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아야 고마워”
    이젠 정말 김연아를 놓아주자
        2014년 02월 21일 12: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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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새벽 김연아의 은퇴 경기 이후, 불공정한 판정에 대해 언론 기사와 기사의 댓글들에서 IOC 제소를 하자느니 러시아를 어쩌자느니 하면서 빅토르 안까지 싸잡아 욕하기도 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나쁜 러시아’에서 꿀 빨고 있을 빅토르 안 역시 ‘나쁜 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내셔널리즘의 뉘앙스들을 읽고 있자니 참 답답하다. 한국 언론들은 외신들의 편파판정 비판의 대목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분노한 여론을 부추기는데 신이 난 모양새다.

    난 내가 내셔널리즘에 어느 정도 관대하고자 노력해온 편이라 생각한다. 현상을 비평하는데 있어 내셔널리즘의 뉘앙스를 엄격하게 파헤치기보다는 다른 맥락들을 고려하려 적절히 관용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일례로 이른바 안현수 현상을 기득권과 불공정한 시스템에 대한 분노의 투영으로 읽는 편이다.

    헌데 김연아는 분명히 밝혔다. 자신의 목적은 금메달이 아니라 후배들의 올림픽 진출권을 얻기 위해서이며, 경기 중에 실수하지 않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에 만족한다고.

    그러나 ‘대한민국’을 김연아에게 투영하고 나면 김연아 개인은 사라진다. 김연아가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신의 등 뒤에 ‘대한민국’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지는 온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짐작해볼 순 있다.

    그저 한 개인에 불과한 김연아에겐 실은 이런 부담이 억울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고생해온 그녀가 유명해지기 전까지 과연 국가가 해준 게 과연 무엇일까.

    이제 은퇴하게 되는 그녀 역시 소치 동계올림픽이라는 마지막 도전을 자신의 개인사적 문맥에서 이해했지, 대한민국이니 애국이니 하는 맥락은 보이지 않았다.

    금메달이라는 ‘국가적 영광’이 아니라 그저 무대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밝혔고, “이제 다 끝났다”는 말에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모습은, 그저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한 개인의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그녀가 훌륭한 경기력과 업적을 성취한 영웅적 존재라 하더라도 그녀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투영하는 순간 그녀의 개인적 맥락까지도 곡해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맥락을 존중하며 들으려하기보단 먼저 규정하고서,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는 내셔널리즘의 태도가 가진 한계다.

    물론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이번 경기의 결과에 대해 억울할 수 있다. 외신도 나름의 문제제기를 하는 판에 같은 국적을 보유한, 같은 민족에 해당할 김연아에게 더 애틋한 감정이 생기고 이번 판정에 대해 더 억울함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김연아는 이제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녀는 “아, 짜다.”라고 말했을 뿐, “심판을 존중한다”며 억울해하기보단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밝게 웃었다.

    이런 김연아와는 대조적으로, 판정의 억울함에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분노하며 제소를 하자는 둥, 뭔가 대응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다시 말하지만, 당연히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억울함을 행동으로 풀고자 하는 것이 김연아를 위한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녀는 6살부터 25살(한국 나이)까지 보통 사람들의 몇 갑절의 고통과 노력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그녀였기에, 무대에서의 놀라운 침착함과 여론의 부담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인내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 데 만족하며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결과를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성취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살아내야 했을 마음의 성취가 엿보인다. 그렇게 그녀는 훌륭하게 은퇴 경기를 마쳤으며 명예롭게 퇴장했다.

    그녀가 담담히 결과를 인정했던 그 모습, 그 훌륭한 마음의 자세야말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으며, 그야말로 명예로운 일이었다. 그녀가 금메달에 집착해 분노를 터뜨렸다면 거기에 ‘명예’라는 단어를 붙일 순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김연아에게 “연아야 고마워”라는 말을 전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외로웠을 빙판 위에 당당했던 그녀의 명예를 ‘우리’ 손으로 더럽히진 말자. 그녀에게 가혹했을 ‘대한민국’이라는 부담을, 은퇴 이후에는 벗게 해주는 것이 도리이지 않겠는가.

    사실 그녀 본인이 심판의 판정을 인정한 이상 판정을 뒤집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금메달에 집착하는 내셔널리즘의 여론이 김연아를 금메달에 계속 옭아매게 하고 있다. 더 이상 그러지 말자. 이젠 정말 김연아를 놓아주자. 그것이 ‘고마운 연아’를 정말로 위하는 길일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독자.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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