 두 이념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여 국회와 국회 밖에서 경쟁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각각이 시민사회와 노동세력으로부터 자원을 끌어들여 의회 정치와 함께 참여 정치를 활성화하는 것이 해법이다.

    이미 수정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로의 대전환은 시작됐다. 2007년 박근혜 후보의 ‘줄푸세’ 공약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였으며 한국판 대처리즘이었다. 그렇지만 2012년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들고 나온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공약은 서구의 수정자유주의를 일정하게 수용한 흐름 속에 있다.

    박근혜 후보가 화급하게 수정자유주의로 노선을 선회한 데에는 세계사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의 파탄도 기여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보편적 복지를 내건 진보 정치의 약진도 큰 역할을 했다. 보편적 복지는 세계사적으로 사회민주주의, 특히 북유럽 사회민주주의가 달성한 위대한 성과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진보 정치는 한편에선 보편적 복지를 내걸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여전히 그 보편적 복지국가의 이념적 뿌리인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거부하고 있다.

    개혁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은 여전히 고전적 자유주의 또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구시대적 프레임에 갇힌 채 수정자유주의로의 완전한 노선 전환을 주저하고 있다.

    2012년 선거에서 친노 민주당과 안철수 등 개혁적 자유주의자들은 박근혜 후보를 정치적으로 능가하는 것에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수정 자유주의로의 노선 전환을 주저하는 사이에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같은 수정자유주의 이슈를 가져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집권 이후 박근혜 대통령 정부의 우왕좌왕과 갈‘지’자 행보에 나타나듯이, 보수 정권의 이념과 정책은 급조한 것 또는 반대편으로부터 표절한 것일 뿐이며, 진정으로 자기 신념의 결과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한국의 수준 낮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역시 한국판 수정자유주의, 21세기형 수정자유주의 노선으로 전환하리라는 전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단언컨대 한국 정치에서 제대로 된 진보정치, 제대로 된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출현과 성장, 그리고 그 강력한 도전이 없다면 앞으로 제대로 된 수정자유주의 정치의 출현과 성장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서구에서 사회민주주의의 헤게모니 정치의 업적이었던 무상급식과 복지국가 열풍이 강하게 불었던 2010~2012년의 기간에야 비로소 민주당과 한나라당(새누리당) 공히 고전적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을 일정하게 포기하고 수정자유주의의 노선으로 일부 전환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따라서 이 나라를 선진 복지국가, 아시아의 문명국가로 우뚝 세우고자 한다면 제대로 된 진보 정치, 제대로 된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성장하고 집권하여 수십 년간 통치하여야 한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성장과 집권 같은 강력한 도전이 있지 않는 한 한국의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진심으로 수정자유주의로 전환하는 ‘대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대공황과 전쟁, 그리고 그 이후 번영기에 서구의 정치사가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의 미래 대도약을 출발점은 제대로 된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출현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뿌리로 돌아가자

    수준 높은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탄생과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경제와 철학, 윤리·도덕에서 견고한 정신적 토대와 자기정체성(identity)를 세워나가야 한다.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정신을 배우고 익히면서, 동시에 그것을 우리 현실에 적용하여 창조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세계사적 위기와 한반도적 위기, 그리고 한국의 위기라는 3중의 위기에 직면하여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타개해나가는 사상과 정신, 미래비전을 구상하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전략과 정책, 노선을 세워나가야 한다.

    세계사의 현 국면에서 그 어떤 새로운 정치경제 이념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가지 이념과 그 뿌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두 기본 이념을 기반으로, 그것을 21세기의 세계적 상황과 각국(우리나라)의 특수한 조건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창조하면서 구체화하는 정치적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오늘날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대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 다시금 수정 자유주의의 일부 요소들을 논의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역시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의 대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 그 뿌리인 고전적 사회주의의 뿌리로 돌아가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21세기 사회민주주의는 20세기 사회민주주의에서 배워야 하고, 제3의 길 노선을 넘어서야 하며, 그러려면 그 뿌리인 19세기 사회주의의 기본 철학과 정치경제학, 세계관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현재의 국제 사회민주주의, 특히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로는 사회민주주의의 미래가 없다.

    필자소개
    국민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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