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인스의 사상을 복원하다
    [책소개] 『케인스혁명 다시 읽기』(하이먼 민스키/ 후마니타스)
        2014년 02월 16일 12: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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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케인스가 언급한 교훈은 철저하게 잊혀졌다. 사회정의와 균등한 소득분배를 달성할 정책의 필요성은 망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마디로 완전히 전도되었다.”

    케인스의 경제 이론에서 후대가 간과하거나 외면한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핵심 개념이었다. 이를 배제한 채 우아한 곡선들로 구축한 ‘신고전파 종합’의 수리 모형은, 소용돌이 같은 현실 앞에 무력했다.

    반복되는 경기 팽창과 침체, 스태그플레이션은 물론, 서브 프라임 모기지 및 뱅크 런 사태와 같은 최근 현상들을 더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변칙 사례’로 치부할 수 없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하이먼 민스키는 ‘고요한 상태에서 한순간 찾아오는 파국’에 천착한 대표적인 포스트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이다. 그의 지도 교수였던 슘페터와 마찬가지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적인 경기순환이 자본주의적 성장에 내재한 불가피한 요소”임을 밝힌 이 책의 의미는 크다.

    “불확실성 아래에서 시장의 힘을 통해 자본이 움직일 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 참화”의 원인과 과정을 설명할 단초를 찾기 위해 민스키가 주목한 것은 주류 경제학자들에 의해 ‘표준화’되지 않은 케인스였고 그의 ‘혁명적 사상’의 맹아가 담긴 대표작인 <화폐와 이자 및 고용의 일반 이론>이었다.

    하이먼 민스키는 죽은 뒤 더 유명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통화주의를 기반으로 일반 균형 이론이나 합리적 기대 가설 및 효율적 금융시장 가설 등을 내세운 신고전파 경제학은 미국 경제학계에서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케인스혁명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금융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금융 부문은 빠르게 성장했고, 선진 자본주의 경제에서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이와 관련해 “금융시장은 밖으로부터의 어떤 충격이 없는 한 안정적이며, 자산 가격도 실물 부문의 변화를 정확히 반영해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효율적인 시장”이라고 간주한 신고전파적 관점은 현실 경제를 해석하는 유일한 심판자임을 자임했다.

    이에 도전한 것이 비판적 경제학 연구 패러다임의 중심축을 구성하고 있는 포스트 케인스주의 경제학이었는데, 하이먼 민스키는 이들을 대표하는 저명한 경제학자이다.

    “금융시장은 내재적으로 불안정하며, 금융시장에서 활동하는 경제주체들의 비합리적인 심리와 기대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자산 가격도 거품과 붕괴를 주기적으로 겪게 된다.”고 주장한 그는, 금융시장의 예측 불가능성을 무시하고 일련의 등식들로 케인스의 견해를 환원하려고 한 당시 주류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경제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금융 산업 종사자, 심지어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들에게 먼저 인정받아 숱한 민스키 숭배자들을 양산했다. 이 책 <케인스 혁명 다시 읽기>가 출간된 이래 미국 금융시장의 균열과 이를 뒤이은 미 연준의 극적인 정책 대응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그의 작업은 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실 세계를 분석하려는 점점 더 많은 경제학자들은 금융 시스템의 붕괴 현상을 민스키 국면(Minsky moments)이라고 지칭하며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민스키는 왜 케인스의 <일반 이론>에 주목했는가?

    케인스의 혁명적 사상의 핵심인 불확실성 개념을 복원하고자 거인의 등에 올라탄 그는 결국 그 자신이 거인이 되었다. 케인스가 남긴 맹아를 싹틔운 책 <케인스 혁명 다시 읽기>는 동시에 민스키 자신의 이론적 맹아를 담고 있다.

    “케인스는 새로운 세대의 경제학자들에게 새로운 이정표와 갈 길을 열어 주었다.” _폴 스위지

    “이 책에서 나는 <일반 이론>에 경제학은 물론 경제학자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일종의 지적 혁명을 야기할 맹아가 담겨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씨앗들은 아직 만개하지 못했다.” _하이먼 민스키

    케인스가 경제학계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는 그의 대표작인 <일반 이론>에 빚진 바 크다. 민스키는 <일반 이론>에 내재한 ‘케인스주의 혁명’의 핵심 내용을 ① 분권화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아래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불확실성과 그 속에서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자산 구성 변화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② 이것이 은행 등의 현대 금융 제도들을 매개로 하여 어떻게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성과 실물 경기의 급격한 순환을 주기적으로 야기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고 해석한다.

    이는 경제학 이론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으나, 그의 사후(死後) 표준화된 해석을 거치면서 그런 시도가 중단되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민스키에게 케인스 혁명은 “중단되었고 불완전한 혁명”이었으므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질 필요가 있었다.

    이 책에서는 ① 미국의 주류 경제학계가 케인스의 경제사상을 어떻게 화석화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1~2장), ② 케인스에 대한 자신의 대안적인 해석이 기업의 투자 결정과 자본조달 방식, 자본 자산의 가격 변동, 현대 금융기관의 행태 등을 분석하는 데 어떻게 일관되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논한다(3~7장). 마지막으로 ③ 사회철학과 공공 정책의 측면에서 케인스의 사상을 어떻게 급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논함으로써(8~9장) 케인스 경제사상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케인스 혁명 다시 읽기>는 민스키가 어떻게 케인스를 해석하고 급진화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이후 ‘금융 불안정성 가설’에서 정점에 달한 그의 독창적인 분석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책이다.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민스키의 핵심적인 문제의식, 즉 케인스의 <일반 이론>에 대한 급진적인 재해석과 현대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해 있는 주기적인 금융 불안정성에 관한 이론은 케인스 경제 이론을 보편적인 경제학 분석 틀로 확장하려고 했던 포스트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과 신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의 일부,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가령 (최근 미 연준 의장에서 물러난) 벤 버냉키 등으로 대표되는 신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은 민스키가 분석하려 했던 금융시장을 통한 경기순환이라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수용하고자 했다.

    또 미국의 포스트 케인스주의 또는 민스키주의 경제학자들은 <케인스 혁명 다시 읽기>와 이후 저작들에 나타난 민스키의 내생적 화폐 이론과 유효수요론을 따라 완전고용을 겨냥하는 국가의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을 경제 위기 국면에서뿐만 아니라 수정된 자본주의의 장기 지속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던컨 폴리(Duncan K. Foley)와 디팡커 바수(Deepankre Basu)와 같은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도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다만 간헐적으로 제시한 바 있는 자본축적 과정에서의 금융의 역할이라는 문제의식을 민스키의 논의에 힘입어 ‘순환 자본 모델’(circulating capital model)로 이론화한 바 있다.

    이처럼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이론은 좌우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초월해 주류, 비주류 경제학자들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현대자본주의 경제의 금융시장 동학을 분석하는 중요한 이론적 전거로 활용되고 있다.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과 기업 투자 이론이 갖는 이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민스키의 원저작이 한국에 번역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의 이념적 편협성과 보수성 등이 크게 작용한 한편, 마르크스주의로 대변되는 한국의 비주류 경제학계에서도 민스키의 중요성을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점도 민스키가 늦게 소개된 데 일조했다. 이 책의 출간이 현대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금융 시스템의 점증하는 역할과 불안정성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한국 사회는 1990년대 말 동아시아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점점 더 미국식 금융 시스템의 영향을 받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점들―기업 투자 지평의 단기화와 이에 따른 노동시장의 분절화(비정규직 고용의 증대와 임금 소득의 하락 및 임금 차별), 은행들의 단기 수익 위주의 대출 행태와 주식시장의 투기성 증대, 노동 소득의 감소와 이에 따른 가계 부채의 폭증, 경제성장률의 둔화와 고용의 질 악화 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1990년 초부터 한국 사회가 순차적으로 경험했던 일련의 사태들, 즉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급속한 자본시장 개방, 1997~98년의 외환위기, 그리고 1998년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지속된 금융시장 통폐합과 추가 자본시장 개방 등을 거치면서 나타난 금융 산업 분야의 비대화와 금융화 과정의 종합적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케인스와 민스키가 제안하는 공공 정책은 한국 사회 현실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실천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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