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나의 정의(Justice)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환경교란 물질' 사용, 누가?
        2014년 02월 21일 10: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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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 1

    대학교 1학년 때라고 기억된다. (당시에 나는 화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일반화학 실험시간에 실험조교가 비이커에 담긴 브롬수(화학기호 Br)를 들고 농담처럼 남자 수강생들에게 겁을 주곤 했다. 이거 잘못 다루면 불임된다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자 꼬리가 떨어져 나가서 결국에는 불임이 된다는 것이었다.

    농담처럼 웃고 넘겼지만 진지한 친구 놈들 몇 명이서 실제 외국문헌을 찾아보고서 그 말이 반 정도는 진짜라는 것(불임도 가능하고 발생단계에서 특정 성 편향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그런 종류의 위험한 실험은 여자 동기들에게 술 사준다고 하고 실험을 대신 시켰던 기억이 난다.

    실제 브롬이라는 물질은 화학 공정에는 상당히 유용한 물질이지만 반면 인체에 무방비로 노출될 경우 심각하게 유해한 환경교란 물질인 것이다.

    # 기억 2

    그리고 연결된 기억이 최루탄에 관한 기억이다. 87년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집회 시위현장에서 대량으로 아무 제한 없이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로 살포되었던 것이 최루탄이었다.

    문제는 그 최루탄의 성분과 제조공정인데, 당시에 흉흉하게 떠돌던 괴담 수준의 이야기(의도적으로 시위하는 학생, 시민들의 생식능력을 감퇴시키는 물질을 최루탄에 섞었다는 소문 등)가 궁금하기도 했던 몇몇이 실험실에서 비공식적으로 분석을 진행했었고, 정확한 결과가 산출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성분도 성분이지만 제조공정 어느 지점인가에 인체에 심각하게 유해할 가능성이 높은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죽게 만들었던 겨자가스가 그 원형인 최루탄은 그 자체로 독성물질인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겨자가스

    최루탄의 원조인 겨자가스는 군인들의 눈을 많이 실명시켰다. 사진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화학공격에 눈을 손상당한 후 치료를 기다리는 영국군의 모습

    이렇게 우리 시민들을 괴롭히던 최루탄이 이제는 외국으로 수출까지 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회사는 90년대까지 시민들의 눈물, 콧물을 볼모로 최고의 성장을 구가하다가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 급격하게 축소되는 시기가 되자, 급격하게 사세가 하락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던 중, 필리핀이나 태국, 중동 등 동남아로 눈을 돌려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현재 동남아 시위현장에서 피어오르는 강력한 최루탄 연기는 한국산 수출품인 것이다. 이제는 최루탄도 한류인가?

    # 기억 3

    사실 이 얘기는 매우 조심스러운 기억이다. 최루탄이 과도하게 사용된 시기인 80년대 후반 90년 중반 이후 2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이때 대학을 다녔으면 현재는 대부분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10대에서 20대까지 정도일 것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고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숱하게 최루탄을 마셨던 선배, 동기, 후배들을 이들의 가족들과 같이 만나면, 이들 가족에게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가족들에 비해 무엇인지 규정하기 어렵지만 몇 가지 점에서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가지는 조금 특별하지만 사람들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독특한 직업병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람의 행동, 사람과 사람의 관계행동 등을 작은 것 하나하나 관찰하는 것이 일이다 보니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평균적인 변이에서 벗어나는 행동과 말 등에는 매우 민감하다. 직업적으로 보통의 가족들을 면담하고 관찰할 때 우선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얘기를 들어보고 얼굴을 관찰한다. 동시에 그 아이들의 부모행동과 그 관계를 관찰한다.

    이렇게 훈련이 되다보니 앞서 말한 사람들과 사석에서 만날 때도 이런 직업병이 도져서 비슷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사람의 행동 변이에 민감하다보니 이런 사람들의 경우의 수가 머리 속에 축적되다보니 더더욱 신경이 쓰이게 되고 그래서 종합적인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행동이나 가족행동 등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요인들이 유사한데 이들 코호트(특정의 경험(특히 연령)을 공유하는 사람들 집단)만 그런 결과가 산출된다면 그런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특별한 요인을 찾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도달한 잠정적인 판단이 환경교란 물질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주지하듯이 유아/아동/청소년의 자폐 증상이나 과잉행동 증상, 우울 증상 등이 부모가 살아오면서 노출된 환경교란 물질과 상당부분 관련이 있다는 연구는 서구에서는 익히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case study로 추정해보아도 이들 코호트가 가지는 특징의 측면에서 볼 때, 보통의 가족이 가지는 성비, 아이들의 행동 등과 비교할 때, 이들 코호트에는 분명 변이가 유의미하다.

    대략 언급하자면 성비가 불균형이거나 아이들의 행동에 과잉이 있고 또한 여기에 대한 부모의 반응도 과잉이다. 물론 이런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다른 요인 즉 이들이 가지는 사회/경제/문화적 특징 등은 충분히 감안한 판단이다.

    물론 이러한 파일럿 연구는 내가 처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 10여 년 전 정도에 비슷한 연구를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연구가 더 발전되지 못하고 그냥 단순한 사례연구에서 끝나게 된 데에는 막강한 국가권력과 자본의 힘 앞에 굴복한 결과라고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연구는 광범위한 역학조사와 환경교란 물질에 대한 기초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국가권력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안길 수 있는 연구를 국가에서 직접 할 이유도 지원할 이유도 없는 것이고 또 당장 누가 죽어나가는 것도 아닌 서서히 생식계통과 신경계통을 붕괴시키는 물질에 대한 연구에 자신의 인생을 걸 자연과학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더 나아가 자본은, 돈의 힘으로 다양한 과학적 담론을 갖다가 붙여서 연구를 방해하고 연구자를 무너뜨린다. 그 모든 것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러한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한 환경교란 물질의 의도적 사용이야말로 시민에 대한 국가권력의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것을 그냥 넘어가면 국가권력과 자본은 반드시 비슷하거나 더 교묘한 형태로 범죄행위를 저지를 것이다.

    실제 이들 집단의 이러한 변이가 과거 무차별적인 환경 교란 물질의 살포와 관련이 있는지 정확히 규명해야 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더러운 전쟁이다. 정치적인 반대자를 절멸시킬 목적으로 수행했던 저강도 전쟁인 것이다.

    # 기억 4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물질(용매, 촉매 등)이 인체에 유해할 것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고, 이를 규명하는 데에는 대학 실험실 수준에서의 역학조사와 물질에 대한 정성적/정량적 분석, 임상시험 등 정도로 충분하지만 실제 이 과정에 들어가기는 대단히 어렵다. 자연과학 자체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결국 민주주의와 권력의 문제인 것이다.

    권력과 자본에 유리하게 방식을 바꾸고 지극히 자명한 자연과학적인 사실도 연구자를 무너뜨려서 무력화하고 시간을 지체시켜서 지치게 만드는 방법, 권력자들이 애용하는 지극히 단순한 일이다.

    이천의 현대전자(현재의 하이닉스 반도체)나 기흥의 삼성반도체 공장이 세워지고 생산이 시작되는 초기부터, 전자 기판을 닦고 조립하는데 가장 최적의 조건을 가진, 고사리 손이 필요했던 재벌들은 어린 여중생, 여고생들을, 전라도나 충청도, 경상도 등에서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모집, 산업체 부설학교에서 공부시키면서 돈도 벌게 해준다고 꼬드겨서 입도선매 방식으로 수 만 명씩 공수했다.

    당시에 벌어진 일들이 농촌에서의 성비 불균형을 야기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도체 강국, 64메가디램 양산, 256메가디램 반도체 양산 등으로 이건희 일가가 떼돈을 벌어들일 때, 고사리 손 10대 중후반의 청소년 여성 노동자들은 반도체의 불순물을 씻어내기 위해 거의 맨손으로 보호장구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맹독성의 용매제 속에 작업을 해야 했고 환기도 잘되지 않는 시설에서 헐값으로 노동을 해야 했다.

    이건희가 작년에 배당받은 돈이 천억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돈 속에는 수많은 ‘황유미’의 핏 값이 들어있다. (다음 회에 계속)

     

    필자소개
    배상훈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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