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파업,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인터뷰] 하현아 전국철도노조 서울차량지부 지부장
        2014년 02월 10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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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만여명의 철도노조 조합원 중 차량지부 조합원은 5천여명. 이중 여성 조합원 비율은 2~30명에 불과하다. 서울 차량지부에도 조합원 240여명 중 여성조합원은 고작 6명. 하지만 지부장은 올해 43세의 여성이다. 그 주인공은 하현아 지부장.

    지난해 12월 9일 철도노조가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해 총파업에 나섰을 때 유일하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여성 지도부이기도 하다.

    2000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철도노조는 어용노조였다. 당시 3중 간선제로 위원장을 선출했을 정도이다. 현장조합원은 지부 대의원을 선출하고, 지부 대의원이 모여 지방본부 파견 대의원을 선출했고, 이 파견 대의원이 위원장을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2000년 3중 간선제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민주노조를 세우기 위한 공동투쟁본부가 구성됐고, 그때 하현아 지부장은 학생운동을 하면서 민주노조에 간사로 활동했다. 그렇게 철도와 인연을 맺었던 하 지부장은 2003년 공채를 거쳐 철도노동자가 됐다.

    2006년과 2009년 파업을 거쳐 2013년 철도 역사상 22일이라는 최장 파업 모두에 참여했다. 특히 2013년 파업은 지부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철도와의 연을 맺었던 하 지부장에게 철도의 문제와 더불어 아직 끝나지 않은 철도파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7일 차량지부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차량기지가 없어 폭설이 와도 선로위에서 정비 작업해야
    신규채용 없이 인력감축, 평균근속 20년…돌연사도 많아

    장여진: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하현아: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산하의 서울 차량지부장 하현아이다.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의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정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장여진: 철도공사에 입사는 언제 했나?

    하현아: 2003년도에 했고 올해 11년차이다. 서울 차량지부 평균연령이 49세로 대부분 형님들이고 저는 막내급이다. 서울차량지부는 일반 서민들이 많이 타는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노후 차량이 많다보니 2005년 이후로 신규채용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지부 평균연령이 49세이고 대부분 20년 이상 근무하시는 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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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현아 차량지부 지부장(이하 사진은 장여진)

    장여진: 남성 위주의 사업장에서 여성 간부로서 힘든 점은 없나?

    하현아: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제가 훨씬 더 어리고 여성이다보니 오히려 선배님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오히려 더 짠한 마음으로 잘해주신다. 머리도 밀고 하니깐. (웃음) 후배를 지부장으로 세워놨으니 뒤에서 선배들이 더 많이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들이 강하시다. 그래서 우리 지부 파업도 더 잘 된 거고.

    정비일은 경쟁보다는 협력해야 잘 된다. 그래서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는 곳이다. 일 자체가 중한 일이고 기계나 쇳덩어리를 다루는 일이라서 힘으로 부치지만 공동으로 작업하면서 서로 도움도 주고 받으면서 노조활동에 대해서도 많이 지지하고 따라주신다.

    장여진: 신규채용이 없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

    하현아: KTX가 개통되면서 새로운 정비기술이 필요로 한다. 반면 새마을호 등 일반열차는 기존의 정비기술을 사용해야 하니 젊은 인력은 KTX 정비로 지원해서 나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울 차량지부는 시설 자체가 많이 낙후되어 있어 차량기지가 아닌 선로 위에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일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장여진: 폭설이 내려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선로 위에서 작업해야 하나?

    하현아: 그렇다. 차량기지는 전기 정비만 하고 나머지는 선로 위에서 작업한다. 2000년 이후 차량관리원 2명의 팔 절단 산고가 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특히 철도공사가 정비인원을 5천여명 가량 감원하면서 전국적으로 차량지부에서 휴일에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심근경색 등 돌연사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다. 직무스트레스도 많고.

    2002년 한 해 전국적으로 철도노동자만 34명이 죽었다. 그때 노조에서 투쟁을 크게 벌려 관련 법규를 제정하면서 후진적 충돌, 끼임 사고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메트로나 도시철도와 비교하면 사고가 많은 편이다.

    서울 차량지부의 경우 정비 도중 옆 선로에 열차가 들어와도 별도로 신호를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알아서 피해야 한다. 추돌이나 안전사고에 대한 조치가 하나도 없는 낙후된 곳이다.

    3일은 못 넘긴다는 정설 깨고 국민 성원 덕분에 힘 받아

    장여진: 철도파업의 쟁점을 다시 설명 부탁한다.

    하현아: 2013년 철도노조는 코레일과 임금교섭 및 현안교섭을 이미 시작했었다. 핵심적으로 수서발KTX 주식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코레일과 국토부의 계획이 철도산업위원회에 통과되면서 교섭 의제가 됐다.

    통칭해서 이를 철도민영화라고 하지만 사설 수서발KTX 설립을 민영화의 전 단계로 본 것이다. 철도공사의 수익구조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철도공사와 정부는 수서발과 서울발KTX를 경쟁시키겠다고 하지만 서울발 승객이 수서발 승객으로 분리되는 효과만 발생하기 때문에 철도공사는 심각한 경영 압박을 받게 된다. 수서발KTX의 청사를 새로 건립해야 하는 문제, 주요 인력들이 중복해서 동일한 일을 해야 하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특히 철도공사는 공사 직원 4천여명을 감원해야 한다고 내부 자료를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철도노조 입장에서는 노동조건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교섭을 진행해왔다. 이외에도 물류 자회사, 차량정비 자회사, 신설선은 민영화하고, 적자선은 매각하겠다는 것 등 민영화의 전 단계가 본격화 되면서 파업 돌입 전부터 교섭을 진행해왔고 국민들에게서 서명도 받아 100만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장여진: 파업 돌입 직후 신속하게 지도부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하 지부장은 언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나?

    하현아: 12월 9일 파업 돌입 직후 지도부에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노조 압수수색이 시작됐다. 나는 현장 지부장일 뿐인데 파입 종료 직전인 28일에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

    보통 지도부라하면 위원장 중심으로 지방본부장까지가 지도부이고 통상 여기까지 영장이 발부됐는데 이번에 3차례에 걸쳐 나를 포함한 일부 지부장들에게도 발부했다.

    장여진: 철도파업 과정에서 느꼈던 현장 분위기와 국민들 반응은 어땠나?

    하현아: 나는 비교적 체포영장이 늦게 발부되어 파업 기간 내내 조합원들과 함께 했다.

    파업을 하면 3일을 못 넘긴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이번 파업은 돌입하자마자 둘째날부터 4천여명 직위해제를 시작으로 자기 근무일이 돌아올 때마다 직위해제를 당하면서 총 8천여명까지 직위해제가 됐었다.

    사측은 10일 철도공사 이사회 직후 파업 참가자에게 직위해제를 하면 조합원들이 흔들릴꺼라고 판단한 것 같은데, 조합원들은 이미 민영화 문제에 대해 이사회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투쟁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위해제가 됐다고 해서 파업을 접어야 한다는 조합원은 없었고 오히려 파업 참가자만 더 늘어났었다.

    파업기간도 파업 종료를 선언한 것이 30일이지만 서울 차량지부는 1월 6일에 복귀해서 28일간 파업을 벌인 셈이다.

    당시 철도공사측은 복귀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과 개별 면담을 받지 않으면 복귀신고서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일방적인 방침을 통보했었다. 그때 차량지부는 이에 반발해 따로 더 싸우고 1월 6일에 북귀하게 됐다.

    28일간 조합원들과 함께 싸운 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 파업을 이렇게 오래할 수 있다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해 우리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파업의 근본 원인은 철도민영화는 안 된다는 공기업 직원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었다. 민영화가 된다면 철도노동자의 고용 문제도 심각하지만, 그 피해의 결과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파업 전부터 길거리 선전전 등을 통해 국민들을 만나왔지만 국민들은 2008년 촛불시위때와 마찬가지로 철도를 포함한 물, 가스, 전기 등의 민영화는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이번 파업만큼 국민지지를 크게 받은 건 처음이었다.

    2006년, 2009년 때는 국민 발을 볼모로 파업한다고 비난부터 받았는데, 이번 파업에는 후원금도 어마어마하게 들어오고 시민들이 커피나 쵸코파이도 사다주시고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는 국민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우리가 복귀하고 싶어도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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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수유지제도 때문에 현장에 남아있던 조합원들이 3배로 고생

    장여진: 파업 기간 동안 계속 서울 차량지부에 있었나?

    하현아: 승무지부나 시설지부 등은 한 장소에 모여 집단 숙박 형태를 띠었는데 우리는 출퇴근 파업을 벌였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총회하고 낮에 교육과 선전전, 집회에 참여한 뒤 저녁에는 촛불집회하고 마무리했다. 중간에 2번 정도 1박2일로 집단으로 수련회를 가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는 필수유지인력 제도 때문이다. 파업권을 제한하는 악법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번 파업에도 필수유지인력을 지켰고, 그 때문에 파업에 참여하고 싶어도 현장에 남아야 했던 조합원들이 많다. 2만1천여명의 조합원 중 절반 가량이 필수유지인력이다. 이 분들도 파업을 함께 하고 있다는 인식과 동지애를 주기 위해 참가자들이 현장에서 투쟁했다.

    그래서 필수근무자들은 자기 근무를 마치면 현장의 농성장으로 결합해 같이 농성도 하고 교육도 받고 집회도 나갔다. 근무시간이 되면 다시 출근하고. 그래서 오히려 필수유지인력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웃음)

    ‘임금 형평성 파업 손실기금’이라고 해서 파업 참여기간 참가자들의 월급이 그만큼 줄어서 지급 받는데, 이때 손실된 금액을 파업에 참가하지 못한 조합원들이 대신 보전해준다.

    2009년 파업 때부터 해온 것인데 파업으로 손실된 임금을 자기 직급과 호봉에 맞춰 전국적으로 똑같이 내는 것이다. 이번 파업건은 1월 임금부터 내고 있다. 그러니 이분들은 자기 일도 하고 파업도 참여하고 돈도 내는 것이다. (웃음) 그래서 이 분들도 파업의 주역이다.

    장여진: 필수유지인력제도, 다른 나라도 있는 것인가?

    하현아: 그런 나라가 있을까? 들어본 적은 없다. 한국의 경우 노무현 정부 시절 노조법을 개정해 만들었다. 필수공익사업장이라 해서 철도, 병원, 한국전력 등의 파업을 제한하기 위해서. 또 그전에는 직권중재 제도까지 있어서 직권중재를 안 받고 파업에 들어가면 다 불법이라고 해서 2001년, 2006년 파업은 모두 법적으로는 불법 파업이 됐었다.

    장여진: 지금(7일) 영국의 런던 지하철들이 파업하고 있는데, 지하철 가동률이 30%인 것을 보니 적어도 영국의 경우 필수유지인력은 없는 것 같다.

    하현아: 30% 가동되는 것도 필수유지인력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다. 모두 조합원이 아닐 것이고 조합원이라 하더라도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깐. 또한 기본적으로 대체인력을 사용하듯, 관리자들이 운행하는 게 아닐까 싶다.

    12월 30일 철도파업 종료 선언, 조합원들도 언론보도 알고 당황해

    장여진: 30일 철도파업을 종료할 때 다소 매끄럽지 못했었다. 민주당에서 먼저 파업 종료를 선언하면서 현장에서나 연대 단체들에서도 우왕좌왕했었는데, 당시 현장 상황은 어땠나?

    하현아: 조합원들은 그 합의 과정을 전혀 몰랐었다. 파업 기간에 집단적으로 모여서 의논하는 게 아니니깐. 그래서 파업을 정리하는 게 더 힘들고 중요하다.

    당시 지부장들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게 됐다. 그래서 많이 당황스럽기는 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힘들어지는 지부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차량이나 운전 등 주력 지부가 무너지건 건 아니었는데. 위원장이 정치권과 만나서 그렇게 합의했다는 걸 알고 분통 터트리는 분들도 있었다. 더 싸울 수 있으니깐.

    특히 민주당이 파업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철도민영화에 대해 철도노조와 근본적으로 같은 인식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었는데 막판에 그런 상황을 연출하니 우리도 민주당 욕을 참 많이 했다. 노동자 투쟁의 한계점인 것 같기도 하고.

    장여진: 합의 내용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잘 정리된 게 아닌가.

    하현아: 워낙 23일간 투쟁을 잘 해왔다는 자부심이 있어 아쉬움은 덜 하긴 하지만 다들 이것이 완벽한 승리는 아니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다만 어느 정도 실마리나 여지를 남겨뒀고 국민들을 만나 철도민영화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잘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철도공사나 박근혜 정부가 물러설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더 길게, 더 크게 싸워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솔직히 국회 철도소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 조합원은 없다. 바람일 뿐이다.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보다 더욱 불통인 정부이다. 다시 잘 싸워야 한다.

    민주노총 침탈 때 ‘반전’에 통쾌…가족들 지지도 받아

    장여진: 파업 기간 가장 많이 기억나는 날은 언제인가?

    하현아: 12월 22일 민주노총을 침탈했을 때이다. 노동자들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 본부에 공권력이 침탈하지 않았나. 그 날 생중계 되면서 공사측과 정부는 조합원들에게 이제 지도부가 다 잡혀가니깐 복귀하라고 선전했다.

    당일 우리 차량지부 조합원들도 사수대로 들어가 있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처절하게 싸웠다. 나머지 조합원들도 민주노총으로 모여 싸웠다. 그런데 결국 지도부가 없지 않았나. 그 반전과 통쾌함이란. (웃음) 우리가 지도부를 잘 지켜냈다는 승리감도 있었고, 홍길동 작전에 통쾌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이 가장 기뻤다.

    장여진: 장기간 파업에 돌입하면서 가족들 걱정도 많았을텐데.

    하현아: 저기 계속 앉아있던 사람이 남편이다.(인터뷰 진행 당시 노조 사무실 한쪽에서 일하고 계시던 분이었다) 남편이 차량지부의 해고자다. 자녀는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했다.

    다만 어른들은 많이 걱정했다. 그런데 신기한 게 국민들이 지지했듯이 가족들도 그랬다. 사촌들이 민영화의 논리를 언론보도나 SNS를 통해 알게 되고 또 그걸 어른들에게 설명해주면서 이번 파업만큼은 잘 이해해주시고 지지해주셨다. 앞장 서는 것에 걱정은 하셨지만 정부가 잘못한 것이고 너희가 옳다고 말씀해줬다.

    방만 경영? 코레일 출범 때부터 적자 떠안고 시작
    적자노선 공항철도 인수해서 키워났더니 재매각…사기업만 배불려

    장여진: 언론에서 방만경영이다, 귀족노조다 비판이 많았다. 철도공사의 경영 문제점은 무엇인가?

    하현아: 철도청 시절에는 부채비율이 100%도 안 되는 당시 초우량 기업이었다. 그러나 철도공사로 전환되고 공단과 공사가 분리되는 상하 관계가 됐다. 철도민영화를 하기 전 기반 시설을 담당하는 공단은 정부 소속으로, 운영은 철도공사가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철도공사가 KTX 선로를 건설하면서 발생한 부채를 다 떠안고 출발했다. 당사 4조원 정도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철도청 시절에는 없었던 철도 사용료를 1년에 6천억원 정도 가량 공단에 주고 있다. 외국에 비해서도 과도하게 책정된 거라고 한다.

    용산개발에 실패하면서도 엄청난 손해를 봤다. 당시 노조가 안 된다고 반대했던 내용인데도 공사는 수익을 내겠다며 부대사업에 눈을 돌렸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했다. 러시아 유전 사업도 그랬고.

    워낙 많은 부채를 안고 시작하면서 매년 나가는 이자도 많다. 그러나 정부는 공기업들한테 과도하게 투자를 강요한다. LH공사도 마찬가지이다. 과도하게 투자하게 만들고 은행에 돈 빌리게 한 뒤 꼬박꼬박 이자를 갚게 한다. 결국 은행의 이윤을 위해 공기업을 이용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철도는 단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게 없다. 오로지 승객들이 열차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영업이익이 전부이다. 그런데 철도는 공적 서비스도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학생할인, 노인 무임승차, 군인할인, 대기업들이 화물열차를 이용할 때 운임 할인해주는 제도라든가. 이런 거 할 때 정부가 철도공사에 보존해주는 기금이 있는데, 이걸 또 제대로 안 준다.

    4조원을 떠안고 시작한 철도공사의 부채가 지금은 17조원이라고 하는데 다 이렇게 늘어난 거다. 이자로 나가는 돈, 용산개발 실패, 정부의 기금 보전 지연, 과도한 투자 강요. 공항철도의 경우 현대 등 사기업에서 시작했는데 수요 예측에 실패했었다. (공항철도는 현대건설이 2007년 민자로 건설해 운영하다가 2009년 철도공사가 1조2천억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지하철 9호선과 같이 ‘최소운영수입보장’에 따라 기업들은 손해본 게 없었다. 그렇게 사기업은 손을 떼고 공사가 적자노선인 공항철도를 억지로 인수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운영이 괜찮아지니 1조8천억원에 재매각한다고 한다.

    어쩌면 공항철도 사례가 철도공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공기업이 운영하니 훨씬 더 잘 되고 서비스도 좋아지고 승객도 늘어난다는 걸 정부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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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파업 그 후, 민영화 작업 본격 시작…2.25 총파업에 불 다시 지핀다
    “고등학생이 보내준 편지, 한의사들이 보내준 쌍화탕의 마음으로 지지해달라”

    장여진: 2월 25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맞춰 철도노조도 24기간 재파업을 결의했다. 어떤 의미인가?

    하현아: 국민총파업에 철도노조가 함께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국민의 연대와 신뢰가 있는 노동조합으로서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

    철도노조에는 현재 심각한 상황이 많다. 파업이 끝난 뒤 공사측에서 대규모 징계 중에 있다.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 모두 징계하겠다는 것이다.

    강제 전보 문제도 있다. 사업소별로 인원을 선정해서 섞으려고 한다. 단결이 강한 지부와 약한 지부를 섞는 것이다. 공사 표현으로는 ‘근무 불성실’, ‘상습적 D평가’ 받는 직원을 뽑아 다른 지역에 보내 근무하게 하고, 이 전보를 1년에 2번씩 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 전보 조치를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한 작업으로 보고 있다.

    또한 물류자회사 설립과 3월 1일부터 1인승무를 강행하겠다는 문제도 있다. 화물열차의 경우 출발할 때 하는 출발 검수를 생략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구조조정도 강행하려 한다. 공사측은 차량지부에서 하던 일을 지역에서 하면 된다고 하지만 말장난에 불과하다. 2011년도에 지방에서부터 시행 중인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공사측은 인력 효율화 차원에서 그 업무를 역에서 하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다 넘기겠다고 한다.

    장여진: 화물열차의 출발검수를 안 할 경우 안전사고가 우려된다.

    하현아: 차륜(열차 바퀴)가 깨져서 탈선한 사례가 있다. 여객 차량이 아니다보니 언론에 잘 보도되지는 않았다. 차량검수 시 차륜의 형태와 축의 상태를 잘 봐야 한다. 이것이 차량지부의 정비 업무이다. 차륜이 깨지는 사고는 후진국적 사고형태인데 벌써 몇 차례나 발생했다.

    장여진: 지금까지 철도파업을 응원해준 국민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하현아: 철도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조건 개선 문제는 승객의 안전과 서비스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국민-노동자가 연결되는 문제이다. 이외에도 철도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아닌 전적으로 철도민영화 문제를 갖고 싸울 수 있었던 건 근본적으로 국민들이 지지해주셨기 때문이다. 철도노동자들이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책임감이나 사명을 갖고 투쟁에 임했다.

    철도노동자가 사실 직업적인 윤리의식이나 사명감이 강한 편이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철도로 잇고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통일철도라는 희망도 갖고 있다.

    우리의 나름의 소명의식을 갖고 국민들을 배반하지 않고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그럴 때마다 국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지금처럼 많이 지지해주고 함께 해준다면 정말 감사할 것이다.

    현재 노조 상황이 어렵다. 조합비는 이미 가압류 됐다. 2003년 배달호 열사 죽음에서부터 이어져온 손해배상이나 가압류 문제를 막아줄 분들은 국민밖에 없다. 이번 철도파업 때 고등학생이 보내온 편지나 성금, 한의사들이 보내준 쌍화탕 등 그런 성원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앞으르도 민영화 저지를 위한 철도 투쟁에 편지 한 장, 초코파이 한 상자의 마음으로 지지와 성원 부탁드린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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