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라야마 담화,
    일본 우경화 막을 수 있을까?
        2014년 02월 12일 06: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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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을 방문해 아베 총리 내각에서도 무라야마 담화문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메세지만 강조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12일 오전 10시 국회에서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한 한일관계 정립’이라는 주제의 강연과 오후 2시30분 기자회견을 통해 무라야마 담화문의 정신은 역대 모든 정권에서 계승해왔으며 이를 계승하지 않는 일본 각료라면 마땅히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현 아베 총리도 담화문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 무라야마 담화 부정하지 않아”?

    하지만 일본 우경화를 본격화하고 있는 아베 총리의 실제 행보는 무라야마 담화문 정신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베 총리는 작년 12월말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독도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문제로 국내외의 논란을 격화시키고 있다.

    또한 도쿄 전범재판에 대해서 “승자의 판단으로 단죄한 재판”이라고 발언해 미국에서 반발하기도 했으며 지난해 4월에는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전세계적으로도 확실히 정의된 바 없다”고 말해 침략과 군국주의를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는 등 우경화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또한 무력사용을 금하고 있는 평화헌법의 해석변경을 통해 우경화의 제도적 환경을 정비하고, 무기수출 금지 원칙을 무력화하려고 하는 등 일련의 우경화 행보와 정책 추진이 아베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문은 그대로 둔 채 새롭게 ‘침략 전쟁이 피해를 준 것은 반성하겠지만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는 요지의 아베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무라야마 전 총리는 “아베 총리의 행보는 무라야마 담화문을 사실상 부정하는 것과 다름 없는데 내각 사퇴를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아베 총리는 최종적으로 국회에서 무라야마 담화 정신을 계승한다고 발언했다”고 강조하며 “담화 정신을 계승한다는 발언은 일본만을 향한 게 아니라 한국과 중국, 전 세계를 향해 말한 것”이라고 원론적인 수준에서 답변했다.

    또 ‘아베 담화’에 대해서도 “아베 담화라는 것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 후에 국제 정세에 대응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해서 내고 싶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중인 무라야마 전 총리(사진=장여진)

    기자회견 중인 무라야마 전 총리(사진=장여진)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문의 핵심 내용인 ‘식민지 지배와 침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아베 총리가 ‘침략에 대한 국제적인 정의가 내려진 바 없다’고 발언해 ‘참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침략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며 “그것을 봤을 때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에 나와 있는 침략을 부정한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독도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으로 동아시아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그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각각의 주장과 명분에 근거가 있다고 본다”면서 “그런데 이 주장을 서로 줄다리기만 해서는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서로 양보해서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했으면 한다”고 답변했다.

    일본 언론인 “위안부 피해자 국가 배상하지 않아 젊은세대 우경화 결과 낳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문제를 인정했던 것과 별도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 문제 논란은 다소 복잡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무라야마 전 총리 재임 시절 국가배상 대신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을 설치한 것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유야무야 만드는 미봉책”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무라야마 전 총리는 12일 오전 강연을 통해 국민 모금을 통한 보상 방법을 한국과 대만 피해자들이 거부해 안타깝다면서도, 과거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프리랜서 언론인 아사노 겐이치씨는 일본 정부가 국가적 차원의 배상 책임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국민들이 국가 책임과 위안부 문제에 무관심해진 것 아니냐고 제기했다. 특히 그러한 무관심으로 인해 자민당-공명당 후보인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 도지사 후보에 젊은 세대 지지율이 30%를 훨씬 넘는 지지표를 던지는 등 오히려 중장년층 보다 젊은세대의 우경화가 더 심각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무라야마 전 총리는 기금과 관련해서는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금을 만들고자 했던 경위와 진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았겠냐”며 “당시 피해자들이 고령이여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 계시는 동안 무언가 보상하고 명예를 회복해 드리고 싶다는 의미에서 기금을 발족키고 노력을 기울였던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답변했다.

    지난 2월 9일 진행된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자민당과 공명당이 지지한 마스조에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특히 이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항공막료장 출신의 극우파 후보 다시가미 후보도 60여만표를 득표했다.

    충격적인 것은 마스조에 후보도 20대에서 36%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극우파 다모가미 후보도 20대에서는 24% 지지를 받아 민주당이 지지한 호소가와 후보의 11%, 사민당과 공산당이 지지한 우쓰노미야 후보 19%를 훨씬 앞질렀다는 점이다. 일본 우경화의 강도가 20대 등 젊은 층에서 더욱 거세다는 지표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러한 젊은 세대의 우경화에 대해 “현재 일본의 국내외 정세를 보면 북핵 문제와 한국과 중국과의 영토 문제 등 주변국과 삐그덕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설명하며 “젊은 세대는 과거 전쟁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사회당에서 사민당으로, 일본 우경화 막아냈던 힘도 몰락 

    무라야마 총리는 전후인 1947년 연립정권으로 총리에 올랐던 가타야마 데츠 총리 이후 46년만에 총리에 오른 사회당의 마지막 총리이다.

    사회당은 1955년 자민당과 함께 55년 체제를 유지한 대표적인 혁신정당으로 40년 가까이 30%를 전후한 지지율과 의석수를 갖고 있었으며, 일본 노동운동과 시민사회 등의 지지를 기반으로, 집권하지는 못했지만 자민당을 견제하고 평화헌법 수호 등 일본의 진보적 주축세력의 역할을 해왔다.

    자민당이 만년 여당이었지만 우경화 행보를 노골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던 것은 사회당과 사회당을 지지한 단단한 유권자들의 힘이 일정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당은 90년대를 전후해 몰락했다. 무라야마 총리가 재임하던 당시 94년 정권은 자민당-사회당의 연립정권이었다. 특히 사회당은 오랫동안 견지해왔던 비무장 중립정책이나 미일 안보조약 폐지 등의 입장을 변경했다. 이를 계기로 자민당과의 연립정권 문제와 사회당의 우경화 등에 대해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사회당의 몰락이 가속화됐다는 평가도 있다.

    96년 무라야마 총리 내각이 사임하고 그 해 1월 사회당은 사회민주당(사민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1990년 의석수가 136석이었고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70석으로 참패했고 사민당으로 개정한 96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15석으로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현재 사민당의 의석은 10여명이며 지지율도 1% 전후이다.

    무라야마 담화가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남아있지만 현실에서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고 아베 정부에 의해 무력화돼 버린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는 40여년간 일본 진보세력과 시민사회의 기둥이었고 평화헌법과 노동운동의 옹호자로서 존재해왔던 사회당이 1% 전후의 군소정당인 사민당으로 내몰린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일본에서는 평화세력과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정당은 사민당, 공산당, 생활당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의 의석 비율은 모두 합쳐도 한자리 수를 넘지 못하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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