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반도주’ 맞선 기륭의 ‘야반연대’
    21일 후원주점에 전국 곳곳에서 연대 손길 이어져
        2014년 02월 17일 01: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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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에 사장이 몰래 도망간 텅 빈 사무실에서 날마다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1970년대나 있음직한 ‘황당 사건’이 벌어졌지만 조합원들의 얼굴은 밝고 환하다. 전기가 끊겨 난방장치 하나 없이 새벽 추위를 보낸 조합원들이 감기몸살에 걸려 끙끙거리지만 표정은 여전히 생기발랄하다.

    지난 12월 30일 기륭전자(현 렉스엘이앤지) 최동열 회장이 조합원들을 속이고 야반도주했다. 악덕사장은 6년의 세월을 싸워 정규직화를 약속받고 2년 6개월을 기다린 조합원들을 버리고 날랐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집기 하나 없는 불 꺼진 사무실에 이부자리와 음식을 가져오고, 물품을 챙겨와 농성장으로 만들었다.

    새해 첫날부터 설날 연휴까지 기륭 농성장은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사장이 야반도주한 사무실은 마치 새로 생긴 노동조합 사무실인 양 사람들로 넘쳐났다. 농성장 한 구석에 개인 사무실을 차린 송경동 시인을 비롯해 기륭전자 조합원들을 찾는 연대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기륭전자 여성조합원들이 2005년 7월 5일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움을 시작했으니, 길에서 보낸 시간이 꼬박 9년이다. 자신들의 3~40대 젊은 날을 전부 기륭과의 싸움에 던진 이들이다. 몸서리쳐질 만큼 지긋지긋한 싸움이 2년 6개월의 휴식을 거쳐 다시 시작됐는데, 조합원들의 얼굴은 신규노조의 모습처럼 해맑다.

    회사가 야반도주한 사무실에 농성장을 차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사진 정택용)

    회사가 야반도주한 사무실에 농성장을 차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사진 정택용)

    회사의 야반도주에 밝은 얼굴로 싸우는 기륭노동자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55일간의 점거파업과 구속, 세 차례의 단식, 다섯 번의 고공농성, 생사를 넘나들었던 94일 간의 단식이라는 여성노동자의 몸으로 초인적인 싸움을 벌인 끝에 2010년 11월 1일 국회에서 정규직화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제는 좀 쉬고 싶었을 텐데, 많은 투쟁사업장에서 합의가 이뤄지고 나면 얼굴을 잘 보이지 않는데, 기륭 조합원들은 아니었다. 6년의 시간 동안 함께 해준 이들의 마음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름도 없이 기륭을 찾아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또 다른 기륭의 손을 잡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합의 직후인 11월 10일부터 시작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5일 공장 점거파업 현장을 가장 먼저 찾았다. 가까운 재능교육 농성장부터 남도 끝 거제 대우조선 사내하청 노동자의 송전철탑까지 연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가장 먼저 달려갔다.

    2011년 6월 11일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19대의 버스가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는 85호 크레인으로 향하며 만들어낸 희망버스의 거대한 물결도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노력과 헌신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이었다. 다섯 차례의 희망버스에서 온갖 굳은 일은 기륭 조합원들이 도맡아했기 때문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시작된 2012년 4월 5일 대한문 분향소 설치 과정에서 가장 먼저 달려와 가장 맨 앞에서 분향소를 만들어낸 것도 기륭의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경찰에 밟히고 얻어터져 병원에 실려 갔다가 목발을 짚고 돌아와 분향소를 지켜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3년 현대차 희망버스와 밀양희망버스도 기륭전자분회에서 조합원을 보내고 온 힘을 다해 함께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낼 수 있었다. 희망버스만이 아니었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농성장에서부터 철거민들의 천막까지 기륭의 발길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갔다.

    자신들의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휴식과 충전을 해야 할 30개월 동안 기륭전자 10명의 조합원들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2년 6개월 기륭이 어루만진 사회의 아픔들

    2010년 10월 말이었다. 수차례의 교섭과 결렬, 중재와 실무협의, 단식과 포클레인 농성과 경찰 침탈, 국회의원의 중재와 결렬, 언론보도를 이유로 한 잠정합의 파기라는 피 말리는 시간을 거쳐 합의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마지막 실무교섭 자리에서 사측 실무교섭 대표는 합의가 이뤄지면 기륭전자 주식이 폭등할 거니까 돈이 있으면 주식을 사놓으라고 말했다. 돈도 없지만 우리는 그런 짓을 안 한다며 당신들이나 돈을 벌라고 했다.

    10월 31일 마침내 잠정합의안이 만들어졌고, 11월 1일 국회에서 공식 합의가 이뤄졌다. 다음날 신문과 방송은 기륭전자 노사합의 소식이 1면을 장식했다. 이날부터 기륭전자 주식은 매일 상한가를 기록했고, 일주일 만에 두 배 이상 올랐다.

    최동열 회장이 잠정합의 사실을 언론에 숨기면서 주식으로 어떤 장난을 쳤고, 합의를 통해 얼마나 돈을 챙겼는지 모른다. 당시 배임 혐의로 형사고발이 되어 있던 그가 노사 간의 합의로 인해 감옥살이를 면하고 기륭전자 회장이라는 직위를 유지하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빼돌렸는지 모른다.

    노사 간의 합의사항에 대한 신뢰를 위해 새누리당 홍준표 의원을 부르겠다고 했고, 합의하는 장소에 많은 국회의원들이 함께 있었는데도 이제와 ‘우리 직원이 아니’라고 말하고, 야반도주한 그를 어떻게 해야 할까? 텔레비전 뉴스로 보도되고, 모든 이들이 함께 축하해줬던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든 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기륭합의로 폭등한 주가, 돈을 챙긴 자는?

    2월 6일 오후 2시 국회에서 열린 ‘사회적 합의 불이행, 사회적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사진 정택용)

    2월 6일 국회서 열린 ‘사회적 합의 불이행, 사회적 해결 방안 모색 위한 토론회’(사진 정택용)

    지난 2월 6일 오후 2시 국회에서 열린 ‘사회적 합의 불이행, 사회적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송경동 시인은 ‘사회적 타결 합의에 대한 사회적 책임 규제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노동계 출신 19대 국회의원들부터 힘을 모아 사회적 합의에 대한 기업의 책임 의제를 우선순위로 끌어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섭 변호사는 “사회적 합의 위반에 대해 반드시 형사처벌이 이뤄지고, 기업이 합의 위반으로 얻은 이익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경제적 제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은 “며칠 전 라디오에서 로또복권 당첨되면 얼마씩 나누겠다는 구두약속도 약속인 만큼 지켜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 내용을 들었다”며 “친구들 사이에서 가볍게 구두로 한 약속도 지켜져야 한다고 하는데, 목숨을 걸고 싸우고 온 사회가 관심 가지고 함께 연대하면서 만들어낸 약속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의 파기,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해야

    전 국민이 지켜본 가운데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익을 얻고도 시간이 흐른 후 합의를 파기하는 파렴치범을 구속시키기 위해 기륭전자 10명의 전사들이 다시 싸움에 나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기발랄하게 싸우는 기륭전자 조합원들을 소치올림픽보다 더한 열정으로 응원하고 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축제의 한마당이 2월 21일 열린다. 야반도주한 악질사장에 맞선 ‘야반연대’의 시간이다. 이미 각지에서 맛있는 음식들이 답지하고 있다.

    세종호텔과 힐튼호텔노조 일급 요리사들이 한 푼의 돈도 받지 않고 직접 진귀한 요리를 만든다. 전남 여수에서 보내준 서대회무침과 양태찜, 국민체육진흥공단 해고자들이 만들어준 돼지껍데기, 순천 희망버스팀이 당일 아침 직접 가져오는 벌교 꼬막, 제주 강정마을의 한라봉 등 전국에서 보내온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진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도 마음을 보탠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뜨거운 연대를 경험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막걸리 축제를 연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명품 막걸리를 직접 가져와 후원주점에 기증한다.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태화루, 천둥소리, 신창막걸리를 직접 싣고 온다.

    현대하이스코와 기아차 광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순천 나누우리와 광주 울금막걸리, 충북지역 노조탄압사업장 노동자들은 공주밤막걸리를 보내고, 한진중공업지회는 부산 금정산성막걸리, 밀양송전탑대책위는 밀양단장막걸리를 보낸다. 민주노총 강원본부, 공무원노조 인천본부에서도 동네 막걸리를 보내온다.

    이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예로부터 농주라고 불리며 일하는 사람들의 술이었던 막걸리를 서로 나눠 마시며 올해 전국의 모든 사업장에서 반드시 정규직 전환을 쟁취하자는 결의를 다진다는 계획이다.

    야반도주에 맞선 야반연대의 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기륭주점

    ※ 기륭전자 후원주점 연대 음식·막걸리·후원금 환영^^ (국민은행 362702-04-123816 유흥희, 문의 : 010-3240-9908)

     

    필자소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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