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튜어트 홀 10일 운명해
    문화이론 개척자, 신좌파의 거인
        2014년 02월 11일 11:43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다문화주의의 대부이자 문화이론의 선구자라고 불렸던 스튜어트 홀(1932~2014)이 82세로 10일(현지시간) 사망했다. 자메이카 태생의 홀은 문화연구를 출발시킨 선구자의 하나였으며 좌파의 가장 대중적인 사상가이기도 했다.

    그는 인종, 섹슈얼러티, 정체성, 미디어 등에 대한 논쟁을 끌어간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신좌파의 흐름을 만든 사람 중 하나였으며, 정치분석에서 사회의 문화적 변화가 경제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포스트식민주의도 그의 중요한 연구주제였다.

    2013년 제작된 다큐 '스튜어트 홀 프로젝트'의 한 장면

    2013년 제작된 다큐 ‘스튜어트 홀 프로젝트’의 한 장면

    홀은 ‘대처리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그는 이 용어를 통해 1979년 대처가 집권하기도 전에 영국에서 이후 신우파가 부상할 것을 예언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맑시즘 투데이> 기고를 통해 좌파들에게 대처리즘이 부각될 것이라는 호소를 무시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1951년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톤에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로데스 장학생으로 건너왔으며, 이후 홀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홈스봄과 함께 신좌파평론(New Left Review)을 창간했다. 1964년에는 영국의 첫 번째 문화연구 기관의 연구원이 되었다. 1979년부터 97년까지 18년 동안 그는 방송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있었다.

    그는 작년 인터뷰에서 신노동당(New Labour)을 대처리즘 기획의 확장으로 묘사하면서 현재의 에드 밀리반드 노동당 대표의 행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