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길,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
    [빵과 장미] “골목길 접어들 때면~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2012년 06월 19일 01: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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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식의 노래 “골목길”과 같은 가사가 지금 2012년에도 쓰여질 수 있을까. 지금은 아마 그녀를 보기 위해 “아파트 단지에 이르면~”이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골목길. 그 단어에서 전해오는 느낌은 친근하면서 동시에 쓸쓸해지고 있다. 번쩍번쩍 새롭게 빌딩을 쌓아 올리고 깔끔하게 도로를 정비하는 도시 속에서 낡고 비좁은 골목을 마주하는 일이 이제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 낡아빠진 골목이 줄어들면 오히려 도시 외관이 더 보기 좋을 듯 한데 이상하게 정취가 사라진다. 최고 미녀들의 눈코입을 합친 합성 사진에서 오히려 아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인사동의 아기자기한 가게들은 커다란 ‘쌈지길’로 정비가 되더니, 고갈비에 옅은 막걸리를 마시며 저렴하게 취할 수 있던 피맛골의 ‘와사등’같은 주점들은 무슨 빌딩 안으로 다 옮겨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몇 년 전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마케팅으로 탄생한 문구가 ‘다이내믹 코리아’였다는 걸 봐도 알 수 있지만 한국은 정말 역동적인 나라고 또 그것을 추구하는 나라다. 하루가 다르게 휙휙휙~ 활력 있고 세련되었다.

    작년부터 도로명 주소가 법정 주소로 사용되기 시작해서 2014년부터는 도로명주소만 사용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 동안은 혼란이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참 적당한 변화라고 생각했다. 주소만 알면 모르는 곳에서도 지도를 보며 찾을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길 찾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역동적인 한국은 세련된 길을 뚝딱뚝딱 만들고 없애기를 참 잘 한다는 점이 걸린다. 전혀 새롭지 않은 그 진부한 개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피맛골처럼 좁고 낡은 길들은 길 취급도 못 받고 지속적으로 사라질 것 아닌가.

    도로명 주소가 유지되려면 단지 길이름 짓고 간판 붙이는 행정적 변화만이 아니라 길에 대한 애정도 더불어 따라와야 할 테다.

    갈수록 활력 있고 세련된 오늘날의 도시는 점점 역사가 없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정취 따위는 쓸모 없다. 뚝딱뚝딱, 새롭게, 새롭게, 날마다 새로움에 미쳐 흩날리는 순간의 화려함만 찬란하다. 짓고 허물고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토목질 거리’를 생산하는 도시는 마치 상품의 유행을 만들어내어 지속적으로 옛 것을 부정하도록 만드는 소비사회의 전략과 비슷하다. 흘러간 것은 후진 구닥다리 취급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짓고, 사들일 수 있다.

    변화의 간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오늘날 현대인의 강박 중에 하나는 아마도 ‘새로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새로움의 홍수 속에서 전혀 새로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진다. 오히려 낡은 것을 통해 새로움을 느끼는 구조.

    그래서 나는 큰 대로변 틈에서 굳이 낡은 골목길을 찾아 걷곤 한다. 자궁 속이 그리운 듯 넓은 방을 두고 자꾸만 벽장에 들어가거나 다락에 올라가기 좋아하는 어린 아이처럼, 나는 근대화 이전의 역사를 잊기 싫어하는 유아적 병이 있는 듯 하다. 그래서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처럼 화려한 길은 내게 여전히 매력이 없고 오래된 낡은 골목길을 걸을 때 마음이 더 편하다.

    뜬금없이 골목 얘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벨기에 리에쥬Liège에 잠시 들렀다가 그리 크지 않은 이 도시에서 심하게 좁은 골목길을 발견하고 다소 흥분되어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100살 정도 나이를 먹은 건물이야 아직 노장으로 인정받지도 못할 정도로 오래된 건물이 버티고 있는 유럽에서 아기자기하게 예쁜 골목은 종종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겨우 한 사람만 다닐 정도로 심히 비좁은 골목은 아주 간만에 보았다. 정말, 길일까. 길이었다. 나오는 사람이 있는 걸로 보아 분명 들어갈 수 있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엄연히 도로명도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골목을 빠져 나온 아이 아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치 묘기라도 했다는 듯 뿌듯한 표정으로 이마에 손을 올리고 재미나게 웃는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생긴 아주 좁은 틈에 만들어진 길이기에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벽에 바짝 붙어야 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내가 멈추자 뒤에 오던 사람들이 한 줄로 주욱 서서 모두 기다리기도 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익숙하지 못하니 얼른 걸음을 재촉해서 골목을 빠져 나왔다. 작동하는 에스컬레이터 위를 뛰어다닐 정도로 분주하고 바쁜 일상에 함몰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딱히 편하고 좋은 길은 아닐 수 있겠다.

    그런데 이 ‘후진’ 길이 오히려 새롭다. 이런 길이 이직 버림받지 않았다니.

    사람도 성형하고 도시도 성형하느라 어디를 가든 깔끔하긴 한데 점점 더 맛과 멋이 흐르지 않는다.

    어릴 적 할머니가 언제나 “신작로 건널 때 조심하고~”라고 하던 그 조심해야 할 ‘신작로’는 이제 더 이상 신작로가 아니다. 온 사방에 쭉쭉 뻗은 ‘신작로’가 있다. 흙을 밟을 수 있는 길이 사라진 멋진 ‘신작로’를 보던 할머니의 기분이 혹시 낡은 골목이 사라지는 세련된 도시를 바라보는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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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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