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미지옥', 무엇을 할 것인가
    [기고] 열심히 할수록 빚 늘어가는 영세 자영업자 현실
        2014년 02월 26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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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그를 만난 것은 거의 십몇 년 만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던 2012년 바로 그해 겨울이었다. 그는 창원 상남동 어느 아파트단지상가의 어두컴컴한 지하점포 안에서 상처 입은 들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를 감싸고 있는 것은 두려움마저 잊은 체념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싸늘한 냉기였다. 오로지 낡은 석유난로의 빨간 코일만이 밝은 빛을 띠며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그는 난로 옆에 쭈그리고 앉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누구시죠?”

    “아, 네, 수고 많으십니다. 자영업실태조사를 하려고 나왔습니다.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자영업실태조사요? 그게 뭐하는 겁니까?”

    우리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꼬리가 살짝 찢어지면서 언뜻 적의가 내비쳤다. 그에게 우리는 이방인이었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만났던 자영업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매우 허름한 옷을 입고 수염도 깎지 않았으며 낡아빠진 천 조각으로부터 금세 벌레라도 기어 나올 듯이 보이는 소파에 앉아 퀭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삶에 지쳐 어떤 꿈도 사라진 절망의 그림자만이 흐느적거리며 예기치 못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친 그의 두 눈동자는 마치 깊은 산중의 오두막집 주인이 한밤중에 예고도 없이 찾아든 낯선 나그네를 만났을 때처럼 적의가 가득 담긴 경계심으로 일렁였다.

    제가 이번에 낸 책 ‘상남동사람들’ 중 일부 내용입니다. 우리가 자영업 실태조사를 위해 그의 가게를 방문했을 때 그는 실제로 거의 초주검 상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모든 희망을 잃고 살아갈 의욕조차 상실한 채 어두컴컴한 점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최근 자주 회자되고 있는 이른바 워킹푸어, 자영업푸어란 용어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산 증인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할수록 더 가난해진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K. 쉬플러가 그의 책 ‘워킹푸어’에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자영업시장의 현실은 이런 말로 표현되는 것보다 더욱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쉬플러의 표현을 고친다면 아마도 이렇게 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더 많은 빚을 지게 된다.”

    저는 도의원이 되고 난 후 처음엔 자영업자 문제보다는 노동자 문제에 대해 책을 쓰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는 원래 30년 가까이 노동운동만 해온 노동자 출신입니다. 마창노련과 전노협, 민주노총은 제 삶의 터전이었고 모든 사고와 행동과 양식이 여기서부터 비롯됐습니다.

    그러나 도의원이 되고 난 이후 문득 자영업시장이야말로 노동문제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바라보건대 자영업시장은 노동의 무덤이었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설문지를 돌리고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창원지역 신규 자영업자의 40%에 육박하는 숫자가 전직 회사원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공장에서 퇴출된 노동자들이 갈 곳 없이 헤매다 모두 자영업 시장으로 흘러든다는 말입니다.

    또 있습니다. 자영업 중에서 프랜차이즈가 차지하는 비중이 창원지역의 경우 거의 20%에 달했습니다. 소상공인센터가 전국적으로 평균을 낸 프랜차이즈 비율의 5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공장을 떠난 노동자들이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 결국 자영업에 손을 대게 되고 프랜차이즈의 유혹에 빠져든다는 말입니다.

    걸개2

    <상남동 사람들>과 여영국 의원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가 1997~8년 시기의 IMF 때와 2008~9년 시기의 글로벌금융위기 때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유명한 모 프팬차이즈사의 회장은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전 사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회사가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퇴직 회사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라.”

    한때의 소비자로서 주요한 고객이었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치열한 경쟁상대가 되어 자영업시장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것입니다. 제가 써낸 책 ‘상남동사람들’에 보면 한 자영업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손님이 많다고예? 보이소. 어데 작업복이 있습니꺼? 하나도 없잖아예. 작업복이 있어야지. 작업복부대가 우 와야 장사가 되는 깁니더. 이래 가지고는 우리 밥 못 먹고 삽니더.”

    저는 이때 자영업 문제는 곧 노동문제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고용이 안정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고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돼야 자영업시장도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 가졌던 생각을 바꿔 제 지역구를 중심으로 자영업시장을 조사하고 이를 근거로 250쪽 분량의 ‘실태조사보고서’를 냈으며 이어서 대중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내게 된 것입니다.

    개미지옥이 생각났다. 개미의 천적 가운데서도 명주잠자리 애벌레는 별명이 개미귀신이다. 개미에게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으면 개미귀신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매우 교활한 사냥꾼인 이 유충은 나무 밑이나 바싹 마른 흙더미, 모래땅 등에 사발처럼 움푹 파인 구멍을 파놓고 조용히 개미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멋모르고 지나가던 개미가 함정에 빠져 미끄러져 떨어지면 잽싸게 달려들어 잡아먹는다. 이른바 개미지옥이다. 깔때기 모양의 구멍 벽에는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 한번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다. 그야말로 죽음의 덫이다.

    책의 서장에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이지 한 사람 두 사람 자영업자들을 만날 때마다 제 머릿속을 파고 든 것은 개미지옥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곳곳에도 개미지옥과 같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실체를 파헤치고 싶었고 그걸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오는 2월 26일 출판기념회를 엽니다. 책 제목은 <상남동사람들>입니다. 상남동은 창원의 중심지로 최대상업지구가 있는 곳입니다. 창원에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상권 중의 한 곳이 바로 상남동입니다. 창원에서는 “상남동 간다” 그러면 당연히 상남동 상업지구로 간다는 말로 통합니다. 그래서 그런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상남동사람들이란 책 제목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상남동사람들>은 기획부터 출판까지 총 22개월여가 소요됐습니다. 2012년 4월경 처음 이 사업을 구상한 이래 고등학교 동기이자 옛 노동운동 동지였던 정부권 씨와 역시 노동운동 동지이면서 현재 공인중개사업을 하고 있는 박성철 씨에게 이 사업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하여 그들과 더불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현장에 나가 실태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거 하면 뭐 하노. 다 쓸 데 없는 짓이다. 해봤자 저거끼리 쑥덕이고 이름만 내고 그러더라. 안 해줄란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정희, 이석기 거 당 아이가? 내 사람보고 저번에는 찍어 줬는데 탈당 안 하면 내 이자 안 찍어 줄기요”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들에게 “저는 그 당하고는 다른 당입니다” 하고 말을 해도 그들은 그게 무슨 소린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심지어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작년 5월 <자영업실태조사보고서>를 발간하고 ‘사장님, 먹고살 만합니까?’란 주제로 경남도의회 강당에서 정책토론회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실태조사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기 위해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작년 9월 내지 10월에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설문조사 등 실태조사 기간이 의도하지 않게 길어졌고 저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몇 달간 공백 기간이 생기는 바람에 2월 말에 출판기념회를 하게 됐습니다.

    <상남동사람들>은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남동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자영업 현장에서 실제로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날 출판기념회에도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한 주인공 중 네 분을 출연자로 모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합니다.

    저는 앞으로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데 나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책이 그런 일에 자그마한 불씨가 되고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저도 자영업자들의 자발적인 운동에 동참할 것이고 그 전이라도 무엇이든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상남동사람들>은 이 한권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백화점, 대형마트 등 매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학습지 교사들,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시는 분들, 보험설계사 등 자영업과 노동자의 중간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그들과 함께 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남동사람들> 서장에서 했던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의 주인공들은 모두 실존인물이며 실제 있었던 일들이다. 이야기의 원활한 구성과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배치와 전개에 있어서 약간의 조정과 주변 환경에 대한 필요 이상의 묘사가 가미되지 않은 바는 아니나 어디가지나 전체적인 골격이나 뼈대에 손상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그렇게 했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은 몇몇 소수 자영업자의 에피소드를 기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에피소드가 아니란 것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무너지는 자영업 뒤안길에 새겨진 눈물의 기록이다. 우리는 그들의 기록을 통해 이 땅에서 실제적인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고 싶었다.

    필자소개
    노동당 경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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