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묘지,
    왜 정치갈등과 연출의 공간 되나?
    [책소개] 『죽은 자의 정치학』(하상복/ 모티브북)
        2014년 02월 23일 01: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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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에서는 식민지, 해방 이후 근현대사 해석, 민족주의 의식에서 과거 정권들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두 정권, 즉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집권했다.

    국가적 독트린에서 연속선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두 정권은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에 관한 일제의 위상과 역할, 해방 이후 미국이 한국에 미친 정치적 영향력, 북한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인식 등 한국의 근대체제 건설에 깊이 연관된 문제와 요인들에 대해 기존의 정권들과는 다른 정치적 해석을 시도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식민지 근대성으로 요약되는 역사논쟁에서 일제 식민지 역사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한국의 근대국가 건설에 연관된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존의 긍정적 시각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또한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전쟁을 일으킨, 한국의 주적이라는 관점을 벗어나 화해하고 통일해야 하는 민족주의의 파트너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와 같은 상이한 역사적, 정치적 해석으로 말미암아 한국 사회는 ‘남남갈등’으로 불리는 전례 없는 이념 대결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재생산해 온 정치세력들은 일제 식민지, 미국, 북한의 문제에 대해 두 개혁적 정권, 혹은 진보적 정권과는 뚜렷이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그 같은 이념적 정체성은 단 한 번도 심각한 정치적 도전이 되지 못했다. 그 정체성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남갈등의 정치적 시간 동안 적대세력들은 물리적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역사해석의 무대와 정치적 상징의 장소들에서 서로 부딪혔다.

    1950년대 중반에 건립된 한국 최초의 국가적 묘지인 국립 서울 현충원 또한 그와 같은 역사적, 상징적 대결의 자리가 되어야 했다. 국립 서울 현충원은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를 핵심적인 가치로 수호해 온 세력의 이념적 전당이었음을 환기한다면 우리는 왜 그곳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가 싸워야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2005년 북한 정치인의 서울 현충원 참배 스캔들,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안장 스캔들, 2011년 안현태 안장 스캔들, 그리고 2112년 대통령 후보들의 서울 현충원 참배의 정치는 국립 서울 현충원 나아가 국립묘지가 여전히 이념대결과 갈등의 중요한 장소이고 그 부분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국립 서울 현충원의 탄생과 진화의 역사와 정치사를 추적함으로써 그곳이 한국 보수 세력의 이데올로기를 표상하고 재현하는 대표적인 공간이 되어온 원리와 과정과 메커니즘을 살펴보고 있다. 그럼으로써 한국 사회의 이념적 장을 가르고 있는 남남갈등의 동학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키워드로서 사자와 국립묘지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과학계에서 국립 서울 현충원을 포함해 국립묘지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보훈정책 관련 보고서나 사실 중심의 기록물들은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사회과학적 분석 프레임을 결여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역사적 사례와의 비교론에 입각해 한국의 국립묘지를 관찰하고 추적하는 저술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죽은 자의 정치학

    역사적 과정과 이념적 특성에 관한 비교론은 한국 국립묘지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나아가 한국 국립묘지의 정치적 모순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모티브와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저술은 이론적 차원과 실천적 차원에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의 정치적 시간 속에서 기획, 탄생, 운동하는 제도적 공간 국립묘지!

    많은 근대국가들은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국민적 공간으로 국립묘지를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 점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한국에는 최초의 국립묘지인 국립 서울 현충원을 비롯해, 국립 대전 현충원, 세 개의 호국원, 세 개의 민주묘지 등 총 8개의 국립묘지가 있다. 그 중에서 국립 서울 현충원은 다른 묘지들과는 사뭇 다른 위상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해 가장 많은 정치가들이 가장 빈번하게 방문하고 있는 국립묘지가 국립 서울 현충원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현재 그곳은 국가적 정체성을 달리하는 정치세력들이 부딪히는 이념 대립과 갈등의 무대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립 서울 현충원의 그와 같은 현상과 양상은 어디에서 유래하고 있는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은 크게 두 관점에 기대고 있다. 하나는 권력과 국가의 인류학적 시각과, 근대주의적 시각 위에서 국립묘지 제도에 접근하는 이론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 국립묘지의 원형인 프랑스의 사례와 국립묘지의 군사주의 모델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통한 비교론적 관점이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인류학적 관점과 근대성의 차원에서 정치적 죽음과 국립묘지를 관찰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권력자에게서 죽음은 자신이 보유한 권력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굳건히 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상징적 동원의 기제인데, 그것은 정치 인류학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근대 정치와 국립묘지 또한 근본적으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국립묘지는 근대 이후에 나타난 제도적 현상이기 때문에 정치적 근대성이라는 특수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근대가 국립묘지를 열망하는 근본적인 동인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국가를 구체적으로 재현해내야 하고, 애국이라는 가치를 감성과 정념의 차원으로 전환해내야 한다는 데 있다.

    제2부는 프랑스, 미국, 한국 국립묘지의 탄생의 역사를 다룬다. 먼저 근대 국립묘지의 원형을 제공하고 있는 프랑스 국립묘지, 빵떼옹을 살펴보고, 국립묘지가 군사묘지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 역사적 배경과 동인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관찰한다.

    그리고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에 기원을 두고 있는 한국 최초의 국립묘지, 국립 서울 현충원의 탄생을 추적한다. 이 세 사례의 관찰과 분석은 국립묘지의 창설이 근대국가 건설의 대결 및 모순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3부는 세 나라의 국립묘지가 근대 정치과정 속에서 어떻게 진화 혹은 변화해 가는가의 문제를 다룬다. 프랑스와 미국의 국립묘지는 이데올로기적 당파성에서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전환되어 가는 반면, 한국의 국립묘지는 민주화와 정권교체의 국면 속에서 이념 대립과 갈등의 무대로 변환되어 갔음을 밝힌다.

    4부는 빵떼옹, 알링턴 국립묘지, 국립 서울 현충원이 통과해온 역사적 과정과 이념적 특성이 안장인물, 묘역구성, 조형물 등을 통해 어떻게 미학적으로 표상되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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