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해방전쟁 도화선 된 작품
[책소개] 『노예 12년』(솔로몬 노섭/ 펭귄클래식코리아)
    2014년 02월 16일 12: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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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에 대한 참혹한 기록 《노예 12년》은 영미 문학에서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솔로몬 노섭은 납치되어, 노예를 잔인하게 다루기로 악명 높았던 루이지애나 주로 팔려간다. 12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노섭은 노예 제도를 향한 깊은 분노를 이 작품으로 풀어냈다.

노예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 노예 제도가 백인 주인들의 인간성과 도덕성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노예 제도를 그린 자전적 작품 중에서 노섭만큼 독특한 시각과 유려한 문장을 보여준 작가는 없다.

자유인의 삶과 노예의 삶, 모두를 겪었던 그는, 흑인 노예들의 삶을 여실하게 그려냄으로써 흑인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 아니라, 노예 제도가 지닌 야만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생각해 보라. 인생의 희노애락을 알고, 아버지와 남편으로 불렸던 서른 살의 남자가 어느 날, 노새나 말 같은 소유물로 전락했다. 피가 얼어붙는 이야기다.”_ 프레더릭 더글러스 (노예제 폐지 운동가)

단 한 순간도 자유를 포기하지 않은 남자!

“흑인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자유를 향한 투쟁은 시작된다.”_넬슨 만델라

《노예 12년》은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840년대, 노예 제도가 횡행하던 미국의 남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자유로운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불법 납치되어 12년간 노예 생활을 하다가 극적으로 풀려난 솔로몬 노섭의 실화다.

1808년 뉴욕에서 태어난 솔로몬은 세 아이를 둔 가장이자 성실한 남편이요, 바이올린 연주자로 일하는 자유인이었다. 부부가 쉬지 않고 열심히 노동해서, 가난하지만 언젠가는 풍족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그러다 1841년, 일거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두 남자의 꼬임에 넘어가 길을 떠났다가 납치당해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제임스 버치라는 악명 높은 노예 상인에게 잡혀 있던 솔로몬은 배에 태워져 머나먼 남부의 뉴올리언스 주로 팔려간다.

플랫이란 이름을 달고, 다행히도 처음엔 루이지애나 주에 사는 사람 좋은 목사 윌리엄 포드에게 팔렸다. 그러나 주인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자 존 티비츠라는 악인에게 넘겨지면서 끔찍한 고난이 시작된다.

이유 없는 채찍질을 당하는 것은 물론 목에 올가미를 매이기도 하고, 광분한 도끼질을 피해 달아나다 살모사가 넘쳐나는 죽음의 습지를 헤매기도 한다. 죽음의 끝에서 간신히 살아나지만 다시 잔인한 술주정뱅이 에드윈 엡스에게 팔린다.

그 후 가축에게나 주는 음식을 먹고 거친 담요 한 장 두른 채 자면서, 동틀 무렵부터 자기 전까지 고된 노동과 생명의 위협, 가학적인 채찍질이 10년간이나 이어진다. 그리고 1853년, 양심을 지닌 한 백인의 도움으로 편지를 써서 간신히 그 지옥에서 구출된다.

비록 12년간이나 노예로 살았지만 지성을 갖춘 자유인이었기에 솔로몬 노섭은 자신이 겪은 끔찍한 체험을 때로는 긴박하게 때로는 침착하게 글로 재현해냈다. 얼마나 섬세하고 생생하게 표현했는지 르포 문학으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어 놀라울 뿐이다.

물건 취급을 하며 흥정을 벌이는 노예시장,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애끓는 장면, 탈출하다 사냥개에게 쫓기거나 다시 잡혀 죽음을 당하는 일 등은 노예 신분이 아니라면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사연들이다. 한편 노예들의 주된 노동이었던 목화밭 경작이나 솜을 따는 법, 사탕수수 재배와 제당공장에서 설탕을 생산하는 과정 등은 가히 농업문화사의 한 챕터로 삼기에도 손색이 없다.

‘자유로울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를 포기하지 않은 용기’를 보여주는 작품이기에 《노예 12년》은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여타의 흑인 문학과는 다르다.

솔로몬 노섭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었고, 따라서 납치된 순간부터 노예로서의 체념이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번 자유를 만끽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법이다.

무자비한 자들의 손아귀에서 기약 없는 고통을 당하며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늘 자유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기에 결국은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결국 노예 해방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이런 긴 체험담까지 써낼 수 있었다.

노예12년

2013년, 영상 아티스트로 유명한 영국 출신의 흑인 스티브 맥퀸(설마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시는 분은 없겠지? 우리가 아는 <타워링>에 나온 그 유명했던 영화배우가 아니다. 그분은 이미 30년 전에 고인이 되었음) 감독이 <노예 12년>을 그의 세 번째 영화로 선택했다. IRA의 리더로 교도소에 수감된 보비 샌즈의 단식투쟁을 그린 <헝거>(2008), 뉴욕 여피족의 쓸쓸하고도 은밀한 일상을 그린 <셰임>(2011) 등 늘 소수자 편에 선 시선을 담은 단 두 편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감독이기에 당연히 영화계의 관심이 한 몸에 쏟아졌다.

그렇다면 남의 나라에서 벌어졌던 비극인 이런 흑인 노예의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왜 중요한 것일까. 권력을 쥔 자들이 잘못 만든 제도에 의해 박해받을 수밖에 없는 힘없는 약자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권력자와 다수의 약한 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박해받는 현실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간과해도 우리, 혹은 나와 상관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얼마 되지 않은 지난 20세기에만도 남아공에서 잔인한 인종 차별 전쟁이 벌어지고 나치의 유대인 말살 조치가 떡하니 벌어졌듯이, 어쩌면 우리도 피부색이나 국적에 따라 다른 인간에게 학대를 당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재산이나 종교, 병의 여부에 따라, 어쩌면 단지 약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니면 힘없는 어린이라는 이유로도 그와 비슷한 차별을 받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박해받는 약자에게 보내는 시선은 그들뿐 아니라 언제 소수자로 전락할지 모르는 우리 자신까지 보호하는 단단한 양심과 연대가 되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는 누구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로 살아남아 ‘노예 해방’의 도화선이 된 위대한 흑인 솔로몬 노섭의 절절한 호소야말로 《노예 12년》이 우리에게 주는 강렬한 메시지인 것이다.

“노예제도의 존재가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더 악화시키는 것 같았다. 날마다 인간이 고통받는 모습을 목격하면 잔인하고 무감각해지게 마련이다. 노예들이 괴로워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 무자비하게 채찍질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죽어 관도 없이 묻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인간의 목숨을 중히 여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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